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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더봄 | 좌담회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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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
22호 더봄 | 좌담회
‘문화예술교육, 체험에서 경험으로’


일    시 : 2017. 11. 21(화) 15:00-18:00 

장    소 : 스페이스 노아
진    행 : 김월식(무늬만커뮤니티)
참 석 자 
 - 임상빈(잔꾀)
 - 김소연(연극평론가)
 - 박도빈(동네형들)
 - 한승연(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센터장)
 - 최지원(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지봄봄》 담당자)
 - 김은기(녹취)
 - 이재각(사진촬영)



 

김월식 

 지지봄봄 22호 주제는 ‘체험에서 경험으로’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룰 것은 미적, 예술적 경험입니다. 지난 9월에 진행했던 매개자 역량강화 워크숍 <<상상력의 징후>>를 추진하며 가졌던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왜 지금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이 전체적으로 혹은 전국적으로 변별성 없이 하향평준화 되고 있는지를 첫 번째 질문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수업들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술강사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자기 정체성이 반영되지 않았거나 지역적 맥락이 수업에 개입되거나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위원들의 컨설팅이 전국적으로 비슷한 관점으로 문화예술교육의 비평적 지점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이 교육 현장을 같이 관찰하면서 모니터링을 하는 방향으로 바꾸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분이 다른 예술가들이나 단체는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에 접근하는지 궁금해하십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교육을 많이 해왔지만, 타자의 교육을 모니터링 하면서 자신의 교육 철학과 접근 방식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모니터링이 감시나 평가처럼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는 상호 성장의 기회가 되도록 설계되었을 때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상상력의 징후>> 는 예술가의 상상력이 작동되기 이전의 기제들을 활용한 매개자 역량강화 워크숍이었습니다. 기존의 여러 워크숍에서는 참여자들의 다양한 생각이 기획서 안에서 혹은 워크숍의 목적과 가이드라인 안에서 표준화되어버리거나 다양한 관점이 희석되는 결과를 종종 보아 왔고 그 부분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작가들 스스로의 창작 기제들을 이야기하면 그것을 모더레이터가 읽어내고 전체적인 과정을 관찰하는 기록자가 개인과 의미의 언어로 기록을 남기는 방식의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이 동시대의 철학과 고민에서 발현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 끝에 나온 워크숍 방식이었습니다. 
 
 임상빈 선생님에게 부탁드린 것은 체험 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성찰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최근의 문화예술교육 수업들은 체험 교육의 틀 안에서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한 예술 체험을 하는 흐름으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교육적 관점으로서의 문화예술을 통한 교육은 때로는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실수해보기도 하는 것이 중요한데 단순 체험형 교육에서는 개별적 성찰을 위한 실천적 기제로서의 예술교육, 과정 안에서 주체적으로 경로를 경험해보는 미적 수행과 이를 통한 실천은 조금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점들과 연관 지어 문화예술교육을 실행했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글에 담아주셨으면 합니다.

 김소연 선생님에게도 비슷한 부분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전시나 공연을 보면 그 자체로 문화예술교육적 효과가 있습니다. 단순히 감상 교육적 측면이 아닌 개별적 사유와 시간 사용의 측면에서 바라봐주셨으면 합니다. 전시장에서 똑같은 속도로 전시를 보는 것만큼 잔인한 건 없거든요. 감상 교육은 각자의 속도로 관찰하고 사유하면서 개인적으로 생각할 기회와 미적 수행과 실천에 대한 의지를 갖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동일한 교육 시간을 적용하면서 다양성을 생산할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전시와 공연을 좋은 교육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떤 과정에서 가능할까 하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도빈 대표님에게 부탁드린 것은 체험의 주체에 대한 부분인데요. 요즘 자주 회자되는 ‘자기 주도적 학습’ 개념은 자주 오용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비슷한 의미로 문화적, 예술적 활동에서 자기 동기화를 통한 수행의 중요성에 대하여 듣고 싶습니다. 지역에서 축제와 행사를 만들고 실행할 때는 꼭 누가 가르쳐줘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이 있고 지역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학습하는 부분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경험이 문화예술교육적 관점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에 대한 사례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처음에는 실수를 많이 하지만 실수를 줄여나가거나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상호 학습, 실천적 학습이 이루어지는 동네형들의 활동들 중심으로 글을 풀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체험’ 아닌 ‘경험’을 말할 수 있을까

김소연

 어느 순간부터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개념과 가치에 대한 논쟁이 사라지고 어떻게 하면 정해진 조건하에 사업을 잘 수행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상상력을 발견하고 예술가의 상상력과 교육의 과정을 어떻게 연결할까 하는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치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작년 <<경기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문화예술교육 콜로키움>> 발표 때 저는 10년 동안 사업이 정책적으로 크게 확대되었는데 왜 이렇다 할 논쟁이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에 대한 공동의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토대가 다져지지 않으니 담론은 담론대로 사업은 사업대로 제각각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김월식

 지역에서는 민간 영역에서 청년들의 소위 ‘짓거리’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들이 나오고 있고 이런 것이 새로운 상상력이 개입될 수 있는 부분인데 예술교육은 자발적 활동들의 생명력이 너무 희박합니다. 발굴도 안 되고 있고요. 이러한 활동들이 뒷받침되어야 제도가 건강해지는데 지금은 제도 하나만 있고 제도를 견제할 만한 바깥의 활동이 없습니다. 지원 사업 10년 동안 민간단체들이 지닌 야생성이 길들여진 것이죠.

 


김소연 

 저는 문화예술교육에서도 비평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평가라는 특정한 직업군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육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 읽어내는 역할이 필요한 것이죠. 새로운 시선으로 읽어주는 구조가 있어야 다양한 사례가 발굴되며 사업의 의미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연극계라고 하면 어떤 신진들이 등장하고 있는지, 이들의 새로움은 무엇인지를 읽어내려고 하는, 그것이 비평가든 프로듀서든 선배 연출가든 새로운 시선으로 읽어주는 역할들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오기도 하고 그것이 이슈나 논쟁이 되는 것이죠. 꼭 지면을 통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가능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의 성장 과정을 생각해보면 현장과 전문가 이렇게 나뉘는데, 전문가 그룹이 거의 사업을 기획하는 그룹이다 보니 기존의 사업 틀을 재생산하거나 모니터링하는 역할에 머무는 것이죠. 지금 등장하는 이 사람, 이 프로그램, 이 현장이 문화예술교육에서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점이 새로운지, 그 새로움이 문화예술교육의 비전이나 목표와 어떻게 부합하는지 충돌하는지 등등을 더 촘촘하게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슈와 쟁점을 생산해야 하죠. 예를 들어 한 예술단체가 기획하고 진행한 같은 프로그램이 어떤 지역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비판을 받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이를 ‘다양한’ 기준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설령 각각 다른 기준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각 기준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를 읽고 쟁점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죠.

 

김월식

 이러한 지원사업 시스템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은 결국은 바깥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이 싫은 건 아닌데 지원 사업 안에서 하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죠. 

 


김소연

 제도 바깥으로 나오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좋은 것이죠. 문제는 제도 밖이 너무 황량하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생각하면 제도를 잘 만드는 것만큼 제도에 포획되지 않는 바깥 영역을 더 넓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월식

 문화예술교육의 비평적 지점을 만들어 주는 것이 평가위원들인데 전국의 많은 평가위원의 텍스트가 전혀 공유되지도, 활용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비평의 부재라기보다는 공유하는 방식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원기관들에서 하는 워크숍이나 모임들에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실효성이 없는데 단체를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너무 소모적입니다. 단체들이 모임이 즐거웠고 도움이 되었다는 경험을 갖도록 지원기관에서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도빈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단체로서 우리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심사하는지 신뢰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심사위원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 사람이 왜 심사를 하는지 정보도 없고 소통이 전혀 안 되는 거죠. 지원사업 구조에서는 단체에 깊은 고민을 할 만한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사업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들이 있는데 그것만 맞춰주고 정산만 잘하면 되는 것이죠.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지원 사업을 벗어나 그냥 하게 됩니다. 작년에 진행했던 지원사업에서 컨설팅을 받았는데 작은 규모의 사업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건 당연하고 사업의 지속성 확보 및 비지니스 모델 창출과 같은 단기간 안에 할 수 없는 과제들을 요구받았습니다. 사업의 목표가 무엇인지 불분명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소연

 사업의 프로세스를 잘 만들고 진행하는 것만큼이나 평가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책의 목표가 실행 과정을 거쳐 제대로 구현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평가이죠. 단순히 점수 매기기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평가 지표나 평가 방식이 기준과 가치를 공유하고 확인하는 과정이냐고 질문할 때 회의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성 평가 항목은 모호하고 변별력이 없다 보니 정량 평가, 수혜자 수, 만족도 등등이 평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고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평가 방식은 지원사업 수행 단체가 단편적인 성과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죠. 제도 안에서 이러한 부분을 세심하게 점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월식

 얼마 전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직원들과 런던에 다녀와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원 제도의 선발 과정은 밀도가 있지만 선발된 후에는 지원 대상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기관들의 태도였습니다. 그들도 꾸준히 실험해 본 것이죠. 런던의 예술가들에게 지원사업을 왜 하는지 물어봤을 때 지원을 받으면서도 개인 작업을 할 때처럼 충분한 자존감과 명예로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산을 충분히 지원해주고 성과의 자율성과 사업의 밀도를 만드는 과정, 또 그 의미에 대하여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하게 기다려주기 때문에 어떤 지원 사업이던지 예술가가 개인의 창작 활동에서 성취할 수 있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연극, 음악, 미술 모든 분야가 다 공통으로 그렇습니다. 결국, 지원 대상을 존중하는 시스템이 깊이 있는 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업 구조를 설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1년이 왜 새로웠고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하고 이러한 것들로 성과를 정리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임상빈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단체나 작가로서는 ‘심사, 모니터링 및 컨설팅, 정산’으로 이어지는 지원사업의 구조가 감시 체계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니터링도 점수 매기러 오는 정도로 느껴지고 워크숍도 듣고 싶지 않고 배워도 나에게 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컨설팅이라는 것도 과연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진행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현장 상황은 전혀 다르게 펼쳐집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지만, 아이들과 수업한 내용의 성과와 결과는 어른들끼리 합의합니다. 아이들을 관찰하면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수업의 결과를 부모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결국 아이 자신의 만족이 아닌 어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반면에 강사의 목적, 프로그램의 가치 등과 별개로 노는 아이들, 그 시간 안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아이들이 진짜 문화예술교육의 목적과 맞닿아있는데 그런 아이들은 성과로 측정되지 않고 평가를 하지도 않습니다. 

 

 
박도빈

 동네형들이 활동을 시작한 지 6년 정도 되었는데 초반에는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기존 방식과 다르게 하고 싶은데 사업 구조 안에서는 실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아이들을 바꾼다는 게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나마 사업이 끝나버리면 계속 만날 수 있는 동력이 사라지게 되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차라리 지역 단위에서 열린 관계로 만나는 게 더 장기적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업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함께 변화를 고민할  가능성은 청년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청년들은 자발성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원하는 활동에 원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투여할 수 있거든요. 청소년은 시간 제약도 있고 해서 진행하는 입장에선 한계가 많았습니다. 청년 수당을 받는 청년들이나 서울시 청년 정책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여러 가지 활동을 했는데 이 사업들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타이틀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저희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성과가 나오더라고요. 

 

 
김소연

 문화예술교육이 도입되고 국가 정책으로 확장되었던 근거로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창의성의 제고’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운영되는 방식은 창작지원사업이나 다른 어떤 사업보다 경직되어 있습니다. 보급형 사업이다 보니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빨리 확산시키느냐가 목표가 되었죠. 이런 제도적 경직성을 두고 이 구조 안에서 어떻게 잘할까를 이야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임상빈

 문화예술교육 이라는 말을 놓고 보면 문화, 예술 그리고 교육이 마지막이지만 현장에서의 실행은 결국 교육과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교육문화예술’로 언어적 치환이 필요합니다. 작가로서는 교육을 하는 것과 예술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것이 바뀌면 예술강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활동이 교육 활동에서 예술 활동으로 정의가 달라질 테고, 그러면 가르친다기 보다는 작업하는 것으로 태도가 변할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더욱 창의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태도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가르치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면, 작가 혹은 강사는 굉장히 다른 교육법을 실행하게 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적, 예술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

김소연

 김월식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나 하고 싶은데요, ‘체험에서 경험으로’라는 제목이 직관적으로 오긴 하는데 체험과 경험을 나누는 구체적인 기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월식

 저는 시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주도성도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체험은 선생님들이 설계한 프로그램 안에서 하게 되기 때문에 계획적이죠. 그런데 경험은 과정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언제든 상황이 변할 수 있습니다. 체험은 실수하면 그대로 끝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경험은 실수해도 기회가 있죠. 그런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도빈

 개인적으로 요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하면서 고민하는 것은 문화 예술적 상상력이나 경험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체험과 경험은 일상의 결핍이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체험은 그걸 해결할 수 없거든요. 경험은 내 삶의 영역에서 다음의 움직임을 상상하고 연결할 수 있도록 합니다. 

 


김월식

 미적 경험을 통해 세상을 주체적으로 살게 되고 스스로 주변 상황을 변화시킬 의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상빈

 체험 행사나 체험 부스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 단어가 처음 쓰일 때는 좋은 의미였는데 체험 부스가 모두가 같은 형식으로 유행처럼 번지면서 의미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김월식

 체험 부스의 유행은 지자체 축제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단순 체험 자체가 문화예술교육 전반을 대변하게 되면서 문제가 되는 거죠.

 

 
김소연

 관객의 참여, 능동성이 강조되면서 체험 부스가 만들어졌습니다. 자발성, 능동성 때문에 체험이 등장한 건데 체험 활동이라는 것이 내가 뭘 만들었다는 일종의 알리바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탈 만들기 부스를 보면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것을 조립하는 것에 그칩니다. 제작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때로는 재료가 나의 행위에 저항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혹은 활용할 것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표현이 나오는 것이죠. 그런데 탈은 다 만들어져 있고 물감, 색종이로 장식만 하는 체험 부스들이 적지 않습니다.

 

  
박도빈

 형식의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지역축제를 해보면 몇 개월을 준비해서 중학생부터 시니어까지 참여할 수 있는 부스를 40개 정도 마련해 놓는데, 모든 부스 중 인기가 가장 많은 것은 달고나를 만드는 체험 부스입니다. 6개월 동안 치열하게 고민해도 결국에는 달고나 체험 부스에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축제라는 형식 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김월식

 문화와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기 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생각해보면 예술 전공자는 예술을 안 하려고 하고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예술을 하려고 합니다. 가치의 측면을 다루어야 하는데, 형식적 측면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각자의 결핍을 역으로 드러내는 것 같고요. 문화와 예술에 대해 자기 정의가 조금 더 있으면 프로그램을 훨씬 더 경험적으로 가져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자기 정의가 예술이라는 형식미에 머물러 있으면 단순한 체험 활동의 틀로 들어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축제나 행사에 가보면 부스들이 다 비슷비슷합니다. 개별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방식이면 다양성이 확보될 텐데 말이죠.

 

 
김소연

 다양성이라는 것이 콘텐츠나 프로그램의 형식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고, 도리어 다양성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생활문화 축제를 보면 동아리들이 춤을 추지만 동원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프로그램 자체를 본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주최 측에서 기획한 프로그램 안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박도빈 대표가 말씀하신 달고나라는 콘텐츠는 사실 익숙합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즐기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내 주변 이웃들이 만들어놓은 공간이기 때문에 다른 공간에서 경험하는 것과는 다르죠. 자발성과 다양성은 그 판을 만든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아이돌 노래를 부르더라도 스스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있으면 재미있거든요. 청소년 문화 축제라고 해 놓고 이벤트 회사가 만들어준 무대에 조명 설치해 주고 커다란 영상을 쏘는 형식이면 재미없죠. 새로움은 새로운 콘텐츠를 고안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이 무엇이냐에 따라, 설령 아이돌 가수의 노래와 춤을 따라 하는 것이더라도 굉장히 다른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술이 무엇이라는 자기 정의가 있으면 형식을 가장하지 않고 무언가를 할 수 있겠죠.  


박도빈

 제가 10년 전, 처음으로 자신을 예술가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김월식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몰랐거든요. 김월식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전시를 하실 때 옆에서 쓸데없이 같이 무언가를 했던 경험이 저에게는 문화예술교육이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고 이야기 나누던 그때, 몇 년간의 시간이 쌓여서 지금의 동네형들 활동을 이어가는 기반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한정된 시간과 커리큘럼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제가 경험했던 방식으로 예술가와 관계를 맺는 것, 같이 전시에 참여하고 공연에 참여하는 것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의 입장에서 김월식 선생님은 예술가이지 ‘주강사, 보조강사’라는 역할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김소연

 과정 중심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개념에 대한 정의가 천차만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월식 선생님께서 조금 전에 경험은 과정 중심이고 실패가 용인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과정 중심의 교육 모델처럼 소개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과정을 세세하게 디자인해서 실패의 여지를 차단하고 교육에 참여하는 이들을 얼마나 많이 혹은 모두 정해진 성공의 결승선에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하게 하는 것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과정 중심이 결과를 만들지 않는 것, 결과를 지우는 것, 결과를 측정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보입니다. 이렇게 개념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이해도를 보면서 김월식 선생님 말씀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결국 ‘실패’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정 중심은 실패할 가능성까지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실패의 가능성이 열려있고 실패도 중요한 교육적 결과로 성찰할 수 있어야 과정 중심의 작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패에 대해서도 리뷰를 하고 성찰하면 되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실패를 열어주지 않고, 정해진 결과로 유도하는 것을 과정 중심이라고 하는 것은 기존의 교육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지원

 긴 시간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지봄봄
21호 더봄 | 기획대담
‘문화분권’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하자
새 정부에 바란다: 문화예술교육 정책
 
일시 : 2017.07.05.(수)
장소 : 서울혁신센터 청년허브
진행 :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박희주
참석자

 - 정연희(前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진흥본부장)

 - 차재근(서울시 청년허브센터 센터장)

 - 최지원(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지봄봄》 담당자)

 - 김은기(녹취)
 - 권하형(사진촬영)

 

 

최지원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동일하게 제기되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결의 터닝 포인트 없이 사업의 양적 성장에만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지지봄봄》 이번호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담아 정책에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번호 좌담은 정책에 대한 큰 이야기들을 나누는 대담과 더불어 현장에서의 실천적 움직임에 대한 의견을 듣는 좌담으로 두 차례 진행됩니다.

박희주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문화 쪽에 신경을 쓰며 자율성을 존중해 주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가시적으로 문화예술교육정책, 문화예술정책도 확대될 것 같은데요. 《지지봄봄》 이번호에서는 지금까지의 문화예술교육,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생긴 시점과 그 이전부터 어떤 문제점이 누적되어 왔는가를 살피고, 앞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 중앙정부의 역할과 진흥원, 각 재단, 광역 자치단체, 기초단체의 역할은 무엇인지 듣고자 두 분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그간의 누적된 문제점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정책에 따라 위에서 떨어지듯, 혹은 밀어내는 사업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차재근

  

 현재 문화예술교육정책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점들에 대한 진단은 사실 문화예술교육정책 10년을 맞이했을 때 좀 더 면밀히 진행되었어야 했는데, 그 논의 시기를 놓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책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성과에 대한 우호적 평가와 진정성 있는 진단이나 점검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설계가 진행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형식적으로 ‘자화자찬’에 가깝게 진행되어 논의 시기를 놓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근래에 예술강사 문제도 큰 이슈로 떠올랐지요? 현재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이 학교문화예술교육-사회문화예술교육 두 축으로 나뉜 상황에서 학교문화예술교육은 공교육 내 예술교육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교육부가 아닌 문체부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가는 것은 결국 공교육 내 예술교육을 피폐하게 하고, 이것이 고착화되었을 때 우려되는 것은 공교육 내에서 “예술은 뭐하러 하나, 국영수만 하면 되지”라는, 예술교육은 불필요한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팽배한 인식입니다.

박희주

 

 학교 수업은 대학 진학에 필요한 입시 위주 교육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공교육 영역에서 예술강사 사업이 굉장히 ‘형식’에 치우친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지만 학교 수와 학생 수, 예술강사의 수가 점점 늘어가는 데 이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강구해야 하는지 걱정스럽습니다. 

 


다시, 왜 문화예술교육은 왜 필요한가?

정연희

  

 문화예술교육정책 생태계 내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가야 한다는 논의는 오랫동안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단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을 낳은 것 같습니다. 학교문화예술교육 측면을 보면 정확한 목표 설정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의 본질적 목적은 모든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인데, 이를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균형 있는 포괄적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예술이 인문 분야에 포함된 현재의 인문 대(對) 과학의 양자 구도가 아니라, ‘인문-과학-예술’이 트라이앵글처럼 균형을 이루어야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교육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교육정책 활성화는 ‘전국 모든 학교에 예술강사 1명씩’처럼 정량적 목표에 방점을 두고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의 본질적 가치에 기반을 둔 목표 설정을 외면하며 도구적 가치를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양적인 성장은 이루었으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질적인 결핍과 함께 참여한 많은 이들의 성장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새 정부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논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본질적, 공적(public) 가치에 대한 기준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뻔한 것 같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정책 결정자들이 간과해온 부분입니다. 이를 다시 규정하는 노력, 기본과 기준, 목표를 다시 설정하는 작업을 새롭게 면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희주

 

 그렇습니다. 가치지향을 고민해야 하죠. 지금 중앙 단위 여러 사업 지원은 양적 팽창만을 부추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는 해마다 반복된다는 느낌도 있고요. 어떻게 하면 새로운 요구들을 수용할 수 있을까요?

정연희

 

 사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정책적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논의를 할 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위원회를 통해 이를 점검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쳤었는데, 그 이후 보수 정권 하의 정책결정 과정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보이지 않았고, 정책에 대한 밀도 있는 논의과정을 거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왜’에 대한 철학적 논의보다는 ‘무엇을’ ‘얼마만큼’에 대한 논의가 지난 10년간 계속됐습니다. 새 정부 들어서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논의할 때는 ‘무엇을’이 아니라 ‘왜,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해온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 따르면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게 되어 있고, 지역은 이를 반영하여 지역문화예술교육 계획을 수립해 발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권한을 법에 의해 부여받은 결정 주체들이 그동안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이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예를 들면, 진흥원에서 무언가가 결정되었지만 어떤 절차로 되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진흥원에 물어보면 문체부의 결정이라고 하고, 문체부는 또 책임지지 않는 이러한 상황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사결정 주체들의 권한 측면에서 “그 권한을 합리적인 사회적 규범 안에서 행사 했는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는가”를 확인해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를 구성해서 민간과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결정하도록 법에 명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았고, 2017년 초에야 국회의 요구에 의해 위원회가 결성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년간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가 구성되지도 않았고, 운영도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절차를 걸쳐 정책이 결정되고,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지속 가능하도록 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리더가 바뀌고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고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해 관계자들의 지혜를 모으고 전문적인 의견수렴을 통해 최선의 결정을 해야 했음에도 지난 10년간 그런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과 관련한 중요한 정책적 결정 사안들이 있었는데 그 맥락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또한 문화파출소 등의 사업도 계획이 수립되어 내려오지만, ‘어떤 맥락’에서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라는 큰 목표 하에 ‘어떤 지점’을 보완하고자 ‘어떤 체계’ 안에서 구성이 되었는가에 대한 아무런 사전 합의나 정보 제공도 없이 상명하달 식으로 던져진 것이죠. 이렇게 되면 사업 또한 지속 가능하지 않고, 협조를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작이 그렇기 때문에 결과까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지방분권’ 통해 사업 내실화 꾀하자   

차재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민주주의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하물며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더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과정상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은 시민 개개인이 미학적 가치를 가진 창조적 예술 행위를 하자는 정책적 목표를 가진 사업은 아닙니다.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 예술을 통해 얻어지는 가치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점에서 보면 마을공동체, 생활문화사업, 문화적 도시재생 등 문화정책의 확장 영역의 부분에서도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등식은 더욱 유효합니다. 문화정책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그런 것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하나는 결국 이 또한 민주주의와 연결되어 있는데 ‘분권(分權)’입니다. 이번에 3주 정도 유럽 리서치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여러 사례들을 보고 들었던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지방분권’이 잘 갖춰지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사업 환경이 조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이번 리서치출장의 결론입니다. 다행히 새 정부는 ‘문화분권’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역문화국을 신설해서 이를 뒷받침하겠다는 장관의 의지도 밝혔습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뿐만 아니라 예술지원정책 등 다른 문화정책 전반도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과 환경에 맞는 정책 수립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추가로 유럽 4개국을 돌아다니며 느낀 소회를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심지어 민간단체나 개인 활동가가 하고 있는 개별 프로젝트마저도 시민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시민의 요구가 있을 때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고,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의 요구에 의한 정책 생산과 집행이 아니라, 결국은 정책 당국자의 인사고과 자료나 성과 자료 또는 해당 정부의 일자리 창출 등 여러 가지 눈에 보이는 정량적 성과에만 주목하다 보니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는 구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희주

 

 경기문화재단 북부문화사업단에서 주관하는 ‘인생나눔교실’이라는 문화예술위원회 사업이 있는데, 이 사업은 결국 문체부에서 만들어서 문화예술위원회에 예산을 주고 실행하는 형식입니다. 은퇴자가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적 소양을 나누자는 교육적 측면이 강한 사업인데, 이 사업의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사업을 되풀이하며 자가 발전하거나 자기만족에 도취되는 수준이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흥원이 설립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이 나온 지 20년 가까이 되었으나 예산이 증가하는 등 양적 팽창은 이뤄졌지만 사업의 내실(內實)을 다지는 것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생애주기별로 문화예술교육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 집중하기도 하고, 소외계층에 집중하기도 하고, 다문화에 집중하기도 하는 등 파편적이고 단편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죠. 어떻게 총체적 맥락 속에서 묶어내야 할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차재근

 

 그 연장선에서 좁혀, 가령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으로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앞서 말씀드렸던 ‘분권’이 왜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고용의 주체, 예술 강사의 파견영역, 장르 등이 중앙기관에서 정한 틀로 진행됩니다. 어찌 보면 분권이 어느 정도 형성된다면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제, 요구는 그 지역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이런 문제가 보완되려면 이 분야의 예술강사가 필요하다.” 고용주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환경적 특색에 맞춰야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독일 로이틀링엔(Reutlingen) 음악학교처럼 ‘방과후 예술학교를 공적 영역에서 만들겠다’라는 정책적 목표를 추구한다면, 가령 한 가정에서 두세 명의 자녀가 그 학교에 다니면 등록금을 싸게 해준다거나, 소득에 따라 수업료를 조정한다거나, 예술강사와의 1:1 수업은 조금 비싸게 받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지역 나름의 방과후 예술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고용주체 문제도 그렇습니다. 예술강사의 역할을 정책영역 안에서만 한정하지 말고, 예술강사 그룹이 문화적 도시재생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연구와 조사도 할 수 있도록 예술강사 그룹의 활동영역을 넓혀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문화예술교육 정책영역 내의 예술강사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체의 조합을 형성해서 그 조합이 고용을 한다거나 하면, 그 조합에 소속된 예술강사들은 자생력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가령 어떤 지역은 또 ‘공적영역에서 그들을 교육공무원의 일부로서 활용하겠다’ 같은 대안을 만들 수도 있겠죠. 지역이 스스로 지역 특색에 맞게 예술강사를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문화예술교육 정책 초기의 지향점에는 ‘문화다양성’이라는 중요한 키워드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이 가진 다양성을 관찰하고 보전할 수 있는 기능을 하는 정책을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문화분권의 틀을 갖추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 혁신과 변화의 기본

박희주

  

 말씀에 동의합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 영역에서의 예술강사는 역할이 한정되지만, 문화예술 분야 전체의 관점으로 본다면 활동영역이 확대될 수 있습니다. 경기도 특정 지역, 예를 든다면 북부 지역의 리서치를 하고 싶은데 기존의 예술강사 풀(pool)을 제외하고 다른 곳에서 그 인력을 찾는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한계가 있습니다. 통합적으로 지역에 맞게 사업이 운영된다면 예술강사로도 활동하고, 도시재생이나 다른 교육영역에서도 활동이 가능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의 틀이 아니라 전반적 문화활성화라는 사업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분권’이라는 것은 결국 지역 특색에 맞는 정책을 발굴해 냄으로써 굳이 ‘일자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감’이 되어가는 과정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예술가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일자리에 목 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정연희

 

 사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는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담겨 있습니다. 지역센터의 설립에 관한 것, 지자체장의 예산편성 의무, 지역 학교와 문화기반시설의 장(長)이 문화예술교육의 여건을 마련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분권, 지역 중심의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라는 접근 방법이 이미 법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2006년 3월부터 진흥원에서 근무를 했는데, 이미 2006년 말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지역 이관에 대한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며 초기계획이 중단되고, 지금의 중앙 주도의 방식으로 되돌아간 상태에서 십년간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중앙에서 노력해야 하는 것은 예산을 늘리는 것보다 ‘지역이 어떻게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지,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진흥원이 문체부와 함께 대부분의 권한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은 지역대로 결핍을 겪고 있고, 중앙은 중앙대로 어려운 상황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책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정책의 취지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은 법에 명시된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여러 방법론을 얼마나 제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는가에 대한 성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 예산이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도에 대폭 확대되었습니다. 교육부 예산과 매칭되어 예산이 커지면서 지역 이관과 진흥원의 기능 전환을 위한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이 기회들을 놓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희주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진흥원의 역할은 전 국민의 생애주기별로 어떤 방식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진행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 일반성인, 장년, 노인 등 각각의 생애주기별로 어떤 가치를 담은 교육정책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진흥원의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팔다리가 자유로워야 하는데, 지금은 짐이 너무 많아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중앙 단위 기관에서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하고, 그 짐들은 광역이나 기초로 내려서 지역에서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모든 권한이 다 중앙에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정해진 대로 할 수밖에 없고 그 외 모든 것은 중앙에서 진행되는 구조이지요.

