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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강사 제도의 한계와 돌파구

 

 

방담회 두 번째 이야기

 

 

 

 

(4) 예술 강사,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어


박 : 약간 벗어날 수도 있는데,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모두 다 정규직화 한다고 발상은, 비정규직이 심화되는 사회변화와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정규직화가 전제로 하는 ‘조건의 한계’로 인한 무리수도 생길 수 있다. 어찌됐든 영역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분들이 좀 더 자기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고도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나.


임 : 나도 그건 고민이다. 정규직화를 많이 주장하긴 하는데, 좀 비약일 수 있지만 지금 노동법이나 노동 행위가 규정하고 있는 ‘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출퇴근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관리가 되어야 하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는데, 문화예술교육 강사 영역이 그게 가능한 부분인가, 그게 정말 득이 되는 요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박형주 선생 말처럼 정규직-비정규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그 중간에 이를테면 ‘자유정규직’?(웃음) 같은 다른 개념 하나를 창안할 필요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박 : 아직 그런 구분이 어려운 게, 우리 사회가 아직 재택근무나 파트타임에 대한 생각이 경직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강 : 그러니까 다른 상상도 잘 안 되는 것 같다. 직업에 대한 것도 그렇고, 예술가들의 크리에이티브한 작업 영역과 일상의 영역이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 것인지 감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포섭이 된다고 해야 하나, 문화예술교육제도가 놀라운 게 드디어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영역까지도 제도로 포섭을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포섭하는 게 바람직한 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해서 포섭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임 : 심지어 일부는 출퇴근 카드나 지문으로 예술가들을 관리한다는데, 더 문제가 거기 있는 작가들이 ‘아 그거 맞춰주지 뭐’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맞추고 안 맞추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공감이 잘 안 된다는 거다.


고 : 한병철씨 『피로사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과중심 패러다임 안에 갖혀 있다는 거고 예술가도 관리하고 통제하고 제약하려고 하는 정치적인 발상이 깔려있다는 거다. 그런 속에서 새로운 답을 내리긴 쉽진 않다. 한편으로는 예술가들도 교육적인 고민을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올해 여러 현장을 돌아봤는데 한 두 곳의 현장을 제외하고는 냉정하게 말하면 좀 우왕좌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치원, 초, 중, 고등학생 등 아이들 발달단계에 맞는 적절한 고민이 예술가들 사이에서 얼마나 있는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예술교육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교육인데 교육적 관점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이고, 배운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배움에 대해서, 선생님이란 존재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사유와 고민들이 필요한 게 아닌가. 내 고민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관전평이다.

 

경기문화재단 임재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왼쪽)

 

 

 

(5) ‘자기검열’하지 말고 예술이 가진 힘을 활용해야


강 : 지난 호에 다뤘기도 하지만, 결국 ‘미적 교육’이라는 게 미적 인간, 이성과 감성이 조화로운 어떤 상태의 인간을 지향한다는 건데 이게 지금 이성 중심의 학교 교육 시스템에 있어서 다 막혀있지 않는가. 그래서 예술교육이라는 게 감성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끊임없이 필요할 수 없는데, 그걸 끌어들여서 이성의 통제 안에 다시 넣으려 한다면 이건 또 다른 이성, 지성교육일 뿐이게 될 것 같다. ‘감성’이라는 건 다양한 차원에서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할 것인데, 그 안에는 기존의 이성 중심적인 교육방법론으로는 통용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다. 이걸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할 때 그 교육이 빛을 발할 수 있고 문화예술강사들도 그 교육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맞춰준다’면, 강사 스스로도 재미없어 지고 현장에서 성과도 못 내게 되는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작가들이 ‘진짜 이럴 거면 안 한다’라고 굳은 마음을 가지고 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서로의 이해도 필요하다.


임 : 많은 작가가 학교 시스템이나 학교가 원하는 수준으로 자기의 작업이나 활동을 굉장히 매뉴얼하게 만든다. 혹은 예술가들이 실제로 자기가 어떤 예술작업을 공유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상이나 방법론을 예술가들 스스로도 설명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고 : 예술 강사로서의 자존감과 자질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도화된 학교에 들어왔을 때 강사 스스로가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작업을 충돌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위축시키고 자기검열을 하는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제도 자체에 대해 저장할 수도 있지만 제도 안에서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을 거라 본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서 표현한다고 할 때 다른 나라의, 피카소의 ‘게르니카’ 같은 작품을 가지고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도 가능한 교육일텐데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는 안타깝다. 물론 제도가 ‘모욕’하는 측면이 없진 않겠지만 그런 노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이 아닌가. 예술 강사들이 스스로 저항도 고민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우회적으로라든지 상상하는 그런 ‘분발’을 촉구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강 : 아이들은 늘 자기 안의 폭력성이나 불안감, 외로움, 들뜸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학교 교육현장과 같은, 굉장히 짜이고 통제된 틀 안에서는 발현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럴 때 이제 우리가 그것을 치유하고 해소하는 방식으로서 ‘예술’을 장치로 활용할 수 있지 않겠나. 예술은 아무리 해봐야 그걸 가지고 누굴 때릴 수가 없다. 자기 안에 내재된 어떤 감성적인 면을 특정한 작업을 통해 미적인 완성품으로 치환해내는 힘 같은 것을 예술이 가지고 있는 거다. 그런, 치유와 해소의 방식으로서의 예술이라는 부분을 인정하면서 바라봐줄 때, 문화예술교육이 제대로 학교와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6) 지역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라


