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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보다 더 나은 제도를 위해

 

 

방담회 세 번째 이야기

 

 

 

 

 

(7) 제도의 ‘제 역할’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

 

임 : 제도나 정책의 전달체계에서 그를 전담하는 광역센터가 그 부분에 대한 식견 같은게 필요하다. 그런 것들에 대한 ‘매개자’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매개역량을 갖춰야 되는데, 현실은 한계가 크다. 예술강사 문제, 크게 보면 두 가진데, 예술이나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소위 제도나 정책에서 어필하거나 문제제기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 각 재단들이 상당히 소극적이거나 역량이 떨어진다. 사업단위에서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고 조직화해야 하는 측면에서 그걸 매개하거나 추동하는 역할을 재단이 해야 하는 게 지금 시스템에서는 중요해 보인다. 그런데 전혀 되지 않고 있다.

 

강 : 제도를 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른게, 지금과 같은 진흥원 체제보다는 그 안에 소위원회 형태로 ‘문화예술교육위원회’ 같은게 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예술교육사가 따로 있고 예술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듯이, 예술가들 중에 지역 공동체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장르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걸 여러 가지 분과로서 예술의 범위 안에 나누는 식으로 가면 어떤가. 혹은 지금과 같은 제도를 인정한다고 할때면, 진흥원이 그냥 위원회가 되어서, 그 안에서 정책논의를 진행하면서 강사들이나 작가들이 거버넌스로 같이 참여하게끔 하는 거다. 그리고 사무국을 둬서 지금 진흥원이 하고 있는 역할을 하면 되지 않겠나. 거버넌스 체제로 진흥원을 짠다면 지금 가지는 전달체계의 문제들, 작가들이 존엄성이 사라지고, 학교와 만나지 못하는 이런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임 : 아닌게 아니라 이를테면 커뮤니티 아트 같은 경우는 사실 교육적 프레임이 굉장히 강한 예술작업인데, 각 위원회나 진흥원이 발의해서 내려오는 사업 등에서는 정책적 변별을 계속 요구한다. 그러면 말도 안되게 하나는 아트 프로젝트만으로 가야되는 거고 문화예술교육은 시수중심의 사업으로만 프레임을 짜야 되는 식. 사업들을 유기적으로 운영하거나 결합, 변화시키기가 어렵다.

 

고 : 지침 행정인 것 같다.

 

임 : 그리고 얼마나 관리통제도 철저하게 하는지 모른다.

 

강 : 이제 여기에서 첫 번째 안이 문화예술위원회 안에 통합을 하는 것, 두 번째가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문화예술교육위원회로 바뀌는 안. 그리고 세 번째. 혹 앞의 두 개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지역 안에서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협의회 같은 것 안에서 지역에 대한 정책기능을 가지고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하는 게 세 번째일 것 같다. 다만 재원과 권한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 지역 안에서 현재 있는 법 제도를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조례같은게 필요해진다. 그런 조례가 가능해진다면 그럴 통해 재원과 권한을 확보하고, 그걸 해내는 협의체가 작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위원회가 되고 좋은데, 지역자치단체, 지역 의회, 재단, 강사들과 학교, 그리고 교사 이런 그룹들이 전담위원회를 만들어서 여기에서 조례를 중심으로 운영사례를 만들어가는 방식도 있을 것 같다.

 

박 : 영국 Creative Partnership(CP)라고 하는 제도를 참고해봤는데 예술강사를 선발하는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일종의 박람회, 쇼케이스 같은 형태로 예술가가 어떤 주제의식으로 어떤 오브제를 통해 작업을 하는지 전시한다. 그리고 지역학교 교사들을 초대해서 제도를 설명하고 라운딩을 시킨 다음에, 마음에 드는 작가를 교사가 만나서 협의를 한 다음에 함께 수업을 만들어보게 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수학 시간에 아이들이 이해력이 너무 딸리는데, 그런 문제를 풀 수 있는 문화예술교습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 그래서 수업이 분리되어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주제 안에서 계속 연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술가는 예술 작업을 수업과 함께 할 수 있게끔 하게 하고, 학교 교사는 그 예술가의 작업을 모니터링 하면서 자기수업을 진행을 하는 식으로. 우리 진흥원도 CP를 계속 이야기했지만, 그저 예술강사가 학교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만 했지, 어떻게 구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고민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강 : 학교와 예술가를 매칭하게 하는 방법으로서 쇼케이스를 꾸리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어 보인다.

 

박 : 예산이 많이 늘었는데 반해 어느정도 예산이 남는다고 들었다. 양을 늘리기 보다는 그 예산을 활용해서 이런 것들을 실험이나 시범사업 형태로 준비하게끔 하는데 투자해봐도 좋을 것 같다.

 

임 : 가능할 것 같다. 문제는 의지와 필요성에 대한 절감이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 문화재단이나 문화체육관광부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라는 게 사실 한계나 모순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보완해나가는 건 중요한데, 그렇게 해버리면 자기네 스스로 실수를 인정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올해(2012년) 하반기에 청년 문제로 접근을 했지만 예술대학을 졸업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와 같이 지역을 만나서 다양한 작업, 예를 들어 ‘ㅇㅇ은 대학’ 프로젝트 같은 것들이 가능하다는 쇼케이스를 기획해본 적이 있다. 학교 졸업하면 무작정 서울로 뜨는게 아니라 지역에서도 재미있게, 발랄하게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가능하다고 하는 것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보였다. 그런데 그 기획안이 짤렸는데, 담당자가 ‘뭐야, 그럼 얘네들을 취업시켜줘야 되는 거야?’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라. 그 차원이 아니라 자기 삶을 일구는 문제에 있어서의 태도 전환이 초점이었는데, 그 인식이 아쉬웠다.

 

 

 

 

강 : 우리가 진로교육하고 직업교육하고 자꾸 햇갈리는 것 같다. 자기의 진로를, 현재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감각을 가지고 움직일 때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건데 교육이든 어디든 직업 찾아주는 식으로 인식을 한다.

 

고 : 진로교육의 목적은 직업을 갖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일 수 있다.(웃음)

 

강 : 불안해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웃음)

 

임 : 예술강사 사업이 대학들의 ‘존재증명’ 상황에 너무 몰려있다. 대학들이 취업률 가지고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상황이지 않나. 또 예술강사 사업 심사위원들 보면 예술대학교수들인데 학교와 마치 카르텔처럼 되어있다. 기막히다.

 

강 : 제도도 그렇게 되어있었던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하고있는 양성과정이 나중에는 대학들로 다 옮겨가고, 예술관련학과를 나오는 학생은 전공필수로, 교원이수 처럼 해서 몇 시수 이상을 듣고 자격증을 발급받는 식의, 밥벌이구조다. 교수들은 아마 목맬 거다. 이것은 현장을 완전히 왜곡시켜놓을 수 있는 구조다.

 

박 : 처음에 만들때 그것 때문에 사실상 만든 거다. 교과부에서 취업률을 높이려고 하다보니깐 예술대학들을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8) 마무리 : 비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태도’ 가져야

 

임 : 사실 지금까지 제도를 다루고 있는 매커니즘 자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건 사회적인 확장은 둘째치더라도 우리 내부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까 이야기나왔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등의, 단절에 대한 최소한의 ‘링크’와 같은 구조체 등이 제안된다면 사업으로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센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광역센터의 문제라는 측면도 있고,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은데, 이런 논의들이 필요해보인다. 예술강사 사업이 고용이나 안정성의 문제 차원이라기 보다는, 고영직 선생님 말씀하셨듯이 제도가 사람을 어떻게 돌보냐는 차원의 문제, 그런 관계 속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을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고민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고 : 제도나 정책에 대해서 기본적으로는 비관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가져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품위 있는 사회’나, 이를테면 김구 선생이 제안했던 ‘아름다운 나라’라고 하는 문화국가의 이상 같은 패러다임이 우리 사회에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 하더라도, 그런 ‘이상’을 갖는 다는 건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 상징이 없는 싸움은 밥그릇이 되고, 그건 정말 품위, ‘갑빠’가 없다. 계절이 두 번 바뀔 동안 다양한 지역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돌아보면서 참 즐거웠다. 좌절도 하고, ‘멘붕’도 하고 웃기도 했는데, 스스로 ‘고행’의 길이라도 기꺼이 가려고 하는 예술가들에게 희망을 받기도 했다. 정책이나 제도는 그런 분들이 정말 좀 힘 있게, 지역 사회에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도왔으면 한다. 이런 웹진을 마련해서 임재춘 소장님 말대로 우리끼리 위로할 수도 있지만 우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반향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 사유가 시작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누군가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은 굉장히 중요한 거다. 손은 자기 안으로 뻗게 마련이지만 앞으로 쭉 뻗을 줄 아는 그런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거라고 본다.

 

강 : 내게는 지지봄봄을 했던 올 한해가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현장에서 작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분들, 그리고 이미 작업자체가 예술이 되어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 분들도 본 것 같고, 여전히 제도나 행정은 많은 사람들을 힘겹게 하지만 다들 그 안에서 그래도 고군분투 하고 계시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 분들이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도록 힘을 줄 수 있는 환경일 수 있게,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지 않으면 처음 했던 분들도 지쳐서 그만 둘 것이고, 뒤이어 새롭게 진입하는 신진작가들도 적응하면서 스스로 자기검열만 엄청나게 할 것 같다. 이게 바람직한가, 문화예술교육이 목적했던 것인가 생각했을 때 전혀 아닐 것이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발군해내고, 현장을 계속해서 지지해주는 것이 지지봄봄이 곁에서 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박 : 오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방담회처럼 나온 것 같다. 아까 고영직 선생이 이야기한 관계의 미학과 사회의 미학 차원에서 이야기해보자면, ‘코디네이션’ 시대에서 ‘큐레이션’의 시대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문화예술교육에 코디네이터라는 말이 굉장히 유행했었다. 예술 강사나 대표적 자원을 어떻게 연결하고, 뭘 만들어내는 것들에 집중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그런 것들이 왜 형식화되고, 또 사회는 왜 이렇게 정체되고 힘들어지는 걸까. 이걸 어떤 가치지향으로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는지, 마치 큐레이터가 전시를 만들어내듯이 그걸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받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계속해서 뭔가를 연결한다는 생각만 했지 그걸 어떻게 보여줄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지 않나. 예술강사제도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재단이나 사회, 지역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모아보고, 이런 것들을 더 해야 한다고 발굴할 수 있는 계기들을 만드는 장이 필요할 것 같다. 재단이 그런 장을 의도적으로라도 만들어나가면 어떨까. 또 지금 ‘힐링’이라고 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잠시 불안을 잊게 하는 데만 치중하는데, 그보다는 좀 더 자기작업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깊게 가져갈 수 있게끔 예술가들이 자기 영역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줘야 할 것 같다. 그 작업 속에서 내가 무엇을 봐야 하고, 어떻게 아이들을 만날 것이냐는 고민이 생기지 않겠냐. 교습법이나 교육영역도 잘 이해해야 하지만 그 외에 어떤 작가인가, 어떤 예술가인가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것들도 필요하다.

 

고 : 덧붙이자면, 박형주 선생님이 좋은 말 해주셨는데, 힐링이나 웰빙, 심각한 문제다. 사회적인 불안과 공포가 내면과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때에, 예술이 좀 더 사회적인 역할이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며 일종의 ‘사회적 힐링’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이냐는 측면에서 예술과 사회미학의 존재를 고민했으면 한다. 때로는 비관적으로, 때로는 낙관적으로. <끝>

 

 

- 목  차 -

 

 

1부 : 현장과 제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바로 가기]

 

 -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제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 ‘존재적 규정’이 없는 체로 ‘일자리’ 프레임과 교육테크닉만이 중시되는 예술강사사업 

 - 단절된 관계를 복원해줄, 학교와 강사 사이‘매개자’가 필요하다

 

 

2부 : 예술 강사제도의 한계와 돌파구 [바로 가기]

 

 - 예술 강사,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어

 - ‘자기검열’하지 말고 예술이 가진 힘을 활용해야

 - 지역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라

 

3부 : 현장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보다 더 나은 제도를 위해 [바로 가기]

 

 - 제도의 ‘제 역할’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

 - 마무리 : '비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태도’ 가져야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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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

예술강사 제도의 한계와 돌파구

 

 

방담회 두 번째 이야기

 

 

 

 

(4) 예술 강사,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어


박 : 약간 벗어날 수도 있는데,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모두 다 정규직화 한다고 발상은, 비정규직이 심화되는 사회변화와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정규직화가 전제로 하는 ‘조건의 한계’로 인한 무리수도 생길 수 있다. 어찌됐든 영역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분들이 좀 더 자기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고도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나.