정연희

 

 문화예술교육 관리기관으로서 진흥원의 역할도 정책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인 것 같습니다. 관리기관이 문화예술교육 전문성을 갖고 있는가, 집행 과정에서 유관 기관과의 협의·조정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또 책무성을 구비하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볼 때, 진흥원은 이 세 가지 측면, 다시 말해 전문성 확보, 협의·조정 역량, 책무성에 있어 매우 회의적인 평가를 현장에서 받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진흥원이 여러 측면으로 보았을 때, 말씀하신 분권의 기회를 놓치면서 기관 차원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을 설계할 때 “과연 이 관리 기관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가?”를 솔직하게 진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 ‘모든 국민의 문화예술교육 기회 보장’이 기본 원칙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그것이 해당 정책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의 기본 원칙이고, 그것을 항시 고민하는 주체가 진흥원이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책사업은 ‘택배사업’이 아니다 

박희주

 

 안타까운 것은, 아직까지 문체부가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체부에서는 각 시·도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뿐만 아니라 재단 관계자를 모아 ‘그것을 할까말까’ 하는 단편적 고민보다는 ‘전반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가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주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잘 운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연희

 

 둘 다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근본을 다시 따져보면서 문제의 핵심을 진단해 보는 작업도 필요하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이 동시에 병행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변화가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큰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재근

 

 문화예술교육정책 초기 문화예술교육의 지향점을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예술교육 앞에 ‘문화’를 붙인 나라는 우리뿐일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전 세계 예술교육정책의 지향점과 비교하면 우리의 그것은 굉장히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초기 담론이 그만큼 두터웠고, 이를 형성하는 과정 또한 괜찮았다는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각론은 도식화되어 진행되어 왔습니다. 도식화된 전달체계의 관점에 맞춰져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다원주의에 입각한 현장이 발견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생애주기별 정책 설계 또한 실패한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크랑(Jack Lang) 장관이 만든 프랑스 문화예술교육 5개년 계획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전략적이고 디테일합니다. 우리처럼 ‘지원법-센터-위원회 설립’ 전달체계 차원이 아닌 구체적 추진과제 중심의 계획이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초등학교 합창단을 1,000개 만드는 것이 중앙정부 주요 핵심과제 중 하나로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제가 도출될 수 있었던 데에는, 사람의 음감(音感)은 10대 이전에 형성되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면 어렵다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지요, 그만큼 각론에 충실하게 계획이 짜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 안에서는 이러한 것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핀란드 베이직 스쿨: 유아에서 노인까지

박희주

 

 인간이 성장하는 단계에 있어서 일반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고 그것이 실제로 필요한 것이죠. 우리에게는 이것이 부족하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차재근

 

 그리고 ‘합창’이라는 공동체 예술영역이 가진 보이지 않는 가치들(화합, 배려, 조정, 양보, 공동체에 대한 자기 기억)을 초등학교 시기에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르떼를 중심으로 말했지만, 정책연구, 조사 기능들은 사실 진흥원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들에서도 거의 놓치고 있습니다. 이 기관들이 제일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인데 이 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개선되어야만 합니다.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을 둘러싼 문제들에 광역문화재단들이 반기를 들고, 다양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제 생각에는 재단이 적극적 입장을 견지한다면 역설적으로 굉장히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경기문화재단에서 중앙정부, 예술강사 혹은 다른 예산지원을 전제로 한 이런 사업에 끌려다닐 게 아니라 재단이 의지를 갖고, 중앙정부에 의지하기보다는 경기도 자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설득하고, 경기도만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만들어 내고, 이에 따른 세부 실행과제를 만든다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다른 광역재단, 기초재단이 함께 이러한 움직임을 만들어 가면, 중앙정부는 지금처럼 ‘택배’ 방식의 정책을 포기하고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박희주

 

 한편으로는 학령기,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엄청난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데, 실질적으로는 그 이후인 장년층,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은퇴 세대나 노년층에 대한 문화예술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교육 안에서 자기 성찰의 기회를 찾기 어렵습니다. 입시, 취직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직에 있다보면 자기를 되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도 문화예술교육의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장년이나 노년층에 대해서는 ‘나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생애주기별로 뚜렷한 가치 지향과 목표가 있고, 이에 근거한 전반적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문체부가 주도하여 각 자치단체와 역할 분담을 하며 만들어가는 것을 이번 정부 들어서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연희

 

 사실 십여 년 동안 예술강사들이 현장에서 노인, 유아 문화예술교육을 해 왔으나, 이 경험들을 축적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만 뽑아서 보내고, 일자리 창출에만 신경을 썼지, 지속 가능성과 질적인 성장은 고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학교 시스템 역시 예술강사에 의한 문화예술교육 경험을 학교 변화와 연결시키지 못한 채 단순한 이벤트로 치부해 버린 것이지요. 문화예술교육의 경험들이 모여서 융합되어야 거기서 새롭게 진전된 아이디어와 방법론이 탄생할 텐데 그것을 함께 풀어놓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금 길지만 핀란드의 사례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베이직 스쿨’이라는 시스템은 예술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대안학교이지만, 전공자를 위한 곳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이 일정 기간 학교를 떠나 더 집중적으로 양질의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지요. 베이직 스쿨에서 이수한 교육 시간은 일반 초·중·고등학교에서 모두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질적, 양적으로 충분치 않은 일반 학교의 예술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보완적 시스템입니다. 유아,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예술교사들을 위한 전문연수도 시행합니다, 이 학교는 교장 1명과 상근 예술강사 3~4명이 운영하며 반(半)상근 예술강사가 소속되어 있습니다. 여기 모여서 같이 연구도 하고 학교로 파견을 나가기도 합니다. 양질의 예술교육을 위한 최고의 공간과 장비를 구비해 놓고, 유아부터 노인까지 그리고 전문가들을 위해 100%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온전히 축적되어 새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술 전문성을 기반으로 모든 예술교육 자원이 축적되는 평생예술교육 시스템인 것이죠. 핀란드와 비슷한 사례가 한국에서도 조금씩 발견되고 있습니다. 서울에 6개의 예술교육센터, 그리고 대구의 예담학교 등입니다. 교육청 단위에서 폐교 등을 활용해 예술교육만을 위한 공간을 조성한 것이지요. 
 이처럼 그냥 예술강사를 보내는 차원이 아니라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터전, 즉 양질의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고 그 경험이 축척되고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이 앞으로 문화예술교육정책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오히려 뒤에 생겨난 생활문화정책 단위에서 생활문화센터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고, 교육부의 평생교육 시스템도 이미 충분히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의 변화와 연계 가능성 등에 대해서도 새 정부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양질의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일자리도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공교육에 예술교육이 균형 있는 비중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재설정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육부와 문체부의 협치(協治)가 필요하겠지요. 교육부 산하에 예술교육중앙지원단이 생겼습니다. 학교예술교육 R&D 기능을 하는 곳이죠. 그리고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도 예술교육 지원사업들을 하고 있고요. 문화부와 교육부의 실질적인 협력이 없다보니 중첩 기능과 유사 중복사업들이 생긴 것인데 범정부 차원의 해법을 반드시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엘 시스테마의 실패와 ‘로컬 투 로컬’ 원칙

차재근

 

 문화예술교육만 보면 학교/사회 이렇게 나눌 수 있는데, 학교문화예술교육은 이제는 공교육 현장으로 돌려줘야 합니다. 예술가, 특히 청년들의 제대로 된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도 지금처럼 고용 형태임에도 생계 유지가 어려운 예술강사 제도를 지속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공교육 내에서, 예술을 전공한 사람들의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학교문화예술교육은 공교육 내 예술교육 정상화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진흥원에는 사회문화예술교육이 남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생활문화진흥원이 하고 있는 사업 영역과 많은 부분 중복됩니다. 평생교육 영역 또한 예술교육이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얼개로 가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새롭게 대두될 문화다양성 정책, 이것도 결국은 문화예술교육의 넓은 영역에 포함되기 때문에 정책적 결단과 조정이 반드시 요구됩니다. 
 현재 진흥원이 하는 국제교류사업 중 대표적인 게 엘 시스테마(El Sistema)인데요,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Adolfo Dudamel Ramirez)이 엘 시스테마가 키워낸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었지요. 그 분의 스승이 부산과 대구시립교향악단에 계셨던 곽승 선생입니다. 엘 시스테마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에 제가 다른 프로젝트 관련하여 곽승 선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엘 시스테마는 사회운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교육으로 보는데 그 시작은 사회적 운동이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엘 시스테마가 담고 있는 가치라든가 보이지 않는 성과 같은 것은 사회적 환경에서 포착되고 읽어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시스템조차도 제대로 도입하지 못한 채,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히려 엘 시스테마에 대한 ‘모독’이 맞겠지요. 마약, 총기, 폭력에 찌든 카라카스 우범지대에서 시작된 엘 시스테마의 오랜 성장 과정은 없어지고, 이 사례가 왜 국제적 의미를 가진 것인지에 대한 고찰도 없이, 그냥 모델만 가져다가 전국적으로 ‘배달’시킨 것이죠. 이것은 벤치마킹도 아니고 국제교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요즘 국제교류의 추세는 ‘로컬 투 로컬(Local to Local)’입니다. 지역 스스로 바로 자기 지역에 맞는 모델들을 보고, 어떻게 ‘변형’시켜 우리 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재단이나 지역의 역할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정연희

 

 엘 시스테마가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했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정책 또한 그 태동기에 문화연대와 전교조가 함께 한 교육문화운동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 병폐에 대해 교육문화운동 차원에서 “교육이 문화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문화적 삶에 기여하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다른 교과(역사, 사회, 국어) 선생님들도 참여했으나 교육과정의 경직성으로 인해 실천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예술교과는 ‘문화적 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 아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문화운동의 핵심이 예술교육이 되었고, 그 ‘삶을 위한 예술교육’이 참여정부의 ‘향유자 중심’ 정책 패러다임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정책에 녹아든 것이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출발점을 생각하고 학교 교육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교육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다시 조망하고 의미를 되살려야 합니다.

차재근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초기 담론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집행하는 중앙기관들이 이러한 담론을 외면해 왔습니다. 초기 지향점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죠. 현재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대부분의 사업이 정량적 목표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종의 정책을 주도하는 그룹, 문화행정, 전문가 그룹도 그런 면에선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비판적으로 본다면 그 동안 정책 영역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리더가 부재했고, 조직 자체 내에서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정연희

 

 법이 만들어지면서 문화예술교육정책에서 지배구조(structure of dominancy)가 만들어 졌습니다. 새로운 정책을 설계하기까지는 의견수렴과 현장에 대한 진단 등의 노력이 있었으나, 법이 일단 만들어지고 안정화되면서 지배구조가 형성된 것이죠. 그 지배구조에서 권한을 가진 문체부나 진흥원이 편향성의 동원을 지양하고 절차와 합리적 규범에 따른 결정을 하고 이를 추진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앞으로도 이런 부분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권한을 독점하는 것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정책에 대해서 아주 치열한 토론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보수적인 정권과 그를 따르는 관리자들에 의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10년 동안 정말 안타까운 일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그런 작업들 때문에 지금까지 이 정도의 명맥이라도 유지가 가능했겠죠.
 또 한 가지 사례는 문화예술교육이 사회운동, 문화운동 차원의 가치로부터 출발했고 그것은 창의성과 문화 다양성이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거든요. 내용과 방법론에서 그것이 전부인데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기도 전에 문화다양성 교육이란 이름으로 또 별도의 교육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려가 됩니다. 문체부 내에서조차 소통과 협력·조정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화다양성 교육과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고민 없이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 내기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화는 지역에서부터 시작된다
_ 문화적 교육을 위한 광역문화재단의 역할

박희주

 

 그렇습니다.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만들고 그것들이 지역에 그대로 넘어오는 형태로 되어 있죠.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중앙 단위의 정책 등에 대해 반성을 했습니다. 사실 경기문화재단의 경우 부끄럽게도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운영을 위해 문체부(국비)와 경기도(도비)와 매칭해서 내려오는 예산 외에는 자체 문화예술교육사업 예산이 없는 상태입니다. 물론 재단 산하의 각 박물관, 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은 있는데, 이것은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전시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관객을 확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외에는 지금 생활문화팀, 지역문화팀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경기도만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을 수립하여 실현해나갈 조직이 없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 점에 대해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차재근

 

 문화예술교육정책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문화정책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기문화재단은 문화예술교육팀이 없고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만 있는데, 제가 볼 때는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를 확대·개편하여 생활문화팀(혹은 문화예술교육팀)을 부서화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 관련 부서는 재단의 중추부서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화예술교육은 모든 문화정책이 시작되는 지점이고 시민 전체의 삶, 생애 동안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공유되어야 합니다. 특히 경기도라는 지역적 측면에서 보면 끄집어 낼 것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평화, 한강이라는 환경적 부분, 각 기초 시·군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문화다양성 등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이야말로 경기도의 문화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배양하는데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임을 인식하고,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중앙정부와의 매칭 유무를 떠나서 도비를 확보해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 혁신정책 등이 일본 아니면 거의 유럽 특히 북유럽 모델을 많이 가져오는데, 사실은 정말 우리에게 맞는 모델과 정책은 지금 여기, 지역과 현장 그리고 서사(敍事) 속에 있는데 이를 모르고 평가절하합니다. 그것과 우리는 환경이 다릅니다. 북유럽은 분권이 잘 되어 있고, 인구 규모가 다르며, 기부문화와 민간영역 NPO 등의 역량이 높고, 사회 전반에서 이들의 비중이 굉장히 큽니다. 그들이 각 정책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지지와 참여가 있어야 가능한데 우리는 아직 그 단계는 아닙니다. 서울시에서 혁신정책을 한다 해도 결국은 공공자원으로 출자출연 기관을 만들어 진행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간영역의 개체층이 얇거나 없을 경우에, 그 준비를 위한 지원을 해가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시기까지는 공공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스스로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재단과 경기도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정연희

 

 문화예술이 개인의 자유, 사적 가치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 가치의 영역에 속한다는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경기문화재단에서 미술관,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기관의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실 텐데, 해당 기관의 존립과 지속 가능성을 전제로 했을 때도 기관 설립 시 부여한 핵심기능 위주로 운영한다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래의 핵심 기능의 비중을 줄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과 소통하는 방식이 필요한데 그 대안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육의 비중을 30% 혹은 50%까지도 확대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2009년에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간 적이 있는데, 당시 기관에서 하는 일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자 한 장으로 된 조직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미술품 수집, 전시가 본래의 기능일 텐데, 조직도를 보여주며 “미술관 조직이 이제 큐레이터 50%, 에듀케이터 50%가 되었다. 그리고 직원 구성은 과거에 백인이 80%였지만 지금은 유색인종의 비율이 50%가 되었다”라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인적 구조는 기관이 지향하는 가치를 보여줍니다. 수집과 전시라는 기존의 기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시민들을 미술관에 오게 하고, 만나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 교육의 비중을 높였고, 문화다양성을 지향하는 전시와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죠. 현재 기관의 비전을 ‘조직도 한 장’으로 전달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바꾼 이유는 미술관,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을 찾는 시민들이 일부의 백인 계층이었다는 것이죠. 많은 이민자들이 영국 런던에도 있는데 그들의 표현 욕구를 충족시켜줄 전시가 없으니까 오지 않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이들을 오게 하기 위해서 다양성에 기반해서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던 것이죠. 또한 전시라는 향유 방식과 단절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더 풍성한 교류를 위해서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수적입니다. 
  
박희주

 

 새 정부가 들어서고 문화정책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새로운 기조가 도출될 텐데 경기문화재단은 거기에 따른 수용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고, 두 분이 말씀 해주신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차재근

 

 부가적으로 말씀드리면 중앙정부가 손에 잡히는, 실현 가능한, 성과가 예측되는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모델이나 손에 잡히는 주요 정책은 ‘현장’에 있기 때문이죠. 현장은 사실 지역에 있고요. 그런 면에서 더욱 능동적이고 적극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재단은 산하의 미술관, 박물관 등 기관에서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육 프로그램이 기관의 전시와 연결되어 있는데 사실 그것은 전혀 방어 논리가 될 수 없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혹은 생활문화라는 것은 시민의 일상의 삶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접근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경기도박물관, 미술관은 그 인접 시민을 수용할 뿐, 광활한 경기도 지역 전체를 포괄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경기도의 기초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의 일상 영역은 경기문화재단이 그 역할을 맡아줘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도나 의회에 내부 구성원, 리더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책 자료라든가 그런 것을 제시할 능동적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희주  

 

 네,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지봄봄
21호 더봄 | 좌담회
‘수업혁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하여

일시 : 2017.07.10. (월)
장소 : 서울역 상상캔버스
진행 : 고영직(문학평론가)
참석자
 - 김경옥(대안공간 민들레 대표)
 - 백용성(철학자, 문화기획자)
 - 오명숙(새롭게 보는 박물관 학교 대표)
 - 정민룡(광주북구문화의집 관장)
 - 최지원(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지지봄봄》담당자)
 - 김은기(녹취)
 - 권하형(사진촬영)

 


고영직 

 

 이번 호 《지지봄봄》 발행과 관련하여 앞서 차재근, 정연희 선생님 두 분 모시고 문화예술교육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좌담은 문화예술교육정책에 대한 거대 담론에 대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그보다 실질적으로 교육 현장에서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어떻게 수업혁명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각자의 경험에 근거해 이야기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정민룡 선생님께서 짧은 발제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정민룡

 

 이 자리는 정책 이야기를 하는 자리는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느꼈던 어려움과 더불어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현재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이 있습니다. 중앙정부 ‘택배사업’이란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에 대해 진단하는 것은 생략하고 앞으로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렇게 하면 재미없겠다’ 하는 것을 위주로 말하는 것이고, ‘어떻게 할까’는 부분은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좀 다를 것 같습니다. 정책 담당자들도 다르고, 현장에 있는 분들도 각자 수업 현장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저의 고민에 근거해서 말하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할 때 자기 선명성이나 정체성, 고유성에 대한 이야기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 옷에 맞추려고 노력하다보니 방향성 자체가 흐트러지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그 논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문화예술교육이 뭐다’는 식의 정의내리기는 멈췄으면 합니다. 대신에 문화예술교육이 학생이나 성인이나 각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삶의 촉진제가 되는가, 어떤 인상을 주고 있는가, 그리고 좀 넓게 봤을 때 어떤 경험치를 주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문학적, 철학적 지점을 전달해주는 것도 중요한데, 저는 문화예술교육이 ‘실용적(實用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문화예술교육입니다. 예전에 ‘실과(實科)’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문화예술교육이 그와 같은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로부터 가치와 철학이 도출되고, 실생활에서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들어가는 것에서부터 문화예술교육이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관점에서 이야기해보면 다양한 주제들이 도출됩니다. 장르 중심 교육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과,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측면에서는 더 이상 사회가 학교를 위해 특정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학교가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사회에 ‘이렇게 해 달라’는 러브콜을 끊임없이 보내는 상황이었는데, 반대로 학교도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그것이 가능한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커리큘럼은 연구를 통해 만든 체계와 시스템이기에 공교육에서 활용 가능한 부분이고, 사회문화예술교육에서는 커리큘럼이 없었으면 합니다. 일부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단호하게 없앴으면 좋겠습니다. 강사와 학생으로 고정된 역할 설정도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사와 학생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해야 하고 서로 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현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하자면, 강사란 표현 자체가 문화예술교육에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방적 티칭과는 다른 코칭이나 배움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패러다임에 맞춰 강사, 학생의 역할 설정도 변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 장소와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교육 환경 중 배움이 있는 것은 그 중 1%도 안 된다고 봅니다. 나머지 99%의 좋은 환경을 배움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한마디로 하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의 개념이 확장되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존재나 이름, 틀 자체를 지우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과(實科)를 배우는 ‘마을예술학교’

고영직

 

 엄숙하거나 거룩한 이야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과’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정민룡 선생님이 자주 쓰시는 표현으로 번역하면 이는 ‘삶의 기술’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정민룡 선생님께서 11년 동안 광주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해오시며 느꼈던 구체적인 내용들을 덧붙여 이야기하면 논의가 더 풍성해질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광주문화예술교육센터가 주관한 정책포럼에서 이제는 프로그램 위주의 정책사업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염탐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하셨는데, 거기에 대한 논의를 덧붙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정민룡 

 

 앞에서 99%의 좋은 환경이라는 부분을 말했습니다. 저는 교육의 원료나 수단, 원천이 되는 자원은 우리 주변에 너무 많고, 많이 봐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원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교육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배움의 자원’ 자체를 바라보지 못하는 시야의 한계이지 자원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하고 배움이 촉진될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공간이 제가 생각했던 ‘마을예술학교’입니다. 마을에서, 학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배움이 작용되는 것을 찾고 하나로 결집시켜 만들어져야 하고, 이러한 움직임들이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학생과 선생님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추가로 설명하자면, 당연히 선생님의 자격 요건부터 없애야 합니다. ‘아무나’ 선생님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예술강사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것들과 같은 자격을 두면 마을에는 당연히 수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죠. 마을에는 살아가면서 터득하는 삶의 경험치가 높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선생님이 되어 직접 가르쳐 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배움의 계기를 제공하는 든든한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마을 단위에서 일어난다면 제가 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교육을 완전히 배제한 채 대안교육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어 그것을 10년 이상 지속하면 생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실제로 저는 그런 경우를 보았습니다.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학교에서 예술교육을 경험하는 친구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마을예술학교의 10년은 다른 경험치를 만들어 줍니다. 최근 담양군 수북면에서 박문종 화가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 <2017 모내기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 모내기 활동을 하는 이유는 농사를 잘 짓자는 게 아니라 경험을 주자는 겁니다. 예술가의 좋은 작업실이 있는 마을은 그 자체가 마을예술학교가 될 수 있고요. 이러한 접근으로 지역을 바라보자면 자기 동네에 소상공인이 많은 곳이 있으면 아이들이 기술, 실과를 배우거나 경험할 수 있게 해주면 됩니다. 용접도 시켜보고, 자동차도 분해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면, 한 지역에 많은 마을학교가 생기고,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거기서 놀고, 그것이 10년 이상 지속되면 무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교육과 더불어 가는, 방과 후 학교 같은 개념일 수 있겠죠. 학교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죠. 물론 현실적 문제는 있습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방과 후 학교 개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정민룡 선생님은 지난 6월 10일 광주 북구문화의집에서 마을예술학교의 형식으로 운영하는 <땅과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이들 및 학부모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모내기를 하며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는 활동을 하셨습니다. 이런 활동에는 지금의 정책사업, 그러니까 프로그램 중심의 지원사업에서는 절대 풀 수 없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유형의 지원정책의 트랙이 필요하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원사업을 직접 하고 계시는 최지원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마을예술학교의 적(敵)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지원

 

 문화예술교육이 10년 정도 지나서 양적 확대는 되고 있지만 새로운 시도나 나름의 고민을 가진 사람은 빠져나가고 지원사업 중심으로 문화예술교육 생태계가 정리되고 있는 것 같아 두렵게 느껴집니다. 지원사업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을 사업의 형태로 실행하려는 사람들 중심으로 모이고, 다른 움직임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지원사업은 경직되고 재미도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요. 지원사업 담당자로서 가능한 틀 안에서 어떻게든 유의미한 무언가를 만들어가려고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사업 너머의 활동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이 부분이 한계로 느껴집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서로 소모되지 않는 지원사업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오명숙 

 

 정민룡 선생님이 발제해 주신 것처럼 현장과 지역으로, 그리고 오래된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문화예술교육이 바뀌어야 합니다. 획일화된 자격 기준을 가진 분들이 아이들과 만나는 게 아니라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이것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말씀에 저도 공감합니다. 두 가지의 문제점을 던져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해왔음에도 표준화되고 도전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점, 또 하나는 지역 안에서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하는 부분인데요. 
저는 오랫동안 박물관 교육, 인문학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데요,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왔습니다. 더군다나 박물관 교육은 ‘역사’라는 과거의 큰 흐름과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만나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측면도 있지요. 미술관도 박물관이 될 수 있고, 문화예술교육 현장도 일종의 박물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프로그램의 표준화, 경직화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가르치려는 논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좋은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이고, 질문은 우리의 존재를 일깨우기 위해 필요합니다. 존재를 위한 학습이어야 하고, 각자의 존재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드러나게 해주는 것이 문화예술입니다. 왜 사는지, 본질이 뭔지 묻는 지점이 있을 때 서로 협력할 수 있고, 양보할 수 있고, 도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과 올해 박물관, 미술관 쪽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요, 박물관은 지식을 ‘주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지식은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이걸 왜 굳이 여기서 가르치고 있지?’라는 반문이 들었습니다. 지식을 전수하려 하지 말고,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질문’과 ‘만남’이 필요하고, 선생님들도 자기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준비된 텍스트가 견고할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박물관 학예의 핵심은 의미의 재구성인데, 그것을 알고 있더라도 구체적으로 수업에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정민룡

 

 박물관 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의 교육도 마찬가지인데, 강사에게 물어보면 ‘우리는 지식전달 교육이 아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 프로그램을 보면 강사는 계속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고, 아이들은 수업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없는 경우를 봅니다. “지식을 전달하시냐?”고 물으면 기분 나빠하시며 ‘아니다’라고 하고요.

오명숙

 

 좋은 문제제기입니다. 교사가 자기 성찰의 지점이 없고 커리큘럼에 맞춰서 도입-전개-설문 같은 획일화된 과정에 따라 수업을 진행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틀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올해 모니터링 현장에 가기 전에 어떻게 도움을 드릴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니터링은 물론 저에게도 학습이 되지만 여러 가지 고민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좋은 수업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 단체들에게 물어보니, 담당자가 “수업하고 나면 계속 교사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아요. 비디오로 수업을 찍고 계속 논의를 하고 그 구조가 있으니 수업이 향상됩니다”라는 대답을 합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업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것, 좋은 이야기든 부족하거나 잘된 이야기든 계속 함께 논의한다면 더 나은 지점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단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자기가 되는 삶”
_ 티칭에서 러닝의 문화로 

고영직

 

 
두 분께서 말씀하신 것은 문화예술교육에서 ‘교사는 누구인가? 가르치는 사람인가 안내하는 사람인가?’ 하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것 같습니다. 지금의 문화예술교육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선생님들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정민룡

 

 저는 이런 생각이 위험한 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어디로부터 왔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 선생님들은 다 생각하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은연중에 잘 가르쳐야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야 수업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때문이죠. 저는 이것이 덫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패러다임 전환의 측면에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덫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정책사업은 매끄럽게 진행 되지 않으면 큰일이 나니까요. 배움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것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티칭(teaching)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교육 서비스가 이루어지고요.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웠냐?”고 물어보고, 뭐 하나라도 만들어 와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서비스로 인식을 하니까 교사는 두 시간 안에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지속됩니다. 그래서 교사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백용성

 

 전체적으로 패러다임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요, ‘티칭/코칭/러닝’ 등 좋은 키워드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현실 속에서 교사 주체의 문제인지, 환경의 문제인지, 복합적 요인은 있겠지만 저의 고민은 ‘러닝의 문화’가 많이 필요하고, 이것이 자리를 잡아가는 패러다임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좁은 차원에서의 문화예술교육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판세형성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 Homo economicus)가 되어라, 자기를 관리하라, 자기계발이 필요하다, 등의 얘기가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인 거죠. 노동을 위한 도구적 기능으로 빠지는 겁니다. 그런데 한 편 평균 수명도 길어져 인생 이모작이라는 말도 있지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단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자기가 되는 삶”, 이 말은 미셸 푸코가 한 말인데요, 그리스·로마에서 사람들이 이미 했던 실천으로 일종의 자기배려, 수양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러닝의 문화’ 즉 ‘배움의 문화’인거죠. 그런데 동아시아에도 이런 전통은 많습니다. 선비가 자기를 갈고 닦는 수행도 그렇지요. 
 그런데 이것이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푸코가 제기한 것이 서구 사회에서 이런 실천들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배움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교육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어떻게 할까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더 중요한 화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내기라든가, 실과, 수작(手作, 손쓰기)을 많이 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인 것보다 잡히는 것을 직접 해보는 것인데, 그런 것도 전체적인 배움의 문화와 연관이 되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도구적 기능주의로 갈 수도 있습니다. 
 앞서 스승-제자 관계, 강사, 소통, 평등, 주체화, 이런 이야기도 많이 나왔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이 되어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야하고, 또 알게 모르게 가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정책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자발적 움직임들을 발굴하고 논의를 확산시키며 만들어가는 부분이 필요합니다. 모내기를 했을 때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교육 과정으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마을 만들기 같은 프로젝트들이 많은데 전체적으로 어우러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을 공동체 속에서 진행하는 윤리적 행위를 통해 파토스(pathos) 즉 새로운 감수성의 형성, 에토스(ethos) 즉 공동관계의 구성 같은 경험의 긍정적 부분이 새롭게 조명되고 공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게 작게는 일상과 넓게는 삶과 분리되지 않은 ‘배움’의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경옥

 

 이런 좌담이나 토론을 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 또는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소재, 자원 등을 표현하는 언어들에 대한 이해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나눠보고 싶은 것은,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급진적(radical)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고, 교육은 그 본질 자체가 보수적이라는 겁니다. 인간이 갖춰야 할 것들을 어떤 형태로든 후세(後世)에 전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잘 전할 수 있을까’가 가르침의 방식일 수도, 배움의 방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라고 본다면, 가장 급진적인 것과 가장 보수적인 것, 이 두 가지가 만났을 때, 어디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 과연 문화예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정책적인 기대도 있고, 또는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이 기대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교육자가 기대하는 것, 철학자가 기대하는 것이 다 다를 텐데요, 우리 사회는 무엇을 기대하기에 돈과 사람을 쓰는 것인지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고영직 

 

 네, 김경옥 선생님께서는 다른 분들과 포지션이 달라서 모신 것이니 선생님이 계신 현장 이야기를 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김경옥 

 

 제가 있는 <오디세이학교>는 학교 밖 현장입니다. 그래서 교육을 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의 성격은 대단히 급진적입니다. 기존의 시스템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해볼 수 있습니다. 2001년부터 시작해서 거의 20년 가까이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동안의 교육은 저마다 다 다른 사람을 하나의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평가하고 줄 세우기 하는, 얼토당토않은 것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달리기에서 100m를 몇 초 안에 뛰는 것이 기준이고, 거기에 맞추는 게 제도권의 학교라면 거기서 잘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소외되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왜 소외되어야 하는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면, 인류라는 종(種)으로 묶이는 이들을 하나로 성장시키는 촉매는 문화 예술적 자극이지만 학교는 이러한 관점으로 아이들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토대가 되어주는 것은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이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삶의 토대를 만들어 가는데 자양분이 되도록 저희는 애를 써왔습니다. 
 모내기 이야기도 하셨는데, 저희도 지리산에 가서 손 모내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일상 자체를 어떻게 문화예술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가 교육 현장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일차적 고민입니다. 공간의 세팅, 디자인도 문화예술적 감수성을 가지고 접근하고요. 그 다음에는 한 주간(週刊, week)의 ‘흐름’이 어떠할 때 문화예술적으로 몸과 마음이 열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을까, 하루의 흐름은 어떻게 되면 좋을까를 고민하며 일 년, 일주일, 하루의 흐름을 만들고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교육 과정을 구성할 때도 문화예술적 요소를 어떻게 도입해서 적용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저희의 1년 설계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들을 초대합니다. 무용하는 분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박물관에 가기도 하죠.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하여 일관된 흐름과 자극이 주어지는 맥락을 만듭니다. 이것은 시스템 밖에 있는 교육 현장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 안에서도 이렇게 설계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과연 이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도 합니다. 제도 학교도 이런 흐름 속에서 교육을 설계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것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도한 것이 서울시 교육청이 주관하는 일 년제 학교인 <오디세이학교>입니다. 
 문화예술교육이 우리의 전체 시간의 흐름, 정서적 흐름, 인지적 흐름, 관계의 흐름에서 따로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 되어 움직여야 하는데 이것이 제도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는 실천 방안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명숙 

 

 <오디세이학교>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나 센터에서 하는 지원사업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점을 공유해서 발전적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들었습니다. 제안을 하자면 커리큘럼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을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아이들을 모집해서 그때부터 커리큘럼을 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원사업 안에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도발과 협력을 연대해서 한다면 좋지 않을까요. 또 하나, 박물관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참여박물관(the Participatory Museum)’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오면 그때부터 무엇을 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자유롭게 나오게 됩니다.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죠. 

