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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 홍명진(52, 왼쪽) 샘이 수강생의 그림을 봐주고 있다.

 

 

 "딸이 너무 좋아해서 한 명 씩 그리고 있다는 이정자(50) 씨의 손놀림은 망설임이 없다. 이 씨가 그리고 있는 모델은 그룹 동방신기의 믹키유천. 벌써 세 번째 동방신기를 그리고 있다는 이 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옆 강의실에서 매 주 수요일 오전 2시간 씩 초상화 그리기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3년 전 뇌종양 수술을 받아 아직도 목소리 내는 것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며 이 씨. 그녀는 아프고 나서 무기력했는데 그림그리기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고, 삶의 의미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포천문화원이 주관하는 포천 휴먼시아아파트 우리 아파트 어르신 초상화그리기 수업은 아파트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데생 실기를 강습하고 동네 어르신들의 초상화를 그려보는 독특한 컨셉의 수업이다.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강사 홍명진(52) 샘은 수업을 진행한지는 3개월 정도 되었다부분적인 실기부터 차근차근 배워 9월부터는 아파트 노인회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초상화 그리기 작업에 들어갈 예정에 있다고 말했다.

 

 

 

 > 수강생들의 그림 실력, 놀랄만큼 원본과 '비슷'하다.

 

 

 

아파트 어머니들의 취미 커뮤니티

 

 이렇게 이야기하면 낯설기는하지만 아파트는 엄연히 공유할 수 있는 이슈가 있는 공동주택이다. 상대적으로 일반 주택가에 비해 반상회나 친목모임 등이 활발한 아파트는 그 특성상 커뮤니티를 매개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도 종종 개설되고는 한다. 포천 휴먼시아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초상화 그리기 수업도 그 중 하나다. ‘단지라는 하나의 담장을 끼고 수 십, 수백에 달하는 입주가구가 모여살다 보니, 이렇게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향유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생기는 것이다.

 

 현재 초상화그리기 수업에는 총 12명의 동네 아주머니들이 참가하고 있다. 강사 홍명진 샘은 어머니들끼리도 꽤 친해지셨다거듭되면서 같이 이런 걸 즐길 수 있는 동아리처럼 된다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기도 하는 문화예술교육

 

 한편으로 어머니들은 9월부터 바로 옆 노인회관 어르신들과 만날 예정에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가족 얼굴, 좋아하는 연예인 얼굴로 연습을 해 오던 어머니들은 갈고 닦은 실력으로 직접 한 분씩 동네 어르신들의 초상화를 그릴 준비를 하고 있다. 강사 홍명진 씨는 노인회관 분들과 이야기는 끝난 상태라며 직접 그린 초상화는 아파트 앞에서 전시할 예정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 강의실 입구. 관리사무실 빈공간을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옆 노인회관과 붙어있다.

 

 

 

 노인회관에서의 어르신들의 커뮤니티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꽤 끈끈하게 그 결속력이 유지되는 커뮤니티지만 다른 연령층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기도 하다. ‘초상화 그리기수업을 통해 11로 어르신들과 대면하는 경험은, 단순히 초상화만이 아니라 각자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서도 충분할 듯 하다.

 

 한편 가족이라는 커뮤니티 안에서도 아파트 문화예술교육은 충분히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이정자 씨는 그전에는 애니메이션 학과를 다니는 딸과 그림 이야기를 할 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 교육에 참여하고부터 딸이 스케치만큼은 나에게 배워야겠다고 헤서 참 좋았다여기서 배운 그림그리기 방법을 딸에게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뇌종양으로 투병하고 10kg 넘게 빠지며 아이들에게 걱정을 많이 줬던 엄마인데, 아이들이 요즘에는 그림 그리는 엄마를 보고 안도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아파트 안에서 철저히개인적이기를 꿈꾼다. 공동주택이라는 말도 무색할 만큼 아파트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좁다란 구식 주택을 벗어난 신식 주택이자 부흥하는 개인주의, 자본주의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회관이든, 문화예술 교육이든 아파트 안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마음만 열려있다면, 아파트는 우리에게 단순한 이 아닌, ‘마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비회원

 

>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상황극 '드라마 플레이'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르페(26) 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한국에 온 이후 안산 공단 지역을 전전하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한 달 전부터 비디오 카메라를 배우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취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가 영상 촬영 방법등을 배우고 있는 곳은 '지구인의 정류장' 이라는 이주노동자들의 '아지트'. 아르페 씨는 이 곳에서 영상 장비 및 편집기술 등을 배우면서 다양한 영상물을 연출해보고 '드라마 플레이'와 같은 즉흥 상황극에 참여할 예정에 있다.  한국어 능력시험을 보는 날 함께 시험을 보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자발적으로 영상 인터뷰해보기도 했다는 그는 아직 말은 서툴지만 "이거(카메라를 가리킴)와 컴퓨터에서 하는 것(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 왼쪽 : '지구인의 정류장' 입구 모습

 > 오른쪽 : '지구인의 정류장'이 위치한 골목. 평범한 주택가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 쉽진 않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미디어 교육 사업 진행 '지구인의 정류장'