임 : 나도 그건 고민이다. 정규직화를 많이 주장하긴 하는데, 좀 비약일 수 있지만 지금 노동법이나 노동 행위가 규정하고 있는 ‘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출퇴근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관리가 되어야 하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는데, 문화예술교육 강사 영역이 그게 가능한 부분인가, 그게 정말 득이 되는 요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박형주 선생 말처럼 정규직-비정규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그 중간에 이를테면 ‘자유정규직’?(웃음) 같은 다른 개념 하나를 창안할 필요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박 : 아직 그런 구분이 어려운 게, 우리 사회가 아직 재택근무나 파트타임에 대한 생각이 경직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강 : 그러니까 다른 상상도 잘 안 되는 것 같다. 직업에 대한 것도 그렇고, 예술가들의 크리에이티브한 작업 영역과 일상의 영역이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 것인지 감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포섭이 된다고 해야 하나, 문화예술교육제도가 놀라운 게 드디어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영역까지도 제도로 포섭을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포섭하는 게 바람직한 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해서 포섭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임 : 심지어 일부는 출퇴근 카드나 지문으로 예술가들을 관리한다는데, 더 문제가 거기 있는 작가들이 ‘아 그거 맞춰주지 뭐’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맞추고 안 맞추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공감이 잘 안 된다는 거다.


고 : 한병철씨 『피로사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과중심 패러다임 안에 갖혀 있다는 거고 예술가도 관리하고 통제하고 제약하려고 하는 정치적인 발상이 깔려있다는 거다. 그런 속에서 새로운 답을 내리긴 쉽진 않다. 한편으로는 예술가들도 교육적인 고민을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올해 여러 현장을 돌아봤는데 한 두 곳의 현장을 제외하고는 냉정하게 말하면 좀 우왕좌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치원, 초, 중, 고등학생 등 아이들 발달단계에 맞는 적절한 고민이 예술가들 사이에서 얼마나 있는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예술교육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교육인데 교육적 관점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이고, 배운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배움에 대해서, 선생님이란 존재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사유와 고민들이 필요한 게 아닌가. 내 고민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관전평이다.

 

경기문화재단 임재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왼쪽)

 

 

 

(5) ‘자기검열’하지 말고 예술이 가진 힘을 활용해야


강 : 지난 호에 다뤘기도 하지만, 결국 ‘미적 교육’이라는 게 미적 인간, 이성과 감성이 조화로운 어떤 상태의 인간을 지향한다는 건데 이게 지금 이성 중심의 학교 교육 시스템에 있어서 다 막혀있지 않는가. 그래서 예술교육이라는 게 감성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끊임없이 필요할 수 없는데, 그걸 끌어들여서 이성의 통제 안에 다시 넣으려 한다면 이건 또 다른 이성, 지성교육일 뿐이게 될 것 같다. ‘감성’이라는 건 다양한 차원에서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할 것인데, 그 안에는 기존의 이성 중심적인 교육방법론으로는 통용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다. 이걸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할 때 그 교육이 빛을 발할 수 있고 문화예술강사들도 그 교육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맞춰준다’면, 강사 스스로도 재미없어 지고 현장에서 성과도 못 내게 되는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작가들이 ‘진짜 이럴 거면 안 한다’라고 굳은 마음을 가지고 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서로의 이해도 필요하다.


임 : 많은 작가가 학교 시스템이나 학교가 원하는 수준으로 자기의 작업이나 활동을 굉장히 매뉴얼하게 만든다. 혹은 예술가들이 실제로 자기가 어떤 예술작업을 공유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상이나 방법론을 예술가들 스스로도 설명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고 : 예술 강사로서의 자존감과 자질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도화된 학교에 들어왔을 때 강사 스스로가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작업을 충돌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위축시키고 자기검열을 하는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제도 자체에 대해 저장할 수도 있지만 제도 안에서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을 거라 본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서 표현한다고 할 때 다른 나라의, 피카소의 ‘게르니카’ 같은 작품을 가지고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도 가능한 교육일텐데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는 안타깝다. 물론 제도가 ‘모욕’하는 측면이 없진 않겠지만 그런 노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이 아닌가. 예술 강사들이 스스로 저항도 고민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우회적으로라든지 상상하는 그런 ‘분발’을 촉구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강 : 아이들은 늘 자기 안의 폭력성이나 불안감, 외로움, 들뜸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학교 교육현장과 같은, 굉장히 짜이고 통제된 틀 안에서는 발현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럴 때 이제 우리가 그것을 치유하고 해소하는 방식으로서 ‘예술’을 장치로 활용할 수 있지 않겠나. 예술은 아무리 해봐야 그걸 가지고 누굴 때릴 수가 없다. 자기 안에 내재된 어떤 감성적인 면을 특정한 작업을 통해 미적인 완성품으로 치환해내는 힘 같은 것을 예술이 가지고 있는 거다. 그런, 치유와 해소의 방식으로서의 예술이라는 부분을 인정하면서 바라봐줄 때, 문화예술교육이 제대로 학교와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6) 지역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라


박 : 예술강사 선발과 관련된 또다른 고민의 차원은 ‘지역’일 것 같다. 전국단위의 예술강사사업도 잇을 수 있지만 어떻게 하면 ‘지역화’시킬 수 있느냐라는 문제도 있지 않나. 사실 기존의 ‘지역화’에 대한 문제는 일자리 사업의 프레임에서 지역 일자리 만들기 차원으로만 이야기가 되니깐 그 논리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역과 예술가는 어떤 점에서 만나야 하고, 어떻게 만나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강 : 지역과 작가들이 만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지금까지 교육체계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배운 걸 가지고 사회에 개입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성장 후에도 그 방법을 많은 이들이 잘 모른다. 그래서 정치 밖엔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고정관념에 빠지는데, 우리의 지식도 끊임없이 사회와 만나면서 조금씩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럴때 지역의 작가들이 끊임없이 학교현장에서 아이들과 관계를 맞으면서 문제를 풀어나갈 때 그 경험을 축적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일단 지역의 작가들이 장기적으로 지역과 관계를 맺으면 좋겠고, 또 지역안에만 고립되지 않게 50프로 정도는 외부의 새로운 시선이 순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작가들을 수혈하는 시스템이 같이 움직여줘야 한다. 폐쇄적 커뮤니티가 아니라 계속 열리면서 사회전체와 관계맺으면서 작동되는 생태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 : 강사의 문제로 접근해버리면 ‘강사’라는 말의 규정성이나 강사에 대한 현장의 필요에 갖히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예술강사 문제는 즉 강사를 ‘그냥’ 선발해 버렸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어떤 현장에, 어떤 작가가 필요한지를 고려하지 않고 사람만 뽑아놓은 상태에서 (일괄적으로) 배치만 하는 방식이라는 거다. 어떤 작가가 있고, 어떤 작품이나 가치관, 존재감으로 활동을 하는 지를 발견하는 과정들이 필요하고 이를 다양한 사업 플랫폼을 통해서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예술강사와 교육자의 ‘그룹핑’이 과정에 따른 결과로 되어야 되는 거지 이게 뒤바껴 버리면 역할이나 취지, 목적 자체가 상당히 왜곡될 소지가 많은 것 같다. 과정에는 갈등도 생기고 그게 또 봉합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가는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보기 좋게 포장만 되어버리고 트러블이 마치 ‘문제’인 것 처럼 인식이 되는데, 그건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걱정하기 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그들이 경험할 수 있게 현장의 다양한 케이스들에 접근할 수 있게 열어서 경험이 축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 : ‘관계의 미학’이라는 건 무의미하진 않지만 사실 약한 것이다. 그보다는 더, 예술가들이 학교나 자기, 사회와 소통할 때 필요한 것은 관계의 미학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미학이 아닌가 한다. 이를테면 용산이나 두리반 문제 같은 것, 그런 것들에 예술가들도 결합해서 고민하는 지점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은데, 제도 등에 대해서 어떤 저항도 하지 않으려는 형태로 ‘순치’되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때로는 ‘가시’처럼 대응할 필요도 있다. 예술은 집단지성과 연결되지 않는가. 바깥 세상과 소통하려는 교육이 필요하고, 그것을 예술가를 뽑는 과정에서의 워크숍이나 교육행위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고민하는게 필요하다.


강 : 그래서 지역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동네나 마을, 지역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을 아이들하고 같이 들여다보면서 그 문제를 보기 시작하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회참여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던 작가들도 아이들과 같이 해나갔을 때 변화시킬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변화의 기쁨을 같이 배워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않겠나. 문화예술교육은 아이들 만이 아니라 작가들도 같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목  차 -

 

 

1부 : 현장과 제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바로 가기]

 

 -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제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 ‘존재적 규정’이 없는 체로 ‘일자리’ 프레임과 교육테크닉만이 중시되는 예술강사사업 

 - 단절된 관계를 복원해줄, 학교와 강사 사이‘매개자’가 필요하다

 

 

2부 : 예술 강사제도의 한계와 돌파구 [바로 가기]

 

 - 예술 강사,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어

 - ‘자기검열’하지 말고 예술이 가진 힘을 활용해야

 - 지역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라

 

3부 : 현장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보다 더 나은 제도를 위해 [바로 가기]

 

 - 제도의 ‘제 역할’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

 - 마무리 : '비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태도’ 가져야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

현장과 제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방담회 첫 번째 이야기

 

박형주(이하 박) : 오늘 방담회는 지지봄봄 2012년 마지막 회를 맞아, 특별히 외부에 계신 분들을 초청하지는 않고 올 한 해 지지봄봄을 이끌었던 편집위원들이 모여서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해 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진짜 말 그대로 현장 돌아다니면서 느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학교 안의 문화예술교육 강사 이야기도 해보고 제도도 연결 지어서 다양하게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다. 방담회라는 게 자유로운 느낌이니 만큼, 방담회 방향에 대해서 좀 더 덧붙이거나 다른 방식을 제안할 게 있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 봐도 좋을 것 같다.

 

 

 

 

(1)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제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강원재(이하 강) : 올해 다양한 현장을 돌아본 것 같다. 현장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서 각기 개인적으로 좋았던 수업, 나빴던 수업이 있을 건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수업이 갖는 특징, 발현되는 환경, 그 안에서 예술 강사와 교사의 역할, 그들이 수업을 이끌어나가는 태도. 또 그러면 그런 교사, 강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럴 때 제도와 환경 이야기가 이어져서 뒷부분에서는 정책까지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재춘(이하 임) : 이전에 제도 관련해서는 우리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 적이 있다. 그런 것을 이번에도 먼저 이야기하기 보다는, 오히려 환경적인 측면에서, 또 원론적인 차원에서 지금 필요한 것, 가꿔져야 하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제도나 정책은 그 다음의 문제일 수 있다.

 

고영직(이하 고) : 특별하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꺼내며 해도 좋을 것 같다.

 

박 : 방담회 전에 고영직 선생님이 먼저 공유해주신 ‘품위 있는 사회’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는 것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고 : 보통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많은 이가 원론적인 이야기에 빠지고, 또 정부를 향해서 청원하는 식의 흐름으로 가곤 한다. 개인적으로 이제 좀 큰 주제나 비전을 가지고 이야기하는게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비사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 는 상당히 격조 있는 인상을 받고 있는 책이다. 책은 미적교육에 대해서라기보단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데, 즉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가 품위 있는 사회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마갈릿은 기본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것 보다 품위 있는 사회를 추구하는 게 더 훌륭하고, 급선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책의 문제나 제도의 문제를 본다면, 대증적인 차원에서의 즉자적 문제제기가 아닌 좀 더 거시적이고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문화예술교육 제도나 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세상을 바꾸는 비전의 문제는, 특히 공무원들과 같은 집단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중에 하나가 아닌가.