정민룡 

 

 실질적으로 현장에서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아이들은 커리큘럼을 보고 수업에 오는 것이 아니거든요. 커리큘럼은 가르치는 사람의 자기계획입니다. 물론 지식 중심 교육은 그것을 봐야겠지만 대부분의 예술교육은 커리큘럼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명숙 선생님 말씀은 현실화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작가가 작업계획서를 쓰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하며 생기는 변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문화예술교육도 대부분 그렇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잘못 이야기하면 아이들의 의견을 무조건 반영하자는 논리로 흐를 수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수업이 끝나면 기계적으로 하는 만족도 조사 결과만을 보고 해석하는 것은 맥락에 대한 단편적 이해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반영해서 수업 설계를 해야 된다고 하는데, 아이들의 의견은 단순합니다. 재밌거나, 재미없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왜 재미있는지, 재미없는지 선생님은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걸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죠. 자꾸 시스템을 만들다보니 덫에 빠져서 본질을 못 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까 김경옥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제도 교육의 경직된 부분은 저도 고민이 됩니다. 제가 한 많은 이야기들을 교육이라는 틀에 맞추면 다 깨집니다. 사회에서 하고 있는 건 어떻게 보면 교육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경험도 교육이겠지만, 경험을 교육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김경옥 

 

 자신의 경험을 의미화 하는 과정에 이르는 것이 교육인 것이죠. 

정민룡 

 

 학교에서 안하는 것을 하면 됩니다. ‘사회에서의 경험이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안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학교에서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을 해주는 거고 그게 저는 ‘마을’이라고 봅니다. 

 


‘질문’하고 ‘협력’하는 법을 배우는 문화예술교육

김경옥 

 

 학교에서 하지 않는 것의 본질을 꿰뚫어봐야 합니다. 학교에서 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것이 ‘질문’입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질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밖의 교육에서는 똑같이 피리를 부는 체험을 하더라도 질문을 통해 아이들이 다양한 층위의 경험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안에서는 ‘협력’을 잘 안 합니다. 적(敵)이 되어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시시때때로 적이 되어야 하고, 협력하면 무너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밖에서는 무엇을 경험하더라도 협력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은 ‘무언가를 잘하게 할까?’가 아니라 학교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무엇을 하게 해줄까?’에 질문하고 답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올해 처음으로 서울시 50플러스 서북캠퍼스 인생학교 과정에 참여했는데 느낀 바가 꽤 많습니다. 만 50-64세 연령대의 성인들이 모여 동아리 만들기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 이분들이 한 목소리로 ‘커뮤니티 활동’이 가장 좋았고, 이를 통해 가장 많이 배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들, 성인들 할 것 없이 질문을 하고 협력하는 것은 동료를 믿고 함께 가는 힘이 아닌가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와 제안들을 부탁드립니다. 

정민룡

 

 경험을 재구성하게 해주는 것인데요, 문화예술교육에서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경험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모험의 요소를 상상하자면, 어릴 때처럼 산을 타고 멀리 가는 경험을 아이들이 하면 좋은데 이를 위해 환경을 일부러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시간을 정하고 새로운 경험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안 해본 생경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약속, 거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 이것이 내용이 되는 것이고요. 경험을 어떻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조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 일상적으로 만나던 사람도 새로운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죠. 동네 사람도 마찬가지고 예술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미 있는 경험만 있다면 이것이 예술인지 아닌지의 구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영직 

 

 광주 북구문화의집과 대인시장에서 박문종 선생님께서 아이들 혹은 성인들과 함께 수업을 계속 해오셨는데요, 수업이 참 독특하더라고요. 그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정민룡 

 

 그분은 교육자는 아니지만, 자기 예술에 대해 ‘예술적인 옹알이’를 하는 분입니다. 아이들은 그 옹알이를 듣고 있다가 배우기도 하고 따라 하기도 합니다.

오명숙 

 

 미술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보면, 재료가 풍부해진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재료 선택의 범위가 무척 넓어졌지만, 지금 말씀하신 그 예술적 옹알이가 없습니다. 엄마와 아빠, 어린 아이가 오는데 이것저것 재료를 주워 형체를 만들어보는 것으로 활동이 끝납니다. 예술이, 예술가가, 어떤 사고를 하는지를 알려면 그런 예술적 옹알이가 중요한데 아무도 그것을 공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옹알이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경옥 

 

 저는 문화예술교육을 하시는 분들이 두 유형으로 분류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옹알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아티스트들은 예술적 옹알이를 공유하실 것이고, 교육자로서의 성향이 강한 사람은 또 다르게 접근하실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것을 열어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민룡 

 

 네, 열어놓고 봐야 하는데 90%는 교육을 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분명한 것은 환경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술가의 옹알이에는 모든 철학, 세계가 다 들어 있지만 아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겠죠. 그런데 이것이 일정 기간을 두고 반복되어 다른 느낌이 만들어지면, 아이들은 저절로 알게 됩니다. 강요가 아닌 것이죠. 예술적 행위를 하고 아이들이 예술가의 옹알이에 동참하면서 그 옹알이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죠.

백용성

 

 ‘어떤 경험이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개념적으로 말씀 드리면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사실은 이미 서구에서는 ‘경험을 잃어버리고 체험만 남았다’는 문제의식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경험은 잘 정리되어야 개념입니다. 체험학습과의 차이도 있고요. 어떤 시간을 연습하는 것인데 모든 게 경험이라면 수학 문제를 풀어도 경험이죠. 답이 맞으면 놀라운 경험이고요. 저는 문화예술교육의 경쟁자는 학교 교육이 아니라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과 대결해 이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벗어나는 순간 선택지는 모두 그쪽입니다. 왜냐하면 게임은 대게 왜곡된 경험이지만 짜릿한 ‘체험’을 주거든요. 킬링 타임이죠. 삶을 죽이는 거죠. 거기엔 참된 의미의 경험이 없어요. 스마트폰도 물론 경험을 줍니다. 학교 자체는 아쉽게도 스트레스가 많은 공간이 되어 아이들이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게임 쪽으로 벗어나게 되는 환경인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좋은 의미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는 학교 자체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배움이 일어나는 경험은 어떻게 오는가

고영직

 

 ‘체험에서 경험으로’라는 주제는 아마 《지지봄봄》 다음호에서 주로 다뤄질 것 같습니다. 제 경험을 하나 말씀 드리죠. 작년에 전라남도 장흥에서 진행되는 인문캠프에 참여했는데요, 저녁 때 20명의 청소년들을 앉혀놓고 글을 쓰게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낮에 열린 <정남진장흥물축제>에서 신나게 놀았던 터라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전지 한 장씩 나눠주고 밖에 나가 ‘드러눕기의 기술’을 배우자고 제안했고, 땅바닥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게 했습니다. 잠을 자도 좋고 멍때려도 좋은데 옆 친구와 이야기는 하지 말고 스마트폰도 하지 말자고 주문했습니다. 그랬더니 참여한 스무 명의 아이들 중에서 꽤 많은 아이들이 ‘그 순간’이 가장 좋았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게 일종의 경험이 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하나의 경험을 겪은 것이죠. 특정한 상황의 특정한 경험, 존 듀이 식으로 말하자면 ‘어떤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을 겪었달까요. 그런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예술적 옹알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수업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요, 현장의 문화예술교육자들이 질적으로 성숙된 교육을 위해 어떤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명숙 

 

 제가 추진 중인 일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경복궁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경복궁 복원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총독부 건물이 분명히 있었고, 정부종합청사로도 썼었는데, 그 터에는 표지석조차 설치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여론이 겁나서 못하겠다. 자신이 없다’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역사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 과거에 이러한 일들이 있었으니 잊지 말고 생각해볼 지점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실을 간과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맥락’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인간이 성숙해진다고 봅니다. 삶이 어떻게 좋은 것만 있을 수 있겠어요. 불행한 일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달리 쓰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맥락에서 다뤄야 합니다. 푸코 이야기도 하셨지만, 푸코가 설계한 근대의 감옥에 사는 우리 몸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올해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에서 주성진 선생님을 중심으로 ‘수업비평’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지원 선생님께서 간략히 설명해 주시죠. 

최지원

 

 지원사업에서 모니터링이란 이름으로 매년 현장에 나가는데 이것이 결국 예산이나 시간의 한계 때문에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깐 동안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이것이 공유가 안 되는데, 결국은 모니터링이든 컨설팅이든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나 기획자가 스스로의 고민에 대한 깨달음과 경험의 지점이 있어야 수업이 질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영상비평 모니터링을 시작했습니다. 기본은 수업 영상을 전부 찍은 뒤 같이 보고 수업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수요 조사를 했는데 8개 정도의 단체가 신청했습니다. 수업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예술교육자와 단체의 거부감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현장 반응이 좋았습니다. 신청 단체 중 3-4개 단체와 올해 진행할 것 같습니다. 

고영직

 

 작년에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에서도 역량강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러 사람들이 수업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안양문화예술재단과 함께한 사업으로『컨설팅에서 협력―까지』라는 결과 보고서도 나왔습니다. 저는 그때 안산(지아정원)과 이천(설성면주민자치위원회)에 있는 두 단체와 깊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때 실감했습니다. 두 팀 중 안산 지아정원의 기획자와 주강사가 제가 사는 동네에 찾아와 고맙다며 같이 술잔을 주고받은 게 기억납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수업에 대해 읽어주는 비평이 너무나 없습니다. 함께 수업 내용과 형식에 대해 읽어주는 ‘수업비평’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8개 단체가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정민룡

 

 살짝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는데요, 수업을 잘하는 사람은 확실히 있습니다. ‘선수’들이죠. 결국은 수업 기술의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매뉴얼이 있어 수업 분위기를 좋게 하는 거죠. 그러면 또 다시 ‘좋은 수업=진행을 깔끔하게 잘하는 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수업을 쪼개서 파편적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수업 잘하는 분이 계신가 하면 못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수업 비평이 수업 기술에 대한 진단 위주로 진행된다면 위험요소가 생길 수 있는 것이죠. 
 아까 경험과 관련해서 이야기들이 예술적 경험 중심으로 모아졌는데, 한편으로 저는 놀라운 경험의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 기획자 같은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놀라운 경험을 하는데 필요한 것을 준비합니다. 이것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 입체적인 작업과 팀워크가 필요합니다. 왜냐면 최대한 번거롭게 준비가 되어야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집에 대해 경험하고자 한다면 집을 지어야 하지만, 그게 어려우니까 종이로 잘라서 모형을 만듭니다. 아이들은 시시하다고 생각하죠. 전혀 놀랍지 않은 경험입니다. 직접 만들어야 놀라운 경험이 되는데 그 준비는 번거롭고 힘듭니다. 때로는 모래도 나르고 나무도 나르며 여러 가지 일이 생기죠. 그게 문화예술교육이 해야 할 일입니다. 앞으로 선생님들은 그런 부분의 역량도 필요할 것입니다. 아이들을 다루는 솜씨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협력하는 강사와의 협력체계가 더 중요할 수도 있고요. 팀플레이로 가는 것이죠. 비효율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나브로의 힘’과 히든 커리큘럼

김경옥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면, 작년에 <오디세이학교>에 온 남자아이 이야기인데요, ‘An Experience’의 경험이 어느 날 천둥 맞듯이 갑자기 오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시나브로 축척되는 것이 중요한지, 이 아이의 사례에 비추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인간에게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건 ‘시나브로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밖의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면에서는 ‘An Experience’를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학교 교육 현장은 시나브로의 힘을 믿는 현장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면 교사도 지치죠. 당장의 피드백을 못 받더라도 10년 뒤에는 발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고 빼빼 마르고 무기력의 결정체인 남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 중 커뮤니티 활동이 있습니다.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1년에 40회 정도의 활동을 하는데 핵심은 그룹 안에서 일상을 회고하고 그에 대해 나머지 아이들이 피드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두 달이 되어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가 잘하는 게 피아노치기인데요, 성적도 좋지 않고, 학교에 있었으면 그냥 열등감 속에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말도 못하고 표현도 안 되고 잘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한 대 있는 피아노를 틈만 나면 연주했습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요. 이 아이가 피아노를 치면 3-4명의 아이들이 모이고, 어떤 날은 10명까지도 모여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요. 그러던 중 드디어 그 아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룹미팅 때 ‘네/아니오’만 말하다가 단어가 문장이 되면서, 이 아이가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디세이도 학교도 그만 두고 싶다고 했습니다. “힘드니?”라고 물었더니, ‘못 알아듣는 말 때문에 힘들다. 내 열등감이 해소가 안 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본인은 깨닫지 못했겠지만 자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보면 훌륭해진 것이죠. 그러면서 학교를 그만 두고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엄마가 맥도날드에서 매니저를 하는데 엄마를 보니까 아르바이트 하면서 먹고 살아도 될 것 같고,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오디세이 학교에 왔을 때 학교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학교도 하나의 선택지’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그렇게 받아들인 겁니다.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열등감,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과연 밖에 나가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를 내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아이는 오디세이 학교의 프로젝트 활동도 했는데, 성북구에 있는 민들레 본부에서 진행됐습니다. 아이가 오는 날엔 출판사에서 일하는 현병호 대표, 글쓰는 선생님, 편집자가 아이를 봐줍니다.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이 아이를 봐주는 것이죠. 어느 날 민들레 출판사에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현병호 선생님이 옆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다가 아이에게 팔굽혀펴기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나는 원래 3개밖에 못했는데, 50일 지나니 50개 할 수 있었고 달라진 게 많다. 자신감도 생기고 몸도 튼튼해지고. 그런데 안 한지 5년 되어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 같이 해보지 않겠니”라고 제안을 했고 아이도 선뜻 하겠다고 대답했죠. 그래서 “민들레 출판사에 오는 날, 점심시간에 성신여대 운동장에 가서 팔굽혀펴기를 하자. 맥도날드 인턴도 해보고 판단하자”라고 제안했는데, 아르바이트는 안하게 되고 팔굽혀펴기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30분을 하는데, 아이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그 다음 주에는 같이 하는 아이들이 2명이 늘고, 그 다음 주에는 2명이 더 늘어서, 5명이 세 달 정도를 했는데 아이가 정말 달라졌습니다. 몸이 달라지고 자세가 달라지고, 연주하는 피아노곡도 달라졌습니다. 애잔한 연주에서 씩씩한 연주도 하고, 밴드 활동도 하고, 학교도 다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간 아이가 한 2달 전쯤 오디세이 학교에서 담임했던 선생님에게 글쓰기 대회에서 동상을 탔다고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글쓰기 한 것을 보내왔습니다. 수준이 훌륭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퍽 감동적이었습니다. 수학여행 감상문이었는데, ‘이건 수학여행이 아니다. 이게 얼마나 엉터리인지 그리고 배움이 되는 여행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비문도 없이 A4 반 정도 분량으로 쓴 겁니다. 
 이 일을 보고 저는 현병호 선생님이 나타났을 때의 타이밍, 그리고 그 분이 관찰한 ‘점핑’에 대한 타이밍, ‘시나브로’ 해왔던 그간의 활동들…… 여러 가지가 아이에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이 언제 빛이 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팔굽혀펴기’ 같은 게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어떨 때 빛을 발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요소가 하나로 다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파트너인 학교 선생님과 기획하는 사람들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민룡

 

 예상치 못한 부분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인데요, 이것이 환경과 상황의 결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 프로그램은 2시간인데 그 안에서 삶의 경험을 만나기 위해선 일상적 환경과 우연적 상황들이 맞아 떨어졌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주 일어나야 합니다. 출발은 팔굽혀펴기였는데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교육에서 ‘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는 그게 ‘글쓰기’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백용성

 

 현장에 계신 경험이 많은 분들은 한의사나 의사처럼 어떤 상황에서 뭐가 필요한지 잘 알고 계시는데 서로 이야기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각자가 해왔던 수준에 머무르게 되는데, 서로의 경험이 교차하는 시간들이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많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로의 경험을 교차해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필요합니다.

정민룡

 

 몸을 계속 쓰다보면 힘들더라도 재미와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고영직

 

 그게 어쩌면 정민룡 선생님께서 계속 강조하신 ‘히든 커리큘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과 더불어 동료들과의 연결이 중요합니다. 교사의 수준을 높이는 작업이 별도의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기보다는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경기문화재단 같은 지원기관이 해야 할 일이겠죠. 

김경옥

 

 일상의 논의 구조가 확보되고, 그 질이 높아지지 않으면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없습니다. 

오명숙 

 

 아까 정민룡 선생님께서 덫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우리가 어떤 덫에 걸려 있나 그것을 오늘 다뤄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것이 교사의 질인데 교사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하려고 하면 되는데 말이죠. 그래서 교사가 무언가를 잔뜩 준비해서 무언가 해야겠다라는 자세보다는 내려놓고 같이 배우는 자세,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의 『투게더』라는 책에서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대화적 대화(dialogic conversation)’입니다. 대화를 중단시키는 대화가 아니라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대화를 의미하죠. 그것은 단정적인 말을 쓰지 않고, 가정법을 사용하는 것이죠. 세넷이 공감보다 감정이입을 더 중요시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강사와 학생 구도를 넘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스승’이라는 스스로의 상(像)을 깨고, 함께할 수 있는 대화적 대화의 방법을 찾아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지봄봄
20호 더봄 | 좌담회
문화예술교육의 기본을 교육예술로 묻다
일시: 2016.11.16. (수)
장소: 수원 달보드레
진행 : 임재춘(커뮤니티스튜디오104)
참석자
 - 김희동(통전교육연구소)
 - 박형만(해오름평생교육원 으뜸일꾼)
 - 성국모(사단법인 밝은마을)
 - 김인규(서천고등학교 수석교사)
 - 이기복(청석에듀시어터 대표)
 - 손채수(초암교육예술연구소장)
 - 전지영(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센터장)
 - 박아롬(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지봄봄 담당)
 - 한상은(녹취록 작성)

임재춘

  안녕하세요? 임재춘 입니다. 지지봄봄 20호 좌담회에 모여주신 선생님들께 저의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2002년 즈음부터 경기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업으로 현장에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제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스승들과 혹은 선배들과의 이야기를 곁에서 볼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됐죠. 사실 “교육예술”이 문화예술교육의 영역에서 친숙한 언어는 아니에요. 그런데 왜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교육예술을 꺼낼까 생각해 봤어요.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제도로서 그 주도력이 강하다보니 굉장히 많은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고 그 문제들은 문화보다는 다분히 교육에 가까운 것들이지요. 단지 툭툭 쳐주기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슈에 끊임없이 직면하게 되는 거예요. 물론 문화예술교육 영역 안에서는 예술의 언어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고 문화의 언어로 풀어야 할 문제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최소한 인간에 대한 혹은 생명에 대한 태도는 예술이냐 문화냐 교육이냐의 영역 구분과는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개념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교육예술을 통해서 예술 전반이나 문화예술에서의 예술의 모습, 형식 등을 구체적으로 짚어낼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최소한 인간, 생명, 교육 그리고 폭넓은 의미에서의 배움을 우리가 어떻게 사고해 볼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교육예술을 이야기할 때 떠올렸던 분들을 모시고 이번 호에 담아야할 이야기가 무엇일지를 미리 학습하는 자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이 자리가 마련이 되었고요. 저희가 지지봄봄 회의를 통해 만난 것이긴 하지만 이 웹진 이후에도 생각해야할 것을 연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연이 될 거라는 기대가 됩니다. 이런 자리가 필요 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최근에 교육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어요. 지금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잘 되어가고 있는가, 예술강사지원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는가, 아이들은 그 교육과정을 접하면서 변화를 느끼고 있는가 등을 짚어보는 것은 이미 많이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교육예술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과는 다른 감각을 가지고 교육예술을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경기문화재단을 떠나 생활인으로 살게 되면서 이전에 다뤘던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어요. 개인적인 삶의 변화와 사건들을 겪게 되었는데요, 사적인 이야기지만 아버지의 죽음, 결혼, 출산 그리고 살림을 하게 되면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계절’이었거든요. 계절은 계속 바뀌는 데 우리는 바뀌는 계절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게 되는 것이지요.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문화예술교육 현장들이 겨울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교육과정으로 연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게 위 질문들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워 봤어요. 교육예술이라는 언어가 무엇인지 짚어보고 과거부터 있었던 교육 철학과 그것이 지금까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도 지지봄봄의 중요한 역할이 되리라고 생각하고요. 꼭지를 정해두고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더 깊이 생각해볼 것들을 글을 쓰거나 현장을 취재하는 방식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로 문화예술교육은 다들 접해보셨겠지만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고요. 또 하나는 교육예술이라는 것.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개념은 설왕설래해요. ‘문화교육이다’, ‘예술교육이다’, ‘교육예술이다’라는 세 가지 주장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교육예술은 대부분의 문화예술교육이 예술가와 결합이 되어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교육예술이라는 말은 그다지 적극적으로 논의되거나 활용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교육예술이 낯설고 어색한 용어일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용어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으로 진행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전지영

  사실 ‘교육이 예술이다’, ‘교육이 “ART”다’, 라는 말은 흔치 않은 표현이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말이죠. 제게 교육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 무척이나 좋게 다가옵니다.


임재춘

  문화예술교육이 정부주도로 진행되는 것을 조금 설명하고 넘어갈게요. 처음에 “문화연대”라는 민간단체에서 ‘문화교육’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어요. 문화 이론가들이 문화교육을 이야기했던 것이죠. 그분들이 말하는 문화교육은 예술이라기보다 교육문화를 바꿔내는 대안으로써의 문화교육을 이야기하셨던 거예요. 그런데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그것을 수용하게 된거죠. 그러면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용어가 나왔고요. 그 용어에 대해서는 굉장히 논란이 많았지만 어쨌든 그런 정책이 국가 단위에서 생긴다는 거에 대해 많은 민간 단위들은 지지하는 추세였고요. 우리나라 입시문제나 수월성 교육을 정부가 스스로 반성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창했기 때문에, 민간에서의 우려도 있었지만 사실은 지지하고 긍정하는 분들도 많았지요. 그리고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나 조례 등을 통해 진행이 되면서 제도적으로 추대를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는 다양한 현장을 사회와 학교로 구분을 한 거예요. “사회”문화예술교육과 “학교”문화예술교육으로요. 학교문화예술교육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일자리 창출이었어요. 예술가들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일자리가 없잖아요. 그들의 일자리 창출 개념으로 학교에 파견하는 것을 문화예술교육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으로 취한 거죠. 이걸 “예술강사지원사업”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지속적인 인연을 맺기가 어려운데 예술강사들은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을 만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교육이 기존의 지식전달식 수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문제가 생겼어요. 그러므로 문화예술교육도 아닌, 협동이 필요한 교육도 아닌, 굉장히 도구적이고 보조적인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죠. 문제는, 문화예술교육정책 예산의 80%가 다 이 예술강사지원사업으로 흘러가요. 정책의 전달 체계도 ‘탑-다운’ 방식이고요. 이러한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어떤 문제제기도 수렴되기 어려운 보수적인 체계이고요. 어떤 제도든 문제는 있기 마련이지만 최소한 문제제기를 계속하면 누군가 듣고  바뀌거나 논의가 되는 환경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그 부분이 아주 심각할 정도로 배제되어 있는 상황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더 골이 깊어지고 그게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나 의미들을 흐리죠. 외부의 시선으로는 본질을 왜곡되게 바라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한 거예요. 예술강사의 자질 문제나 그들의 노동권 문제 등등 여러가지 문제가 혼재되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일일이 짚어내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사실 이미 많이 짚어보기도 했어요.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한 쪽에서 누군가는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워야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질문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짚어내는 것보다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질문, 즉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질문하는 게 문제의 해법을 다져가는 데 더 긴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지영

  실제로 경기 지역의 경우 연간 100억에 가까운 예산이 학교예술강사사업에 투입 되고 있어요.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 제도가 있는데요, 1년이 채 안되는 커리큘럼 수강 과정을 이수하고는 자격증을 따면 예술강사로 진입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예술적 영감이나 경험치를 전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예술가로서 학교에 가서 수업하는데 상당한 예산이 쓰여지고 있다는 점이지요. 그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에 진입하는 새로 하는 분들은 그게 문화예술교육의 전부인지 안다는 것이 저희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거죠. 문화예술교육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저희가 역질문을 해서라도 그분들이 철학적 가치를 고민하는 계기 조성이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이기복

  경기도교육청에서 하는 ‘꿈의 학교’에 대해서는 알고계시죠? 제가 작년부터 그걸 하고 있어요. 그게 “마을교육 공동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 거죠. 사실 저는 할 생각이 없었어요. 이미 제 공간을 가지고 있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2011년에 퇴직하고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광주문화재단에서 ‘꿈에 학교’ 사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권유를 하셔서 설명회를 들으러 경기도 교육청 북부청사에 갔어요. 지역에서 교육활동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1500명 정도의 사람이 모였더라고요. 저는 공교육이 싫어서 교직생활을 떠나 아이들과 자유롭게 지내고 있는데 사업을 진행하면 생길 규제가 걱정이 되었어요. 하지만 이 사업은 수당 지급에 대한 절차와 연간 교육 계획 이수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전부 저희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이 참 좋더라고요. 



전지영

  사실 중앙기관에서 기존에 진행해왔던 문화예술교육의 실패 사례를 전향적으로 점검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즉, 기존 문화예술교육 제도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행착오, 예를 들어 규제라든가 하는 것들을 다 풀어버리고 최소한의 규제만 두고 자율성을 담보하는 사업을 세팅함으로써 매개자들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이기복

  ‘꿈의 학교’ 사업을 끝내고 장원에 있는 교육연수원에서 1박 2일 동안 사례 발표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느꼈어요. ‘괜히 퇴직했나(웃음), 내가 퇴직하니까 왜 이렇게 교육 여건이 좋아지고 있지?’ 생각도 했어요. 그 때 의정부 장학사가 “청소년을 미래의 마을 청년으로”라는 얘기를 했는데 거기에서 딱 꽂혔어요.
  제가 1981년에 경기도 광주에 왔을 때 인구가 15만 명이었어요. 거기에 하남시가 떨어져 나가면서 8만 명으로 줄었고요. 그게 뭐가 중요하냐면요, 아이들이 작은 지역에 사는 걸 창피하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수학여행갈 때 초록색 관광버스를 타고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 쯤에서 쉬는데 휴게소에 내릴 때 신나하던 아이들이 다시 탈 때는 다 울면서 타요. 서울에서 온 차들 앞에 경기 넘버가 붙은 촌스러운 초록색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 싫다고 말해요. 그러면 저는 혼란스러운 거예요. ‘왜 경기도 사람인 게 창피하고 더군다나 광주 사람인 게 창피할까’ 생각하죠.  
  사업 결과 보고회 때 의정부 장학사의 말이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내가 너 정말 잘 가르칠 테니까 성공해서 여기를 떠나! 성공해서 서울로 가, 여기는 사람 살 데가 못 돼!” 이렇게 가르쳤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에반해 마을 공동체의 기본 이념은 우리가 사는 이 동네의 주인공이 돼서 살아가는 거예요. 저희 공간은 4시 반에서 5시 반이 되면 여기저기서 애들이 뛰어오는 게 보여요. 그냥 오는 게 아니라 막 뛰어와요. 뛰어올 정도로 아이들이 공간을 사랑하고 지역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임재춘

  ‘꿈의 학교’는 학교 밖 교육인가요?


이기복

  맞아요. 제가 ‘꿈의 학교’ 교장이에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게 교육청에 우리 극장에서 교사 직무 연수을 할 수 있게 개설해달라고 했어요. 마침 그게 경기도교육청의 권장사항이더라고요. 그래서 여름방학 때 강좌를 개설했어요. 그리고 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했죠. ‘8일 동안 당신들은 연극을 다섯 편을 보고 공연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각오가 된 사람만 와라’라고요. 그랬더니 40명이 왔었는데 정말 치열하게 직무 연수를 했고 그 분들이 교사극단까지 만들었어요. 자기들도 배워서 해보겠다고요. 