 안산시 원곡동 다세대주택 2층에 위치하고 있는 '지구인의 정류장'은 아르페 씨와 같은 같은 이주노동자들을 위주로 이들의 미디어 교육을 지원하고 직접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 단체다. 미디어 교육 뿐만이 아니다. 한국어와 인권 관련, 법 제도 관련 내용 또한 교육하고 지원함은 물론 노동이나 현지 생활과 관련한 상담을 병행하고, 이들이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도록 쉼터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쉼터는 임시 거주공간으로서 기능하기도 하는데, 현재도 10 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생활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47) 대표는 "안산 지역은 이주노동자 대략 7%, 이주한 한국인들 90%, 선주민 2~3% 정도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며 "이쯤되면 '정착 보다는 도시 자체가 붕 떠있는 상태, '정착성이 없음'이 하나의 하나의 특성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우측)와 최종만 강사(좌측)

 

 

 

  그는 "이들을 고용한 사장들도 많은 수가 안산이 집이 아니라, 강남 등 외지에 있는 자택에서 출퇴근하는 구조다"며 "그러다보니 지역민으로서의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집단이 거의 없다"고 이야기했다. 공단지역에서의 많은 세수로 인해 안산지역은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지만, 누군가 머물고 간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 최 대표는 소위 다문화 담론이 생긴지 10여 년이 다 되어간다"며 "그럼에도 이주민 수 만명에 대한 삶의 기록, 도시의 역사일수도 있는 그 모습들은 누가 기억하고 있는가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는 2007년에 미디어 지원활동을 시작했으며, 2년 뒤인 2009년에 '지구인의 정류장' 전신인 '이주노동자 영상제작소'를 개소했다고 한다.

 

 

 

 교육과 생활이 구분이 무의미한 '삶의 공간'

 

 오후 세 시 쯤 되자 안그래도 북적북적하던 '지구인의 정류장'은 안산 지역 극단인 '북새통' 사람들과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로 앉을 틈이 없이 가득찼다. 최근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드라마 플레이'를 위한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인 것. '지구인의 정류장' 최종만(33) 강사는 "드라마 플레이는 안산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안산지역의 '북새통'이라는 극단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추석에 이주노동자들은 무엇을 할 것이냐?' 등의 간단한 주제로 연기, 소리, 몸짓을 이용한 즉흥적인 상황극을 연출해 보는 것이다"며 "9월 9일에 상영회를 할 예정에 있다"고 말했다.

 

 

 > 왼쪽 :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 오른쪽 : 사람들로 가득 차 버린 거실

 

 

  20여 명의 회의 참가자들은 어떤 상황극을 만들 것인가, 누가 배우가 될 것인가, 누가 연출할 것인가 등의 세세한 것들에 대해 2시간이 넘게 토론을 진행했다. 기자가 현장에서 철수할때까지 이 토론의 열기는 끊이지 않았는데, 넓직한 거실이긴 하지만 20 여 명이 뿜어대는 열기는 커다란 에어컨을 무색케 할 정도로 '후덥지근' 했다.

 

 한편으로 옆 방에서는 한국어 강사 음정희(44) 샘이 에티오피아에서 온 월쿠(28) 씨와 서로 부채질을 해가며 도란도란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다가 어제 병원비로 19만원을 내고 진료 영수증을 못 받은 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심각하게 상담해주고 있고, 부엌에서는 캄보디아 전통 음식으로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저녁 요리가 한창이었다. 장소가 다세대주택이어서 더욱이 그래 보였는지도 모르지만, 한 '집 안'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다양한 '사건'들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임의적인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섞여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생활'이라는 주제로 관통되는 삶의 현장 같았다고나 할까.

 

 > 왼쪽 : 주방에서는 저녁 식사로 캄보디아 전통 음식이 준비중이다.

 > 오른쪽 : 에티오피아에서 온 월쿠(좌측)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국어 강사 음정희(우측) 씨

 

 

 

 말할 수 있는 '언론', 공감받고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이주노동자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현지 한국인들과 비교해서 인권이나 처우, 생활환경등에서 '소수자'의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가령 미디어 교육이 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이들 나름대로 '공동체 언론'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들은 꽤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한편으로 굳이 '미래'를 보지 않더라도 커뮤니티는 '커뮤니티' 나름 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나 사실상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공권력의 지원에서도 많은 부분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커뮤니티는 최소한의 것들을 매개할 수 있는 '좋은 끈'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 들 뿐만 아니라 현지 한국인들에게도 '지구인의 정류장'은 꽤 재밌는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동네의 숨은 방구석에서, 그 어느곳보다도 '글로벌'한 수많은 문화의 고속도로를 본 것 같았다.

 

 

 

 > 왼쪽 :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 스크랩과 연락처, 일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알림판

 > 가운데 :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함께 한 활동 들이 정리되고 있다.

 > 오른쪽 : 현장에 구비되어 있는 각종 정보 책자

 

 

 

 

> 방에 모여있는 이주노동자들과 김이찬 대표

 

정혜교 기자  |  chkint@hanmail.net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