 

ㅇㅇ은 대학연구소 강원재 1소장(왼쪽)과 하자센터 박형주 교육팀장(오른쪽)

 

 

 

(2) ‘존재적 규정’이 없는 체로

    ‘일자리’ 프레임과 교육테크닉만이 중시되는 예술강사사업

 

강 : 현장에서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종종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정부 공모 사업이면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였다. 예술강사 혹은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사업이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어떻게 읽혔냐면, 예술강사는 수업 자체가 퍼포먼스나 활동, 하나의 작업 같은 그런 건데 이걸 다 규정을 해놓고 그 규정된 틀 안에서만 움직이게 하니깐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없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으로 읽혔다. 가령 한 작가는 수업을 하면서, 혹은 수업을 생각하면서 그 틀을 벗어나서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한 새로운 감각들, 트렌드들이 생겨나서 그걸 가지고 아이들을 현장에서 새롭게 만나기도 하고 싶다는데, 규정된 컨텐츠, 규정된 차수에서 움직이니깐 그 안에서 작업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없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 이후에 제도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실제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더라. 문화예술전문인력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게 우리나라 법 같은 경우는 ‘존재적 규정’은 없고 ‘기능적 규정’만 하고 있더라. ‘문화예술교원 이외의,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기획, 진행, 평가 및 보수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 이게 규정의 끝이다. 미국이나 뉴잉글랜드 등의 법률에서는 분명하게 존재적 규정을 하고 있다. ‘전문예술인으로서, 자신의 예술관점, 기술을 다양한 지역의 환경과 연계하여 활동하는 사람’, 혹은 ‘상호 호환적 기술과 교육과의 감성을 가지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전문예술가’ 이렇게 분명하게 그 존재적 규정이 되어있다.

 

고 : 언어가 의식을 규정하고, 존재를 규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이, 세상이 사회가 달라지는 건데, 언어의 프레임 자체가 너무 기능적인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교육학자나 공무원들의 행정에 관한 논의가, 테크닉만을 중시하는 데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강 : 아마 이 제도나 법 문구를 만들 때 예술가들은 한 명도 참여를 안했을 것 같다. 만약 참여했다면 이런 식의 규정이 나올 수가 없다. 배재된 상태에서 작업이 들어갔고, 만든 사람들은 예술가가 아니니깐 존재규정 자체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예술가들의 어떤 거버넌스나 논의체제 위에서 만들어졌으면 존재적 정의가 가능했을 건데 그런 과정은 없었다는 게 이 문구 자체에 내포가 되어있는 것 같다.

 

박 : 부처 간 협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지나치게 ‘교육화’만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잘 가르친다’는, 가르치는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예술에 대한 환경, 예술가의 아우라, 혹은 예술가의 작업으로 바라보게 하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러다보니 기능적으로 그 (교육적) 행위를 어떻게 잘 할 것이냐, 또 이런 기능을 위해 이런 역할이 필요하다는 시선으로 계속 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떤 교육을 위한 기계적 노동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예술적 노동으로 바라보는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고 : 예컨대 법에서 규정하는 급여 규정만 봐도, 한 마디로 ‘영혼 없는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어제 한국예술종합학교 심광현 교수를 만났는데, 그런 상황에 대해서도 아주 격렬하게 비판을 하더라. 교육부나 문화부간 협의뿐만 아니라 학교 안 교사하고 학교 밖 예술강사도 소통 없이 손발이 안 맞는 다는 거다. 심 교수는 학교 안 ‘문예체(문화, 예술, 체육)’ 교육은 사실 포기 단계에 있고, 학교 밖 강사들에게 위탁 관리하는 식으로 해올 뿐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문제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학교 안과 학교 밖에서 동시의 성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국영수를 잘하는 아이가 있고, 또 어떤 아이는 국영수는 못하지만 문예체 쪽에 특출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전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법이나 제도 추진 과정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런 점들에 대한 고려가 다 결락되어서 이와 같은 결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임 : 사실 예술 강사 사업의 가장 큰 문제가, 학교에서 어떤 아이들에게 어떤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가라는 고려 없이 ‘예술 강사’의 기능적 측면에 중점을 두어 분류를 해놓고 선발해서, 배치하는 식으로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일자리 사업처럼, 오천 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점만 성과지표화 하고 그 다음 문제는 사실상 'I don care', 되면 좋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라는 거다.

 

강 : 그래서 강사들을 사실상 일자리 지침에 맞춰서 시수나 이런 것들로 관리하는데, 참 답답하다.

 

임 : 예술강사들이 많은데도 현장의 변화가 있지 않은 게 바로 그 프레임 때문이다. 일자리 프레임 때문에 다른 상상력, 다른 문제의식들을 예술강사들도 갖기가 어렵다. 문제제기라고 해봤자 처우 문제에 집중이 되고, 생산적인 정책 제안 등이 어렵다.

 

강 : 어떻게 보면 장기적으로는 일자리 개념에서 문화예술강사의 처우가 보장되는 방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면에서 약간 기대되는 면이 없진 않다. 제도적 개입들은 아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측면 정도에서 이루어지지 않겠나.

 

고 : 그 점에 대해서는 심광현 교수도 주장하는 바다. 학교 안에서 예술강사를 ‘이등 국민’처럼 취급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정규직화로 가야 한다고 보고 있더라. 하지만 최근에 심광현 교수가 쓴 『창의적 문화교육 : 미래 교육의 열쇠』에서처럼 당장은 그런 단계가 힘들고, 또 그 보다 더 시급한 건 부처간 협의를 통해서 일단 예술강사 스스로도 정말 다양한, 훌륭한 ‘선생의 자질’을 길러야 한다는 걸 강조를 하더라. 소통의 문제도 많이 고민해야 하고, 또 강사 인력도 지금 5천명에서 두 배 정도로 늘어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강 : 경계가 생겨나 버린 것이다. 교사들하교, 예술강사들하고 소통이 잘 안된다. 서로 수업에도 잘 안들어가고, 교사들은 아이들은 맡겨놓기만 하는 것 같다. 철저하게 예술강사에게만 맡겨져 버리는 형태로 보든 부담을 예술강사 혼자 감당해야 하는. 또다른 우리 사회의 경계를 보면 ‘마을’도 그런점이 있다. 예술가가 들어가면 마을에서도 예술가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깐 자기들 작업하려고 온다고만 생각하고, 예술가들도 마을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뭘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접근방법을 모른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드는 건 그렇다면 그 중간을 ‘매매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박 : 가르친다는 ‘스킬’의 부분에 있어서, 교사는 강사를 비전문가로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예술가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서, 또 그 작업이 나의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겠다고 하는 감이 없이 수업의 어떤 파트, 어떤 커리큘럼을 할 수 있다고 보내어지는 강사를 맞이한다. 교사 입장에서 강사들 교안을 보면, ‘허접’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교사들이 접근할 수 있는 예술강사 시스템이 있는데 거기 들어가서 교안을 보면 ‘너무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올 정도’라고 교사들이 이야기한다. 그 기준으로만 보면 아무리 좋은 예술가들도 그냥 ‘알바’하는 사람들로 보이고, 오히려 이런 ‘비전문가를 정규직화 하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르친다는 프레임 안에서 순위경쟁 하는 것 밖에는 안되는 것 아닌가. 그 보다는 어떤 작업을 하는 작업자인지, 어떤 문제의식과 영감을 줄 수 있는 예술가인지를 드러내주는 교류의 장 같은게 필요해보인다. COP같은 경우도 그런 장이면 좋은데, 지금은 예술강사들이 자기 교습법이나 매뉴얼 만드는데 그치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고 : 심광현 교수 책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이 책은 교육과정의 전면 개편에 관한 것이다. 왜 필요하냐. 아이들에게는 기존의 문제를 뽑아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잇는 능력 두 가지를 길러주는 게 중요한데 기존의 정규선생님들 만으로는 부족하고, 폭 넓게 문화교육이라는 차원에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차원에서 예술 강사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있고, 또 비고츠키나 프뢰네 같은 사람들의 교육철학적인 부분이 도입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서울이나 경기도에 잇는 혁신학교 모델에서 작은 희망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 : 중간에 만났던 한 작가의 경우는, 너무 ‘예술가’라 자기가 짜인 교육을 한다는 것 자체를 싫어하더라. 사실 고민하는 게 그 작가는 아이들 만나서 뭘 할지는 만나봐야 알지 내가 계획을 가지고 어떻게 거기에 맞추면서 할 수 있냐는 점이었다. 이 양반은 작가로서, 작품 활동의 시작과 결과까지 모두 아이들하고 ‘온 체험’을 통해 만들어가면서 바라만 봐도 ‘눈이 건방진’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걸 보면 놀라웠다. 교사가 수업방법론을 가지고만 끌고 갈 수 없는 아이들을 어떤 작가와 작품의 아우라 속으로 초대하는 행위였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나는 교습방법론을 중심으로 예술가를 판단하는 것은 예술에 대해서 너무 무지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예술이 제공할 수 있는 삶의 어떤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서 나와 내 주변을 바꿔나가는 힘을 배워나간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이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강사들이 어떻게 학교에 접근할 거냐만 계속 가르치는 것 같다. 예술가들더러 학교 현장에 ‘적응할 것’만 요구하니깐 자존심이 상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상호적으로 접근해서 물론 예술가도 학교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학교도 ‘작가를 맞이하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이해를 위한 공부를 한 학교만 예술강사를 파견하도록 해야 한다. 학교도 일정한 이수를 안하면 예술강사를 받을 수 없도록 제도를 만들 필요도 있을 것 같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 : 일종의 상호문화교육, 상호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제도적으로도 강제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사실 초임교사들은 잘 모르겠지만 전교조를 포함해서 많은 수의 선생님들이 ‘직업인’화 되어있다. 일전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교육정책을 학교 현장의 20프로정도 되는 선생님들을 보고 끌고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80프로에 달하는 선생님들이 대체로 그렇다는 거다. 예술가들의 나이브함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선생님들의 경직됨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지금 현재 계속 경직함과 나이브함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임 : 그러다보니 문화예술교육이 뭐냐, 가르친다는게 뭐냐, 배움이라는게 뭐냐 이런 고민들을 다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물론 잘짜여진 커리큘럼이나 학습지도안이 필요한 영역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배움과 성장의 의미가 어떻게 해서 생성되는 것이냐를 생각할 때, 특히나 예술의 관점에서는, 학습지도안 보다는 수업을 통해서 매개되는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고 유지하냐는 문제로 가야되는 것이지 않겠냐.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교육예술이라고 하면서 학습지도안과 이를테면 세 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할지, 수업의 목표와 주제 같은게 규정되지 않으면, 그걸 제대로 된 수업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냐.

 

강 : 나는 그 부분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예술가는 만들어지거나 양성된다기 보다는 ‘발견’되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짜오는 게 작업 방식과 맞는 예술가가 있을 수 있고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맞는 작가들은 원래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잘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즉 문화예술교육에 맞는 ‘발견된’ 예술가들이 교육 현장에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만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예술가들 스스로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기회들을 많이 주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한번 들어왔으니깐 끝까지 다해라 이건 또 서로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

 

임 : 어떤 면에서 예술강사 사업은 사실 ‘양성되는’ 과정인건데, 그건 고도의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그 트레이닝 과정 없이 배치되는 방식이다 보니깐 갭이 너무 큰 것 같다.

 

박 : 행정적 효율성을 계속 따지다 보니깐, 배치 시스템 안에서 한 강사가 어떤 예술가인가가 이미 클릭하기 전에 평가가 되어버린다. 시스템 자체가 사실 안 바뀌면 답이 안 나오는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중앙에서 계속 그렇게 한다고 했을 때 지원센터 차원에서 보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강 :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사람이 교사인데, 교사들이 예술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 방법이 별로 없다.

 

고 : 센터의 위상과 권한이 그런 부분을 위주로 좀 강화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3) 단절된 관계를 복원해줄,

     학교와 강사 간 ‘매개자’가 필요하다

 

강 : 매개자 이야기를 연관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Creative Agency)’다. 학교에 파견된 에이전시가 있어서, 교사들이 ‘아이들하고 이런 문화예술교육을 좀 하고 싶어’하고 느끼면, 에이전시에게 가서 상담을 받는 거다. 그러면 에이전시는 거기에 맞는 예술강사를 섭외해주는 방식이다. 이런 매개자가 학교에 상주하면서 그런 작업을 해낸다면, 교사들도 예술을 모른다는 걸 사실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되고,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작업이 아이들에게 맞을까 라는 걸 ‘불안해’하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범적으로 내년에, 혁신학교 몇 군데에 파견해보고 거기서 나오는 성과들을 보면 좋을 것 같다. 학교 안에 그냥 예술수업만 있나? 축제도 있고 공간 만드는 것도 있고 예술가들이 할게 너무 많다. 에이전시가 그런 일들로 예술가들을 계속 학교로 초대하고 아이들은 그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문화예술적 소양을 기른다면 이게 가지는 힘이라는게 있으리라 생각한다.