임재춘

  제가 ‘꿈의 학교’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사회문화예술교육 학교문화예술교육으로 나누는데 사실 원래 사회문화예술교육에서 우리가 강조했던 것은 학교문화예술교육과의 연결되는 지점이었거든요. 물론 그것을 체계화, 이론화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것까지는 부족했지만 최소한 문화예술교육정책을 지지하면서 사회문화예술교육을 하셨던 분들은 학교와 지역사회를 구분하는 것보다 서로가 못하는 것들을 어떻게 보완하고 연결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셨어요. 저희가 봤던 사례 중에 많은 학교들이 지역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배움의 결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교육과정을 가졌었어요. 그러면서 사회문화예술교육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할지에 대해 많은 레퍼런스가 되어주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에 실제로 현장에서 진행됐던 방식은 완전 단절이에요. 최근에는 학교 안에서만 해야 한다든가. 학교 안에서 모집을 했으면 지역에서 못한다거나 하는 식의 지침을 내리면서 의도적으로 연결을 못하게 하는 거죠. 문화부 사업은 아니지만 꿈의 학교가 그 중간, 비어 있는 중간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요.


이기복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해요. 광주에서 제일 잘 되는 복지회관은 노인복지회관이에요. 그 원인을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만남의 장소더라고요. 연애도 하세요. 식사 값도 1000원씩만 받고요. 그런데 제가 거기에서 하는 문화 프로그램 중에 못마땅한 게 뭐냐면요, 밸리 댄스, 타악같은 프로그램만 진행하죠. 저도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저는 그런 식으로 노년을 보내고 싶지 않거든요(웃음). 사회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제는 노인들이 변했다는 거예요. 


전지영

  저도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실제로 올해 여러 차례의 노인문화예술교육 세미나에 다녀왔는데요, 그만큼 노인문화예술교육이 지금 화두이지요.


이기복

  그래서 연극이 끼어들 자리가 굉장히 많아요. 왜냐면 우리 세대는 교회나 성당에서 다 한번씩은 연극을 해봤고 낭독 공연도 해봤던 세대이고 연극을 참 좋아했던 세대거든요. 인생의 깊이를 나타내는 데는 연극이 참 좋아요. 인문학적 지식도 있어야 하고 철학도 있어야 하고 말이죠. 저와 가까운 교장 선생님이 퇴임을 했어요. 그분이 퇴임하시고 저희 극단에 와서 단원으로 받아달라고 하는 거예요. 농담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건물을 대안대학으로 만들까 생각하잖아요. 


임재춘

  그렇다면 교육예술이 뭔가요? 누군가 교육예술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한 마디로 꼭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야기로 교육예술을 다루면 좋을지 시작해보고 싶어요.


김희동

  저는 교육예술에 대해 여기 계신 분들만큼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아이들이 온전하게 성장한다는 게 뭘까 늘 고민했어요. 한쪽으로 많이 치우치면서 아이들을 만났던 경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고요. 권위주의 교육에 대한 반감 때문에 자유 지향적이 되어 아이들에게 다 해보라는 식으로 갔다가 능력의 한계도 있었던 것 같고, 생각지 못한 많은 부작용을 겪으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게 아니라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왼쪽으로 가면서 오른쪽으로 가려는 것처럼 둘 다 동시에 얻겠다는 것은 욕심이고 모순이지요. 이끌어주는 것과 내버려두는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흐름과 순차를 두는 것입니다. 발달과 성장의 원리에 따라 이끌어줄 때는 이끌어주고 내버려둬야 할 때는 내버려두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부모와 교사에게 중요한 과제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발달의 제 때를 아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전체를 보는 눈, 저는 ‘온눈’이라고 부릅니다만, 이 온눈을 가지는 것이 절실하다고 여겨요.  


  저는 예술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 그게 필요하다고 여겨요. 그런데 아름다움에 대해 의무감, 책임감을 갖게 되면 예술 활동의 방향이 뭔가 좋아 보이고 괜찮아 보이는 것을 더해야하는 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꾸미고 칠하고 외부의 것을 보태어 가지요. 
  물론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저의 짧은 교육경험 속에서 자꾸만 반복 자각하는 것은 무엇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었다고 믿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 안에서 진지함도 솟아나고 감동도 오고 열정도 솟아나고요. 저는 아이들에게서 정말 보고 싶은 게 진지한 열망이에요. 물론 즐기기도 하고 까불대면서, 청소년기답게 반항도 하고 일탈도 하는 것을 다 포함해서요. 그럼에도 무언가에 불타오르는 진지함 말입니다. 좀 더 고상해질 수 있는 과정에서 인격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아이들과 노래를 많이 부르는 편인데요, 심심찮게 그림도 그리고요. 아직도 잘 안 됩니다만 늘 정성을 기울이면 거기서 아름다움이 솟아난다고 봅니다. 


전지영

  이야기만 들어도 설레네요.(웃음)


임재춘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하고 계시는 교육이나 그에 관한 고민을 이야기할 때 “내가 지향하는 교육은 이런 거다” 하는 표현이 있나요?


김희동

  있기는 한데 워낙 낯선 용어라 잘 안 씁니다. 저는 “통전(統全)”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얼, 몬, 새가 통전됐다”고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거는 완전히 지어낸 말입니다. (웃음) 말놀이에 지나지 않죠.


임재춘 

  사실 저희 동네에 슈타이너 학교가 있어요. 그 학교에서 2년 동안 교사연수 과정을 하셨던 분이 자주 저와 산책을 하셨는데요, 졸업 말미에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본인은 천주교 신앙인인데, 슈타이너가 거의 하느님인 이 상황이 힘겨웠다고 하셨어요. 당신은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 교육을 하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난처했다고요. 개인적으로 종교적 신앙도 있고, 삶의 경험도 있고 교사로서 그동안 만난 경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부정당하고 슈타이너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야하는 거에 대한 어려움이 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게 인지학이나 슈타이너 교육을 아는 것과 실제로 자신이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주체적으로 어떤 교육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다른 문제였다는 걸 비로소 다시 생각해보게 됐거든요. 꼭 합의되지 않더라도요, 교육이라는 건 굉장히 열린 거잖아요. 이 “얼, 몬, 새가 통전됐다”는 것도 아직은 뜻을 잘 모르겠지만 슈타이너 교육과는 다른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전지영

  “얼, 몬, 새”가 무슨 뜻인지 여쭈어보겠습니다.


김희동

  얼은 말 그대로 정신을 뜻하고, 몬은 물질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에요. 새는 사이를 뜻하고요. 정신과 물질 사이라는 뜻도 되고 거기에서 새로운 뭔가가 나오기도 한다는 뜻이에요. 제가 슈타이너 인지학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건 양극성의 조화라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천지인 사상에 들어 있다고 보는데요. 정신과 하늘, 땅과 물질 그리고 두 세계 사이를 조화롭게 만들고 새로운 것을 이끌어내는 것이 사람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늘, 땅, 사람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것. 이렇게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것을 “통전”이라고 해요. 


박형만

  새가 관계를 뜻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홍익인간’과도 뜻이 닿아 있는 것 같네요.


김희동

  저는 홍익인간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았어요. 흔히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이익과 손해의 관점, 다소 이기적인 태도가 불편했습니다. 이 ‘익’자가 ‘이로울 익’이 아니라 ‘더할 익’인데 말입니다. 더하면 이롭다고 생각했을까요? 자구 그대로 해석하면 ‘사람을 더해간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죠. 단군신화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보아요. 환웅이 재세이화(在世理化)의 뜻을 품으며 도우려 했던 사람, 곰이 원화위인(願化爲人)의 마음으로 진정으로 되고자 했던 그 사람. 사람을 향한 하늘과 땅의 간절함을 보면서, 여기서 사람은 저는 그냥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 참다운 사람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홍익인간은 널리 참 사람을 더해간다, 그런 세상이 되어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임재춘

  김희동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대안학교를 시작하셨나요?


김희동

  기존 학교에는 교장 선생님이 계셔서 돌아가기 싫었어요(웃음). 교육청하고 하도 많이 부딪혀서 내가 교장 해야 되겠다 생각했죠. 


임재춘

  어떤 면에서는 우리 교육의 핵심에 대한 고민을 해요.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라든가 교육이 가진 행정만이라도 변화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게 교장과 선생으로 나뉘는 구조적인 문제인 건지 아니면 문제 해결방식의 문제인지, 혹은 사람의 철학에 대한 문제인지에 대해 생각이 복잡합니다. 학교교육의 문제들이 그 부분에서 바뀔 수 없는 것이 그 지점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다른 선생님들은 교육예술을 어떻게 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박형만
 
  저는 김희동 선생님께 많이 배웠어요. 제가 슈타이너를 알게 된 1994년 즈음에 만났어요. ‘처음처럼’이라는 교육 잡지를 통해 송순재 교수님, 고병헌 교수님 두 분께서 대안학교를 많이 소개했었는데, 그 때 대안학교 분야에 김희동 선생님께서 우뚝 서 계시더라고요. 그 이후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죠. 저는 해오름에서 독서논술 잡지 ‘배워서 남주자’를 펴내면서 제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어요. 대안학교에 대한 저만의 상이나 꿈이 있었는데 그게 완전히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없이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해오름이 평생교육원을 통해 지도자과정을 열고 있는데 1996년부터 초등은 교육예술을 중심으로 해요.  


  교육예술이 뭐냐고 물으면 저는 얼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얼굴은 말 그대로 얼이 통하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순우리말이에요. 얼굴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매일매일 변해요. 교육예술이란 늘 새롭게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예요. 지금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의 얼굴로 바뀔 것이지, 인간의 진정한 내면을 밝히는 얼굴로 변할 것인지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플라톤이 이데아를 이야기할 때 진선미에 대해 말하잖아요. 그 ‘진’도 미고 ‘선’도 미고 ‘미’도 미잖아요. 미로 다 통합되는 건데요. 기계적 통합이 아니라 각각의 독립적 영역이 존재하는 거죠. 진은 사람(사단, 四端)으로 보면 십이지신처럼(시비지심是非之心) 지(智)의 개념이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인 힘, 참된 것을 발견하는 힘을 진이라고 해요. 그리고 왜 순서는 진선미라고 했을까? 선은 고도의 정신적인 미거든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미는 선이라고 본 거예요. 미는 뭘까 하니, 신영복 선생님 강의에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미는 숙지성(熟知性), 즉 ‘알 만하다’는 거죠. 아름다움이 ‘알 만하다’에서 명사형으로 바뀌는 과정이라는 거예요. 양이 커가는 과정을 보면서 양을 키우는 주인이 흐뭇해하는 것.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흐뭇해하는 것을 미라고 봤어요. 저는 이게 참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플라톤은 미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미는 행동이라고 봤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실천이 이뤄질 때가 미라고 봤어요. 저는 얼굴에서 어떻게 진선미의 세계를 강화시켜갈 것인가가 이게 교육예술의 목표라고 생각해요. 슈타이너 선생의 인지학에서도 강조했지만,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인간이 죽을 때까지 찾아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렇다면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끝나는 것인가, 아니라는 거죠. 아니다 끝없이 발견해야할 것을 찾는 것을 ‘도덕’이라고 하는 거예요. 플라톤이 이데아에서 중요시하는 것도 ‘선’이잖아요. 그 ‘선’은 평등한 것이고요. 같은 테이블에서 같이 먹고 마시고 서로가 동등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거에요. 교육예술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테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인규

  저는 공교육에서 오랫동안 생활 있었어요. 사실 문화교육을 이야기기할 때 하고 교육예술을 이야기할 때의 어감차이가 있어요. 문화교육이란 용어는 ‘역량’에 방점이 있죠. 시민성이라든지 개인이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의 역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는데요. 2015년 개정교육과정을 보면 ‘역량’을 처음 등장해요. 그러고 보니 우리 교육이 이미 그동안 역량에 방점을 찍어왔던 거예요. 그런데 교육과정에서 그걸 전면에 드러내니 그 문제가 보이는 거지요. 역량은 교육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지 역량을 목표로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할 때, 그 말 속에는 ‘역량성’이 내포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 말하는 교육예술은 ‘역량성’ 이전의 차원과 관련이 깊지 않은가 생각을 해요. 현재 공교육의 문제점이 뭔가 생각하면서 ‘아이들의 역량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요.  ‘이렇게 기를 것인가, 저렇게 기를 것인가’하는 식의 논의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것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고 그럼으로써 현재 공교육의 문제도 같이 해결될 지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진짜 제대로 논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교육부가 던졌고 그걸 논쟁하면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지영

  한편으로 더 생각해볼 지점은 역량이라는 언어의 의미가 지금은 대부분 ‘기능’, ‘개발’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역량이라는 단어가 재능을 뛰어나게 만드는 어떤 기술적 목적에 갇혀있다고 생각해요.


김인규

  교육이 반드시 역량을 기르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게 맞는가 하는 고민이 있는 거죠. 교육부에서 역량을 들고 나왔을 때 이게 뭔가 싶었는데, 자꾸 교육 과정을 되새겨 볼수록 오히려 이게 함정을 파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교육목표의 구체화라 이게 함정이구나 생각하죠.



임재춘

  생각해볼 것들이 있네요. 아까 말씀에 문화예술교육에 역량이라는 부분이 내재화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문화교육을 이야기하면서 리터러시가 가진 합의에 대한 내용이 지금 지적하신 문제가 아닌가요? 


김인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을 그 지점에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직접 느낀 것은 아이들이 원하지 않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의 저항이 저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임재춘

  김인규 선생님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한 한 가지 사건이 있었어요. 2011년에 선생님께서 ‘이전에는 교육과 예술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작업이 됐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교육예술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일치가 떠오르더라고요.


  손채수 선생님은 어떠세요? 지금 하고 계시는 활동이나 아이들을 만나는 방법에서 이어간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손채수

  저는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렸을 때 기억 중에 하나인데요, 서너 살 때 저희 집에서 일하시는 언니를 붙잡고 죽지 않게 해달라고 엉엉 울면서 빌었어요. 그 언니가 너무 당황해서 계속 달래줬었거든요. 그리고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한 기억이 있어요. 물속에서 기절을 했다가 깨어났는데 눈앞에 형언할 수 없는 빛이 보였어요. 그 빛을 보다가 놀라서 입을 벌리는 순간에 물을 먹어서 다시 기절했어요. 그게 4살쯤에 삼천포에 갔다가 겪었던 일인데 너무나 아름다운 기억이었던 거예요. 하늘에서는 햇빛이 쬐고 있고 모래와 물고기가 왔다갔다 하는데 빛이 반짝반짝하는 거예요. 그 빛에 대한 개념이 계속 저를 쫓아 다녔어요. 꿈을 꿔도 계속 빛이 나오는 꿈을 꾸고요. 저는 지금 그 빛을 아이들 눈에서 봐요. 어느 순간에 눈이 반짝 하는데, 그걸 보면 너무 행복해요. 아이들하고 활동을 하고 오면 그날은 탈진을 해요. 그런데 그게 너무 행복한 거예요. 나한테 있는 것을 주고 왔다는 행복감에요. 

  저는 파블로 선생님이나 톨스토이 선생님의 책을 많이 봤어요.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 그 존재에 대한 사랑을 우리가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뭘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들께 강의할 때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꼭 이야기해요. 저에게는 교육예술이 사람 안에 이미 있는 것을 자기답게 끄집어내는 게, 밖으로 드러나게 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자신이 가진 격, 자기 안의 아름다움, 그 빛이 나오면 빛이 퍼지잖아요. 그 빛으로서 세상을 밝게 하고요. 때로는 캄캄한 속에서 서로 빛을 내주는 게 교육예술이 아닐까 제 나름대로 생각했어요. 또 그 과정 속에서 슈타이너 선생님의 교육론 같은 것은 스터디를 하기도 했고요. 이런 연구 측면에서의 진지함은 어떤 다른 분들을 따라잡기 어렵겠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부분에서는 똑같은 마음이라는 거예요. 아이 하나가 하나의 우주니까요. 이런 고민 속에서 지금까지 끌고 온 게 지금 하고 있는 교육예술인 것 같습니다.


이기복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김희동

답이 나왔네요.(웃음)


이기복

  교육예술이라는 게 사실 행복이잖아요. 내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거고요. 격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공교육에서는 가르치고 나서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어요. 시계만 자꾸 쳐다보면서 ‘왜 종 안치지 ‘퇴근하고 술이나 했으면’ 하고요. 
  저는 극단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어떻게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지, 존중해줘야 하는지 등을 교육했어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스스로 적극성을 발휘하게 해줘야 제대로 된 거라고 교육했죠. 저희는 애들이 들어오면 뭐하고 싶은지 꼭 물어봐요. 종류는 연기, 조명, 음향, 연출, 기획, 의상까지 있어요. 선택 했으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말하며 하나의 작품을 책임지라고 말하죠. 그 후에 그 아이가 정말 아무것도 못해도 그건 저희 관심사가 아니에요. ‘난 널 믿어’ 라고 하면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고 고민하지만 반드시 해내야 해요. 공연을 하면 부모들은 막 울어요. 그때 아이들은 내 삶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의지로 충만해져요. 


임재춘

  사실 파발이라는 형식이 대단히 새로운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쌓이는 만큼 사람의 연이 쌓이고 계속 이어지죠. 선배가 관객으로 와서 후배들이 하는 연극을 지켜봐주고 박수를 쳐주고 그 시간을 함께해주면서 연이 쌓이는 문화가 없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해요.


이기복

  저는 교사 초임 때부터 아이들하고 있는 게 정말 좋았거든요. 주말만 되면 학교에 테니스부랑 우리 연극부만 남아요. 그 기억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똑똑한 교사가 필요한게 아니라 아이들은 자기를 이해해주고 같이 있어주고 사랑해주는 선생이 필요해요.


임재춘

  두 가지 이어지는 질문들이 생각이 나는데요. 하나는 ‘교사’ 그리고 ‘의지’에요. 아이들이 좋다고 하는 것만으로 의지가 불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떤 면으로는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너무 흔하지만 중요한 말인데요.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말씀하신 교육예술의 개념이나 철학이 현장에서 구현된다고 할 때 교사로서 갖춰야할 자질 혹은 덕목, 배움의 과정이 궁금했고요.

  또 하나는 ‘교육의 판’이라고 할까요, 교육 현장의 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문화예술교육에서는 그것을 사회와 학교로 구분했는데요, 사실 기존에 학교에서 교육예술의 개념을 고민하고 실천과제로서 담아내기가 어렵잖아요. 이런 가치나 개념, 실천 과제를 펼쳐나가기 위한 교육의 현실적 마당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궁금해요. 그것이 기존의 교육현장을 확장해서 다양한 사회의 관련 시설까지 연계되고 조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싶어요.

  해오름평생교육원의 경우는 학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죠. 오히려 학교 밖 교육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해오름이 고민하고 있는 교육적 입장이나 태도가 올곧고 흔들리지 않았을 것 같아요. 교육예술이라는 가치가 학교를 나와야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박형만

  교육예술의 주체와 범주에 따라 내용이 결정된다고 봅니다. 대체로 우리 교육에서 가장 결핍된 부분 중의 하나가 인간에 대한 이해거든요. 아이들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성장해야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헤 깊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장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한 것이지요. 교육예술이 하나의 형태로 드러날 수도 있지만요. 예를 들어서 김희동 선생님이 주력하는 부분이 음악입니다. 작사도 하시고 작곡도 하시고. 해오름 교사양성 과정에서 김희동 선생님이 만든 노래가 있거든요, 그걸 자주 불러요. 나이대별로 만든 노래, 계절별로 만든 노래 등 다양합니다. 예술적 형태를 띄어야 교육예술인 게 아니라 교육의 모든 부분이 예술적인 거예요. 그러면 교사가 아이를 대할 때도 예술적이고, 한 아이가 아이를 대할 때도, 교구를 만들 때도 예술적인 거고요. 그런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이 안에 내재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것들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빨려들게 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제가 어린이 글쓰기 프로그램을 할 때 도시 아이들을 철물점에 데려갔어요. 그래서 철물점에 있는 것 중 하나를 골라서 세밀화로 그리게 해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상상하게 합니다. 그리고나서 철물점 주인에게 물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어요. 언제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요. 그렇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아이들이 또 철물점에 가자고 해요. 그럼 한 달 내내 철물점에서 수업하는 거예요. 

  그리고 해오름에서 계절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꼭 하는 프로그램이 농사예요.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도구를 배워요. 땅을 갈 때 맨발을 땅에 비벼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식으로 접근하는데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교육의 전 과정이 예술성과 함께 진행된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예요. 형식적 예술이 아니라. 수학도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발도르프 교육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뭐냐면요, 내년부터 학교에서 융합교육을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이미 모든 것들이 융합되어 있었어요. 역사 공부를 하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하는 식으로 통합되어 있어요. 우리가 왜 그렇게 못하는가 하면, 교사들의 연수가 HRD개념이잖아요. 기본적으로 교사들의 역량이 성장하지 않고 계속 자판기 식으로 뽑잖아요. 결국 교사들이 아이를 대할 때 아이가 존중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그걸 바꾸기 위한 교육 철학이 필요합니다. 교육예술은 기본적으로 교육철학이 들어가야 합니다.



전지영

  이 이야기는 글로써 꼭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문화예술교육에 진입하시는 선생님들을 뵐 때,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매력을 못 느끼겠어요. 교사들 자체의 매력이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교사들의 아우라 자체가 아이들이 보기에 예술적인 경험치가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런 접점이 없으면 아이에게는 그저 추상적인 이론일 뿐일 거라고 생각해요. 


임재춘

  교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길러지고 ‘배출’되는지를 살펴보면 경험을 통해 교사로 길러지지 않잖아요. 사실 교사가 왜 그런 경험을 가지지 못한 채 학교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은 다른 여러 가지를 짚어내야 하는 문제라서 다루기 어렵기는 하죠. 유아 때만 하더라도 교사가 장래희망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죠. 왜일까요? 자기가 만났던 선생님의 모습이 롤 모델이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겠죠. 흔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교육예술이라는 언어를 떠나서 왜 교사가 되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교사양성교육이 가능해져야 한다는 거죠.


전지영

  실제로 학교에 나가는 예술강사분들 중에 학교 교사하고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아이들 인성 교육 하러 왔습니까? 예술교육 하러 왔죠” 하는 분들이 종종 계신다는데, 이율배반적인 말 같아요. 그래서인지 지금 나누어주시는 이야기들이 젊은 문화예술 활동가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시대에는 선생 혹은 진정한 스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렵지만 선하고 순리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진짜 진지하게 실천하는 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문화예술교육가로의 삶을 희망하는 많은 분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박형만

  김희동 선생님 팬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김희동 선생님은 쉽게 말해서 교사 양성소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아무도 안 하는 건데 혼자 조용히 만들어가시면서요. 강좌를 한번 열면 “아, 저렇게 살고 싶다”고 하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와서 강의를 들어요. 센터장님께서 말씀하신 분이 여기 계시네요.(웃음)
 

임재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김희동 선생님이 말씀하신 ‘교육예술’이란 언어가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보니 이 언어의 함정에 빠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예요.


성국모

  결국 진지와 정성을 계속 강조하시는데 교육자는 몰두해야 해요. 몰두할 수 있는 교육자가 학생들도 몰입시킬 수 있는 거죠. 예술을 통해 또는 예술로서 아이가 가진 것을 발현하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육예술의 요체는 ‘몰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죠. 김희동 선생님께서도 20여 년 동안 한 가지에 몰두하시는 진지한 모습을 보고 다른 분들이 배우기도 하고요. 학생들도 그런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웁니다. 
  저는 영어 교사에요. 저는 예술을 하지 안잖아요. 그런데 영어로서 아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예술로서 영어를 굳이 발견하자면 음악이나 연극을 가미해서 대본을 줄 수도 있고, 노래 가사를 쓰면 예술로서의 영어 과목이 성립할 수는 있겠다 싶어서 시도해본 적도 있어요. 연극, 뮤지컬, 시, 팝송 등등. 결국 이런 활동의 요체도 몰두하게 하는 것이죠. 저도 큰 목표를 잡고 몰두하고 아이들도 과제에 몰두하면서요.



임재춘

  오늘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3시간이 지나갔네요.  


전지영

  오늘은 이쯤에서 자리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희가 모인 자리가 문을 닫아야 해서 급하게 마무리를 짓는 것에 양해의 말씀드립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이렇게 보내드려야 하니 너무 아쉽습니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함께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못다 한 이야기는 이후 쓰시는 글에 넣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정말 많이 배웠고, 내년에 좋은 계기를 마련하여 또 반갑게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지봄봄
19호 더봄 | 좌담회
2차 좌담회
더불어사는 과정이 예술이고 교육이다

일시 : 2016.11.28() 14:30 ~ 17:30

장소 : 커뮤니티 펍 0.4km

참석자

- 조정훈(편집장/우리동네사람들)

- 이성희(북가좌초등학교 교사)

- 임정아(우동사/발도르프학교 교사)

- 김진선(십년후연구소)

- 정명주(커뮤니티펍0.4km 지기)

- 이광민(활동가)

- 성배경/단디(우리동네사람들)

- 전지영(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센터장)

- 한상은(녹취록 작성)



전지영

 

  안녕하세요?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전지영입니다. 지지봄봄 192차 좌담회로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1차 좌담회 때 못다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 오늘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이미 지지봄봄 19호 웹진이 발행되어 이번 좌담회는 웹진으로 발송되지 않겠지만 2016년 단행본에는 수록될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 1차 좌담회 녹취록을 읽으며 우동사가 단순한 공동체라고 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삶에 대한 스스로의 기획적 맥락이 문화라고 본다면 문화예술교육센터와의 유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게다가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분들이 지역에 공간을 거점화하는 것이 단순히 이벤트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과의 네트워크가 성패를 좌우하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것을 풀어 가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하던 차에 조정훈 선생님을 뵙게 되었지요. 어떻게 보면 본격적이진 않지만 지역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거점화의 형태로 굉장히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과정에서, 지지봄봄에 대대적으로 우동사를 소개하고 이런 문화예술교육안에서 이런 맥락으로 활동하는 젊은 분들이 있다는 것을 활짝 열어서 보여드리고 그 안에서 좀 더 이야기 거리를 풀어가고 싶어 오게 되었습니다.



조정훈

 

  1차 좌담회를 통해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 되어 있어서 2차 좌담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지지봄봄 19호 편집장을 요청하셨을 때 기꺼이 해보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내용이 재미있게 나와서 좋았습니다.

 

 

전지영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이성희

 

  일단 와주셔서 좋고요(웃음). 저는 우리동네사람들(이하 우동사) 402호에 살고 있고 애기엄마입니다. 지지봄봄 웹진에 원고 써보자는 이야기를 듣고 지지봄봄 전 호들을 찾아봤었거든요. 이 웹진 어떤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글이 너무 좋은 거예요. 문화예술교육의 장을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는 시선이 좋고 공감이 갔어요. 그런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원고를 썼었고 지난번 1차 좌담회 연찬 모임도 좋았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믿고 가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웃음).

  최근에 지지봄봄 글도 써보고 우동사 포럼도 진행 하면서 삶을 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해 제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돌아볼 수 있었어요. 저는 실제로 함께 살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동사에서 6년째 지내면서 제가 안정되고 개인의 문제가 작게 느껴져서 편안한 상태가 됐어요. 일상에서 오는 감정적인 굴곡은 있지만 전반적인 인생을 생각하면 삶이 편안해진 거예요. 그리고 정말 뭐가 좋은지 알고 싶다거나 혹은 그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공동체라는 주제가 반가웠어요. 저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우리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자주 보여요. 우리 아이만 그렇다면 좀 아쉬운 느낌이 있어서요. 지금은 그 마음만 있는 상태고 실제로 드러나는 건 아직은 해보지 않아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전지영

 

  개인에 대한 문제가 줄었다고 하셨는데 그 뜻은 공동체의 의미가 커지면서 개인의 생각은 편안해지셨다는 것인가요?

 

 

이성희

 

  삶에 부대끼는 감정들이 올라오면 그걸 해소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쓰이잖아요. 그런 불편함을 표현하거나 평소에 생각하던 단점을 드러냈을 때 이 공동체 관계망에서는 그게 전혀 단점이 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면서 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안해졌어요.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불편함이 생기는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그런 게 많이 줄어드니까 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옮겨지더라고요.

 

 

임정아

 

  저는 임정아라고 하고요. 저도 지난번 모임이 좋았었고 조정훈씨가 센터장님 이야기를 했을 때 늘 궁금했어요. 요즘엔 이렇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여러모로 재밌더라고요. 늘 재밌고 행복한건 아니지만 대화 주제가 재밌을 때도 있고 대화하면서 제를 드러나는 과정이 흥미롭고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다양하게 열리는 이런 자리가 반가워요. 저희끼리 할 때도 재밌고, 커뮤니티펍에 오신 분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오늘처럼 외부에서 오신 분들과도 좋고요. 그래서 오늘 여기 올 때 기대감가 많이 되었어요.

  저도 우동사를 같이 시작한지 6년 째 되어가고 있는데요,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렇고, 이런저런 행동을 해하고 고정되어 있던 내 자신이 해체되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해체된다고 해서 자유로워졌다는 건 아니었지만요. 또 안과 밖이 구분되어 있었던 나를 느끼게 되었죠. 직장에서의 나 자신과 집에서의 내가 인식하지 못했지만 굉장히 뚜렷하게 구분하면서 살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 구분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 어떨 땐 눈물로, 어떨 땐 웃음으로, 분노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과정이 쌓이다보니 제가 정말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게 즐겁고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게 좋았어요. 이런 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자리가 소중해요.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같이 산다는 흐름도 있었고 나의 방향성도 있겠지만 최근에는 같이 살면서 실제로 주거비용이 감소하니까 다른 곳에 소모되던 에너지가 내 안에 남아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있다는 것 이 꽤 크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 두 가지를 같이 해나갈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중요하고 고맙다고 느끼면서 지내고 있어요. 저도 일희일비(웃음)한데 그런 저를 드러내는 게 예전보다 훨씬 편하고요. 저의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 되니 이야기 거리가 늘어나요. 함께 사는 한명 한명이 이런 이야기를 같이 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지영

 

  저도 마찬가지에요. 직장 안에서의 제 모습과 이곳에서의 제 모습, 그리고 집에서 저의 모습은 많이 달라요. 가끔은 그로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어요. 굳이 다를 필요가 없는데 왜 자꾸 다른 모습으로 서있게 될까를 고민하게 되지요. 임정아 선생님은 스스로 구분하고 규정하는 걸 허물고 계시잖아요. 처음에 터뜨리고 허물게 되었던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임정아

 

  딱히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고 여러가지가 작용한 게 아닐까 해요. 지금 떠오르는 건 이야기를 하고 들을 수 있는 관계, 사람이 그 요소 중에 하나예요. 저희가 지지봄봄 19호 현장 인터뷰를 위해 일본 스즈카에 있는 에즈원커뮤니티를 만났을 때도 삶의 방향이나 습관에 질문을 던져주는 외부적인 자극과 환경들이 있었어요. 에즈원커뮤니티의 코스에 참여했던 게 삶에 대한 질문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56일 동안 합숙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뭔가 알려주는 자리라기보다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자리였어요.

