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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곁봄 | 칼럼
아이들이 스스로 걷도록 하자
하정호 / 청소년플랫폼 마당집 마당쇠(대표)

 

  1818년의 일이다. 네덜란드어를 전혀 모르는 프랑스인 조제프 자코토는 루뱅 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쳐야 했다. 때마침 출간된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본이, 어찌할지 고민하던 그의 눈에 띄었다. 첫 시간. 조제프 자코토는 그 책을 학생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네덜란드어 번역문과 대비해 가면서 프랑스어를 익히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물론 네덜란드 말을 모르니 그 말도 통역이 대신해야 했다. 1장의 절반 정도를 본 뒤에 익힌 것을 쉼 없이 되풀이하고, 아직 외우지 못한 부분은 수업시간에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만 읽으라고 말했다. 학생들과 다시 만난 날,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자기가 읽은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써보라고 시켰다. 그것도 프랑스어로. 단지 임시변통으로 한 일이었기에,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학생들이 그 일을 해낼 것이라고는 자코토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무것도 가르친 것이 없었지만 학생들은 동사 변화의 규칙을 스스로 알아내고 프랑스어 문장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책을 읽어가면서 학생들은 초등학생 수준이 아닌 작가 수준으로 글을 써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첫 대목에 나오는 일화다. 랑시에르는 이 일화를 통해 참된 가르침이 어떠해야 하는지 논파한다. 우리는 흔히 교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학생들은 교사의 그런 설명을 들으면서 모르던 것을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의 수준을 자기 수준만큼 차츰 끌어올리는 게 교사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교사가 프랑스어를 가르친다면, 프랑스어 문법과 철자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학생들에게 설명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이 쓸데없는 데서 헤매지 않고 단계를 밟아 쉽게 습득하도록 잘 설명해주는 교사가 좋은 교사로 평가된다. 하지만 랑시에르는 그런 식의 교수-학습법이 바보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우선 이런 생각은 학생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숱한 반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스스로 말(모국어)을 배웠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시절의 얘기지만, 우리는 그때 문법을 가르쳐주는 교사가 필요치 않았다. 우리 모두는 배울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타고 났지만, 일단 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그런 능력들이 아무 쓸모없는 것처럼 버려지게 된다. 교사들은 또 어떤가? 여기 프랑스 동화책이 한 권 있다고 치자. 이 책을 학생들에게 읽히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일단 동화책은 던져두고 프랑스어 문법책부터 공부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 문법책이 어려우면 그것을 설명하는 또 다른 책을 더 읽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는 사이에 학생들은 여전히 바보로 머물러 있고, 교사들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되어간다. 그렇게 공부에 공부를 거듭해서 대학교 불문학과를 나오고 나면, 그제야 학생들에게 동화책 한 권을 읽어줄 수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 하고 있는 그 일을 왜 학생들이 직접 하게 내버려두면 안 되는 걸까?

 

이미 우리나라의 학교는 학생들을 한입 가득 머금고 있다가 밤늦게 토해내고 다시 이른 아침에 잡아먹는 공룡이 된 지 수십 년째다. 학교를 마치면 다들 학원으로 몰려가 사교육비가 늘어나니, 정부는 아예 방과후 학교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붙들어 매었다. 초등학생들은 돌봄 교실에서 부모님의 퇴근을 기다린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이런저런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어 종일토록 선생님들과 대면해야 한다. 마음껏 놀면서 친구를 사귈 수도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에서, 돌봄 교실에서, 학원에서, 각종 공모사업에서도 정형화된 바코드 인간으로 자라나며 정서장애와 스트레스가 심해진다. 이들 프로그램이 체험과 참여 위주로 구성된다고는 하지만 서로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유사한 프로그램들만 늘어나고, 아이들은 부모가 쇼핑해 오는 프로그램을 소비하며 창의성을 잃어가고 있다. 각종 복지사업들이 중복되는 저소득층 아동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왕따의 이면에는 친구를 빼앗은 어른들의 과도한 욕심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쯤 되면 이런 일들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일인지, 어른의 일자리를 위한 일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행정은 마을의 자조모임이나 단체를 지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힘을 갉아먹는다. 문화예술단체들이 각종 공모사업에 의존하게 되면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만 반복하면서 그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 각종 공모사업 계획서에는 늘 지난 2~3년간의 공모사업실적을 써넣으라고 하는데, 이런 조건이 자력으로 어렵게 버텨가던 단체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하고, 다른 단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공모사업에 뛰어들도록 만든다.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방과후 교실을 늘린 결과 학원들이 없어져, 깊이 있는 교육을 받고 싶은 학생들이 찾아갈 곳이 없어졌다. 공모사업에 선정된 주민들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정산하느라 정작 여유 있게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어진다. 전국의 많은 청소년수련시설들이 자유학기제나 방과후 아카데미 같은 정부 시책을 진행하느라 정작 청소년 동아리들을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정말 염려해야 할 일은 프로그램 지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온갖 프로그램의 대상으로 전락해 자발성을 잃어가는 문제이다.