 

임 : 문화코디네이터라는 제도가 있긴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기존 코디네이터의 문제는 ‘예술의 비전문가’가 문화코디가 되어왔던게 대부분이었다. 또 학교에서 수업을 ‘강요’받는 문제도 있었다. 에이전시의 역할 같은게 뭔가 루즈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쉬운, 그런 역할로 보였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혁신학교는 자체 계획에 의해서 채용을 하겠다는 프로포즈를 넣고 있기도 하다. 분명 그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은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교사들도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스스로 없다는걸 과정상에서 비판받고, 부끄러움 당하는 과정들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문화코디 같은 제도를 통해서 보완이 되고, 상호적 관계로 갈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강 : 서로 모른다는 건 사실 당연한 건데 그걸 부끄러워한다. 교사들이 문화예술을 모를 수도 있지 않냐. 당연한 건데 마치 그걸 부끄러워하면서 잘 찾아보지도 않고 자존심의 문제로 생각해버리는, 그러면서 자기가 잘 아는 것만 지키고 강조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고 : 문화코디가 예산 등에 대한 권한이 있는지?

 

강 : 그게 있어야 핵심이다.

 

임 : 오히려 예산을, 펀드레이징을 해 와야 하는 경우도 많다. 죽을 맛이라고 한다.

 

강 : 코디가 파견되면 학교 안에서 강사 몇 명을 초대할 수 있다든지 하는 재량권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또 코디가 학교에만 계속 있는 게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예술가들 만나고 접점 고민하고 섭외하고 그런 것을 계속 해야 할 것이다. 학교 안에만 붙잡아 놓으면 ‘교사 될 뿐’이다.

 

임 : 근태 문제로 돌아다니는 걸 못 참아 한다더라.(웃음)

 

강 : 자유직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같다.

 

 

 

- 목  차 -

 

 

1부 : 현장과 제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바로 가기]

 

 -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제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 ‘존재적 규정’이 없는 체로 ‘일자리’ 프레임과 교육테크닉만이 중시되는 예술강사사업 

 - 단절된 관계를 복원해줄, 학교와 강사 사이‘매개자’가 필요하다

 

 

2부 : 예술 강사제도의 한계와 돌파구 [바로 가기]

 

 - 예술 강사,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어

 - ‘자기검열’하지 말고 예술이 가진 힘을 활용해야

 - 지역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라

 

3부 : 현장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보다 더 나은 제도를 위해 [바로 가기]

 

 - 제도의 ‘제 역할’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

 - 마무리 : '비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태도’ 가져야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

 

 

 

 

 

 

 아주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문화예술교육은 학교 현장에서, 또 학교 바깥에서 공교육이 외면하다시피 하던 아이들의 감성교육을 매워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학교현장에도 속속들이 침투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오늘날, 문화예술교육 혹은 강사는 학교 현장에서,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놓여있는걸까요?

 

 2012년 지지봄봄 마지막 방담회는 올 한해 지지봄봄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했던 4분 기획위원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ㅇㅇ은 대학연구소 강원재 1소장을 비롯 고영직 문학평론가, 하자센터 박형주 교육팀장, 그리고 경기문화재단 임재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등 4분이 모여서 이야기한 문화예술교육제도와 강사, 그리고 학교 현장. 지지봄봄이 올 한해 현장을 만나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현장과 강사, 그리고 제도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가볍지만은 않은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주>

 

 

                                                                        일시 : 2012년 12월 14일 목요일

                                                                        장소 :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첸터 신관 1층

 

 

 

 

 

 

- 목  차 -

 

 

1부 : 현장과 제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바로 가기]

 

 -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제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 ‘존재적 규정’이 없는 체로 ‘일자리’ 프레임과 교육테크닉만이 중시되는 예술강사사업 

 - 단절된 관계를 복원해줄, 학교와 강사 사이‘매개자’가 필요하다

 

 

2부 : 예술 강사제도의 한계와 돌파구 [바로 가기]

 

 - 예술 강사,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어

 - ‘자기검열’하지 말고 예술이 가진 힘을 활용해야

 - 지역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라

 

3부 : 현장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보다 더 나은 제도를 위해 [바로 가기]

 

 - 제도의 ‘제 역할’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

 - 마무리 : '비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태도’ 가져야

 

정리 = 정혜교 기자ㅣ chkint@hanmail.net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성공을 위한 성취와 그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에 치중해 '국영수'교과과정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우리 교육과정이 야기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란 적지 않다. 교육은 교육 뿐만이 아니라 세대, 사회, 문화, 나아가 그 시대를 규정하는 힘의 '중추'라는 점에서 사회의 구심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력적-다중지능적 창의적-발달을 위한 새로운 교육학'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미래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은 지금과 같은 교육과정에 대해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담긴 교육과정 개편 제안서다.

 

 강정석, 노명우, 심광현 등 공동으로 책을 저술한 3인방은 지금까지의 교육과정이 가지는 '이성중심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교육의 본질부터 따져 근대사회 교육담론의 출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교육과정 정립의 역사적 맥락을 살핀다. 그리고 균형적인 교육도 불가능하고, 아동의 인지과학적인 발달단계도 무시된 현 교육을  ‘창의성’, ‘문화’, ‘협력’, ‘미래’라는 4가지 키워드를 통해 '창의적 문화교육'으로 획기적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현 교육과정의 '전면적인 개편'이다. 즉,『미래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는 '창의적 문화교육'으로의 교육과정 개편과, 그를 위한 이론적 근거와 기본원리,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는 정책적이고도 교육학적인 책인 것이다. 많은 문화예술교육 종사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보다 더 깊이, 우리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고 문화예술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차

 

서론: 미래 협력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장

제1장 미래 사회와 미래 교육
제2장 근현대 교육담론의 계보학적 재구성
제3장 왜 협력적ㆍ창의적 문화교육으로 전환해야 하는가?
제4장 인간에 대한 인지과학적 이해
제5장 미래의 창의성은 다중지능이다
제6장 창의적 문화교육의 개념적 프레임
제7장 창의적 문화교육의 교육과정 구성 원리
제8장 통합교과 사례 분석

결론: 교육혁신을 위한 정책과제 로드맵

보론: 창의적 문화교육과 대학교육개혁의 연계를 위한 ‘교육혁명’의 마스터플랜 개요

 

저자

    강정석 : 계간『문화과학』편집위원

    노명우 : 아주대학교 사회과학부 사회학 교수

    심광현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출판사 살림터

 

페이지 : 366

 

출판년도 : 2012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

 

 

 

 사회담론을 이끌 수 있는 '상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비사이 마갈릿은 존 롤스의 <정의론>에서 제시된 정의로운 사회와 대조해 우리에게 당장 시급한 문제는 정의가 아니라 '품위 있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이에 대한 원저의 명칭은 The Decent Society다. Decent는 해석하기에 따라 '괜찮은, 품위 있는, 예의 바른, 적절한, 온당한, 상황에 맞는' 등의 다양한 뉘앙스로 해석이 가능한데, 역자가 그 중 가장 적절한 의미로 택한 것이 '품위'인 것으로 보인다.

 

 

 마갈릿은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를 품위있는 사회로 규정한다. 어떤 형태로든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중심부와 주변부, 혹은 다수와 소수자라는 형태 등의 다양한 계층화나 '무시'로 제도로 인한 인간 '모욕'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마갈릿은 사회제도는 두 가지 방식으로 묘사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즉, 추상적으로 그 규칙이나 법에 따라 묘사하거나 혹은 구체적으로 그 실제 작용 방식에 따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마갈릿은 '로스엔젤레스 경찰관들이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대한 방식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뉘른베르크 법이나 인종차별정책을 담은 법은 후자에 해당한다'(본문 15)고 말한다.

 

 

 4부로 나누어져 있는 이 책은 단계적으로 인간이 제도나 사회, 통치체제에 의해 모욕감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한 뒤, 인간을 존중해야 할 정당한 근거를 세 가지의 유형으로 제시한다. 다음으로 제도 안에서 발현되는 모욕의 양상과 개념을 다루고, 그리고 복지나 처벌 등 다양한 방식의 제도들이 품위 있는 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고민해 본다. '결국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 3부까지는 모욕의 개념을 다루고 4부는 모욕이 제도적으로 발현된 것을 다룬다.'(본문 17)

 

 오늘날 우리 교육은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자(학교, 교사, 강사)나 피교육자(학생)의 '모욕'을 야기시킨다. 지지봄봄이 이번 호를 통해 제시하는 '품위 있는 사회'가, 우리 교육에 내재한 '모욕'과 같은 폭력적인 상황을 해소할 수 있게 하는 아이디어가 되길 바라 마지 않는다.

 

 

목차

 

저자 서문, 머리말


1부 모욕의 개념 : 모욕, 권리, 명예
2부 존중의 근거 : 존중의 정당화, 회의적인 답변, 인간에게 고약하게 굴기

3부 사회적 개념으로서의 품위 : 모욕의 역설, 거부, 시민권, 문화

4부 사회제도의 검증 : 속물근성, 관료제, 복지사회, 실업, 처벌

 

맺음말
본문의 주

 

저자

    아비사이 마갈릿Avishai Margalit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 철학교수

 

번역

    신성림 이화여대 철학과 및 동 대학원, 파리 10대학 대학원 철학박사 과정 수료

 

출판사 동녘

 

페이지 : 308

 

출판년도 : 2008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2013년 도입예정인 문화예술교육사 제도에 대해 문화예술교육인력의 법적자격기준과 관리체계 마련사회적 인식제고와 신뢰 구축”, “전문성과 경력관리 역량강화”, 그리고 양성교육과정개발을 목적으로 한다고 <예술 강사 대상 문화예술교육사 설명회> 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다.

 

 사실 문화예술교육사에 대한 논의는 이미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제정되던 2005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지만, 최근 몇 년간 청년백수 백만시대에 들어선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맞물려 예술강사의 증가와 예술교육에 대한 현장수요의 확대가 이어지면서 다시 제도화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던 예술가의 사회적 위상과 제도적 신분 보장이 전무한 현실에서 이번 제도화가 환영할 만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사 제도를 도입한 개정 문화예술교육법안을 살펴보면 그간 현장에서 어려움을 호소해왔던 여려가지 문제들이 여전히 내포되어 있다.

 

 먼저 개정된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은 법이 명시하는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기획, 분석, 평가 및 수업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로 문화예술전문인력을 새롭게 규정하면서, 이러한 주체가 예술가인지 교사인지 여전히 밝히지 않고 있다. 예술은 생성, 조화, 해체와 재생성이라는 존재적 특성으로 인해 참여 주체들의 성장을 촉진해가기 때문에 그 자체로 교육적이라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예술가를 교사라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교육의 목표는 감성과 이성이 조화로운 전인으로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예술 안에서 일어나는 미적경험의 원리를 갖고 있지만 이를 수행하는 교원을 예술가라 할 수는 없다. 물론 교사와 예술가가 분리되지 않고 넘나들면서 교육도 하고 예술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서는 특별히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사회 교육현장의 실상이 그러한가? 경쟁적 입시 중심의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만이 전부인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 아닌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둔 채 자유가 존재기반인 예술가에게 그러한 학교에서 그러한 교사의 역할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는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제도에 관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사를 국가 공인의 자격으로 두면서 대학을 중심으로 양성하는 것을 이 법은 명시하고 있는데, 그간의 청소년지도사청소년상담사’, ‘평생교육사제도가 어떻게 학제 중심의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하였고, 그리하여 도입취지를 무색하게 했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일정 정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2급 자격이 주어지도록 되어 있는 문화예술교육사는 관련 학과의 학생들에게 작가로서의 삶을 사는 것과 관련 분야에 취직하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진로가 될 것은 분명하지만,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창작행위를 교육적 활동에 두는 작가의 출연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게 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제도화된 2005년 이래로 수많은 교육현장에서 학생들과 만나며 예술적 영감을 이끌어 내고 참가자들의 미적 성장을 견인해온 무늬만커뮤니티 김월식 작가의 고민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가는 그가 어디에 있든 예술가이며, 학생들과 만났을 때 그 만남이 창의와 미적 경험으로 빛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에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창작열을 불태우며 예술동지로서의 교감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김작가의 생각이다. 이럴 수 있을 때 그러한 창작의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도 작가의 예술동지로서의 경험을 함께 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사의 정체성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 선 이가 해낼 수 없는 예술가의 고유한 활동 영역임이 분명하다.