 

 

김진선

 

  저는 여기 온지 1년 조금 넘었어요. 워낙 우동사가 항상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많아서 오늘 좌담회도 그런 흐름으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직장생활을 10년 정도 하다가 3년 반 전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그 후에 집에서 가까운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를 하다가 공동체를 내 생활의 중심으로 두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 우동사를 알 게 됐는데 여기에 또래가 많아서 이 사람들과 친구로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지영

 

  새로운 사람들과 생활을 같이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은 없었는지요.


 


 

김진선

 

  우동사를 보면서 공동주거를 한 번 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전부터 친구들과 같이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좋아 보였어요. 작년에 가출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3개월을 같이 살아보았는데 재밌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렇게 한 번 맛본다는 생각으로 왔어요. 초기에는 집도 자주 왔다 갔다 하다가 중심이 자연스럽게 우동사로 옮겨지면서 집도 정리하게 됐어요.

 

 

전지영

 

  우동사의 마력이 뭔가요?(웃음)

 

 

김진선

 

  소위 말하는 다른 삶을 꾸리는 대안이라는 건 어떤 것이 있고 외부에 맞서서 싸워야하니 힘도 커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 되면 개인이 어떤지는 자꾸 잊게 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제가 생각하는 우동사의 가장 큰 매력 또는 마력은 뭔가를 정해놓고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간에 계속 점검하며 갈 수 있다는 거예요. 초기에 우동사를 꾸렸던 친구들이 워낙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감각이 좋아요. 그들과 함께 계속 점검하고 그때그때 좋은 것을 찾는다는 게 공부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이광민

 

  저도 우동사에서 생활한지 2년 된 것 같아요. 처음 우동사와의 인연은 인천에 있는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우동사가 참 재밌어 보였어요. 그 때 제가 느낀 건 표정들이 다들 밝다였어요. 그게 우동사의 일상적인 모습인 것 같은데 신기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은 굉장히 시니컬하고 늘 심각한 분들이 많았거든요또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살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저에게는 종교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포인트가 있었어요. 학창시절부터 6년 정도 같이 공부하던 그룹이 있는데 같이 기도하고 수행하면서 수도회처럼 지내보자고 마음을 모았어요. 일단 공통의 목표가 있었고 공부하는 모임 같은 거였죠. 그때 우리는 은둔해서 수도생 처럼 살지 않더라도 각자 생활하는 장소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정리해보고 주에 한번 모여서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공동체의 규칙이 너무 강해서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어요. 잘 살고 싶어 하고 그것이 나한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왜 늘 우리는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지, 그건 어디부터 어긋난 것인가 생각하던 차였어요.

  그때 우동사가 종교단체에서 만난 친구들끼리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저한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당시에는 우리와 어떤 것이 다르기에 가능할까? 우리는 애를 쓰고 아등바등 해도 안 되는데 여기는 어떤 조건이 가능하게 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공동체라는 언어는 결사체에 가까운 표현이라 저는 우동사가 공동체라는 느낌이 지금도 강하지 않아요. 이곳은 생활을 같이해나가는 느낌인데 저에게는 공동체라는 말 자체가 가진 무거운 느낌이 강해서 조심스럽긴 해요.

  우동사에서 살아보니 저에게 자립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 능력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고 있어요. 사실 저는 게으르고 술 좋아하고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인데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살면서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절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아가도 괜찮겠다생각해요.

  우동사에 오기 전에는 직장 생활을 하며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게 지옥 같았고, 일에 자꾸 나를 투사해서 일이 내가 되고 저에게 과중하거나 처리하기 힘든 일도 있었어요. 힘들 때 주변 사람들에 나 힘들어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였고요. ‘정말 월급쟁이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닌데라고 많이 생각했어요. 그 때 이야기 털어놓기 편하고 공감도 잘 되는 곳이 우동사였어요. 사이좋게 지내는 느낌이 좋았고 내가 잘하는 것도 없고 사랑받을 이유도 없는데 이렇게 받는 것도 좋았어요.



 

전지영

 

  종교단체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동사는 어떤 종교적 공동체보다 갈등이 없어 보여요. 제가 여기 들어와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하긴 하지만 분명 남다른 과정을 겪어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이광민

 

  마지막으로 저는 해야 하는 것을 하면서 살았지 정작 하고 싶은 건해보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이제는 좀 그렇게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어요.

 

 

전지영

 

  공동체 생활을 할 때 결속력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서로 아낀다하는 게 굳이 필요한가요? 아까 말씀하신대로 공통의 지점을 만들어내려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에 의해서 함몰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우동사는 굳이 그런 결속력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 안하셔서 도리어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건지 궁금해요.

 

 

조정훈

 

  오히려 저는 결속력을 강조할수록 결속이 해체되는 느낌이 들어요. 원래 혼자살 수 없고 서로 도움주고 받으며 사는 게 정상의 상태라고 본다면 결속을 강조하는 것은 그걸 주장하는 사람의 욕구가 강하게 반영되는 거 아닐까 해요. 인류학자인 조한혜정 선생님께서 전에 우동사와 성미산마을의 차이가 뭡니까?”하는 물음에 우동사는 해체주의라고 대답하셨어요. 계속 해체하고 거기서 다시 뭔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인거 같다고요.



 

전지영

 

  요즘은 대안학교도 마을 개념으로 많이 생기고 있고 실제로 동네마다 지역 주민들이 공동생활을 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결속력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하세요. 우리는 하나여야 하고, 헤어지면 안 되고, 뭐든 같이 해야 하죠. ‘같이, 함께는 나쁜 개념이 아닌데 그게 의무조항처럼 느껴지는 거죠. 또 그 함께에 동의되지 않으면 그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워지는 지점이 생기기도 하고요.

  예를들어 이태원의 경우에 외지인들이 들어가서 뭘 만들어내면서 동네 원지인들이 적응 못하는 경우가 생겨요. 원인을 들여다보니 공동체의 결속력이 너무 강하다는 거예요. 그 모임의 색이 너무 강해서 역소외를 느끼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애초에 그런 모임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내 옆에 누군가가 모여 사는 것을 보게 되면서 그 삶에 대해 사고하게 되는 경우죠. 이태원에 사시는 어떤 할머니 한분은 부럽기도 하지만 나를 끼워줄 것 같지는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동사의 긍정적인 부분은 우리를 강조하는 게 없다는 점이 아닐까 해요. 그래서 누가와도 관심을 갖고 슬쩍 들여다보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것 같아요.

  공동체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어 공동체를 강조하면서부터 주변에 불편한 시선을 주게 된 것 같아요.

 

 

이성희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초반에 이런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처음 1~2년 동안은 우동사의 목적을 고민하는 워크숍도 많이 했었어요. 그런 목적을 만들려던 이유는 좀 더 안심하고 살고 싶은 상태를 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우리 중에 강력한 리더가 없었던 것이 큰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그 때는 서로가 모아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정말 하려는 게 뭘까?’ 생각 했어요. 안정된 상태를 위해 살아야 하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살다보니 그게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삶을 살아왔더라고요. 지금은 목적을 찾기보다는 항상 고민하며 살아요. 저에게는 그게 변화고 흐름인 것 같아요. 그게 뭐였는지 더 살펴보고 싶어요. 그때는 같은 목적을 가짐으로써 더 행복하고 안심할 수 있고 우리가 사는 게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각자가 움직이는 자기 동력을 갖으면서 나름의 의미가 생겼더라고요. 우리가 사이좋게 사는 게 어쩌면 대안이 되고 의미가 되어버렸어요. 기존에 가진 방향과 과정을 밟아야만 되는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전지영

 

  저는 공동체를 운동화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소위 슬로건화한다고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요즘 지역 공동체 활성화 운동이 많죠. 저도 저의 위치에서 지원해야하는 입장에 있는데 그 안에서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외부에서 들어오는 힘이 공동체를 가능하게 할 거라는 그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원래는 우동사나 누구나 학교처럼 자연스럽게 시작된 곳에 지원하는 거였어요. 애초에 우리안에서 시작된 것인데 그걸 기억해내는 존재가 없으면 이런 지원사업은 처음부터 외부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믿게 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어요. 그래서 그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해야할 것 같은 고민도 합니다.

  사실 이게 오늘 우동사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해요. 이런 공동체는 외부에서 지원한다고 해서 시작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때문에 채집자나 기록자로서 잘 듣고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시작은 이렇게 가는 게 맞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거죠. 지역 안에서 튼튼하게 자리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하고 겸손하게 스며드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단디

 

  저는 단디라고 하고요. 목수예요. 근래에 와서 목수라고 하는데, 그게 좋은 일인 것 같아요. 2년 정도 맥주가게를 하고 침술을 배우기도 하다가 다시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목수다라는 정체성으로 되돌아오니 지금은 편안한 상태가 됐어요. 이렇게 소개할 수 있는 게 좋고요. 제가 우동사에서 지낸지는 4년 조금 지났어요. 처음에 6명이 첫 번째 집에서 살다가 1년 정도 지났을 때 제가 들어 왔고요. 저는 20대 때부터 생태적인 삶, 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다 불만족스럽고 어디로 가도 이 길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우동사에 오게 됐어요. 그 때는 이 친구들이 곧 귀농할거라는 얘기를 듣고 합류했는데 귀농을 안 하더라고요(웃음). 그러다보니 어느덧 다시 도시남자가 됐고요.

 

김진선

 

  저는 이곳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삶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생각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했어요. ‘처음에 귀촌한다고 했는데 왜 안해이런 게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이 달라지고 개인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를 점검할 수 있는 게 우동사가 다른 곳과 구별되는 점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결속력도 그 이미지를 고정하는 거잖아요. 지금 나의 상태는 달라질 수 있는데 그걸 못보고 정해진 쪽으로만 끌려갈 수 있고요. 우동사는 개인들의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뭐든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어요우동사에 친구들을 데려오면 편안하고 즐겁다고 해요. 공동체라고 하면 경직된 이미지가 있는데, ‘우동사라고 했을 때는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게 다른 지점인 거 같아요.

 

 

전지영

 

  우동사와의 인연은 한번 방문하고 끝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것도 신기한 매력인데 재미있는 건, 여기는 늘 새로운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가 직장생활이나 일상생활을 할 때 무언가에 메여서 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들인 거죠. 그것이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게 자주 일어나고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힘이 있어요. 다른데서 느끼지 못하는 그 힘이 어느 한분에게 치중된 것 같지는 않고 골고루 퍼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독특한 지점이면서 한편 우리에게 필요한 지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조정훈

 

  이번에 우동사 포럼을 준비하던 과정이 떠오르는데요. 포럼이 끝나고 사람들 이야기가 궁금해서 뒷풀이를 하자고 했어요. 그 때 한 친구가 카톡을 보내서 이번에 고생한 사람들, 주로 일했던 스텝들 상이라도 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뭘 하면 좋을지 상의하는데 주로 일했던 사람이 누군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해야할지 모르고 또 그걸 다들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다같이 재밌게 잘 놀았다는 것으로 마무리 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정리가 됐어요.

  저는 이번 포럼하면서 우동사의 컨디션을 점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뒷풀이할 때 혹시 마음이 불편했던 사람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한데 제 눈에는 그런 사람이 잘 안보였거든요. 그게 우동사의 하나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날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요즘에 사람들 관찰하는 재미에 빠져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우동사에서 편안해지는 요소가 뭘까 궁금해서 보고 있거든요. 아까 결과와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우동사가 해체주의라고 표현되는 건 수단과 목적이 자기 자리를 찾게 만드는 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서인 것 같아요. 귀농의 경우도, 강력한 욕구와 의지로 시작했는데 계속 보다보니 그게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됐어요. 시골에 가는 게 목적이라기보다 시골의 따뜻한 풍경들이 그리웠던 거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는 여기서 따뜻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말이에요. 커뮤니티펍도 처음에는 재밌자고 열었는데 어려워졌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건지 계속적으로 점검하는 거죠. 강령이나 방향이 뚜렷할수록 목적과 수단의 경계가 지워지는 느낌이 있어요. 그걸 점검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작업을 일상적으로 해나가는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전지영

 

  일반적인 공동체에서 우동사처럼 계속 점검하고 이야기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조정훈

 

  이야기하는 장이 재밌으니까 계속 모이는 거 같아요. 또 한 가지 사람들의 변화를 관찰해보면, 어릴 때부터 만들어온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생겨서 그걸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점검해보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가고 그 생각이 옅어지면 그때야 하고 싶은걸 하게 돼요. 그럴수록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편안해하죠. 아직까진 저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하고 싶은걸 마냥 마음껏 하는 건 아니고요, 지금은 적어도 그 해야 하는 것을 흐릿하게 만드는 단계로서는 안정기에 접어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늘어가는 것 같고요.

 

 

전지영

 

  문화예술교육활동을 지원할 때 자주 나오는 키워드가 공동체성의 회복인데요, 지금은 공동체라는 말이 너무나 많은 결로 이해되는 세상이 아닌가 해요. 공동체의 공통의 지표를 만드는데 연구 사업을 해서 자문을 구한다든가 용역을 요청할 수 있겠지만 그게 답은 아니라고 봐요. 공동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별의 생각과 느낌들을 친밀하게,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공동체성을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가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보고 싶어요. 그런의미에서 우동사에서는 공동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조정훈


  이야기가 나온김에, <공동체와 공동체가 아닌 것>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지요.

 

 

정명주

 

  공동체가 아닌 게 있나 싶어요. 또 우동사에서 살다가 집을 따로 구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이 동네에서 살다가 우동사와 관계를 맺은 친구들도 있었는데, 우동사 멤버에 대한 규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혹은 관계 맺고 지내는 이웃들은 어떤지를 생각해보면 그 구별이 모호해요. 굳이 함께 살지 않아도 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에, 그렇게 보면 공동체가 아닌 건 이 사회에서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누구나 어딘가에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질문이 어렵게 느껴져요. 생각할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김진선

 

  저는 어떤 일이든 누구와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해요. 결국은 어떤 조직을 만들거나 도움을 받아서 하고요. 공부도 혼자는 어렵더라고요. 주변 친구들로부터 공동체에 대해 나는 개인주의자라서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 개인주의는 뭘까 궁금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취향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같이 할 수 있고 서로 지지받는 느낌이 드는 친구도, 가족도, 회사도 공동체인데 왜 자꾸 개인주의를 주창하는 건지 신기했어요. ‘공동체는 뭐다라고 이야기하기보다 개인에 대한 다른 지점에서의 공동체를 생각해봐야겠어요.


 

이성희


  처음에 우동사에도 울타리가 있었어요. 우동사에서의 6년의 과정을 보면, 6명이 살 때는 그 6명이 우동사라고 생각했고 집이 커지면서 집에 한정해서 생각하다가 지금은 마을로 나아가 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공동체라는 인식하는 것 같아요. 평소에 공동체라는 인식은 주변 사람의 존재에 따라 달린 것 같아요.

 

 

임정아

 

  소위 얘기하는 공동체의 회복이란 표현이 왜 생겼을까 생각해봤어요. 원래 있었는데 사라졌으니까 회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같은데요, 개념 상의 느낌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다같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도시의 삶이 되면서 옆 사람을 생각하는 감각을 잃게 만든 느낌이에요. 공동체를 회복한다는 건 옆 사람을 생각하는 감각에 빛을 비추려는 작업이지 않을까요? 실제로 우동사를 공동체라고 생각하면 낯간지럽고 어색해요.

  공동체와 공동체가 아닌 것은 자기가 인식하는 범위에 따라 구분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명명해주고 불러줄 때 그게 마치 공동체가 되는 것 같은데요, 태어나서 약 15년 정도는 친구나 눈에 보이는 관계를 나름의 관계망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여러가지 질문이 드는데, 잘 모르겠어요.

 

 

전지영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어요. ‘운명이나 목적 등을 같이 하는 두 사람 이상의 관계로 나와 있네요. 이걸 보니 일단 두 사람 이상은 모여야 하는 거구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 목적을 같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막연하게 해왔었는데요,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이 뜻이 맞아 같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가족이나 이웃, 조직 사회 안에서는 서로 좋아하는 관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관계도 있잖아요. 공동체와 공동체가 아닌 것에 대한 생각해 봤을 때, 공동체가 반드시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전제되지는 않았으면 해요. 필연적으로 원하지 않더라도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상황 안에서 절제, 배려, 희생, 헌신, 고민을 하면서 맞춰갈 수 있는 자기 깎기의 부분이 있는 거죠. 저는 그거에 익숙해요. 물론 지치기도 했지만 힘이 되었던 때도 있었고요. 공동체가 이미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걸 어떻게 조화롭게, 그 사람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면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더 익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진선

 

  우동사 포럼 때 재밌었던 건, 우리가 실제로 같이 살고 있고 식구 같다는 거였어요. 그 때 빈집이라는 곳에서 오셔서 규칙을 주제로 이야기를 함께 했어요. 어떤 규칙, 내부 윤리를 정해놓고 지킨다고 했을 때 같이 살게 되면 실제로 불편한 것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맞춰가는 과정이 내가 확장되는 경험이냐, 아니면 나와 분리하고 이용하는 느낌이냐가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규칙화될 때에는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가 확인하는 대화보다 규칙이 지켜졌는지 아닌지 판단과 확인만 하는 것 같아요.

  우동사에서 같이 사는 친구 중 하나가 한 말인데, ‘여럿이 살 때 내가 여럿이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우동사에서 한명이 나가기로 했는데요, 단순히 서로 맞지 않으면 나갈 수도 있지할 수도 있지만 어떤지 살펴보고 싶었어요. 이런 경우는 분리가 아니라 확장되는 느낌인 것 같아요. 감각적으로 다르죠.

 

 

이광민

 

  우동사에 이사 온 첫 해에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어떤 삶인가?. 이게 영리 사업도 아니니 이걸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분담하는 게 합리적이다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내 필요와 맞아 떨어지니까 이해관계가 맞아서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각자 필요한 만큼씩 나눠서 잘 살 수 있게 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이 생활하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이 많이 필요해요. 집을 잘 꾸려가고 잘 지내는 거에 관심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내가 못 보던 부분이 있더라고요. 생활에는 많은 요소가 필요한데 내가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어요. 삶이 그냥 잘 진행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함께 신경 써주고 같이 상을 받치고 있는 다리가 되어주니 공동체가 연결되어있는 느낌이 있죠.

  이해관계에 따른 공동체인가 필요한 의제에 따른 결사체인가 하는 것처럼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좋고요. 책이나 이론을 보면서 나는 세계시민이지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원래 연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데 생활에서 얼마나 생생한 느낌을 가지고 마주하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공동체의 회복도 원래 연결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상기시키느냐 하는 거고요. 목적이 맞아서 잘 될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없어도 즐거운 공동체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정명주

 

  공동체는 우리가 어떻게 보고 있는 가에 초점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공동체는 안정된 관계망을 회복하고 싶다는 결핍에서 시작된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안전한 관계망, 편안한 관계망으로 연결되는 걸 떠올려봤어요. 우동사에서 커뮤니티펍 지기를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요, 그 안에서 어떤 관계가 내가 펍지기로서 활동하게 하는가 생각해 봤어요. 회사 다닐 때는 연봉에 대한 고민을 하거나 직장에서 자기계발을 한다거나 했지, 성찰을 할 수 있지는 않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건에 맞춰 생활한다고 생각했고요. 지금 펍에서 일하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흔히들 말하는 애사심과 연봉이 비례한다는 말과는 반대되는 상황이죠. 그런데도 펍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관계맺음에 있는 것 같아요. 항상 편안하고 평온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살피려는것이 동력이 되요.

  처음 우동사에 와서 관망하는 느낌으로 친구들을 보던 시기가 있었어요. 어떤 친구가 펍에서 일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마음이 안가서일을 못하겠다고 얘기하고 실제로 집에 갔어요. 그동안 내가 생각해온 사고방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긴데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만약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봤다면 원래의 사고대로 생각했을 텐데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의 마음을 따라 행동하고 다른 친구에게 얘기해서 도움을 받았다는 것도요. 자기의 마음을 살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걸 이해해주는 친구 관계가 신선했어요. 내 마음이 이렇다고, 상황을 충분히 드러내고 표현하고 상대가 그걸 받아줄 수 있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그걸 받아주는 관계가 좋아 보이는 거예요. 그게 편안하고 안정된 관계라고 생각해요.



 

 

이성희

 

  공동체를 이야기할수록 그것이 개념적인 용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지하는 것과 인지되어지는 것은 다른데, ‘인지한다는 것은 생각의 영역이고 인지 된다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거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 인거죠. 우동사를 시작할 때는 6명의 멤버라는 개념이 강했어요. 그런데 우동사의 틀이 점점 약해지고 이 사람의 안위가 궁금해지는데 그 이유는 이 사람이 나의 환경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들어서 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하거나 지탱하게 하는 힘인 환경이 얼마나 안정적인가 신경 쓰는 거예요. 이러한 의미에서 이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나의 안위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어요.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누군가의 호의가 쌓이는 경험을 우동사에서 했고요. 우동사 포럼에 왔던 사람들도 같이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고민하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거예요. 물리적인 근접성보다 마음이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거죠.

 

 

전지영

 

  저의 경우 가족처럼 오래 함께 지내온 친구가 있는데, 가족이 아니어도 같이 생활할 수 있고 서로 배려할 수 있으니 이걸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좋은 것은 본능적으로 확장하고 싶은가봐요. 근데 이상하게 그게 안돼요. 이런 관계망을 확장하려고 5년 쯤 노력했는데 잘 안됐어요. 저도 왜 확장이 안 될까?, 움직임이나 활동성이 필요한 건가?’하는 고민을 했어요. 저는 이 친구와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나눠볼까 했는데 교회에서 막혔어요. 신학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벽이 생각보다 높아서요. 신앙이라는 씨알이 공통분모로 박혀있었는데, 그 씨알을 확장하는 게 생각보다 잘 안됐던 거예요. 우동사도 많은 분들과 공유하며 관계성을 널리 가지는데 그때 그 씨알 같은 게 하나 있어야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게 우동사의 공동체성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그것보다 좀 더 개인적인 뭔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정훈

 

  저는 다른 곳에 가서 우동사가 확장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그 의미는 처음에는 사람이 늘었다의 개념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관계 맺음의 뜻이 담겨 있어요. 내가 저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 친해졌다, 편해졌다는 것이 어떻게 생겨날까 생각하는 것이 재미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이 없다는 게 이 관계를 끈끈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죠. 해야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관심이 사람으로 가는 거예요. 공동체의 확장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개념에 가까워요. 어떤 사람한테 마음이 쓰이고, 고민하는 걸 나누고, 함께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같이 살지 않거나 곁에 있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런데서 공동체성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올해 초, 몸이 많이 아파서 저의 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몸을 회복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는 건 공동체가 약화 됐다는 뜻 같아요. 몸이 아프면 빨리 회복하기 위한 에너지를 투입하죠. 지금 우리는 그 감이 둔해져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런 상황이 암 덩어리처럼 커지면 전쟁이 나는 거예요. 몸이 아픈 것, 굳어있어서 혈액순환이 안 되거나 신경이 눌려서 무감각해 지는 것인데요, ‘몸의 굳음처럼 정신의 굳음도 공동체성을 파괴시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규칙이라는 것이 우동사에서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은 정신의 굳음을 방지하는 하나의 흐름이 아닐까 생각해요. 요즘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니 주위의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가요. 예전에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남는 것은 사람뿐이더라고요. 사회도 사람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잖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행복하고 즐거워지면 행복한 사회가 되죠.

 



  오늘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공동체라는 고정된 개념을 분석하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어요. 오늘 각자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마무리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문득 오늘 어땠지?’ 하고 돌아보니 함께하신 센터장님이 신경 쓰였어요. ‘이 침묵이 불편하시면 어떡하지(웃음)’ 생각하면서요. 최근에 우동사에서 3개월 동안 같이 살아보는 프로그램을 했는데 그 때 참여했던 친구가 처음 우동사에 왔을 때 한 달 동안은 이 침묵이 너무 불편하고, 뭔가 말을 해서 침묵을 깨야할 것 같은 압박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 침묵이 너무 편해졌다고 하더라고요. 단순히 문화나 습관을 공유했다기보다 그 친구가 질문을 많이 하면서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사람의 성장에 꽂혀 있는데요, 저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명쾌함이 생겼어요. 우동사라는 틀에서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사람이 편안해지고 지혜로워지는 방향으로 말이에요. 그런데 그러려면 내가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우동사를 편하게 느끼는 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지내는 사람들이 편안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여유로워지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거기는 좋은 사람들이 사니까 그렇지라는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이성희

 

  센터장님 말씀 듣는데 울림이 있었어요. 저도 우동사에서 지내면서 체험한 건데요, 다른 사람이 하는 말과 그 사람이 표현하는 것에 대해 단정 짓지 않고 대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내가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나쁜 거야하고 꺼내놔도 같이 살펴봐줄 뿐이지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인 거예요. 이런 분위기가 놀랍고 감동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오늘 만나 뵙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고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또 다른 생각거리를 많이 만들어줬어요.

 

 

김진선

 

  저도 오늘 굉장히 재밌었고요. ‘무장 해제라는 단어가 와 닿았어요. 우동사의 이러한 분위기가 가풍이라면 가풍일 수 있겠다 싶어요. 서로를 드러내는 친구들을 보면 나도 드러낼 수 있겠다 생각하는 거죠. 한번은 제 친구가 동네에 놀러왔었는데 처음에는 자기의 일 그리고 성취가 중요 말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우동사에서 한 달을 지내더니 아 우동사에 살아도 되겠다하는 거예요. 이 동네의 편안한 분위기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맘에 들어 하더라고요. 편안하게 자기를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든지 하는 거요.


 

전지영

 

 이런 분위기면 저는 똑똑한 척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재단에서의 제 자리에서는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일 때가 있거든요. 그런 척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편하게 자기 얘기를 못할 거라는 생각에 호응 차원에서 끄덕이면서 결국 아는 척하며 반응을 하곤 하는데 오늘은 그런 스트레스가 없고 편안해요.

 

 

임정아

 

  오늘은 호흡이 더 길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길게 생각해보는 분위기 자체가 좋았고요. 그냥 생각 없이 살다가 누군가가 좋은 질문을 해줄 때 드는 해소,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있어요.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선에서 만나는 것이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공동체가 어떻다고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니까요. 주변 환경이 좋아지면 내가 편해지는 것도 맞는데, 어느 순간 주변 사람이 다 편해지는데 내가 편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 때에 내가 어떤지 살펴보는 감각이 생겨요. 같이 산다는 것은 그런 것도 포함인 것 같아요. 내가 편해지는 것과 함께 편해지는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밀접하게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죠.

 


전지영

 

  사회에서 친구를 만나는 게 어렵다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싶었는데 여기서 그걸 보고 가는 것 같아요. 물론 보편화는 쉽지 않겠지만요.

 

 

조정훈

 

  비행기 만드는 것보다 쉽지 않을까요(웃음). 저는 비행기 만드는 건 절대 못할 것 같거든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생각보다 더 쉬울지 몰라요. 어떤 지점을 건드려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 거죠. 가능할 것 같아요.

 

 

단디

 

  저는 오늘 우동사와 공동체라는 단어에 대해서 오랜만에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여러 사람들 이야기 들으며 최근에 느끼는 것들인데요, 우동사는 고정된 실체가 없구나 하는 거예요. 공동체라는 자체도 실체는 없다는 생각이고요. 근래에 우동사는 5채 집에 30명이 인천의 검암동을 중심으로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본질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모인 우동사가 있고 멤버가 다른 우동사는 또 다른 우동사를 이해하고 가셨을지 모른다는 거죠. 매순간 정해진 것 없이, 변하지 않는 핵은 없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각자가 연결된 상태, 그 자체이고요.

  저는 방황을 많이 했어요. 우동사에서 총 세 번 집을 바꿨는데 여기서도 또 나가려고도 하고요.(웃음) 개인적으로는 여러 부딪침이 많았고 아직 그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우동사 자체는 좋은데 나의 우동사는 왜 이렇지?’하는 고민이요. 이전에는 그런 생각이 들면 여기는 나랑 안 맞아하고 있던 곳의 단점을 찾거나 했는데 여기 와서는 단점 찾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우동사는 참 괜찮고 딴 데 가서도 이런 사람들 만날 수 있을까, 잘 맞다고 생각하는데 왜 나는 자꾸 불만족스러운가에 대해 생각했어요. 결국 우동사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공동체도 어떤 사람의 수준과 인식, 개념 지을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달린 것 같아요. 우동사는 각자의 우동사구나 생각해요. 각자가 다른거죠. 의견이 대립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원래 다 다르게 존재하는 거라는 거죠. 다른 데로 떠나는 게 절대 해답은 아니겠구나 했어요. 저도 성장하고 있고 변하는 중이고, 정해진 바 없이 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오늘 이야기 나누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했어요. 이렇게 정해지지 않은 것이 우동사의 강점인 것 같고요. 그 우동사의 가변성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유연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광민

 

  이야기가 오가는 걸 들으면서 마음이 좀 더 따뜻해졌어요. 어제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했었는데요, 최근 저의 감정 상태를 공유하고 싶었어요. 커뮤니티펍에서 회의를 하며 느낀 것이나 포럼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 혹은 어떤 공통의 마음이나 개인적으로 수련회 갔다 온 것도 공유하고 싶었어요. 우동사 포럼에서는 내가 왜 살고 있을까, 나는 뭘 기대하거나 바라고 있을까?’ 이야기했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입시가 중요해서 내가 몇 점짜린지 질문했고 대학 때는 공부를 하면서 의식화되니 관념적으로 생각했어요. 요즘에는 살면서 구체적인 감각으로 느껴요. 서로 증명하길 요구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상황이 안정감을 주는 거죠. 일면에서는 혹시 내가 외골수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돼요. 나를 증명하거나 설명하지 못해 미안하거나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걱정은 없는데 그러면서도 그 이상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지 못 하는 것 같아요. 꼭 그래야한다거나 그게 숙제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해요.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도 내 마음을 내놓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스스로는 그것도 잘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제 상태가 좋다고 느껴지니까요.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지내는 것 같아요.