박 : 예술강사 선발과 관련된 또다른 고민의 차원은 ‘지역’일 것 같다. 전국단위의 예술강사사업도 잇을 수 있지만 어떻게 하면 ‘지역화’시킬 수 있느냐라는 문제도 있지 않나. 사실 기존의 ‘지역화’에 대한 문제는 일자리 사업의 프레임에서 지역 일자리 만들기 차원으로만 이야기가 되니깐 그 논리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역과 예술가는 어떤 점에서 만나야 하고, 어떻게 만나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강 : 지역과 작가들이 만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지금까지 교육체계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배운 걸 가지고 사회에 개입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성장 후에도 그 방법을 많은 이들이 잘 모른다. 그래서 정치 밖엔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고정관념에 빠지는데, 우리의 지식도 끊임없이 사회와 만나면서 조금씩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럴때 지역의 작가들이 끊임없이 학교현장에서 아이들과 관계를 맞으면서 문제를 풀어나갈 때 그 경험을 축적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일단 지역의 작가들이 장기적으로 지역과 관계를 맺으면 좋겠고, 또 지역안에만 고립되지 않게 50프로 정도는 외부의 새로운 시선이 순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작가들을 수혈하는 시스템이 같이 움직여줘야 한다. 폐쇄적 커뮤니티가 아니라 계속 열리면서 사회전체와 관계맺으면서 작동되는 생태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 : 강사의 문제로 접근해버리면 ‘강사’라는 말의 규정성이나 강사에 대한 현장의 필요에 갖히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예술강사 문제는 즉 강사를 ‘그냥’ 선발해 버렸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어떤 현장에, 어떤 작가가 필요한지를 고려하지 않고 사람만 뽑아놓은 상태에서 (일괄적으로) 배치만 하는 방식이라는 거다. 어떤 작가가 있고, 어떤 작품이나 가치관, 존재감으로 활동을 하는 지를 발견하는 과정들이 필요하고 이를 다양한 사업 플랫폼을 통해서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예술강사와 교육자의 ‘그룹핑’이 과정에 따른 결과로 되어야 되는 거지 이게 뒤바껴 버리면 역할이나 취지, 목적 자체가 상당히 왜곡될 소지가 많은 것 같다. 과정에는 갈등도 생기고 그게 또 봉합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가는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보기 좋게 포장만 되어버리고 트러블이 마치 ‘문제’인 것 처럼 인식이 되는데, 그건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걱정하기 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그들이 경험할 수 있게 현장의 다양한 케이스들에 접근할 수 있게 열어서 경험이 축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 : ‘관계의 미학’이라는 건 무의미하진 않지만 사실 약한 것이다. 그보다는 더, 예술가들이 학교나 자기, 사회와 소통할 때 필요한 것은 관계의 미학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미학이 아닌가 한다. 이를테면 용산이나 두리반 문제 같은 것, 그런 것들에 예술가들도 결합해서 고민하는 지점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은데, 제도 등에 대해서 어떤 저항도 하지 않으려는 형태로 ‘순치’되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때로는 ‘가시’처럼 대응할 필요도 있다. 예술은 집단지성과 연결되지 않는가. 바깥 세상과 소통하려는 교육이 필요하고, 그것을 예술가를 뽑는 과정에서의 워크숍이나 교육행위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고민하는게 필요하다.


강 : 그래서 지역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동네나 마을, 지역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을 아이들하고 같이 들여다보면서 그 문제를 보기 시작하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회참여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던 작가들도 아이들과 같이 해나갔을 때 변화시킬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변화의 기쁨을 같이 배워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않겠나. 문화예술교육은 아이들 만이 아니라 작가들도 같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목  차 -

 

 

1부 : 현장과 제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바로 가기]

 

 -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제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 ‘존재적 규정’이 없는 체로 ‘일자리’ 프레임과 교육테크닉만이 중시되는 예술강사사업 

 - 단절된 관계를 복원해줄, 학교와 강사 사이‘매개자’가 필요하다

 

 

2부 : 예술 강사제도의 한계와 돌파구 [바로 가기]

 

 - 예술 강사,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어

 - ‘자기검열’하지 말고 예술이 가진 힘을 활용해야

 - 지역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라

 

3부 : 현장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보다 더 나은 제도를 위해 [바로 가기]

 

 - 제도의 ‘제 역할’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

 - 마무리 : '비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태도’ 가져야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