 

 세 번째는 전문교사 양성을 목표로 구성된 문화예술교육사 교육과정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교육심리, 교육평가에 교무행정, 문화정책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 2급 과정도 그렇고, 초중고 교사들의 전문역량인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이나 예술행정을 익히고 교육프로그램 개발하고 운영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육은 학습자 한 명 한 명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거기에 맞춤된 과정이 새롭게 만들어질 때 생생한 경험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지금 우리교육의 교무행정과 교과운영시스템은 이를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현장 교사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과정을 삶의 미시적이고 찰나적인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생동케 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예술가들의 몸에 잘 맞지 않을 거란 건 충분히 예측되는 일이다.

 

 그래서 보호관찰청소년이나 탈학교청소년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미적 경험으로 안내하고 있는 부천 아트포럼리의 이훈희 작가의 다음 학기 수업계획서는 늘 지난 학기 아이들을 만나면서 즉흥적으로 이끌어냈던 작업과정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실제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 갈 때는 새롭게 만난 아이들의 상태에 따라 새로운 과정을 시도하면서 계획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이훈희 작가의 수업은 늘 생생하고, 아이들은 그러한 생생함에 기꺼이 동기화되면서 헌신하게 된다.

 

 끝으로 제도가 잘 짜여지면 문화예술교육현장에서 설립 취지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제도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지원과 예술가의 교육적 개입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요건이어야 한다. 관료적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을 보다 체계화하려는 시도겠지만, 그런 이유로 복잡해져 온 교육제도가 오늘의 학교와 교육을 얼마나 망쳐왔는지 생각해본다면, 이제 7년쯤 되는 문화예술교육제도가 이를 답습하지 않을 이유 또한 충분하다.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위계적 구조의 복잡한 전달체계를 강화하기보다는 현장의 교사도 예술가도 학생들도 학부모도 쉽게 알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으로서의 제도가 되도록 하고, 그 안에서 현장의 자율성과 책임성이 강조되는 문화예술교육 사례가 발현되도록 해 가야 할 것이다.

 

 그러할 때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학교교육현장의 교원이나 사회교육현장의 담당자들이 그간 해온 관행에 근거하여 예술가에게 학생들을 만날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육과정 짜는 것도 서툴고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도 서툰 예술가들이 각종 학사서류를 만들고 수업분위기를 통제해야함과 동시에 스스로 학생들과의 관계의 정도를 검열하면서 문화예술교육활동에 임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제도가 시행령과 시행규칙, 시행방침 등을 통해 강제할 것이 있다면 예술가나 교사에 대해서가 아니라 지역마다 문화예술교육지원협의회를 두고 지역문화예술교육의 발전을 위한 정책과 중장기계획을 내놓아야 하며 거기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항을 지키지 않는 지자체들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더불어 문화예술교육지원에 적극 협력해야 하는 학교장의 임무방기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 문화예술교육현장은 비로소 아이들과 예술가, 교사들이 서로의 창의성과 감수성으로 춤추며 생동하며, 미적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곳이 될 것이다.

 

 자존감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술가는 특히 그러한 이들이다. 인류는 현실원칙과 자유원칙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추동해왔고, 예술가들은 자유의 원칙에 가까이 있을 때 존재감이 분명했다.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문화예술, 창의교육, 그리고 미적 인류의 탄생은 여전히 현실을 저버리진 않는 자유원칙에 기반할 것이다. 현실을 무너뜨리지 않아야 하기에 문화예술교육제도가 필요함을 인정하면서도 제도를 너무 강화하여 그 중압감으로 자유로운 예술적 유희와 미적 경험이 싹트지도 못하도록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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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강원재(OO은대학연구소 1소장), 류설아(경기일보 문화부 기자)

정리 : 강원재


 경기도의회의 현직 의원이 131명이고 경기도의 한 해 세입세출예산은 대략 15조원을 넘으니까 의원 1인당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에 대한 심의와 견제 권한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의원 한 명이 어떤 의식과 생각으로 일 하는지에 따라 도정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교육, 복지, 문화 등 전문 분야로 나눠진 11개 상임위원회 소속 위원들의 활동과 생각을 들여다보면 경기도의 관련 분야 정책과 방향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경기도의 문화관광 부문 예산은 전국 광역단체들 중에서 가장 낮은 1.8%를 밑도는 정도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략 2,600억 원이니 적은 돈은 아니다.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상회 의원을 상임위원회 위원실에서 만났다. 김상회 의원은 90년대부터 수원에서 인형극단 활동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을 한 바 있고, 민예총에서 문화예술 정책 감시와 제안의 책임자로 활동한 바가 있어 경기도 문화예술교육의 현실에서부터 정책까지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듣기에 최고 적임자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래 김의원과 장시간 진행된 인터뷰를 골격만 정리해서 실었다. <편집자 주>

 

 

 

 

류설아(이하 류) : 의원님이 생각하는 경기도의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말해 달라

김상회(이하 김) : 한마디로 정리하면 경기도의 문화예술정책은 없다. 법적으로 갖춰야 하는 형식적 문건으로만 존재할 뿐이지, 이를 실현하겠다는 의지와 체계 역시 부재하며 그 내용은 추상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손학규 지사 때 만든 경기도문화예술중장기발전계획과 2006년과 2008년 경기문화재단에서 나온 문화비전과 정책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일관된 흐름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강원재(이하 강) : 왜 그렇게 된 것인가?

: 김문수 현 지사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첫 째 이유일 듯 하다. 김지사는 문화를 고급복지라고 이해하고 있다. 문화라는 건 굉장히 복잡한 환경적 요인을 고려해서 정책적 설계가 이루어지고 추진되어야 하는데, 김지사의 이해로는 조건이 되면 하고 아니면 안해도 되는 게 된다. 그러다보니 지사가 선정한 문화체육관광분야의 단체장들의 마인드도 그렇게 되어 있다. 내가 한 번은 도 산하기관에 정무직 임명직에 있는 간부들에게 조직을 책임지는 전문 경영인으로서 성과지표가 무엇이며, 당해 성과는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답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자기 조직의 비전과 목적이 명확히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도에서 시키는 일을 반성없이 수행하는 정도이니 조직운영이 어떻게 되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경기도의 문화비전과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둘째 이유는 문화의 양적 확대에만 신경 쓰는 데 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문화의 양적 확대만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향수실태조사정도에서는 많이 나아진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양적으로 나아진 것이 질적으로 나아진 것을 말하진 못한다. 실태조사의 지표는 양적으로 확대되었다는 것만 알려줄 뿐이다.

 

: 오늘 인터뷰 주제인 경기도문화예술교육도 그렇게 보는가?

: 경기도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곳이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인데 중앙에서 지원되는 15천 만 원에 15천 만 원을 경기도가 대응해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예술강사파견사업 등은 별도의 중앙지원예산을 통해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 평가로는 지원센터가 전국에서 운영을 제일 잘 하고 있다. 문제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경기도의 정책과 비전, 그리고 의지이다. 도가 중앙에 신청을 하면서 문화예술교육담당부서를 경기문화재단의 상설 정규 조직으로 두고 예산을 확대하는 것을 내걸었는데,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다. 지원센터에 재단 정규직은 한 명도 없고, 중앙매칭사업비 외 경기도만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문화예술교육의 정책과 비전창출을 위한 사업비는 하나도 없다.

 

 

김상회 경기도의회 의원

 

: 해결방법은 없는가?

: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협의회 이걸 만들고 운영하는 게 경기도문화예술교육지원조례에 들어가 있고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고 확대해간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 지켜지지 않는다.

 

: 현실화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의원들의 문제의식과 공감대 형성은 이뤄지고 있는가?

: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경표위원장과 안혜경간사 등 많은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경기도 공무원과 산하기관 책임자와 담당자들의 근무는 조례에 근거해서 이뤄져야 하는데, 이게 잘 시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업무해태이거나 그를 좌우할 수 있는 상급자의 지시에 의한 것이지 않겠는가?

 

: 문화재단은 어떤가?

: 2013년은 재단이 문화예술관련 시설과 기관의 통합기관이 된지 5년인데, 경기도는 재단의 정책제안자로서의 역할은 인정하지 않고, 예산을 통제하면서 가끔 내려 보내는 예산이라곤 홍보이벤트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어서 재단은 대형이벤트사나 되어야 할 형편이다. 아니면 모여있는 시설과 기관의 관리사무소가 되거나.

 

: 도나 재단도 정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데 어떡하나?

: 정책은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거기에서 나오도록 해야지 않겠는가?

 

: 재단도 돈이 없으면 관리사무소가 되는 거 외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 않겠는가?

: 지사에게 도정질의를 하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공공성을 갖는 도립기관으로서의 역할 확대하기 위해 시설을 유지하는데 드는 돈은 재단예산에서 분리해 사회간접자본비로 배치해야 한다고 제안도 했다. 지금은 사업비와 유지비가 통으로 되어 있어서 매년 도 재정 상태에 따라 전체적으로 삭감되고 있는 상황이다.

 

: 다시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정책으로 돌아와 질문하자면 문화사회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예술강사지원사업을 통해 강사가 지원되는 경기도의 학교 수는 서울의 절반 수준 정도로 나타난다. 학생수는 더 많은데도 말이다. 혹시 알고 있었는가?

: 예술강사지원사업의 경우에도 예산은 경기도로 내려와 잡히고 광역예술지원센터 통해서 사업이 묶여 운영되지만 그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통해서 감독된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문화적 소외가 많은 경기도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예술가 풀 구축을 할 수도 없고, 평가와 환류를 통한 지속성을 향상해 갈 수도 없다. 젊은 예술가들이 작품 낼 때까지 근근이 버티도록 하는 일자리지원사업 정도의 수준에서 운영하는 건 문제가 있다.

 

: 그럼 김의원이 생각하는 예술강사지원사업의 방향은?

: 젊은 작가들이 대학을 나와 프로작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능을 갈고 닦는 수련의 과정과 함께 하는 동료들이 필요한데, 이건 협의하고 학습하는 팀프로젝트를 해보면서 가능해진다. 그럴 때 강사로서의 기능과 의식성장을 하고, 프로그램의 발전도 있고 그래서 아이들도 점점 좋아하게 되는 것. 예술강사지원사업도 이러한 판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고민되어야 하는 것이다. 1년 단위 일자리지원사업으로만 가서는 문화예술의 발전도 교육의 발전도 없다.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예술가들이 서로 협력하고 정보를 나누고 교수법을 익히고 숙련해가도록 하면서 예술교육의 확대발전과 질적성장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리고 경기도는 문화예술교육지원협의회의 실질적 운영을 통해서 각 주체간 관계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경기도 지역에 적절한 문화예술교육의 발전을 위한 추가재원을 확보하고 추진해가야 한다. 만들어진 조례와 체계는 지키지도 않으면서 강사들의 기술 탓만 하는 게 지금의 예술강사지원사업이 아닌가 한다.

 

: 문화재단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를 일차적으로 안정화해야 한다. 정규직을 배치하고 계약직이라 하더라도 정규 조직의 틀 안에서 근무조건과 신분의 불안함을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실무자가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때, 문화예술교육정책과 지속적 방향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재단정관 42항에 경기도문화정책제안이 임무로 있는데, 지금 상태라면 빼든지 해야 할 거다. 지금처럼 재단예산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정책기능을 회복하려면 재단의 조직구조가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재단직원들의 문화예술정책과 사업창안제를 해야 한다. 지금 하는 걸 보니 재단운영과 행정에 관한 창안제만 하고 있더라.

 

: 끝으로 문화예술과 문화예술교육이 도민들의 삶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말해 달라.