 

 

전지영

 

  지지봄봄 19호를 시작할 때, 문화예술교육의 비평담론을 말하는 편집장으로 왜 우동사의 조정훈 선생님을 위촉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성장을 통해 사람이 있는 그대로 피어나게끔 하는 이슈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문화예술교육은 인간이 그 자체로서 살 수 있게 북돋아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조정훈 선생님을 지지봄봄 편집장으로 추천했습니다. 우동사가 가지고 있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편안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맥락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오늘 이 자리를 가지면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를 느낄 수 있었고 다시한번 오늘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지봄봄
19호 더봄 | 좌담회
문화, 예술, 교육에 대한 연찬
일시: 2016.9.30   16:00 - 19:00
장소: 커뮤니티펍(인천 서구 승학로 531)
참석자
 - 조정훈(편집장/우리동네사람들)
 - 유상용(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
 - 임정아(우리동네사람들/발도르프학교 교사)
 - 이성희(북가좌초등학교 교사)
 - 정수진(우리동네사람들/국제개발NGO 활동가)
 - 이광민(활동가/前(전)시민사회단체 실무자)
 - 박아롬(지지봄봄 담당자)
 - 한상은(녹취록 작성)





조정훈

  안녕하세요? 지지봄봄 19호 편집장을 맡게 된 조정훈입니다. 먼저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여는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올리는데 마을에 고양이가 많았나 봅니다. 제사를 올릴 때면 제사에 방해가 되는 고양이를 우리 안에 가두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마을에는 더 이상 고양이가 없었지만 제사 의식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제사를 올릴 때가 되면 이웃마을에서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우리에 넣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고양이를 구하지 못하면 제사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제사 때 왜 고양이가 필요한지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참 어이없는 사례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돌아보면 이렇게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상황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장 흔한 예로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돈 버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화예술교육 역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교육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상황을 목도하기도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공동체 역시 그렇습니다. 공동체는 사람들이 함께 행복한 삶을 꾸리기 위한 수단입니다. 공동체 자체가 목적이 되면 결국 돈으로 건물을 짓고 사람을 모여 살게 하는 것만으로 행복의 요건이 갖추어졌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이 꽃피는 장으로서의 공동체를 조명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을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가고 있는 공동체를 살펴보고, 문화예술교육이 공동체 내에서 발현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공동체가 문화예술교육을 꽃피우고, 그렇게 꽃핀 문화예술 교육의 장이 다시 공동체를 살찌우는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위 이야기가 이번 지지봄봄 19호의 큰 방향입니다. 오늘 좌담회는 위 이야기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키워드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아마도 평소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이른바 비전문가로만 초청했습니다(웃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삶이 문화예술이고, 예술적인 삶을 살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했던 분들인데요, ‘연찬’의 방식을 도입해서 함께 이 자리를 꾸려보고자 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담론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요즘 이루어지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비판적 접근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한 정보를 배제하고, ‘문화’, ‘예술’, ‘교육’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분석하기보다 내 마음속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에서 원래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그럼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 겸 오늘 주제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해주셨으면 해요.



임정아

  저는 주로 우리동네사람들(이하 우동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커뮤니티펍0.4k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서울 발도로프학교에서 정원 가꾸기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보내주신 지지봄봄 주제와 방향을 보며 문화예술교육, 본래의 목적이 뭐였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았어요. 문화예술이나 공동체라는 키워드에 대해 생각해봤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그 동안 배웠거나 알았던 것을 이야기하기보다 좌담회에 함께한 분들과 문화예술이라는 것을 다시 찾아가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문화예술교육이 나의 삶에서는 뭐였지? 나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며 기대감으로 왔습니다. 


유상용

  저는 강화도에 살고 있는 유상용입니다. 동네에서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활동을 하는데요, 장터도 열고 아이들 교육프로그램과 학부모를 위한 프로그램도 실행하며 동네 사람들이 서로 편안한 사이가 되어 아이들도 맡길 수 있는 관계 만들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 스즈카커뮤니티와는 7년 전부터 같이 일을 해오고 있고요. 이번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는 역시 막연하구나했어요(웃음). 저도 정아씨랑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데요, 낯선 메뉴가 나왔을 때의 느낌이랄까, ‘일단 먹어보자. 탐구해보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요. 떠올려보니 일상 속에서 항상 함께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인데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누리고 있었구나생각했습니다.


박아롬

  저는 교육지원센터에서 기획지원사업을 맡고 있어요. 비평연구 웹진 지지봄봄과 문화예술교육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돕는 불가사의한 자율학습모임 & 프로젝트 지원사업’, 기획자, 활동가, 실무자, 전문가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경기도넛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기고백을 해보자면 저는 올해 들어 제가 만나고 있는 것이 진정한 문화예술교육인지 혼란스러워졌어요. 제가 사는 동네에 꽃집과 카페가 새로 생겼는데 사장님들끼리 친해지셔서 베이커리와 꽃을 섞어 관계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보며 바로 이런 것이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대상과 프로그램만 있을 것 같은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명칭이 싫어지더라고요(웃음). 굳이 그 단어를 쓰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분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담당자입니다.



정수진

  저는 정수진이라고 하고요, 우동사에 산지는 2년 반 정도 됐습니다. 저는 1년의 6개월은 인도에서 국제개발 NGO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겨울에는 인도에서 지내고 봄, 여름은 우동사에서 하고 싶은 것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기에 앞서 문화예술교육이란 뭘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아주 익숙한 단어지만 내 삶과는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유는 문화예술은 누군가에게 잘 평가받아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평가받을 기회가 없다든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예술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사는 일상이라든지 취미 생활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동사의 작은 모임부터 오늘 이 자리까지도 문화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같이 이야기하며 키워드에 대해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이성희

  나누어주신 페이퍼에 저의 소속이 북가좌초등학교 교사라고 되어 있는데, 정말 생소한 저의 소개가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웃음). 지금은 2년 반 정도 육아휴직을 하고 우동사에 살면서 22개월 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처음에 주제를 들었을 때는 내가 뭘 알 수 있을까하는 생각부터 들었는데요, ‘문화’, ‘예술’, ‘교육을 하나씩 음미해보니 외부에서 이야기하는 단어들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예술은 언제 그리고 어느 시점이었나하는 질문으로 되돌아왔어요. ‘이건 예술이야라고 정의되지 않았을 뿐이지, 일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순간들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우동사 2층에 사는 오빠가 기타를 연주하며 자주 노래를 불러요. 그런데 그 소리가 어떤 때에는 시끄럽게 들리고 어떤 때에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려요. 아이를 재워야 한다거나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는 오빠의 연주가 소음이지만 여유가 있고 편안한 상태일 때는 오빠가 이렇게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같이 사는 사람 중에 이렇게 흥이 있는 사람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예술이라는 것이 뭔가를 보는 시선이 중요하다면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의 상태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광민

  저는 이광민입니다. 저도 우동사에서 같이 살고 있고요. 요즘에는 커뮤니티펍을 돌보는 일을 같이 하며 집에서 놀고 있습니다. 전에는 개신교 NPO 단체의 실무자로 일했고, 작년에는 마을공동체만들기에서 일했습니다. 올해는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직장을 다니면서 활동을 할 때와 지금의 감각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내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어떤 내용들로 무엇을 만들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오늘 문화예술교육 좌담회 제안 받고서는 이 자리를 통해 나에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획가 될 것 같습니다.

  지역에 있는 생활문화모임 활동하시는 분께 들었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문화는 생활양식이고 예술은 그중에 도드라진 부분이 표현되는 것, 즉 자기 개성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의식주에 대해 이야기 하시면서 생활의 작은 부분들을 살리라는 말을 하셨던 게 마음에 남았어요. 누군가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소소한 일이 저에게는 삶이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정훈

  오늘 자리는 어디서 듣거나 보거나 추측했던 을 이해하기보다 내 안에 있는 문화’, ‘예술’, ‘교육이란 키워드를 확인해보고 구체화시켜 보고 싶습니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하나하나 꽤나 큰 이야기들인 것 같아요. 이번 호의 기획 키워드이기도 한 공동체까지 포함하여 네 가지 키워드를 꽤 오랫동안 살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예술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서 진행을 해보려고 합니다.


  화이트보드를 준비했는데요, 주제에 대해 각자 생각해보고 발표하는 방식으로 해볼까요? 



키워드1) 예술이란? / 나는 예술가인가?



유상용

  예를 들어 그림은 빛이 들어오는 것이고 노래는 파장이나 파동이 나에게로 와서 머리나 가슴에 공명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공명이라는 것이 직접적인 자극이 아니지만 파동을 같이해서 함께 따라 움직이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사람들 마음에도 실제로 그런 작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예술가인가?”하는 물음을 돌아보며 어릴 때 나뭇가지로 땅에 그림을 그리는 것, 웃고, 울고, 제사지낼 때 곡소리가 노래가 되는 것 등이 생각났어요. 우리는 외부 자극에 반응해서 표현을 하니까 누구든 타고난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그에 반해 외부에서 쌓인 것을 습득하는 것이 문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정아

 

  ‘나는 내가 어떨 때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라는 질문을 해봤어요. 그림을 그릴 때, 뭔가 예술적으로 음식을 담아낼 때, 음악회를 열어서 노래 부를 때, 무엇인가 만들 때가 떠올랐는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저는 표현하고 만드는 행위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예술이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때라고 생각해요. 예술가가 자유롭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성희

  태교할 때 클래식을 들으면 좋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하지만 전혀 좋지 않았어요(웃음). 오히려 가요나 다른 음악을 들을 때가 더 좋더라고요. 예술이란 좋은 느낌이 절로 나는 상태, 마음이 동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좋은 마음이 충분히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과 아름다운 것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바탕에 있어요. 그냥 혼자 하는 바느질도 좋지만 누군가를 위해 바느질을 할 때 더 마음이 즐거워져요. 좋은 느낌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예술가가 아닐까 생각해요. 유상용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것이 공명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정수진

  유상용 선생님께서 타고나는 예술의 기질과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의 기질을 이야기하셨는데 도자기 만드는 일을 하시는 아빠가 떠올랐어요. 도자는 보통 오랜 시간 스승에게 배우거나 전공으로 공부한 뒤 시작하는데, 저희 아빠는 취미로 두 달 배우시고 시작하셨거든요. 그래서인지 기존의 도자들과는 다른 거칠고 느낌이 있는데요, 아빠를 보면서 저건 예술일까 아니면 취미를 직업으로 승화시킨 것일까고민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웃음).

  그리고 예술이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을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한 누군가의 표현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면 예술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나는 예술가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소 불편함을 느꼈는데요, 그 질문에 그렇다고 할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요. 나를 예술가라 하는 데 가로막고 있는 것은 뭘까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나’, ‘나에게 어떤 가치를 매겨주는가에 마음이 쓰인 거더라고요.



이광민

  저는 예술이라고 하면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은 특별함이나 탁월함보다는 특이함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요. 특이한 점이 도드라져서 주변에 자극을 줄 때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자극을 준다는 것은 좋거나 나쁠 수도 있고요. 보이든 보이지 않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삶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래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또 잘 표현하고 싶어요. 표현이 잘 전달되고 누군가가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박아롬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 무대에 서고 대학에 입학할 때 연기를 전공했거든요. 하지만 한 번도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가는 배우, 화가, 사진가, 무용가등 제가 해 왔던 작업일 것 같은데 왜 난 한 번도 나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지?’ 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아직도 전 제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재는 예술가와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 가깝고, 삶이 예술인 분들을 잘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한편으로 예술이란 특별한 것일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삶일까라는 대립되는 궁금증이 생겼고, 문화는 대중적인 의미가 크지만 예술을 행하는 아티스트는 개인적인 느낌이 강해서 또 다른 대립이 생겼고요. 이 중 끌리는 것을 골라서 연결해보니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것으로 정리되었죠.




조정훈

  저도 평상시에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생각해봤더니 몇 가지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예를 들면 같이 사는 형이 밥을 했는데 맛이 예술이라고 느끼거나, 오늘 아침 함께 사는 친구의 아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굉장히 집중해서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 예술이다라고 느꼈거든요(웃음).
  이번에 지지봄봄 취재차 다녀온 일본에서 거리의 건물들을 보고 느낀 울림이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밝음, 밤에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다 자고 있는 옆 사람을 깨워서 같이 읽자고 할 때 느끼는 생동감과 살아있다는 느낌이 삶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마음이 부드럽고 유연할 때 대상을 보면 예술적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마음에서 울렁이는 느낌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성용

  어제 TV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를 봤어요. 출연자 중 한 명이 7080 분위기의 노래를 군더더기 없이 편안하게 부르더라고요. 그 사람의 노래가 좋다는 것에 심사위원들도 모두 공감하고 저도 참 좋았어요. 여러 반응의 종류가 있겠지만 예술에는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아롬

  공감할 수 있는 부분공공적인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드는데요. 공공기관에서는 계속 예술가에게 공공성을 요구하고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해요. 하지만 이것이 주객전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술가로서 충분히 존중받고 오롯이 작품에 몰두했을 때 느껴지는 공감과 공공을 위한 목적만을 가진 행위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제가 있는 자리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되요.


이성희

  생활에서 예술적 요소들을 만날 때 삶이 풍성하다고 느껴지는데요,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은 좁은 것 같아요. 누군가 맛있는 밥을 차려 놨을 때 정말 좋다는 감정으로 이어지려면 혼자보다 주변에서 함께 도와줄 때 더 예술적이 되는 것 같아요. 



키워드2) 예술인 것 / 예술이 아닌 것(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박아롬

  마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요, 아는 만큼 느끼는 것 같아요. 예전에 친구와 스페인을 여행할 때 프라도미술관에 갔어요. 서로가 좋아하는 작가도, 스타일도 달라서 제가 좋아하지 않는 작가의 작품은 와 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간 지인과 따로 관람을 했어요. 예술인 것과 아닌 것, 그건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서로의 앎의 차이와 경험의 차이인 거죠.


유상용

  예술이 아닌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예술은 행위자와 보는 사람의 기쁨이 묻어 있는 것이고요. 기쁨의 종류는 다를 수 있는데, 조화로운 데서 올 수도 있고 경이로움에서 올 수도 있고요. 균형감이나 조형감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울림은 자기 안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대학교 때 무형문화전수회관에 봉산탈춤을 보러 갔을 때, ‘놀양이라는 남성합창을 듣고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어요. 예술은 체험할 때 큰 울림 와요. 그 다음은 미지의 세계를 접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표출하게 되지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의 특성이 살아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광민

  저는 예술과 문화, 이 두 가지가 떠올랐는데요, 일상적인 모든 것이 문화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나의 특이점이 다른 누구에게 영감을 주거나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유명한 미술가들은 사후에 인정받잖아요. 지금 내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기다움이 잘 드러난다면 예술적이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언제 나다웠을지, 그 속에서 도드라지는 내 모습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임정아

  저는 좌담회에 참석하는 것을 인지하고 생활했던 오늘 하루가 참 달랐는데요. 빨래를 갤 때, 윤호랑 청소를 할 때, 파를 썰 때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평소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잘한다못한다로 구분을 했을 거예요
  함께 사는 종오 오빠가 시를 쓰거나 수진이나 뭔가를 만들 때 그게 예술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오늘 하루는 시선을 내 안으로 들여와서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사라지고 일상의 순간들이 재발견되었어요. 담뱃재가 쌓여 있는 것이 새롭게 보이고, 깨끗해 보이던 바닥을 쓸어보니 먼지가 드러나고 그 먼지를 청소기로 쑥 빨아들이는 거라든지. 소파에 식구들이 앉아 있었는데 빗자루를 스치는 순간 그들이 발을 싹 들어 올릴 때 그러한 새로운 느낌들이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감각을 서로 나눈다면 일상이 늘 같거나 지루하지 않고 다른 감수성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즐거운 상황일 때도 있지만, 슬픔이나 외로움도 그냥 스쳐 보내기보다 다시 꺼내 볼 때 느낌이 다르잖아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도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재밌었어요.

 




조정훈

  적절한 예가 떠오르지 않아서 주변에 있는 것을 보다가 눈앞에 있는 핸드폰이 보였어요. 핸드폰을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처음 스마트폰이 출시됐을 때 정말 놀랍고 신기하고 좋았거든요. 감동이 있을 정도로요. 하지만 이 핸드폰을 예술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보면 제 휴대폰은 다른 핸드폰과 비교했을 때 성능이 떨어지고 너무 느리지요. 다르게 보니까 이 휴대폰은 안 좋은 거예요.

  또 다른 예는 한 작가의 작품인 이라는 그림이 있어요. 작가가 말년에 점을 하나 찍은 그림을 그렸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고 무척 감동받았다고 해요. 그 점은 아마 저도 그릴 수 있을 텐데 말이죠(웃음). 제 예상이지만 그 작품이 예술이라고 느꼈던 사람은 작가의 전 생애를 이해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술은 받아들이는 내 안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역시 추측이지만 그럼에도 예술이라는 언어의 개념이 생기기 이전에 느껴지는 것들이 있지 않았을까요. 예술이 개념화가 되고 이제는 그 예술을 교육한다는 개념까지 생겼는데, 이건 이해하는 문제가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궁금함이 생겨서 천천히 탐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아롬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The Dot : 이라는 동화책이 생각났어요. 미술 시간에 너무 그림을 그리기 싫어하는 한 학생에게 선생님이 그냥 어떤 표시 하나라도 좋으니 해보렴이라고 말해요. 그 학생은 하얀 도화지에 점을 하나 찍죠. 그것을 본 선생님은 학생에게 그림에 사인을 하라고 해서 액자 넣어 벽에 걸어두셨대요. 예술인 것과 아닌 것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정수진

  저는 일상에서 찾아봤는데요. 첫 번째 질문에서의 예술과 두 번째 질문의 예술이 다르게 느껴졌어요. 첫 번째 질문의 예술인 것은 좋아하는 것이나 평화롭다고 생각되는 것, 조화로운 것으로 생각돼요. 함께 모여서 바느질하는 시간이나 요리하는 시간, 사람들의 아름다운 표정을 담은 사진, 날로 섬세하게 발달하는 어린아이의 움직임, 요가 하는 친구의 몸의 선, 식구들과 같이 산책하면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생각났어요.

  그리고 예술이 아닌 것을 떠올려봤어요. 오늘 아침 세수를 하면서 본 세면대 주변의 파란 곰팡이와 바닥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이 떠올랐는데, 생각해보니 곰팡이 핀 세면대가 예술이 아닌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예술이 아닌 것이더라고요. 아까 정아 언니가 윤호가 청소하는 것을 보고 예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반면 같은 장면을 보며 저는 답답했거든요.

  예술인 것과 아닌 것을 나누는 것은 생각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 부분이 생겨요.




이성희

  저는 예술이 아닌 것을 찾으려니 정말 어려웠어요. ‘예술이 아닌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면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볼 때거든요(웃음). 내가 편안한 상태에서 아이를 바라볼 때는 존재만으로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해요. 아이가 뿜고 있는 에너지가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은 기분에 싸여요.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존재가 밥을 먹다가 국을 쏟으면 전혀 예술적으로 생각되지 않아요. ‘어떻게볼 것인지와 무엇을 볼 것인지는 달라요.

  노래하는 종오 오빠의 소리를 들었을 때 소리에 초점을 맞추면 아 정말 시끄럽다, 잘하지 못한다, 이건 배려가 없는 행동이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편안한 상태에서 음악으로 들릴 때는 저 사람의 마음이 어떨까, 저 사람은 노래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요. 그럴 때 흥겹게 들리지요. 예술로 느끼는 지점은 현재의 마음 상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정훈

  어떻게 볼 것인가무엇을 볼 것인가도 잘 살펴보고 싶네요. ‘어떻게 볼 것인가는 결과적인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봐야지 하면 뭔가를 덮어씌우는 느낌인데, ‘무엇을 볼 것인가는 선택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키워드3) 예술적 삶의 조건


임정아

  예술적 삶을 위한 조건도 필요해요?(웃음)


유상용

  예술적으로 살기 위해 뭐가 필요하냐는 뜻인가요?


조정훈

  예술적 삶의 조건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기도 하네요.


정수진
  
  저는 반대로 삶을 예술적이지 않게 하는 요소는 뭘까생각해봤어요. 저희 아빠는 늘 예술 활동을 하시지만 당신의 삶이 예술적이라고 이야기하시지 않아요. 그래서 왜 삶과 예술이 분리되어 인식되는지로 질문이 바뀌었어요. 삶을 예술로 바라볼 때는 편안하고 조화로운 상태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 후엔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가 시작될 것 같아요. 어떠한 존재의 본질을 잘 보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면 예술과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우리의 삶에서 예술로 느껴지는 순간들은 어떠한 상태나 순간, 무엇인가를 소중하게 생각할 때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아요.

 


이성희

  오늘 이야기 하면서 예술적 삶에 대해 발현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술적 삶이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됐을 때가 아닌가 생각하고요. 그런 긴장이 없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오래 연구하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아롬

  저는 예술적 삶의 조건이란 찰나의 순간, 쉼표라고 생각해요. 10년 전쯤 친구에게서 넌 어떻게 살고 싶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나는 매일 하늘을 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라는 대답을 했는데요, ‘여유로운 사람만 할 수 있는 거야. 생각만큼 쉽지 않아라는 대답이 돌아오더라고요. 그 이후로 전 항상 하늘을 보면 이런 찰나의 순간이 있어서 감사하다라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저는 이 찰나(쉼표)사람이 될 수도 있고 순간이 될 수도 있고 외부의 환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이 드는 여유로운 쉼은 아니지만 쉼표를 찍을 만큼의 찰나만 있다면 삶은 충분히 예술적이 될 수 있어요. 오늘 선생님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며 더 확신이 들어요



임정아

  저는 나의 예술적 삶에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생각해봤어요. 그래서 나온 답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의 알아차림인데요, ‘각성이라기보다 이나 머무름과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움에 대한 마음이 필요해요.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갈 때와 삶을 느끼며 살 때 다르게 와 닿는 것 같아요. 오늘 질문들이 저에게는 한 번 더 생각하며 머무르게 해주는 질문이었어요.


조정훈

  저는 제일 먼저 긴장이 없는 상태라고 썼어요. 편안한 상태가 아니면 삶이 예술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바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바쁨에는 물리적인 바쁨과 정신적 바쁨이 있는데요, 정신적인 바쁨의 이유는 잘 해야 한다는 압박이나 외부에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럴 때 긴장이 되는데 저는 이런 긴장의 조건을 더 잘 살펴보고 싶어요. 흔히 긴장이 없는 상태를 몰입한다고 하는데 집중해서 몰입하면 결과가 아름답게 나온다고 생각해요.

 


이광민

  저는 오늘 하루가 예술적 삶이었다는 감각을 자기 자신이 느낄 때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나답게 산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는데요, 자신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하는 생각과 외부의 감각에 예민하게 깨어 있는 것이 예술적인 삶을 사는 데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상용

  일상에서 예술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그리고 예술적 삶이 뭘까 생각해봤는데요, 일상의 여러 재료들이 나의 의식과 감성을 울리고 그것에 공감해서 재구성해가는 과정이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려있음인 것 같아요.



조정훈

  이제 마무리를 할까 하는데요. 못다 한 이야기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이성희

시작할 때 오늘 모신 분들을 비전문가라고 소개해 주셨는데 서로가 잘 모르는 영역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시작하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잘 들렸어요. 참 재미있었고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의 사례가 떠올랐는데요, 초등교사 시절 미술시간에 아이들과 활동을 했어요. 도화지 펴놓고 연필이랑 물감으로 자유롭게 그려보라고는 했지만 그 바탕에는 결과물을 평가하는 도구의 관점도 있었고요. 이미 교실이라는 형식화된 자리와 긴장감을 주는 선생님의 존재가 있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그려보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한 시간을 보내며 저 또한 만족스럽지 않았고요.

  문화예술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자리를 마무리하며 예술적 마음상태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에 관심이 갑니다. 오늘 알찬 시간이었어요.



임정아

  저는 예술을 교육한다교육을 예술적으로 한다는 말이 크게 와 닿았었어요. 예술적인 삶과, 삶이 예술일 때는 미묘하지만 확연한 차이가 있지요. 저도 제가 잘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들리더라고요. 일상에서도 이런 감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어요. 평소에는 내가 맞는지 아닌지에만 초점을 두고 들으니 말이에요. 그런 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정수진

  저도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박아롬 선생님이 마지막 이야기 하시면서 우리는 충분히 예술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다는 말이 기억에 많이 남고요. 예술과 삶은 아주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삶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적 소양을 기르기보다는 나의 마음 상태를 편안하고 긴장이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광민

  백수인 저의 생활 안에서 나다운 것이 어떻게 예술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었고 저를 다시 돌이켜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유상용

  기존사회에 있는 것을 습득하는 데 초점을 맞춘 교육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사회에서 발현하는 예술과 교육은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함이 들었고요. 그리고 사고나 생각이 아닌 예술적인 감성 자체로 자신의 진심이 드러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겠다고 느꼈으며 그 자체가 새로운 길이 될 수 있겠다는 좋은 발견을 했습니다.


박아롬

  저는 오랜만에 천천히 내려놓는 시간이었어요. 아름다운 금요일 오후네요(웃음). 한편에 응어리처럼 답답함도 느껴져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중에 <Everybody’s fine> 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는데 그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요. 함께하는 모두가 ‘fine’하다면 우리는 예술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저희 실무자들끼리 하는 말이 있는데요, ‘문화재단에 있지만 스스로를 가장 문화적이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해요(웃음). 예술가를 만나거나 문화예술 현장에 있어도 그곳을 오롯이 느끼기보다는 분석하고, 평가하고, 준비해야 하니까요. 오늘 자리를 함께하며 행정 실무자가 아닌 예술적으로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정훈

  오늘의 주제를 이야기하기에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작한다는 점에서 재밌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명쾌하지는 않지요. 3시간에 달하는 이 시간이 우리에게 예술적 시간이었을까?’ 궁금함이 들었고요. 예술을 삶에 녹일 때 분명 어떤 조건이 필요할 텐데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하고요. 그렇다면 예술과 삶이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으면 예술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추상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자리를 기획했던 나름의 목적은, ‘예술은 이런 거야를 찾아서 알린다기보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 각자의 삶에서 예술이란 키워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나를 찾아보자는 것이었어요. 아마 결과가 재미없거나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과정이 없으면 예술적 삶이라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찾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동체가 문화예술교육을 회복하는 데 좋은 토대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렇다면 공동체는 무엇이고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하는지 연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가지 키워드를 언급하고 마무리를 할게요. 마지막 예술을 위한 조건에서 ’, ‘여유’, ‘돌아봄’, ‘깨어 있음’, ‘긴장 없음’, ‘오픈’, ‘. . 그리고 예술을 교육한다교육을 예술적으로 한다가 있었습니다.

 

  오늘 참석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다음 시간을 기약하고 싶습니다.


지지봄봄
18호 더봄 | 좌담회
2016 지지봄봄 18호 “메신저가 메시지다” 좌담회
참  여 : 고영직(사회), 정은균(군산), 송인현(화성), 박영길(청주), 안태호(부천), 전지영, 박아롬(경기문화재단)
일  시 : 2016.08.16 (화) 16:00-18:00
장  소 : 경기문화재단 1층 카페 gap
작성자 : 한상은


교육은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가


고영직

  안녕하세요? 지지봄봄 18호 편집장을 맡은 고영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_메신저가 메시지다라는 주제로 지지봄봄 18호 좌담회를 진행하기 위해 네 분을 모셨습니다.

  먼저 소개해드릴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공부해서 용 되자)의 박영길 선생님은 올해 요리활동을 출간하셨는데요. 저는 책에서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위해 잘 먹고 잘 싸우자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반대를 평화라고 말하지만, 어느 시인은 전쟁의 반대는 / 평화가 아니고 일상”(김정환)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는 일상(日常)’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문화예술교육(활동)에서도 일상의 한 부분인 요리를 많이 접목시키지만, 대부분 프로그램화된 형식으로 요리하기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박영길 선생님은 활동가 중심 네트워크를 지향하며 요리활동을 통해 지역 청소년들과 만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분은 화성 민들레 연극마을대표를 맡고 계신 송인현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의 생활이 예술과 어우러지는 일상을 꿈꾸며, 선생님의 고향인 화성시 우정읍의 한 마을에 연극마을을 꾸리시고 국내외 연극팀을 초청해 연극 축제를 기획·운영하고 계십니다.

  그 옆에 앉으신 정은균 선생님은 올초 출간한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이며, 현재 군산 영광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 책을 보며 존 듀이의 철학에 견주어 학교는 작은 민주주의의 공간이라는 것에 입각해 교육 문제를 풀어나가는 점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태호 선생님은 문화행정가로서 얼마 전까지 부천문화재단서 일하셨고요. 지금은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신 분들 중에서는 공공기관과 행정 시스템에 가장 밀접하게 관계 맺으셨던 분이시니, 그런 시각에서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2016지지봄봄의 대주제인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면 결국 좋은 삶(good life)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근대 사회의 가장 큰 저주는 자기가 사는 삶의 터전에서의 뿌리 뽑힘을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살 것인지가 이번 좌담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


  그럼, 먼저 한 분 한 분 자기소개를 겸해서 어떤 (교육)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요즘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는지,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은균

  저는 올해로 교직생활 17년차이고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업시간을 통해 글쓰기와 글읽기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수업 방법과 제가 재구성하여 진행하는 수업을 비교하자면 아이들의 반응과 교실 분위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중학교 교과서에 ‘OO을 소재로 글쓰기를 해보자라는 학습 활동이 제시되면 저는 아이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체험이나 주변의 상황을 소재로 글을 써보게 합니다. 작은 변화지만 아이들의 참여는 훨씬 활발해지지요.