: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빠른 기술변화와 경제환경변화가 있다. 이렇게 다변화되는 환경에서 이를 묶을 수 있는 키워드는 문화일 수밖에 없다. 도민 한 명 한 명은 개인주의, 민족주의, 보수, 진보, 공공성, 보편복지 등등 인식과 의식이 다르겠지만, 이를 경기도라는 차원에서 보면 모두 문화인 것이다. 그리고 경기도의 미래를 보려면 과거의 문화로부터 이어온 현재의 문화에 대한 규정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문화예술은 우리 삶의 총체이며, 조건이 되면 하는 고급복지가 아니라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숨쉬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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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

한국예술종합학교 심광현 교수 인터뷰


창의적 문화교육을 위한

교육철학과 예술강사 양성이 필요합니다” 




대담 : 고영직(문화평론가),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2011년 유로교육위원회는 2015년부터 적용될 학교 교육과정을 ‘협력 중심 교육과정’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경쟁교육이 아니라 협력교육이 21세기 교육의 새로운 전제이고 목표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 또한 지식교육에서 ‘문화교육’으로, 경쟁교육에서 ‘협력교육’으로 전환해야 할 새로운 교육학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학교 안의 교육과 학교 밖의 문화를 분리시키는 시대착오적인 관행이 여전한 우리 현실에서 ‘교육과정의 재구성’을 통해 협력적․창의적 문화교육의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려는 심광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를 만났다. 심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성장 촉진과 미래 협력사회의 상(像) 만들기라는 프레임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모두 교육에 관한 ‘죄수의 딜레마’에 벗어나자고 제안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창의적 문화교육이란 무엇이고, 창의성과 협력의 가치 실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정책적․제도적 모색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고영직(이하 고) : ‘협력적․다중지능적․창의적 발달을 위한 새로운 교육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미래 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살림터 2012)은 무슨 의도로 썼고, 책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심광현(이하 심) :  우리 공교육의 근본 문제가 모두 서열화된 입시제도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일 입시를 폐지하고도 현재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새 술’을 ‘낡은 부대’에 붓는 꼴이 될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의도는 교육제도 개혁의 차원을 넘어 ‘교육 이념과 교육과정의 전면 재구성’이 미래교육의 관건이라고 주장하려는 데에 있다. ‘입시 위주 지식교육’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교육의 프레임과 내용을 전면 개편하려는 종합적인 시도는 아직까지 제기되지 않고 있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조적 민주시민 육성을 위해서는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게, 또 학생 개개인의 전면적 발달과 상호협력을 위해 교육목표와 교과내용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감성과 인성의 함양에 기초하여 학교와 사회의 상호연관성을 체화해 나갈 수 있게끔, 양은 줄이고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모든 교육 프로그램을 집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은 교육관료와 교사들의 차원을 넘어 교육학자들과 대학교수들 모두가 칸막이 쳐진 분과학문의 벽을 가로질러 학문간 통섭이라는 관점에서 각 과목과 다른 과목의 상관관계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참여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미래 교육의 새로운 내용적 틀을 미리 고민해 보자는 게 이 책 『미래 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심광현 교수





『미래 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에 대하여


고 : 교육 문제는 교육으로만 풀 수 없는 것이 교육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이념과 교육과정의 전면적 재구성과 개편’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 문제가 어떤 점에서 ‘창의적인 교육’과 관련을 맺는가? 

심 : 교육 문제의 해법은 학교와 교육부의 차원을 넘어 정치와 사회 전체의 변화와 맞물려야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으로 정치와 사회가 변한다고 해도, 교육 내용과 교육과정 전체를 개편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따라서 정치와 사회가 교육의 변화를 요구하기 훨씬 이전부터 교육내용과 교육과정의 전면적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전제 하에서 미래 교육과정의 핵심은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게 되도록 ‘문제발견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민주시민으로 발달해 나가도록 하는 데에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최근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창의력’이라는 것도 바로 문제발견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이 능력들은 지식과 경험의 발산과 수렴이라는 이중운동을 통해서만 키워질 수 있다. ‘문제 발견’을 위해서는 충분한 흥미와 동기가 필요하며, 자유로운 관찰과 상상을 통해 기존의 경험과 지식을 뛰어넘어 사고를 자유롭게 확장하는 사고실험이 필요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발산되었던 사고를 발견된 문제와 가능한 해법들로 연결시키는 실험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지식의 ‘체화’가 가능한 이런 방법의 교육을 위해서는 전체 교육과정과 개별 교과교육 모두가 화이트헤드가 강조했던 <로맨스 단계-전문화 단계-일반화 단계>라는 방식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렇게 질적으로 심화된 교육방식을 통해서 학생들이 왜 나무의 특수성과 숲의 일반성이 상호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를, 왜 경쟁을 넘어 협력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1세기가 대면하고 있는 생태계 위기, 도시의 위기, 노동의 위기, 인간 주체성의 위기 같은 새로운 문제들 모두가 기존의 분과학문적인 지식교육을 통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  

 문제발견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려면 풍부한 감수성, 상상력, 인내력, 가설추리력, 실험정신, 협력정신 등, 학생들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다중지능 전체를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미래의 교육과정을 창의적-협력적-발달적 교육과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미래에도 학교가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전면적-협력적 발달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면 학교가 필요 없는 것 아닌가? 단순한 지식과 기술들은 이제 아무 데서나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 : 문화예술교육 현안에 대해서 듣고 싶다. 그동안 정부 문화정책과 문화예술교육 정책과 제도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개입하셨다. 어떤 소회가 있을 것 같다. 

심 : 내가 얘기하는 ‘문화교육’의 개념은 개별교과가 아니라 교육 이념의 새 차원을 지칭하려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런 지식들을 습득하고 창조해내는 심층적인 ‘문화적 과정’으로 초점을 이동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음-미-체’와 같은 좁은 의미의 문화예술이 아니라, 예술-학문-대중문화-미디어-기호체계-생활문화 전반을 포괄하는 ‘삶의 양식’ 전반을 의미하는 것이다. 학교교육이 이런 역동적인 문화과정으로부터 ‘박제화된 지식’을 넘어서 이런 문화과정과 연결되고 순환하는 ‘산 지식’을 체화하는 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미-체’와 같은 문화예술 교과영역에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부분은 2000년대 들어 입시교육이 강화되면서 지속적으로 시수가 감소되고 선택과목으로 전환되어 학교교육에서 계속 주변화되어, 이제는 더 이상 축소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다보니 정규교사들을 충원하는 대신 ‘강사풀’ 제도로 ‘땜빵’ 하고 있다. 사실상 국가가 문예체 교과영역을 의도적으로 포기한 셈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 와서는 이런 배제가 심화되어 이제 학교에서의 ‘감성교육’ 부분은 마이너스(-) 상태에 처한 것 같다. 단기적으로는 성적이 오를지 모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아이들을 감수성과 인성이 결여된 ‘사이코패스’처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염려된다. 최근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감성과 인성의 활성화는 우반구 뇌의 활성화를 전제로 하는데, 현재와 같은 입시 위주 교육과정에 의해 좌반구 뇌만 집중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뇌는 속성상 플라스틱처럼 가소성(可塑性, Brain Plasticity)을 갖고 있어서 좌반구 편향이 강화된다고 한다. 이렇게 편향된 교육을 6~12년을 받게 되면 ‘좌뇌 편향’이 심화되어 감성이 메말라버린다. 우반구 뇌가 억압되고 비활성화되어 나타나는 대표적인 병이 우울증, 치매, 사이코패스 같은 정신질환들이다. 



지식교육에서 ‘문화교육’으로, 경쟁교육에서 ‘협력교육’으로


고 :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역사는 불과 10여 년밖에 안된다. 『새예술정책』, 『창의한국』 같은 중장기적인 문화정책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하지 않을지라도 이른바 ‘문화사회’라는 사회적 비전으로 향하는 로드맵과 프로세스 측면에서 일종의 비전(vision)이 요구된다.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일종의 참여관찰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말해달라. 

심 : 『새예술정책』, 『창의한국』은 완전히 폐기되고, 반대 방향으로 후퇴했다. 그 비전들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작된 문화정책의 수평적 확산이라는 방향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의 문화정책은 15년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를 수평적인 재확산 방향으로 되돌리는 데 앞으로도 5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 문화정책은 20년 정도 후퇴한 셈이 된다. 신자유주의 교육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과 교과활동, 교과활동과 비교과활동, 교실 안과 교실 밖에서의 모든 활동을 교사들이 직접 관할할 수 있었다. 교실에서의 수업은 잘 따라오지 않지만 교실 밖에서는 비교과활동을 잘하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교실 안은 교사가, 교실 밖은 강사가 관할하는 식으로 분리됐다. 교사와 강사가 제대로 된 소통이 없는 한, 교사든 예술강사든 아이의 한 면밖에는 못 본다. 제대로 된 교육이 될 리가 없다.  


고 :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힘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학교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힘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보는가? 

심 : 진보교육감이 등장한 2010년부터 서울과 경기도에 만들어진 ‘혁신학교’가 학교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중요한 기관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이번에 보수교육감이 당선됨으로써 서울형 혁신학교가 축소될 운명에 처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학교들에서 그동안 축적한 실험 성과들이 향후 교육혁신에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그간 축적된 중요한 데이터를 연구하여 일반학교 차원에서도 교육과정 전체를 개편하는 데 중요한 가이드라인으로 삼아야 한다. 이 책을 쓴 동기도 혁신학교운동의 실험에서 연원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실험에서 제기된 문제와 과제들을 일반화하고, 그 문제를 더 확장하여 현장교육을 심화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자 했다. 혁신학교는 철저히 ‘협력교육’과 ‘통합교과’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에 두고, 감성교육과 인성교육이라는 기반을 확장하면서, 그 위에 지식교육을 재구성하고 재조합하는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혁신학교 담론은 아직 불완전하지만, 2차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프레네(P. Fresnay, 1897-1975)가 한 실험과 20세기 초반에 러시아 비고츠키(Vygotsky, 1896-1934)가 한 교육학적 실험에 대한 연구와 맞물려 더욱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서구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와 그간의 신자유주의 교육에 대한 반성이 늘어나면서 이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기존의 교육정책을 수정하면서 채택하기 시작한 것이 비고츠키나 프레네의 교육학적 비전인데, 이는 한마디로 말해 협력교육이다. 2011년 유로교육위원회는 2015년부터 유럽연합(EU) 전체의 교육과정 원리를 ‘협력교육’으로 결정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교실 안에서의 경쟁, 학교 전체에서의 경쟁, 학교 바깥에서의 경쟁 중심으로 짜인 신자유주의 지식교육에서 벗어나 교실 안에서의 협력, 학교 안에서의 협력, 학교-지역사회 간의 협력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창의적 문화교육’의 새 프레임은 여기서 말하는 교사-학생-지역사회 간의 협력이라는 개념에 더하여 학생 개개인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다중지능들 간의 협력’이라는 새 차원을 추가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미국식 교육행정과 교육공학에 의존하여 효율성 위주의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반한 지식교육을 모델로 사용해왔고, 2000년대에 수용한 구성주의 교육학 역시 변질된 형태로 입시 위주 지식교육의 보완물 정도로 활용해 왔기 때문에 사실상 교육정책에 제대로 된 교육철학이 스며든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의 근대교육의 역사에는 칸트, 존 듀이, 비고츠키, 프레네 등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교육철학의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수용이 안 되고 있다. 최근 들어 소수의 진보적 교육학자들과 교사들이 이 전통을 새롭게 조명하고 수용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교육학의 주류에서는 여전히 이 전통을 무시하고 있다.  



교실 안에서의 협력, 학교 안에서의 협력, 학교-지역사회 간의 협력


고 : 선생님이 제안한 ‘창의적 문화교육’이라는 큰 틀에서 보자면 문화예술교육이 갖는 위상이 무엇인가? 문화예술교육에 국한하자면, 각 정책기관들 간에도 따로 노는 문화가 있는 것 아닌가? 

심 : 문화예술교육은 교과영역으로서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발달단계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초․중․고 셋으로 나눠보면, 초등교육에서는 전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중심교과 영역이 되어야 한다. 언어, 사회, 수리 같은 과목은 중심교과와 연결된 보조적 역할을 해야 한다. 고등학교 교육은 반대로 언어/수리/사회/자연과학 같은 지식교과가 중심이 되고, 문화예술교육이 보조 역할을 하는 식이어야 한다. 중학교 교육은 당연히 그 중간의 균형점을 이루는 방식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방식의 교과비율은 모두 전두엽의 성장 속도와 관계가 있다. 좌뇌 전두엽의 성장은 완만하게 진행되는데, 좌뇌 전두엽이 미성숙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지식교과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면, 뇌의 심각한 불균형은 물론 신체적 성장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좌뇌 역시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왜곡, 편중화되고 우뇌의 활성화는 거의 중단되는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문제는 ‘인지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교육과정이 모든 학문의 통섭을 바탕으로 통합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데다 전체 교육과정의 목표를 바로 잡지 못하는 문제가 우리 교육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초중등 단계에서 문화예술 교과가 중요한 교정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는 무엇보다도 감수성, 오감(五感)의 확장, 상상력, 자연친화 능력, 운동 능력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신체의 운동 능력을 확장하는 것은 독립심과 주체성을 강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필요한 인간생태학적 네트워크를 모두 파괴해 놓고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길 바란다. 정말 ‘미친 짓’이다. (웃음) 어른들이 스스로 자식들이 성장할 수 있는 모든 네트워크를 다 파괴해 놓고, 자식이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고 : 한 사람의 부모로서 뼈아프다. 교육철학의 부재 상황에 대해 말씀하신 것 같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기관들 간에도 엇박자가 나는 것 같다. 

심 : 문화부와 교육부가 서로 ‘협력’을 해야 되는데, 협력이 아니라 이른바 ‘나와바리’(なわばり, 영역) 싸움을 하고 있다. 정부 부처가 서로 나와바리 싸움하는 게 당연하다고 가정한다면, 그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장사하는 기관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당연한 것처럼 간주되고 있다. 정부기관 간의 영역 싸움을 사람의 오장육부(五臟六腑)에 비유하자면, 심장하고 간장이, 위와 폐가 서로 경쟁하는 형국이다. 이렇게 되면 신체가 파괴된다. 중앙부처 자체의 정치철학이 기관 간 협력이 아니라 다른 기관과 경쟁해서 짓누르고 승자독식으로 가져가려는 식으로 짜여졌기 때문이다. 정치철학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전체적인 국부(國富) 증진을 위해서라도 부처 간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작 정책 대상과 수혜의 주체인 국민들의 삶만 곤궁해진다. 문화예술교육에서 문화와 교육은 동전의 양면이다. 문화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교육은 학생들의 발달 단계에 맞춰 그것을 수용하고 촉진하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공장하고 영업부서가 서로 싸우니깐, 물건이 제대로 만들어지지는 않고 그 내부에서만 물건이 돌아가는 식이다. 정작 소비자들한테는 물건이 안돌아간다. 현재의 예술강사 제도의 중요한 문제는 교사와 강사가 분리되어서 서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예술강사들은 학교 가서 과외수업하듯이 자기 수업만 하고 온다. 교과 수업과 비교과 수업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애당초 교육목표는 달성할 수가 없다. 수업 시간에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선생님은 “이렇게 하라” 그랬는데, 강사는 “저렇게 하라”는 식이다. 그러면 애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 문화부와 교육부가 협력을 해야 된다. 이 문제는 어느 한쪽으로 가져갈 수가 없다. 점점 협력의 필요성이 늘어난다. 


고 : 가장 협력이 필요한 곳이 정부 부처간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교육사 제도가 실시되는 것 같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심 :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의해 구조적으로 발생한 문제를 학교 현장에서 당장 ‘땜빵’하려 하다보니 생긴 문제라고 본다. 초기부터 참여한 강사들은 이제 6~7년 정도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경험이 풍부할 것이고, 새로 참여하는 사람은 경험이 없어서 격차가 생긴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나는 이런 노하우가 있다, 이걸 보상해달라”고 하는 요구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리사 자격증 주듯이 문화예술교육사 제도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문화예술)교육사와 정식교사와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더 넓게 보면 비정규직 강사 문제와 같다. 답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교사 자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럴 경우 교육과정 전체가 전면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창의적-협력적-다중지능적 문화교육’이라는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전면개편하려면, 교사 수가 현재보다 두 배가 더 늘어야 할 것이다. 음악교과, 미술교과, 연극․영화 교과를 제대로 운영하면서, 이 교과들을 여타의 지식교과들과 연계 통합하는 방식으로 창의적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한 반에 20~30명을 놓고 가르치는 방식을 넘어서 1대1 멘토링 같은 긴밀한 소통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 대담 중인 고영직 문학평론가




교육과정 개편과 맞물려야 하는 예술강사의 정규직화 문제


고 : 예술강사 입장에서는 솔깃한 제안일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연대 이동연 교수도 ‘예술강사의 정규직화’를 거론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과 제도가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학교 현장 안과 밖에서의 예술교육 강사들이 자신이 맡은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공감해야 한다고 보는가? 

심 : 지금 같이 단지 ‘자격증’에 불과하다면 무의미하다고 본다. 교과와 비교과 활동을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는 게 교사의 원래 역할이다.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단지 음미체를 대학에서 전공했다고 되는 게 아니라, 교육학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에 관한 연수를 받고 정규교사로서 갖춰야 될 모든 요건을 충족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새롭게 정규교사가 되게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창의적 문화교육’이 가능하려면, 교육학 연구, 아동 발달에 대한 연구, 교육과정 연구, 교육과 사회, 문화와 지식교과와의 관계에 대해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현재 예술강사들이 지금 받고 있는 그런 제한된 경험과 제한된 기능 위주의 프로그램을 두고서 거기에다 자격증을 부여한다고 해서 문화예술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 : 예술강사들의 경우 처우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예술강사의 정규직화’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제기한 질문이었다. 

심 : 문화예술 교과의 강사 문제를 이 분야의 처우 개선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 교과 강사들의 정규직화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교육과정 전면개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맞물리지 않고 강사를 정규직화할 경우에 오히려 교육적 효과와 지속가능성, 형평성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 문제는 단시일 내에 ‘봉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의 전면개편이라는 문제와 맞물려서 중기적으로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럼, 그동안은 내버려 둘 거냐? 그동안은 ‘예술강사 교육’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본다. 지금 같이 형식적으로 한 달 정도 연수 프로그램을 받고서 현장 강사로 나가는 방식을 넘어서서, 교과와 비교과, 문화예술 교과와 다른 교과와의 관계, 발달 단계와 지성-감성-인성교육의 연관관계 등에 관한 폭넓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새로운 연수교육을 받고, 일정한 테스트도 통과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강화된 연수교육에 비례하여 강사들의 처우 자체도 함께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해당 학교와의 연계를 통해 교사-강사의 긴밀한 협력이 행정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정책을 개편해야 할 것이다. 교사와 강사가 사전협의를 반드시 거치고, 그 협의를 문서로 남기고, 학생들의 평가에 대해 일정한 연계가 만들어지도록 그런 것을 제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 : 근본적인 질문을 드릴까 한다. 도대체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파커 J. 파머가 쓴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같은 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중요한 존재이다. 기능 위주의 학원 수업하듯이 예술교육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창의적 문화교육’을 수행하는 선생님의 존재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는가? 

심 : 현재의 문화예술교육제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자체가 예술강사들을 기능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예술가를 지망하는 젊은 예술가가 사회에 진출해도 공공문화기반시설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나머지 문화산업은 완전 독과점되어 있다.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수단이 예술강사밖에 없다. 그렇게 젊은 예술가들을 ‘도구화’해 놓은 상태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니까 기능 위주 수업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선생이란 무엇인가?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는 강사들에게, 당신이 적어도 한 시간 수업을 하려고 하면 ‘선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가르쳐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서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강사에게 올바른 선생의 자격과 자질을 이야기하려면 거기에 걸맞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고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해결해야 하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부모가 못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다. 하나는 아이들이 주체적인 인간으로 발달해 나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협력하여 살아나갈 수 있는 인격의 형성이라는 과제이다. 만약에 부모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그냥 하는 곳이 학교라면 학교라는 제도 자체는 필요 없다. 교육은 절대로 고립된 문제가 아니고, 사회생태계 회로 전체를 연결하고 가동하는 일과도 같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소의 냉각기에 문제가 생기면 그 원전 하나만이 폭발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는 물론 수백킬로미터의 생태계 전체가 망가진다. 비유하자면 교육은 사회 시스템에서 일종의 ‘냉각기’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같이 교육을 망쳐놓으면 조만간 언젠가 폭발을 해서 결국 사회 전체를 망가뜨릴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방법론이 없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고 : 새로운 정부가 곧 들어설 것 같은데, (문화예술)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원칙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심 :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공유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교육 문제의 해법은 정권의 향방과 관계없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문제의식을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공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핀란드의 경우, 20년 이상에 걸쳐 핀란드 사회의 지도자와 교사들, 교수들, 학부모들이 지속적으로 토론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어 2000년대에 들어와 세계가 주목하는 모범적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교육은 교육부라는 하나의 부문 정책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인 인식과 노력의 축적을 통해서만 올바로 변화될 수 있다.  


고 : 하나 정도 더 질문 드리고 마칠까 한다. 이 책 『미래 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을 보며 전면적인 교과과정 개편과 교사 역량강화는 당연히 필요한데, 이를 위해 특정의 ‘매뉴얼화’나 ‘프로그램화’를 고착할 수 있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반론이 가능할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심 : 매뉴얼은 스스로 숙달하면 다 만들어진다. 장인(匠人)들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전부 다 자기 매뉴얼이 있다. 오히려 매뉴얼이 없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매뉴얼화’할 수 없을 정도로 적절하고 체계적인 방법론이 없다면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은 다중지능간의 협력, 교사-학생 간의 협력, 학교-사회 간의 협력이라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성해가는 복잡계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문화예술교과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기능 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 기능조차 낡은 기능이라는 점이다. 근대 문화예술의 생명력은 문자 그대로 자발성과 창의성인데, 창의성의 기초는 감성, 상상력, 인성, 지성을 융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리되면 창의성은 사라진다. 문화예술교육은 감성-인성-지성-상상력을 융합시키는 훈련을 하는 장(場)이다. 표현교육이든 감상교육이든 또 어느 장르든 간에 그 복잡한 틀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 교육에서는 그 틀이 한 번도 제대로 만들어진 적이 없다. 물론 문화예술교육을 체계화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있다. 그러나 도식화와 체계화는 다른 문제이다. 도식화에 반대하는 것이 제멋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올린 교육이든 영화교육이든 그림 그리기 교육이든 다 순서가 있고, 그 안에서 해결해야 될 많은 문제들이 있다. 이 점에서 비고츠키의 ‘근접발달교육’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학생의 자발성과 교사의 지식과 경험이 어떻게 만나서 ‘밀당’을 하게 할 것이냐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자유방임교육이 아니라 학생의 다중지능적 잠재력과 인격이 교사의 풍부한 경험과 인격과 만나서 상호작용하면서 결실을 낳는 복잡한 과정이다. 이 과정은 학생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동기를 형성하고 규칙을 발견해가도록 유도해 나가는 정밀하고도 변증법적인 체계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자유방임 아니면 타율적 규제라는 이분법을 하루속히 넘어서야 한다.  



고 : 장시간 고생하셨다.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

 

 

 

 

미적교육의 등장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나 대자연의 경외로운 풍경을 만나고 나면, 한동안 그 만남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생긴다. 어떤 드높은 질서 안에서 대상과의 합일하는 경험은 현실의 부족함, 불만, 불안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북돋는다. 사람 없는 석굴암 앞에서, 해가 넘어가는 지리산 등성에서, 피카소의 <게리니카> 앞에서, “가을은 올 시간보다 가버린 시간이 더크다는 고은 선생의 시 구절을 읽다가, 주위의 방해를 받지 않는 무관심한 관조의 상태에서 문득 세상의 비밀스런 질서에 맞닿은 듯한 이러한 경험들은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존듀이의 말처럼 인간과 환경 간의 불균형을 조화로 이행하는 순간이며 가장 강렬하게 살아있는 순간”, 미적경험의 순간인 것이다.