  저는 늘 삶과 일상이 교실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명제를 생각하며 수업을 디자인하고 설계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렇게 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교과별로 교육 과정 성취 기준이 있습니다. 학습 목표 하나하나를 도달해야 할 기준으로 잡아 놓았습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이후 학습 목표가 전부 성취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습 기준을 살짝 다르게 해석해서 삶과 수업을 연결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입장도 일부 동조하면서도 과연 이러한 해석이 올바른 방법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삶과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은 대다수 선생님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규정한 교육 과정의 성취 기준이나 목표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재구성하는 것은 교사들의 부담감이 큽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 교육 과정의 편성권평가권을 교사 또는 학교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혁신 학교나 자율 학교에서는 20~30% 범위 내에서 교과 과정을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는데요. 그 폭이 넓어졌으면 합니다.

  독일에서는 교사들이 교과서와 교재를 직접 만들어서 활용한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형태를 지향하고 싶은데요. 저도 나름대로 교과서 내용을 재구성하여 삶과 연결되는 글쓰기수업 등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고영직
  박영길 선생님의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좀 자유롭지 않나요? 7년 전부터 마을카페 이따공룡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하고,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영길
  저는 <공룡> 활동 전에 초등학생, 중학생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했습니다. 공부방에는 2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학업에 관심이 없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서 공부보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활동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수업이 미디어 수업입니다. 아이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영상을 찍어, 편집했는데,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아이들이 착해지거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긴 하는데, 그들의 삶이 변화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의 일상과 생활에 부딪혀 보고자 같이 수업을 진행했던 선생님들과 공부방에서 나와 공룡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공간이 사회이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기가 살아갈 삶에 초점을 맞춰 수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실업계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소개해 주기도 합니다. 한 아이는 입학한 지 1년이 채 안돼서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니까 학교 선생님이 공룡에 가보라고 보내주셔서 같이 지내고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저는 공룡의 아이들에게 검정고시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맹목적으로 대학에 흡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아이들이 삶을 사는 다양한 방식을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학교 밖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과연 교육제도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삶을 담는 문제를 넘어서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답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최근 여러 지역에서 학교를 향하여 일방적으로 마을 자원을 쏟아붓는 방식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마을에게 작은 공간조차 내어주지 않더라고요. 이러한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공룡을 시작한지 7년이 지나니, 지금은 마을학교처럼 다양한 활동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청년 노동권과 철학 등을 같이 공부하고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수업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해보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영직
  말씀 중에서 교육제도 안에서 아이들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말씀이 가장 와 닿네요.


송인현
  저는 사실 문화와 예술에 교육이 함께하는 순간, 문화예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은 모든 인간에게 중요하지만 단어의 한계 때문인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국회에서 예술강사지원사업 관련 공청회할 때도 반대를 했지요. 그때 국회에서 제가 발언했던 내용은 학생들에게 좋은 문화예술을 접하게 하자는 취지가 아니고, 왜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 개념으로 이 사업을 시작하느냐였어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의 일자리 마련을 목적으로 삼고 있으니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잘못된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해결점이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문화예술교육이 만날 때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창의교육 세미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저는 “‘창의교육이 어떻게 접목되느냐, 창의는 교육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어야 생긴다.”라고 했어요. 아이들의 창의력은 선입견을 없앨 때 생깁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아빠와 요리했을 때 가장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해요. 엄마는 집에서 밥하고 아빠는 나가서 일한다는 선입견을 없애는 순간,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틀이 생긴다는 거지요.

그동안 저의 큰 고민은 예술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는 예술가가 이기적일 때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커뮤니티아트(community art)’라는 용어를 쓰기 전부터 동네 할머니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극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소위 지원금을 주는 공공기관에서는 커뮤니티아트의 결과물을 바라지요. 예술을 통해 꼭 뭐가 이루어져야 하나요? 그냥 해보는 거지요.

더하여 말씀드리자면 예전에 동아일보에서 해외의 유명한 과학자를 모시고 과학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지식콘서트를 하더라고요. 거기서 한 고등학생이 "과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 질문에 그 해에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하는 말이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예술가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은 매우 창의적이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했어요. 그 답변이 저의 생각을 바꿔 놨습니다. “예술은 공익을 위해 해야 한다던데, 내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예술이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창의적인 작업이 무엇인지도 고민하게 되었고요. 얼마 전까지도 세금(지원금)을 받아서 사회와 공공을 위해 활동하는 것에 당당했는데 지금은 예술가라는 그 자체로서지원금을 받는 것이 당당한 위치에 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세 분 말씀을 다 들어보니 송인현 선생님께서는 정책 사업의 현장에서 예술가의 결과물만 기대하는 풍토를 비판하셨고 박영길 선생님께서는 정책 사업과의 거리를 두려고 하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까지 기초문화재단에 계시다가 백수가 된 안태호 선생님께서 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태호
  저는 세 달 전까지 부천문화재단에서 문화진흥 팀장을 맡았었고, 그 전에는 생활문화사업팀장으로 일했습니다.

  송인현 선생님께서 지원금을 주는 공공기관에서는 결과물을 바란다고 이야기 하셨는데요, 정책 사업을 진행하는 어느 기관도 결과물에 창출에 대해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에 대한 압박으로 현장의 불만은 크거든요. 이것이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도 재단에 있을 때는 현장 컨설팅 제도를 불신 했습니다. 컨설턴트가 A프로그램에서 B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고 C프로그램에 가면 B프로그램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러한 컨설팅은 무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요. 지금은 하나의 프로그램 현장에 오롯이 몰입하는 활동가들이 직접 다른 현장을 찾아가서 경험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교류시켜줄 수 있는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적으로는 컨설턴트와 활동가가 대화 하며 스스로 자신들의 좌표를 인식하는 과정이 되기를 바라고요.

  조금 전 박영길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문화예술교육이 삶을 담는 문제를 넘어서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답을 줄 수 있을까?”가 오늘 좌담의 요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나 문화예술이 삶을 바꿀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송인현
  하버드에 팔로워십(followership)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결과물 없음을 전제로 활동 자금을 지원해요. 그 결과 노벨상에 준하는 엄청난 결과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예술 활동이 결과물 없음을 전제로 할 때 오히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나라 제도의 엄격함 지수가 세계에서 5위라고 합니다. 엄격함 지수가 높으면, 창의를 바탕으로 하는 특허출원이 적다고 하죠. 


전지영
  전략보다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경기문화재단에 들어와서야 단체나 예술가들이 공모사업을 지원하는데 제한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는 공모사업을 진행하며 결과물이 아닌 과정 중심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합니다. 더하여 지원사업의 절차가 바뀌었으면 해요. 선정 과정은 치열하게 하되 선정된 후에는 결과물에 대한 부담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단체와 예술가의 전문성을 존중하여 최소한의 규정과 절차만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것이죠.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왜 불가능한가



고영직
  이제 질문을 바꿔 볼게요.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은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좌담회를 시작했지만, 불가능한 지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네요. 그렇다면 각자의 현장에서 왜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이 불가능한지에 경험적 진실을 말씀해주시면 논의가 훨씬 깊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영길
  저는 문화예술교육의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교과 수업을 진행 할 때 아이들의 변화가 큰데요, 교수법이나 아이들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예술강사가 정규수업에 단순 결합될 때보다 학교에 대한 이해가 있는 교사가 직접 예술수업을 진행했을 때 효과가 더 큰 것 같아요. 학교가 예술가와 결합했을 때 원하는 방향은 단순 아카데미 교육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통해 사회와 삶, 관계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문화예술교육을 향유하게 하는 것보다 마을에서 건강한 삶을 살기위해 문화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송인현
  교육자가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고,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교육적 관점이 갖춰져 있지 않은 예술가에게 교육을 수행하라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교육은 예술가들이 쉽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예술가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한 지점은 감상 교육이에요. 미술관에 가야만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작품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유엔 헌장 중에 어린이는 누구나 균등한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아이들이 예술을 감상하러 특정한 공간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문화예술을 향유 할 수 있기를 바라요. 예를 들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학교 느티나무 아래에서 음악회 감상한다면, 이 경험은 아이들의 인생에 있어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최고의 경험일 것이에요. 아이들에게 행복한 경험을 만들어준 다음에야 문화예술교육이 삶 속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존 듀이는 행복한 경험을 섬광(閃光), 불꽃놀이라고 표현합니다. 행복한 경험을 해야만 상투적인 삶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갈 수 있어요,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은 왜 불가능한지 무엇이 막고 있는 것인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마 학교에 안 문화예술교육이 가장 힘들 것 같아요. 


전지영
  사실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이 모두가 향유하는 문화예술이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전국 학교에 예술강사를 파견 하는 사업이에요. 하지만 갓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정도 자격증 취득 수업을 이수한 후 예술가적 정체성 없이 학교에 파견되는 경우도 꽤 있지요. 또한 중앙 기관에서는 그저 예술강사를 전국 학교에 파견하면 모든 아이들이 균등한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정은균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 교사, 학부모, 학생 등 교육 주체들의 시선이 너무 좁지 않나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문화예술이 우리의 삶에 행복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제도로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아요.

  글쓰기와 관련된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2년 전 <어깨동무>라는 이름으로 한 학년 전체가 반별로 모둠일기, 단체일기를 쓰는 활동을 했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어떠한 형태든 제약 없이 글을 쓰는 방식의 활동입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모둠일기 공책을 안 가져오는 거예요. 불러서 타일러도 보고 당부도하고 화도 내며 일주일간 실랑이를 했더니, 결국은 딱 두 문장을 써왔더라고요. ‘나는 김OO이다. 나는 15살이다.’ 그 일기를 본 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잘 봤어. 좀 짧구나. 이 문장을 왜 썼는지 궁금하다”, “15살이잖아요”, “2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구나”, “짤막한 대화였지만 스스로 본인이 15살이고, 중학교 2학년 시기를 건너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봅니다.

  활동에서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유,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틈이나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훌륭한 의도를 가진 예술강사들이 오시더라도 효과를 내기가 쉽지 않아요. 또한 인성교육과 예술교육 두 가지 모두를 수행하려고 하니, 혁신학교가 아닌 이상 일반 학교에서는 더 힘들 가 있습니다. 외부 예술강사가 아니더라도 학교 안에서 뜻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시기는 한데 모둠수업을 한번 하려고 해도 학교나 학부모의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에요.


고영직
  엄기호 선생님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라는 책을 보면 학교 안에서 뜻있는 교사가 활동을 하려고 할 때 동료들의 냉소적인시각이 힘들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동료 교사 간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많이 깨져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전지영
  교육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잖아요. 교육을 주관하고 담당하는 분들의 생각, 제도와 정책 안에서 교육이 비틀어져 있는 거지요. 제도권 교육이 기형적이기 때문에 교육자체를 버리려고 하는 태도가 생기는 것 같아요.


안태호
  각 학교 풍토나 교사의 성향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더라고요. 몇몇 교사들을 만나보면 교사로서 저렇게 폭 넓은 활동이 가능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한 분들도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폐쇄적인 학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학교와 지역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박영길
  최근에 <학교밖청소년지원사업>에 대해 청주시와 이야기를 했는데요. ‘학교 밖 청소년의 핵심은 학교인데 교육청은 그 청소년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까라며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시청 공무원에게 물어봤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학교 밖 청소년을 학교로 보내는 것 아니냐라고요. 이 문제는 학교가 변하고, 교육부가 교사와 이야기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아요. 학교가 건강하면 지역 사회가 건강해지는 사례들이 있어요. 학교 안에서 마을축제도 하고 동네 주민들이 학교 시설도 이용하는 사례들이지요


전지영

  실제로 학교에 안 나가는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학교에 대한 향수(鄕愁)’가 분명히 존재해요.



고영직
  이태석 신부님이 쓴 책에 출소한 소년범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출소한 소년범들과 학교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는데 옆자리의 학생들을 보며 그 소년이 나도 교복입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래요. 학교 밖 청소년들의 관심은 학교이고, 그 아이들도 학교의 시간표를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대낮에 학교 밖 청소년들이 돌아다니지 않죠.

  여러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을과 학교 사이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 있어요. 최근 학교와 지역이 만날 수 있는 움직임들이 있지만, 문제는 교육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교육부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 합니다. 문화부와 교육부가 협력체계를 만들어가기를 바라지만 교육부의 폐쇄성 때문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요?




안태호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할 때 문화 다양성’을 주제로 학교 교사와 지역 사회의 노동/인권/문화단체가 함께 커리큘럼을 짜서 한 학기 교육을 진행했어요. 서로 낯설었지만 재밌었던 경험이었지요.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이나 자유학기제 제도를 시행하면서 지역 단체들에게 이러한 커리큘럼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태를 들여다보면 공동 기획으로 프로그램을 같이 짜는 것이 아니라 단체가 일회성 이벤트를 제공하는 것이더라구요. 저는 이런 방식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학교에 공동으로 협력하는 사례나 노력들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은균
  자유학기제 정책이 학교에 도입되면서 외부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부천문화재단에서 실행하신 것처럼 커리큘럼을 같이 짜는 방식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재 출강하고 있는 예술강사들에게 학교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수준, 태도를 고려하여 새로운 커리큘럼을 짤 수 있게 한다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영직
  작년에 안양문화재단에서 예술강사와 학교 교사(부림중학교)가 공동 기획하여 프로그램을 짜고 실행하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예술강사들은 자기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는 대부분 진로탐색 위주의 활동을 원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은 그저 하나의 방편이 되는 측면이 많고요.


송인현
  삶에서 문화예술이 자리잡는 데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가정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정책부터 일반 가정까지 문화적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내세웁니다. 가정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가치가 생겨야만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교육이 중요한데요. 조상님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교육적인 가치를 감각적으로 전달했는데, 요즘은 구체적이고 지시적인 서양교육이 들어오면서 인지적 교육만을 중요시하니 문화예술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가난한 연극쟁이가 그림을 삽니다. 엄청난 사치지요. 그런데 그런 사치가 굉장히 즐겁습니다. ‘좋은 사치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삶 속의 문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삶을 위하여




고영직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내가 꿈꾸던 이상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이 하루하루 일상이 될 수 있는 경지는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 합니다. 아직 답은 없지만,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송인현
  연극마을을 운영하면서 꿈꾸고 있는 것이 결국은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들레 연극마을은 학생들이 마을에 와서 하루종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돌아가는 시스템입니다. 연극마을에 찾아온 학생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삶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겉으로 엉성해 보여도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경험치를 얻고 갔으면 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체험 프로그램이 아닌 아이들의 삶에서 계속 반추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이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사회적으로는 예술가가 이만큼 고생하고 가꾸어 놓았으니 많이들 와서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안태호
 감상교육으로 받는 감동 자체가 여전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풀 편성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았을 때의 감동이라든가 과천 현대미술관에 처음 갔을 때의 짜릿함, 소극장 맨 앞줄에서 배우들의 숨소리를 들었을 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이 주는 고양감이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요.

  고등학교 때 시인 김남주(1946-1994)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때에는 그분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대학에서 운동권을 그만두고 김남주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내가 운동을 하며 김남주 선생님의 시를 제대로 읽었으면 결코 이탈하지 않았겠구나하는 생각에 뒤늦게 각성했어요. 김남주 선생님의 시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꾼 문화예술 텍스트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지지봄봄》 취재차 민들레 연극마을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 뿐이지, 아이들만을 위한 연극은 만들지 않는다라는 송인현 선생님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문학자 배병삼이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위민(爲民)이 아니라 여민(與民)에 있(백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더불어 함께하는 것)’라고 이야기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교육과 예술도 그런 고민이 있어야 삶에 섞여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은균
  행위난지(行易知難)’라는 말이 있어요. 멋모르고 행하기는 쉬워도 진정한 앎이란 지독히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태전 선생님의 책에서 저 단어를 보면서 뜨끔했습니다. 저도 학습을 하려는 노력보다는 어설픈 지식을 바탕으로 일단 하면 되겠지라고 성급한 기대감을 가졌었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이 증명된 것인지 어느 정도 상식에 맞고 교육의 본질에 맞는 것인지를 꼼꼼하게 따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쉽게 빠지는 착각 중 하나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이고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안에서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요. 교사들이 꾸준히 학습을 하지 않으면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이 수업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선생님들의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제도적인 뒷받침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만들어져야 하고요. 쉽지 않겠지만 저부터라도 실천을 하겠습니다.

  지역과 학교에서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선생님들을 밀알’, ‘소금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저는 한국의 교사 자원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수하다고 믿습니다. 학교도 서서히 변해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박영길

  교육이 문화예술을 도구로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며 부당하다고 느끼는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부모님 세대와 싸울 줄 알았으면 좋겠고, 학교의 시스템에 저항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싸움은 폭력적인 형태가 아닌 그림이든 낙서든 음악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반항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과정이 없는 아이들은 어른이 됐을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현재 시스템에 불만을 느끼고 저항할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역할은 문화예술이 해야 합니다. 


전지영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돌아보는 자리가 참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고영직 선생님을 18호 편집장으로 모셨을 때 문화예술 덕분에 살아가고 계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모신 선생님들도 각자의 삶에서 문화예술을 통해 고민하고 있는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영직
  최근에 철학자 한병철 선생님의 아름다움의 구원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현대 문화와 자본주의 예술의 특징을 매끄러움이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그러나 우리의 삶은 울퉁불퉁, 좌충우돌하지만 함께 살며 연대하는 거잖아요.   ‘매끄러움이라는 현재의 징후야말로 삶으로서 문화예술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인 것 같습니다.

괴테가 파우스트마지막 부분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고 말했는데요. ‘여성적이라는 것은 연약하고 보드랍고 사소한 것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자기 삶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일상을 꾸리며, 각자의 현장에서 자기의 사례를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오늘 선생님들을 모셨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삶을 위한 불꽃놀이를 위해서이고, 다음의 불꽃놀이가 계속 이어져야 우리 삶이 더 즐겁고 기쁘지 않겠습니까. 살아가면서 그 점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지봄봄
17호 대분류 | 좌담회
문화예술교육 비평지&웹진 ‘지지봄봄’ 17호 좌담회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문화예술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일   시 : 2016년 5월 2일 17시~20시
장   소 : 수원
참석자 
- 김보성(17호 편집장,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 이병곤(경기도교육연구원)
- 이현주(성남문화재단)
- 이효순(상상놀이터) 
- 김종길(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 전지영(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전지영

 안녕하세요?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센터장을 맡고 있는 전지영 이라고 합니다. 다들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지지봄봄’ 17호 편집장을 맡아주신 김보성 선생님과 사전 회의를 하면서 이번호의 주제를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문화예술적인 삶이란 무엇인가>로 잡고 편집위원을 추천해달라 부탁드렸는데요. 오늘 이렇게 편집위원분들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지봄봄에 수록될 원고를 부탁드리기 전에 편안하게 주제 관련한 대화를 나누면서 지지봄봄 17호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을 모색하고 생각의 결들을 모아보고자 오늘 이 자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김보성

 다들 잘 지내셨지요?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자리는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발행하고 있는 비평 웹진 ‘지지봄봄’ 17호의 좌담회 자리입니다. 
 우선 서로 초면인 분들도 있을 테니 한 분 한 분 소개를 드리자면 경기도연구원의 이병곤 선생님, 성남문화재단 문화사업부 차장이신 이현주 선생님, 상상놀이터 대표로 문화예술교육 관련 체험학습 모든학교를 운영하시는 이효순 선생님, 마지막으로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 김종길 팀장님을 모셨습니다.
 저는 문화예술교육계에서 오랫동안 고민 해 오신 분들이 오늘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만으로도 참 뿌듯하고 할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웃음) 다들 바쁘신 중에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늘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한 마포문화재단 진현희 팀장님은 글로써 17호에서 함께 뵙도록 하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번 지지봄봄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이번 편집장 제안을 망설임 없이 수락했던 이유 중 하나가 17호 주제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 저에게도 관심 있는 화두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대를 시민예술시대, 생활문화시대라고 하는데, 주변에 문화예술교육을 교육공학 특히 테크놀로지(technology)로만 인식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문화예술교육도 평생교육 체계처럼 그냥 일상화된 삶에 일정한 형태로 정착시켜야 할 요소라고 봤을 때 편집위원님들처럼 각 분야의 현장에서 자기 철학을 가지고 오래 일해오신 분들이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까?’의 고민을 이번 원고에 녹여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종길

 작년에 <문화예술교육 10년>을 주제로 지지봄봄 16호 편집장을 맡으며 문화예술교육 원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도대체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작을 했는지, 무엇을 표방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관련해서 요즈음 제도화 되어있는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만 봐도 거의 90%의 예산이 예술강사지원사업에 몰려있음을 확인하며 놀랐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을 좀 비켜서서 살펴보며 교육철학이라고 하는 원론적인 맥락에서 철학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초기 단위의 대안 교육 또는 학교 밖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논의하는 자리들 속에서 이 교육철학에 대한 논의들이 꾸준히 다루어져왔는데요, 저는 그 중에서도 『처음처럼』 잡지에 지금의 문화예술교육이 상실하고 있는 귀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제도의 대안으로서의 교육 혹은 교육철학의 원론적인 내용과 의미에 대해 레이첼 카슨이나 헨리 데이비스 소로의 『월든』 등 우리가 읽어왔던 책들에 많은 부분이 담겨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가 원론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좋은 책들을 소개해보고 싶어요. 그 맥락에서 우선 이번 지지봄봄에는 잡지 『처음처럼』의 서평을 써보려 해요.
 

김보성

 이번 호의 방향을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으로 가려면 현실에 밀착된 고민이 시작되어야한다고 봐요.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중앙과 광역이 아닌 기초단위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강사를 예로 들자면 기초단위에서 뿌리내리고 활동하는 예술강사들이 그 지역에 맞는 소재, 역사, 인물을 토대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개별이 아닌 여러 장르의 예술강사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프로젝트(프로그램)를 개발해서 지역문화예술 교과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학교는 강사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개발된 프로그램 리스트를 검토하고 선택하는 거지요. 지역에 착근된 강사와 프로그램들로 지역의 문화를 만들고 광역 또는 중앙 단위에서 실시하는 연수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커리큘럼을 개발할 수 있게 유도하는 방식을 생각해봤어요. 
 이때 기존의 프로젝트는 일정 횟수가 진행되면 똑같은 내용과 형태로 더 이상 반복될 수 없도록 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교육자는 계속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들어야하지요. 이러한 기획내용이 일정한 시기동안 누적되면 본인도 모르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보유하고 전문성이 생길 것입니다. 이는 결국 발전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계속 실력이 향상될 수 있어 교육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기획과 교육내용에 발전성이 없어서 채택되지 않는 프로그램은 자연히 퇴화, 정리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질적 발전을 위한 방안이지요. 


전지영 

 지금의 강사 시스템은 수업의 질 관리가 어렵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사실 문화예술교육이 생활이나 삶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생각한다면 ‘예술’이 아닌 ‘교육’이 붙은 순간 누군가와 어떤 본질, 가치를 훼손 없이 공유해야하는 일종의 책임성이 수반됩니다. 그래서 교육이 담고 있는 가치와 내용,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의 방법론 적인 것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하는데 현재 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이러한 고민들이 부족한 것 같아요. 삶에 대한 고민이 없기 때문에 가치 공유를 해야 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활동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결국 현장이라는 실제적, 생활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대한 점검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제도의 문제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김보성

  이병곤 선생님, <이것이 미래교육이다.>에 보면 슈타이너학교의 에머슨 칼리지가 나오잖아요? 에머슨 칼리지가 에머슨 빌리지로 변화 과정에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이것에 매우 중요한 상징적 내용이 있다고 보는데요. 이 내용을 지지봄봄 17호에 소개하면 어떨까요?
 슈타이너 학교가 문화예술교육을 통합교육의 기재로 쓰는 학교 시스템이었잖습니까. 그런데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에머슨 칼리지라고 하는 교원전문대학교에서 교사를 양성하다가 에머슨 빌리지라고 하는 마을로 아예 시스템을 전환한 거예요. 이러한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사실 크거든요. 저는 이번 호 주제인 '삶으로서의 문화교육'이라는 맥락을 감안해 볼 때, '왜 에머슨 칼리지가 에머슨 빌리지가 되었는가'하는 흐름을 연결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지영

 좋은 사례일 것 같아요. 아직 국내에 자세히 소개되지 않은 내용이기도 해서 흥미롭습니다.
 

이병곤

 저는 15~16년 전에 이곳에 가보았는데요. 에머슨 칼리지는 잉글랜드 남부의 절간 같은 시골마을에 있어요. 에머슨 빌리지로 변화할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만 현황 자료를 더 찾아봐야 합니다. 
 

이현주  

 저희 재단은 신규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강사 보다는, 창의적인 교육안을 위주로 뽑고 있어요. 최종 선정된 강사는 본인이 기획한 교육안을 직접 시연하는 면접을 시행하는데, 대부분의 교육안을 보면 교육 받을 대상을 정하지 않았더라고요. 자신이 기획한 프로그램이 어느 대상에게나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굉장히 평면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이유를 생각해보면 강사들이 학습자들의 삶을 체험하면서 그들의 삶의 양식을 이해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봐요. 
 
 
김종길

 그 맥락에서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적 방향을 내부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예술강사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면 여러 장르가 만나서 동일한 의제를 놓고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예술강사 재교육이나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통섭(通涉)적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도록 정책을 전환해 보는 거죠. 다양한 장르의 선생님들이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쪽으로 유도해 나가야해요. 현재의 개인기 중심의 예술 교육은 처음부터 지향했던 바가 아니니 이것을 어떻게 바꾸어낼 것이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전지영

 사실 다양한 장르의 선생님들이 모였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이 그분들의 삶이나 생활 이슈에서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 않을까요?
 

김종길

 이번 호 주제와 다른 정책적인 부분을 잠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조금씩이라도 이렇게 유도해가면 이후 문화예술교육의 흐름이 바뀔 것인데 광역에서 이런 정책적 방향을 잡아주지 못하면 기초에서도 시행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현주 

 성남에서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조례 제정을 준비하며 고민한 것이 있어요. 
 성남시는 신도시와 본도심 사이에 정서나 교육에 대한 관심도 등이 차이가 크지요. 그렇다보니 기본 교육안을 가지고 지역별, 대상별로 교육 계획을 유연하게 변화시키지 않고는 좋은 효과를 얻기 힘들거든요. 한편 지역적 특징을 찾아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분들은 사실 지역의 강사들이죠. 타 지역 강사보다는 해당 지역 강사들이 지역의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 더 효과적이에요. 그래서 기초 재단에서는 지역 강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이후 광역센터에서 제공하는 고급과정 교육을 통해 다시 발전적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지역화하면 좋을 것 같아요. 
 

김종길

 역설적으로, 개인기가 부족한 선생님들 중에는 내용적으로 굉장히 좋은 부분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으니 여러 강사가 함께 하면 더 좋은 교육안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김보성

 인력송출 사업과 다름 없는 지금과 같은 파견사업은 근원적으로 프로그램 제안사업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지요? 

 
김종길

 예, 도리어 어떤 기관에서 강사들과 협력하여 교육안이나 프로그램(프로젝트)을 시범적으로 만든 후 학교에 역제안을 하면 참여하는 강사들은 그 프로그램 안에서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전지영

 지금 그렇게 시행하고 있는 곳이나 프로그램도 있지 않나요? 광명에도 하고 있고... 제가 알기로는 교육부에서 작년부터 문화예술교육사업을 별도로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현주 

 거기에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요. 학교에 중앙 예산이 투입된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들어가려고 하면 정작 예산이 없다는 말씀을 하세요. 교육부에서 지원되는 예산 중 정작 문화예술교육으로 투입되는 예산은 많지 않아요. 

 

이병곤

 작년에 성남형 교육 연구를 맡아서 공동연구자로 참여를 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지자체가 확보한 교육 프로그램 지원에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고 있더군요. 여기에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일정 부분 포함되어 있고요. 문제는 그 예산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 인프라 구성이 안되어 있어요. 예산이 투입되는 곳을 보면 민주시민 교육하는 곳, 환경교육, 체육교육 등을 실시하는 곳이지요. 
 예술강사들을 발굴하고 적절한 수요처에 연결시켜주어야 하는데 중재할 수 있는 기구가 학교 밖에 없고, 학교에는 그런 기능 구조가 더욱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기계적으로 예산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랍니다.


전지영

 좋은 프로젝트라도 학교 관리자나 담당 교사가 누구냐에 따라서 효과가 너무 달라요. 강사와 학교를 연결하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씀하신 대로 학교의 특성도 정확히 알고, 또한 강사의 프로젝트도 정확히 이해하도록 연결 짓는 매개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김보성

 예, 그럼 이번에는 기관(학교)에서 일하시다가 문화예술교육사업을 하게 되신 이효순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이효순

 저도 앎과 실천이 일치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같은 것... 저 역시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실현해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다행히 경기문화재단에서 기회를 주셨고, 작년에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으로 설악중학교 다문화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요. 나를 보고, 너를 보고, 우리를 보며 관계를 확대하는 내용의 교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후 지역을 들여다보는 '마을 읽기'를 했어요. 설악면은 농촌이기 때문에 노인인구가 많아요. 그때 저희 테마가 '흙으로 만나는 따듯한 사업'이라서, 어려운 집 방 하나를 정해서 따뜻하게 고쳐보자 라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실천해보니 너무나 좋은 거예요. 
 올해에는 ‘인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자’라고 생각해보았어요. 설악면이 지역은 넓고 인구밀도는 낮아요. 그래서 서로 인사 나누기가 정말 어려워요. 저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 90% 이상이 이웃과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관련해서 2월 초 사업에 선정된 후 전년도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 교장선생님을 만났어요. 작년 영상 가지고 가서, “올해도 하고 싶습니다.” 했더니 교장선생님이 보시고는 저한테 뭘 원하느냐 물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정기적으로 수업할 수 있게 아이들 모아주시고요, 2학기에는 자유학기제의 일환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라고 했더니 바로 다음날 담당선생님을 지정해서 전화도 주시고, 봉사동아리 아이들을 모아주셨어요. 
 이후 아이들과 프로젝트 이름를 정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프로젝트명은 바로 <빠라바라빨래방>입니다. 농촌이라 겨울에는 어르신들이 너무 바빠서 옷을 빨지 못하세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이장님도 만나고 노인정도 방문하면서 빨래를 대신 해드리고 있지요. 앞으로는 인터뷰하고 포스터도 만들어보려고요.
 참, 프로그램을 아이들과 진행하다보니 우리의 정체를 궁금해 하시는 아버님들이 계시더라구요. 그분들을 모아서 자신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별거 아닌데 어느 한 분이 오십 살 넘어서까지 당신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진행 내내 우시더라고요. 그 후로 저희 프로젝트에 몇몇 아버님들이 함께하게 되었어요. 
 

김보성

 들어보니 딱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네요.
 
 
전지영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말씀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의 삶부터 들여다보고 거기에서부터 사고의 출발점을 찾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이병곤

 2주 전 즈음 일본에서 40년 넘게 지역만들기 운동을 해 오신 이케가미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지속가능성과 지역공동체 문제를 이야기하시던 중 뜬금없이 헌법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당신이 한국의 헌법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대단히 훌륭하다는 겁니다. 교육 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표현할 권리들이 어디서 실현되는지 생각해보라더군요. 결국 내가 다니는 직장, 학교에서 실현되고 내가 사는 마을에서 실현되거든요. “이것을 볼 때 결국은 헌법을 마을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작업이 지역공동체다. 지역 안에서의 삶도 그래야 되지 않겠냐.” 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김종길

 실제로 우리나라 초기 제헌헌법은 중도 사회주의와 함께 유럽식 사회주의와 미국식 법제도 중 가장 좋은 것만을 선취해서 만든 헌법이에요. 그런 내용적인 부분들을 마을 단위로 끌어내겠다는 건 굉장히 급진적인 거네요.
 

이병곤

 김보성 선생님이 10년 전부터 문화예술교육은 마을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주장을 계속 해오셨거든요. 보편적,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누리는 것은 개인으로 보편적 권리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물론 권리 차원을 뛰어넘은 더 깊은 인간의 인문학적인 가치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단위가 지금까지 중앙 아니면 학교였잖아요. 
 그것 말고 지역공동체 안에서 이효순 선생님이 하셨던 작업을 다층적으로 만들어가는 일이 다음 단계 문화예술교육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요.
 

전지영

 문화예술교육이 마을단위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혹은 그게 맞다는 생각을 하신 계기가 있으세요?


김보성 

 기본적인 사회구조가 중앙집권화되어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가장 큰 모순임은 다 아는 사실이지요. 사실 중앙정부가 만든 정책을 살펴보면 대부분 중앙단위 기관의 실적이 드러나고 담당 팀이 빛나는 사업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사업은 경기도가 중앙정부보다 2년 먼저 시작했던 부분입니다.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이 그것인데요. 사회예술교육이 먼저 서야 학교문화예술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만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이미 실천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인데요. ‘사회문화예술교육의 기본은 지역이고 마을이다.’는 생각은 이미 그때부터 하게 되었지요.
 
 학교문화예술교육을 보자면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작은학교 교사모임 공동체가 있었고. 연수 때마다 모여서 혁신적인 교육사례들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이후 제가 조직과 예산을 가지고 교사분들을 직접 만나러 갔습니다. 그분들과 작업을 하게 되었고 작은교사 연대모임과 함께 다양한 학교 현장에서의 실험들을 시작했어요. 지역중심의 사회문화예술교육이란 콘셉트로 작은학교의 선생님들을 연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 안에서 실행되고 있었던 내용으로, 사회문화예술교육과 학교문화예술교육이 통일되어있었던 겁니다.

 
이병곤 

 그것이 기전문화대학하고 제가 당시 일하던 광명시 평생학습원이 자주 만나서 프로젝트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가 문화예술교육을 해야 되는데 그때만 해도 지역사회 여러 조직이나 사람들을 활성화 시키는 곳이 많지 않았어요. 
 광명시가 전국 최초의 평생학습도시였는데 학습도시 사업을 통해 이미 활성화된 조직들이 있었고, 경기문화재단이 여기에 좋은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결합시켜 주었지요. 그때 제가 목격했던 시너지 효과는 정말 가슴 떨리는 것들이에요. 


이효순

 저도 그때 인천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었지요. 당시 전교조 선생님들하고 문화예술교육 연수를 했어요. 반응이 참 좋았고, 그분들이 학교에 가서 교과 통합을 시도하기도 하셨어요. 저희는 교과 연계 프로그램을 가지고 들어갔었죠. 10년 전인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김보성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은 두 가지 트랙이 필요해요. 지역 밀착형 마을 만들기 사업, 평생 교육이 한 축이라면, 좋은 전형을 창출해서 전국화 시키는 것이 또 다른 한 축이겠지요. 제대로 된 실력과 내용을 가진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해요. 이 두 트랙이 같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개인기 중심으로 잘나가는 사람만 전국으로 돌며 진행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학교에서 입장으로서는 이러한 교육이 이벤트성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으니 착근되지 않는 거예요. 
 경기문화재단 차원에서 31개 시군단위로 사례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체 기획사업과 엄선된 정예 인력을 가지고 경기도 전역에 지원할 수 있는 커리큘럼과 내용을 개발해내고 역량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종길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했을 때, 문화예술교육이 실현되는 지점을 작은 마을 단위의 공동체에 맞추어볼 수도 있지만, 삶을 이루는 혹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슈로 돌아가보면 개개인의 인간학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도 집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삶이란 결국 한 개인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삶이라는 말이 어원적으로는 '살'과 '앎'의 합쳐진 것이고 삶을 쪼개면 '살앎(사람)'이 되죠. 그리고 '날 생'자와 '깨달을 각'자를 써서 '생각'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항상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사람이라는 뜻이 한자어와 우리말의 결합을 통해 나타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것이 결국 한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삶의 양식, 삶으로서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입니다.

 문화예술교육은 근본적인 맥락에서 이런 껍질을 벗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 맥락에서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하는 방법론도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일종의 됨됨이로서의 사람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가치가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라고 가정해본다면 다소 어렵더라도 교육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학으로서의 성숙되기'를 건드려 줄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전지영

 이효순 선생님은 문화예술교육 기관에서 실무자의 역할을 하시다 스스로 삶의 방식과 패러다임을 아예 바꾸신 경험치가 있으시지요. 그 계기를 살짝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효순

 제가 2013년에 노인들을 위한 유니버셜 디자인을 했는데요, 아이들에게 디자인은 기능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어요. "너희는 그것을 쓸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 삶을 배워야 한다. 노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다."라고 이야기해주었지요.
 저는 문화예술교육으로 아이들과 함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를 보고, 너를 알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 과정을 통해 배우는 거야,"라고 항상 이야기해요. 빨래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도울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그 마음인거에요. 빨래가 돌 동안 할머니 옆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요.
 관계를 만들려면 내가 서야하지요. 내가 없이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자신이 서고, 친구를 보고, 또 옆에 엄마, 아빠도 보고. 그런 단계들을 만들어 가면서 마을로 들어가는 거거든요.  
 모든 문화예술교육의 기본은 자세와 태도를 배우는 것이고, 그 자세와 태도를 통해서 마을이 되었든, 대상이 되었든, 그렇게 확대된다고 봅니다.
 

김종길

 한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철학을 가진 한 주체가 다른 주체와 관계 맺는 만남이 정말 중요하지요. 각각 제대로 건강하게 선 주체들이 서로 기대고, 보살피고 보듬어주면서 건강한 관계도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럴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공동체가 확장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맥락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합니다. 그 마을 안에서 사람을 길러냈고, 보살폈고, 아이들이 컸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늘 학교가 다 해줄 것처럼 말하지요. 

 
김보성

 지역사회학교라는 용어가 교육학 용어에도, 행정 용어에도 있어요. 한국전쟁 후 유네스코에서 학교 지원사업을 진행했을 때 ‘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배움의 터전뿐만 아니라 학부모인 지역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센터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지금까지 학교가 담장 안에서만 놀았다면, 오히려 배움의 터전은 마을, 지역사회이고 이것은 다시말해 지역사회가 곧 학교라는 것을 문화예술교육에서 진행해왔음을 의미하지요. 

 
전지영

 마을, 지역,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한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어요. 요즘 신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공허함이 훨씬 크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요. 그럼에도 그들에게 마을이나 지역성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경기 지역에는 아직도 마을이라는 단위가 존재하고, 구도시, 신도시 등 지역성에 대해 이야기 할 지점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갖는 삭막함을 스스로 깨트릴 수 있는 여지가 없어보여요. 가끔 저는 역차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대도시, 신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다 누리고 있으니 굳이 대안적인 문화예술교육 혜택의 기회를 제공해야하는가'하는 식의 선가르기식 시선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정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제도 밖 대안적인 문화예술교육이 좋은 것이라면 경제적 풍요에 가려져 정서적, 철학적 빈곤을 겪고 있는 부유한 도시 아이들에게도 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에는 대상의 가림이 없어야한다는 맥락에서 꺼내 본 이야기입니다.
 마을이 아닌 신도시, 아파트에서 이러한 문화예술교육, 공동체적 활동이 가능할까요?
 

 
김보성

 기전문화대학을 운영할 때, 용인 아파트 단지 어머님들 모임 아파트 지하에 있는 유휴부지를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셨어요. 그 결과 주민들을 위한 마을도서관인 장미 도서관이 만들어졌지요. 그곳에서 공동체 모임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니 엄마들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이후 마을의 단지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사는 아이들도 도서관에 올 수 있게 되었어요.
 이처럼 농촌이 아닌 도심 지역에서도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으로 가능해요. 실제로 건강한 자주모임이 만들어지면 충분히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과 충분히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저는 경험했습니다.
 

이효순

 제가 2012년 혁신학교인 부평초등학교에 있었을 때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학교는 놀이공간이 충분하니 공연도 하고, 책도 빌려볼 수 있지요. 그래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잔소리 메들리>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엄마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그분들의 결합이 강력한 힘이 되어 학교중심의 프로그램이 지속되었어요. 비록 거칠었고 세련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오고 가는 내용은 무척 의미 있었지요. 
 

전지영

 교육학이나 교육철학적인 지점에서도 주체성, 삶의 주체로서의 개인성 등에 대한 강좌가 많은 것으로 알고있는데요.
 

이병곤 

 많지요. 사실 그것이 교육학계에서 지난 30년 동안 이어진 논쟁의 핵심이에요. 자유주의(libertarianism)와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 사이에 엄청난 긴장이 있었지요. 김종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문화예술교육의 특성상 개인의 자각과 체험이 개별적으로 일어나 미적인 체험이 개인적으로 향유되고 개인 안에서 무언가 일어나지요. 그것이 사람의 됨됨이를 바꾸게 하는 힘도 있고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주체라는 내적 중심을 갖게 되었는가를 잘 살펴보면, 개인적인 자극에 더하여 가족, 지역, 골목 등 모두 영향을 주거든요. 
 근데 저는 아나키즘(anarchism)적 사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개인과 공동체가 동시에 중요해요. 국가 또는 자본의 거대한 폭력의 실행주체로부터 개인을 보호해 주는 것이 공동체에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보호 받으려면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맥락에서의 공동체는 국가가 아닌 마을이거나 이웃이에요. 나를 형성했던 지역, 그것이 바로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안의 주체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예를 들면 언어 같은 경우. 우리가 언어를 구사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호칭어 안에서 관계망이 형성되고 존칭어 안에 이미 나의 서열의식이 녹아들어 있지요. 이건 자기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거든요. 언어가 날 선택했어요. 언어가 날 만들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해서 주체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나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지영 

 문화예술교육이 어떠한 공학 없이 그냥 시작한 거잖아요. 외람되지만 제가 문화예술교육계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이곳을 처음 들여다보았을 때 과정이 소위 제가 상상한 것처럼 문화예술적이지 않아서 정말 놀랐어요
 제 입장에서는 중앙 단위에서 내린 지원 사업을 맡아서 일을 하는 것이 제도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느껴졌어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행정업무를 하며 제 팀원들이 속으로 병들어가는 것을 계속 지켜보는 고통이 있잖아요. 실제로 작년에 센터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김보성

 이야기를 전환하여, 이 자리에 없지만 진현희 팀장은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청소년 문제를 문화예술교육의 방법론으로 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비행청소년의 문제를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으로 풀어가는 <체인지업>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소개해주시기를 부탁드려보겠습니다.  


이현주  

 진현희 선생님을 만나 이것저것 들었는데 홍익대학교 인근의 자원과 공동체가 너무 좋더라고요. 홍익대학교가 청년들에게는 로망이고 또한 독특한 문화예술교육이 형성이 되어있지요. 그러한 환경의 도움을 받아 잘 실행하고 있더라고요.


김보성

 우리나라 통계에 전혀 잡히고 있지 않지만 청소년 홈리스가 정말 많아요. 하지만 해결 정책이 어디에도 없어요. 그 해결 방안을 마포문화재단에서 시작한거죠. 비행청소년을 위한 밥차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이 관심을 유도하고 이후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실제로 <체인지업>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아이를 인디신과 연결해서 기타리스트의 길을 열어주었는데 그 아이가 현재 음반도 내고 실제 음악가로 데뷔하였어요.  
 

이병곤

 한 해에 학업을 중단 하는 아이들이 6만 3천명이거든요. 그 중 삼분의 일 정도는 대안학교를 가든, 해외를 나가든 홈스쿨링을 하는데 문제는 나머지 아이들이에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요. 외국 선진국 같은 경우에는 지방정부가 그 아이들을 책임지도록 되어있어요. 특히 의무 교육 학령기까지는 지방 정부가 학교를 떠난 아이들의 교육까지 책임져야 해요. 영국 같은 경우는 Pre Referral Unit이라는 학교 밖 학교에서 아이들을 모아 가르쳐요. 
 

이효순 

 저는 아이들이 돈 때문에 가출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가정불화 때문에라서 집에 돌아갈 수 없대요. 그래서 쉼터 같은 곳에 머물곤 하는데,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비록 계속 옮겨 다녀야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하네요.. 다만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죠.
 

이현주 

 교육이 인성교육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은 공동체가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이고요. 
 

김보성

 다시 돌아가자면,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할 때는 제도적인 접근에서 보면 평생교육과의 관계를 떼어놓을 수 없어요. 그리고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평생교육시스템에 탑재시키는 방법적인 고민은 이제 광역이 해나가야 합니다. 
 
전지영

 이제 Life-long learning과 문화예술교육은 같은 트랙이어야 해요. 단 문화예술교육은 콘텐츠웨어로 평생학습이라는 하드웨어에 탑재되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보성

 예, 긴 시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셨는데요.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이 짧은 시간에 다루기에는 한계가 많은 듯 합니다. 그럼에도 다양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을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반가운 마음 갖고 돌아가셨으면 하고요. 17호에 수록할 원고는 오늘 나누어주신 이야기들을 근거로 작성해주시되 구체적인 글 제목과 내용은 다시 한번 각자 고민해주세요. 지금까지 기획하셨거나 경험하셨던 사례를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지봄봄
16호 대분류 | 좌담회
문화예술교육 10년, 다시 문화예술교육을 생각하다.

일 시 : 2016.01.07. 18:00

장 소 : 경기문화재단 1층 아트 플랫폼 gap

참석자 

권재원(우리교육 편집위원)

김남수(안무비평가)

김보성(성남문화재단 문화진흥국장)

김지연(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 공동대표)

박남희(철학아카데미)

황규관(시인, 도서출판 삶창 대표)

김종길(경기문화재단 전문예진흥실장)

전지영(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김종길 _

 

  현재 문화예술교육은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제도가 핵심이 되어 버렸다. 그 외 기획사업인 토요문화학교나 지역특성화 지원사업은 제도가 미비한 상태이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통과 되고 딱 10주년이 된 현재에 큰 틀에서 원론적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이 자리를 만들었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16호를 기획하며 문화예술교육의 원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더하여 국제적 심포지엄과 네트워킹에 대해 담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했는데 시간과 기획의 제한 때문에 자의적 네트워크 안에서 꾸려졌다.

 

 올해부터 기초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교육센터를 만들려고 한다. 성남문화재단은 이미 자체적으로 꾸리겠다고 선언하였다. 기초단위의 자발적인 문화예술교육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이야기를 출발하며 김보성 학장님께서는 왜 다시 문화예술교육을 하시는지 여쭤보고 싶다.


 

 

김보성 _


 문화예술교육의 10년의 역사를 지나오면서 많은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이 구닥다리일 수 있어 조심스럽다. 기전문화대학의 학장으로 중앙정부보다 문화예술교육 정책 사업을 2년 먼저 시작했던 것은 훈장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지지봄봄 16호 원고에도 썼지만 현재의 문화예술교육이 철학적 이론과 고찰이 없는 건 아니다. 문화연대에서 문화교육론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이미 충분히 탐색 했다고 본다. 정부에 새로운 제안을 했을 때 상당부분이 이미 완성된 이론과 틀이 있었다.(이 부분에 대해서 이론적 바탕 지식과 경험을 충분이 가진 심광현 교수가 왔으면 좋았을 텐데.)

 

 문화예술교육은 국가 주도화, 정책화 되며 첫걸음이 엇갈렸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기재부의 예산을 쓸 때 청년 실업률 제고라는 명확한 정책목표가 있었고 예산 수립에 대한 설득 근거가 필요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은 예산을 만드는 아이디어로서는 훌륭했지만 형식이 내용을 재규정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예술강사 치료사업이 되어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기전문화대학부터 문제제기를 했던 바이다.

 

 모든 정책이 안정되려면 사업 개발, 철학에 맞는 교과 개발, 인력(인력은 중앙의 집체 교육이 아닌 지역에서 1차 양성 시스템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다.)에 대한 틀이 안정적으로 수반되어야하기 때문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만들어 졌을 때 연구 프로젝트와 인력 양성 지역 시스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제안 했었다. 판을 키우기 바쁜 중앙정부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기초단위에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 대한 시범사업을 진행하였다. 3년 뒤 광역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로 일몰사업을 시작했을 때 했을 때 더 많은 케이스와 스터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반대했던 입장이다. 광역 문화예술교육지원은 다른 트랙이라고 생각했다.

 

 중앙에서 조직을 개편하며 새로운 팀이 구성되며 기초 문화예술교육 지원센터 사업을 없애고 광역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사업으로 변경되었다. 교육의 성과가 지역에 남아야 쌓이는데 기초 단위의 지원 사업은 미비해졌으며 광역이 중앙의 역할 대신하게 된다. 기전문화대학이 독자적 예산과 인력으로 지역 문화예술교육 기능이 가능했던 유일한 사례라고 본다.

 

 그 시기에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중심을 학교를 기반으로 가려고 했지만 반대했다. 지역이 학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강사와 프로그램에 학교에 지원되려면 사회 문화예술교육이 우선 지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환경과 기반을 다지고 자연스럽게 학교 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랐지만 중앙정부 입장은 달랐다. 중앙정부에서 전국 기초 문화재단 시범사업을 진행했을 때 지역의 단체와 재단의 지원 구조를 분리하지 않아서 경쟁구도를 만들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경기도(기전문화대학)는 지원하지 않았고 운영하지 않았다.

 

 기전문화대학은 독자적 사업 예산을 가지고 최초 군부대/교과 내 문화예술교육 지원을 시행하였다. 센터가 자체 사업 예산을 확보치 않으면 센터 역할 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 전통을 살려 자기 사업을 할 수 있는 예산 확보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김종길 _

 

 권재원 선생님께서는 소속되신 학교에는 예술강사 파견되어 있는가? 예술강사의 존재가 장르별 기능강사 고착화되어있는데 학교와 사회를 구분하였을 때 문화예술에 대한 철학과 교육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인지 궁금하다.

 

 

권재원 _

 

 예술강사가 파견 된적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생기고 사업 초창기에 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대해 무얼 배우는 것인가 의문이 드는 활동이 많았다. 전문성 입증도 못하지 못한 상황에서 진흥원은 그리고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대해서는 문화재단이 노무사 조직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 외의 모든 것을 학교에서 알아서 해야하는데 이는 교사들의 업무에서 또 하나의 잡무로 취급될 때가 있다.

 

 

김보성 _

 

 현실은 예술강사의 수업에 학교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권재원 _

 

 사실상 예술강사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수업 교구하나를 사려고 해도 불가능하며 학교 담당 교사로써는 일만 많아지는 상황이다. 제일 쉬운 배치가 음악 교사가 음악분야 강사를 미술이 교사가 미술분야 강사를 받아야하는데 애매한 연극강사가 들어오면 업무 다툼이 일어난다.

 

 

전지영 _

 

 학교의 교육을 보완하기 위해 예술가의 학교 수업을 지원하고 역량을 쏟는 것은 학교 입장에서 고마워하고 감사해야하는 상황이여야 하는데 아이러니하다.

 

 

김보성 _

 

 기전문화대학에서는 그 고민 때문에 통합 교육안을 제시했었다. 교육 프로그램 공모를 받아 학교에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여러 분야의 강사가 통합해서 함께 기획하면 우대해주는 형식이였다. 앞으로의 해결책도 사람을 파견하는 것이 아닌 프로그램 개발하여 학교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야할 것이다.

 

권재원 _

 

 서울 같은 경우 그 프로그램을 일명 인성팔이가 하고 있다. 심성 훈련 진로 훈련 등이 그것에 해당한다. 프로그램 및 강사 리스트를 가진 컴퍼니가 송파구 강남구 등에서 지원하는 인성교육 예산을 받아 진행하는데 매개자들은 주로 교육학 박사 심리학 박사 등이다.

 

 

김종길 _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문제점과 폐해들이 10년이 지난 지금 사회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인간학으로 또는 인문학으로 다시 사유해야하느냐에 대한 지점이 필요하다. 본질을 놓치고 있지 않는가 생각이 든다. 시를 쓰는 교육 시킨다고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며 할머니의 삶에서 시가 우러 나오는 기막힌 시인인간의 탄생이 기능적 예술교육을 통해 가능하다면 예술강사가 확장해야하지만 이런 상태라면 우울하다. 시가 뭐고?의 할머니들의 이야기나 시인 인간되기의 측면에서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주시길 황규관 시인에게 요청한다.

 

 

황규관 _

 

 칠곡에서 시쓰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은 따로 있으며 칠곡군에서 오랜 기간 할머니들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교사들이 할머니들에게 시 쓰기를 가르칠 때 기존의 방식을 택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자신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게끔 이끌었으며 할머니들의 표현에 터치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시 쓰기 교육은 별 의미가 없다. 칠곡의 사례와 접목해 봤을 때 대상자에게 직접하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예술교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시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욕망은 등단하는 것이다. 실재 시 교육은 등단을 잘 시키는 사람들의 돈벌이로 행해지고 있으며 문예창작과, 문화센터 등이 그 예이다. 시인들이 직접 대상자의 교육에 참여하면 욕망이 견고해진다. 칠곡에서 시 교육을 할 때 시인들은 예술교사 양성 과정에 참여했고 예술교사들이 대상자들에게 시를 가르쳤다. 예술교사들의 주기적 특강도 필요하지만 자주 있을 필요는 없다.

 

 몇 년 전 도서관 작가파견 프로그램에 대해 자문을 부탁받아 커리큘럼을 받았는데 문예창작과 프로그램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어 깜짝 놀랐다.

 

 할머니들의 시를 읽어 보면 이것이 시의 원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들의 주름 잡힌 시간과 경험을 짧게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대상자에게 문화예술교육을 하지 않고 오로지 창작 교육만 실시했을 때 병폐가 있을 수 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창작 위주의 교육은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김지연 _

 

 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한 문제는 커리큘럼화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에서 가장 중요한건 지식 전달이 아닌 소통인데 예술로 문화로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학교 틀로 커리큘럼화 시키고 계획성 있게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다. 지역에서는 많이 유연화 시킴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아직 교안이 중요하다. 그 안에서 유연성은 끌어가는 것은 작가나 강사의 힘이다. 강사가 젊을수록 경험이 없기 때문에 교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2004~5년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은 당연히 기능 교육을 뜻 하였다. 그러한 생각이 변하지 않은 시점에서 강사를 평가하는 것이 문제다. 현재 5천명 예술강사 중 50%는 자신이 하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일명 좋은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의 사례가 잘 평가 되고 있다고 하며 그 부분만 보여준다. 그래서 근본적 혼란의 문제가 온다. 학교에서 고민을 함께 할 교사가 없으며 게다가 무관심하거나 구조화한다. 중앙중심의 시스템이 학교에 들어가다 보니 학교의 협력 구조가 전무한 것이 문제다.


 

 

김종길 _

 

 슈타이너 발도르프 교사 양성 과정이 떠오르며 철학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의 예술화와 철학화 같이 본질적 부분을 누군가 끊임없이 이야기 해줘야한다.

 

 

전지영 _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교육 철학의 뿌리 근원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종길 _

 

 해외의 사례인 톨스토이를 국내의 뿌리로 잡을 수는 있다. 무엇보다 각각의 강사와 교사가 더 중요하다.

 

 

김보성 _

 

 과거 기전문화대학에서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을 했다. <이것이 미래교육>이다 시리즈를 만들면서 톨스토이의 객관적 사건을 가르치고 보는 시각를 연구했고. 슈타이너의 교과이 자기가 만드는 교과서에 대한 프로그램을 연구했다. 우리나라와 다른 모델에 가히 충격적이었다. 암기와 지식 중심의 교육이 아닌 다른 시스템, 국내의 대안학교 중엔 교육부 지침이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 새로운 인간형에 대해 고민을 하는 곳이 있다. 기존 제도권 학교는 입시제도에 제도화된 시스템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만 있으니 문화예술교육이 통합성 교육으로 학교에 진입하지 못하고 분절화 장르로 나눠졌다.

 

 

김종길 _

 

 한 개인이 그 모든 총체적의 발현체가 되었을 때 결국 철학의 문제인데 오랫동안 가장 낮은 위치에서 노숙인들과 철학 교육을 진행하신 박남희 선생님께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묻고싶다.

 

 

박남희 _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5년도에 신승환 선생님과 함께 글을 썼을 때 문화 쩜() 예술 쩜()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어떻게 문화, 예술, 교육이 하나의 단위로 묶일 수 있는지. 개념에 대한 정의를 철학적으로 하지 않으면 혼란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예술이라는 것이 분절된 학문 파트가 아니기 때문에 이 시대 예술이라는 것을 통해 모아져서 예술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개인들의 역량을 키워내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가 되어야 하는데 스킬이나 장르의 보완 역할을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서울역으로 가서 노숙인들과 프로그램을 하며 일방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라는 건 시인이 시를 쓰게끔 하는 것이 아닌 이미 그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역량을 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왜 변하지 않았는지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왜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지 의아하다. 지역사회에 문화예술교육 센터과 프로그램이 있어서 센터로 오게끔 해야한다. 찾아가는 교육인 것 같지만 구걸하는 교육이 되어버린 역현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나 구조의 문제들이 있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면 수업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공과대는 공과대의의 방식 예술대은 예술대의 방식으로 평가 받아야 하는데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 편리성을 위해 평가하니까. 커리큘럼 대로 하지 않으면 낮은 평가를 받는다.

 

 서울역에서 노숙인들과 하는 프로그램을 할 때 철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있다. 개인적으로 중앙 정부 조직과 구조안에서 실행 하면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편리한 방식은 포기되지 않는다. 방법의 전환 필요하다. 시민들에게 길을 만들어주고 열어주는 것을 고민해야지 커리큘럼 위주의 교사교육은 부정적으로 생각된다.

 

 

김남수 _

 

 문화예술교육의 흘러가는 흐름을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인문학이라는 무기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술의 흐름하고 동행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실재 예술이 한 사회에 문화적 교란을 일으키는 장면에 대해 인문학은 무관심하다.

 

 김지연 선생님의 글을 봤다. 아우구스토 보알이 연극을 할 때 관객들은 연극을 관람하는 것에서 넘어서 함께 만들어간다. 대체로 준비해온 말을 이야기 하는 사람(강사)들에게 보알의 문제의식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가르치는 사람들의 자발성을 교육이 담보해 낼 것인가가 중요한데 교육이 담보해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도의 콩크리트화가 될 뿐이다. 커뮤니티 댄스가 트랜드화되며 서울시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많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안은미 컴퍼니도 해왔고 현대무용 협회에서도 그 과정을 만들었다.) 이로써 커뮤니티 댄스가 아닌 모든 학생이 해야하는 커리큘럼(과정)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을 보며 커뮤니티를 그 내부로부터 촉발하고 알 수 없는 흐름으로 유추하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곡의 할머니들은 동시성에 의해 시를 쓰게 된 것 같다. 예술은 순간 출현이지 교육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사슴뿔 도서관은 내부의 사슴뿔과 외부 사슴뿔을 연결하는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뇌 신경세포는 1천억개쯤 되는데 좋은 생각을 하게 되면 척추로 뻤어 넝쿨의 숲의 형태를 갖춘다. 커넥텀과 개인의 재발견이다.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새로운 결합과 연결 그리고 합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하려 했었다. 책을 찢거나 성독을 하자. 책을 쓰지 말자. 훌륭한 교육 철학가가 동양에도 있다고 믿는다. 음독이 필요하다.

 


박남희 _

 

 질서적이고 아폴론적 사고방식을 할 때가 아닌 롤러코스터적 사고방식을 할 때이다. 과학에서는 질서적일 수 있지만 예술에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권재원 _

 

 발도르프 학교는 루폴트가 세웠는데 왜 발도르프 학교 일까? 생각한적이 있다. 발도르프는 기업의 이름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교육학자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행정가들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한국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문제는 입시교육에 기초해서 발생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 아이들의 80%는 입시에 관심이 없다. 이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황규관 _

 

 단순 아이디어에 최소한의 경비를 지원하는 소모임과 점조직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별 괜찮은 인재가 드문 드문 있다. 소규모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전파되기를 바란다.

 

 

박남희 _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예술인데 삶의 교육적 측면에서 함께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지영 _

  

 짧은 시간이었는데 생각 할 거리가 참 많은 자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문화예술교육 현장 초창기에 대한 나눔은 현재 문화예술교육을 함께 겪어 가야하는 상황에 큰 도전이 된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시간을 조만간 다시 마련해 보겠다. 즐겁고 보람된 10년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언젠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