 

 미적경험은 대상에 대한 무관심한 관조로부터 일어날 뿐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존재와 최초의 목적마저 사라져버리는 활동의 몰입 과정에서도 생겨난다. 무대 위 배우들이 극중 역할에 자신의 온 존재를 투사해버린 순간, 파란색의 특정한 감각적 물성을 드러내기 위해 갖은 재료와 터치로 실험하는 화가의 작업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의 무너진 마음을 전하고자 감정을 고양하는 가수의 노래에서도, 서로 다른 악기가 제 때에 제 소리로 어울리며 화음이 되는 순간에도 미적경험은 일어난다. 이렇게 자신의 노동이나 활동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넘어서는 순간의 경험이 자아내는 행복과 환희를 맛본 이들은 그러한 경험을 일상에서도 지속시키고자 노력하게 되며, 그리하여 자신과 자신의 주위를 미적으로 가꾸는 것으로부터 세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관조와 몰입이 미적인 것은 아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떠나온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난 배를 협동으로 지켜가는 선원들의 생명을 건 몰입노동이, 출근 길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지켜보다 문득 세상의 무의미함에 닿아버린 중년의 회한이, 게임 속 가상의 세계에 빠져 괴물들과 결투를 벌이는 청소년들의 잠 못 이루는 몰입의 밤이나 온갖 근심과 갈등마저 사라져 버리는 속도의 한계까지 내달리는 라이더의 몰아의 주행이 자아내는 경험들은 미적경험으로서의 관조와 몰입에 비견될 만한 경험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경제적 토대, 생명의 토대가 완전히 무너져버릴 수 있는 이러한 관조와 몰입의 경험들이 반복되는 삶이란 얼마나 위험하고 불행할지 잘 알고 있고 이를 미적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바로 여기에 예술을 통한 미적경험, 그리하여 미적으로 고양된 인격을 형성하며 삶을 변화시켜가는 존재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경험의 과정, 즉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쉴러는 일찍이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이 이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현실의 제약을 무너뜨려야만 하는데, 현실을 무너뜨리면 이상으로 나아갈 토대가 없어지는 삶의 부조리함을 넘어서기 위해 미적교육이 이뤄져야 함을 그의 저서 <미적교육에 관한 편지>를 통해 주장했다.

 

인간은 물질의 한계 안에서 물질에 대항하는 싸움을 놀이해야 합니다. 이는 자유의 성스러운 땅에서 이 두려운 적과 싸우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이지요. 인간은 더욱 고귀하게 욕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숭고하게 의지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 않도록 말이지요. 이런 일은 미적은 문화(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미적인 문화(교육)은 자연법칙도 이성법칙도 인간의 자의를 묶어버리지 못한 그 모든 인간 행동의 영역을 아름다움의 법칙에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미적교육은 외적인 삶에 부여한 형식에서 내적인 삶의 길을 열어 놓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만드는 작품 같은 미술수업

김월식 샘과 함께 한 흥덕고등학교 <아방과후르드>

 

 

 

 

 "미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다면, 어떤 경험도 완전할 수 없다. 그것은 감각, 분위기, 본원적 생명력, 그리고 생동성의 종합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존듀이의 또 다른 아포리즘은 흥덕고등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술수업을 적확하게 지시한다. 우리 안에 만연한 일상의 폭력성을 예술을 통해 다스리는 힘을 기른다는 목적을 가진 이 수업에는 1학년 142학년 6, 20명의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 참여하고 있다. 자율수업이어서인지 이미 한 차례 진행된 지난 수업의 저조한 참석률 때문에 김월식 샘과 흥덕고등학교 담당교사의 걱정이 수업 전에 있었다.

 

 이윽고 수업시작 종이 울리고 지난 번 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12명이 교실로 들어선다. 서로 다른 학년과 반에서 왔고, 지난 한 차례 수업만으로는 아직 관계형성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서로 대면대면 서먹서먹하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자 김샘이 묻는다. “사진 찍기 싫은 사람?” 두 명이 싫다고 하자, 사진찍는 이에게 김샘은 그 두 명은 찍지 말라고 한다. 또 김샘은 묻는다. “우리가 이 수업을 왜 할까?” 아이들 대답이 없다. 재차 묻는다. “그럼 삶이 중요할까? 예술이 중요할까?” 몇 명의 아이들이 대답을 한다. 김샘, 진지하게 듣고는 모두 중요한 이야기라고 공감을 한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말한다. “예술은 감성이 작동하는 딴 짓이야아이들, 자기들의 눈높이로 언어화된 김샘의 이야기에 약간의 반응이 생긴다. “그럼 감성적으로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아이들 아까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 “”, “연애김샘, “그렇다 모두 감성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의 공통점은 감각을 열리도록 하는 것이라는 거다. ”가령 보는 것으로 설명하자면 흐릿한 정신으로 보는 것, 들뜬 마음으로 보는 것. 보는 것은 다양하다. 눈을 감고 볼 수도 있다. 안대를 쓰고 해볼까?” 김샘, 안대를 만들어 두 명의 학생에게 차례로 씌어 주면서 만지고 냄새 맡도록 하면서 그것을 이미지로 떠올려 보도록 한다. “만원버스 안에서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스킨향수 냄새를 맡게 된다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아버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것 역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감각으로 볼 수 있게 되려면 감성적이 되어야 한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감성적이 될 수 있을까?” “모두 둥글게 앉아 볼까요아이들 둥글게 앉자 김샘, 한동안 레크레이션 강사가 되어 몇 개의 게임을 쭉 돌린다. 웃고 떠들며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처음 서먹서먹했던 분위기가 말랑말랑해졌다.

 

  김샘, “이제 다시 수업 형태로 앉아 볼까요수업테이블로 아이들이 모두 앉자, 여러 색깔로 그리기, 여러 속도로 그리기, 여러 모양으로 그리기, 공의 움직임을 그리기 등등. 김샘의 지도와 평, 그리고 상호평을 하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 수업에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휴식시간 종이 울렸는데도 아이들 꼼짝않고 김샘의 수업에 몰입한다. 김샘 갑자기 종이비행기를 만들라고 말한다. 아이들 다 접고나면 김샘, “스케치 할 도구 들고 밖으로 나가자아이들과 다 함께 운동장으로 가서 비행기를 날리기 시작한다. 한동안 그렇게 놀다가 스탠드 쪽으로 가서 자리잡고는 몇 명의 친구들이 차례로 자신이 접은 비행기를 날리면 그 궤적을 나머지 아이들이 그리도록 한다. 비행기 궤적의 그림이 추상미술의 한 형태로 아이들마다 다르게 드러난다. 그것에 대해 뉴욕스타일’, ‘모스크바스타일등등으로 농과 평을 하면서 김샘 추상미술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이제 수업분위기는 무엇이든 김샘이 던지는 대로 아이들이 받아낼 것만 같이 말랑말랑해졌다. 다시 교실로 돌아와 두 명씩 짝을 짓고 서로의 싸인 따라 그리기를 한다. 그리고 바꿔보고 평하면서 관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의 회고를 나누고, 다 함께 김샘이 가지고 온 간식을 나눠먹으며 남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수업이 끝난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김샘은 아이들의 질문과 대답 하나 하나에 바로 반응하면서 질문하는 아이나 대답하는 아이,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 한 명 한 명이 수업에서 벗어나있지 않도록 하였고, 그것이 비록 수업과 관련없어 보이는 이야기일지라도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수업과 연결시켜 갔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은 끝난 것이 아쉬워 보였고, 마치 열렬한 관객들의 호응을 받으며 공연무대를 내려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배우마냥 기쁨과 회한이 넘치는 듯 했다. 단언컨대 김월식 샘의 미술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은 현실에 발 디딘 놀이를 하면서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이어지는 표현들이 완성되는 미적 경험을 했다. 이 경험들은 이번 수업 참가자들의 몸에 기억되어 오래도록 일상의 부족함을 채우거나 불만을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안의 폭력성뿐 아니라 수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스스로 치유해갈 것이라 확신한다. 이러한 경험이야말로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도 자신의 현실을 무너뜨리지 않고도 수업 안에서 가능한 살아있는 경험, 미적경험, 미적교육인 것이다.

 

"경험이 되는 내용이 완성에 다다를 때 우리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럴 때 그것은 내면적으로 완성되고, 경험 전체의 흐름 속에서 다른 경험과 구별된다. 한 작품이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완결되고,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게임이 진행된다. 식사를 하거나, 체스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글을 쓰거나, 혹은 정치적인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의 상황은 하나의 정지가 아니라 하나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하나의 전체이며, 나름의 개별적인 특성과 자기 충족성을 지닌다. 이것이 경험인 것이다"(존듀이)

 

 

 

몸과 맘이 아픈 아이들의 통합예술수업

부천문화재단 <몸놀이 맘놀이>

 

 

 인간의 본성은 육체, 영혼, 정신으로 구성되며 자유를 향하는 초월적 본성으로서의 자아의 형성이 교육의 목표임을 주장한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상은 쉴러의 미적교육의 원리, 즉 육체에 근거한 감각충동(der sinnliche Trieb)과 정신에 근거한 형식충동(der Formtrieb), 그리고 이를 잇고 결합하는 유희충동(der Spieltrieb)의 구조와 거의 흡사하다. 슈타이너는 육체는 의지에, 영혼은 감정, 그리고 정신은 사고에 각각 관여되는데 감정은 육체가 정신과 연결되는 중요한 매개이며, 이는 대개 8세에서 14세에 이르는 교육은 조화와 균형의 예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부천문화재단이 경제적으로 가난한 지역인 오정구에서 진행하는 토요문화예술 프로그램 <몸놀이 맘놀이>는 어떤 이유에서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예술적 놀이를 통해 발달을 방해하는 장애요인을 아이들 스스로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고 운영된다고 볼 수 있다.

 

 4월부터 4명의 전공이 조금씩 다른 강사가 4~6주 정도로 돌아가면서 놀이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 가꾸고 쓰면서 스스로와 커뮤니티를 생동해 간다는 원리로 기획되어 있었다. 매주 토요일 오정구아트센터에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열다섯 명 정도의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지적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와 과잉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비롯한 경계선에 있는 몇 명의 아이들, 그리고 소위 정상범위에 있다고는 하지만 사소한 대화도 얼마간의 폭력성을 동반하는 것이 문화로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시작된 5개월 전에는 이보다 훨씬 심했는데,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이나마 조용해지고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담당하는 재단의 담당 코디네이터 변자영 샘은 전한다.

 

 방문한 날 진행된 프로그램은 연극놀이였는데 몸조각놀이가 먼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교사의 지도에 따라 파트너가 된 아이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조각을 만들려 하지만, 산만하거나 조각이 된 아이가 쑥스러워하면서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나 누군가의 몸을 만지거나 건드리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은 듯 조각가가 된 아이는 대상에 대한 애정없이 도구적으로, 심지어는 폭력적으로 상대의 몸을 다루었다. 수업을 잠시 멈추고 자신과 상대의 몸에 대해 어떤 감각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를 길게 나눠봐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담당 교사는 아이들의 빠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고, 천천히 속도대로 해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한다. 이어서 돌돌 만 신문지를 자신의 상상에 따라 망원경, 지팡이 등으로 이용하는 걸 연기해 보는 놀이가 진행되었다.

 

 몸조각놀이와 마찬가지로 하고 싶을 때 스스로 나와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에 의해 지목된 아이가 하기 싫거나 쑥스러워 하며 나와서는 건성으로 신문지를 이용해 연기를 하고는 재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그 사이사이에도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는 내키는대로 수업의 흐름을 바꿔놓았으며, 2~3명 짝을 지어 있던 아이들은 툭탁거리며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느라 시연하는 아이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이런 그루핑으로는 교사들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몇 주간의 프로그램 운영으로 관계형성이 되었던 이전 몇 명의 강사들이 이미 거쳐간 터라 아이들은 새로 프로그램을 시작한 교사와의 수업 성공적 운영을 위한 협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이처럼 여러 명의 전문강사에게 의존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아이들의 생활을 돌보며 일상으로 관계맺는 담임 혹은 담임형 교사가 반드시 수업을 통제 혹은 개입할 수 있어야 원활히 진행될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교육은 예술이며 교사는 예술가여야 한다는 교육예술을 주창한 슈타이너 선생의 개념을 한 번 더 빌려 말하자면 육체, 에테르체(생명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체), 아스트랄체(감각,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 그리고 자아가 어떤 이유에 의해서 고르게 발달하지 않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 한 명 한 명의 상태를 들여다보면서 거기에 걸맞도록 교사가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좋은 교육은 준비된 교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교육자의 에테르체(생명체)는 어린이의 육체에 유효한 작용을 미칠 수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교육자 자신의 아스트랄체(감정체)는 어린이의 에테르체에, 자아는 어린이의 아스트랄체에 유효한 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교육자로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라는 것입니다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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