잘못된 길도 오래 걸으면 되돌아가기가 주저된다. 지금 우리 교육의 모습이 그러하다. 바른 교육이 가능하려면 우선 아이들을 프로그램의 대상으로 묶어두는 일부터 줄여가야 한다. 대부분의 공모사업은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사전에 사업계획서를 내고, 그 계획대로 진행하였는지 각종 증빙을 제출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프로그램대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어 아이들이 수동적인 객체로 머무르고 마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업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행동은 못하게 막으면서 진도를 빼야 하는 제도교육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프로그램의 노예로 자라지 않게 하려면, 마을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즐겁게 친구를 사귀기 위해 가는 곳. 그곳에서 한두 시간 이런저런 프로그램이 운영되더라도, 그것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닌 곳. 그런 곳이 아이들에게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일본 가와사키시의 아동인권조례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인 것, 휴식하여 자신을 되찾는 것, 자유롭게 놀고 활동하는 것, 안심하고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들이 가능한 거점을 시에서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을에서 돌봄이나 교육이 필요하다면, 학교 밖에 또 다른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가두어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활동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일을 우리가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휴식하면서 자신을 되찾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교육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은 놀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한다. 이 배움의 욕구가 원초적인 자생력의 바탕이다. 배움의 의지가 없는 곳에서는 어떠한 창조 활동도 일어날 수가 없다. 무언가를 가르치겠다는 사람들이, 아이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배움의 욕구조차 빼앗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신가동 재개발지역에 조그만 집을 얻어 마당집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마당집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다 지치면 들어와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어 만든 공간이다. 아이들이 넘나들 수 있도록 대문을 뜯고 담장을 낮추는 일부터 시작했다. 담장에 그림을 그리고 책장을 만드는 등의 모든 일들을 아이들과 함께 했다.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매일 좁은 집에서 붐볐다. 다음 해에는 농협창고를 얻어 아이들의 쉼터로 바꾸어냈다. 물청소를 하고,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타일로 모자이크를 만들고, 미끄럼틀을 만드는 모든 일을 동네 아이들과 함께 했다. 아이들은 수레를 타고 놀다가도 페인트를 칠하겠다고 달려들었고, 손에 본드를 묻혀가며 타일 붙이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매일 예술창고를 들락거리며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다시 자크 랑시에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섣불리 무언가를 설명하려 들면서 아이들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로 만든다. “설명자에게 무능력자가 필요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즉 설명자가 무능한 자를 그런 식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을 자신의 지식 안에 가두어두려 할 때 바보 만들기가 시작된다. 교사는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나 책에서 학생들 스스로 지식을 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스승이란 구하는 자가 그의 길을 계속 가도록 유지하는 자이다. 그 길에서 구하는 자는 혼자 구해야 하며 구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일찍이 칸트도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계몽이라 말했다.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이 더 이상 남들에게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알며 자신의 힘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에 기대어 스스로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미성년상태에 머문 사람이다. 당장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쓰러져 다치더라도 걸음마를 내딛게 하는 용기가 이제 필요하다. 자발성은 신뢰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아이들이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도록 그들을 먼저 믿어야 한다. 신뢰 없이는 어떠한 배움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지봄봄
23호 곁봄 | 칼럼
가르치고 배우며 실행한다, 뭐라도!
시니어들의 베이스캠프 뭐라도학교
안태호 /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협동조합 이사

 노인의 존재는 오랫동안 인류에게 큰 축복이었다. 노인은 세대를 넘어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도서관이었다. 족장, 촌장, 주술사, 장로, 원로 등 무엇으로 불리든 노인은 한 사회의 경험과 지혜를 체현하고 있는 존재로 추앙받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요구받았다. 꼭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노하우들을 확보하고 숙성시키기 위해 오래된 경험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문자문화가 발달하고 기술의 속도가 삶의 속도를 추월한 자리, 인간이 왜소해지는 지점에서 노인들의 입지는 급격하게 축소되었다.[각주:1]

 

 이제 기대연령 100세가 그리 놀랍지 않은 고령화사회에 진입하며 시니어라는 명명을 받은 이들은 심지어 사회에 짐스런 존재로 언급되기 일쑤다. 노인, 시니어의 존재 자체가 불안과 고독이란 개념과 쌍을 이루지만, 본격적인 방황은 퇴직과 함께 시작된다. 은퇴는 누구에게든 어려운 과정이다. 평생을 몸 담아 왔던 일터와 조직에서 분리되는 경험, 줄어드는 수입과 제한된 관계는 시니어들을 시나브로 위축시킨다. 조직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개인으로 서는 일은 확실히 불안하고 고독한 미션이다. ‘은퇴난민이란 말을 들어봤는가? 시니어들의 불안을 눅이기 위해 지자체, 기관, 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수많은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정들이 그저 강의로만 끝나는 까닭에 이 프로그램과 저 프로그램, 이 교실과 저 교실을 전전하며 떠도는 시니어들의 자조 섞인 명명이다. 뭐라도학교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뭐라도 학교, 항해를 시작하다

 

 뭐라도학교는 2014년 수원시평생학습관의 한 프로그램에서부터 시작됐다. ‘인생학교라는 이름의 11회차 교육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을 통해 건강, 재무, 노후 설계 등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뭐라도학교 역시 출발은 인생학교 동문들의 친목모임이었다. 평생학습관 정성원 관장이 강의실 사용과 강사비 지원을 제안하며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동문회로 끝내지 말고 단체를 만드는 게 어떠냐는 게 정 관장의 제안이었다. 누구에게나 모임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과 활동을 위한 최소비용은 일차적인 조건이자 비빌 언덕이 된다. 뭐라도학교 김정일 교장은 사람들이 반가워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밥 먹고 등산하는 정도였는데, 공간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지요. 게다가 강사도 지원한다고 하니까 다들 의욕을 보였어요.”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각주:2]


 비빌 언덕과 의욕이 있다고 해서 일이 저절로 성사될 리는 만무하다. 뭐라도학교의 준비 역시 네 달 가까이 치열한 과정을 거쳤다. 수원시평생학습관 실무자들과 30명 정도의 시니어가 함께 어떤 형태의 조직을 만들 것인가를 두고 TF를 조직, 12일 워크숍 포함 16차례의 회의를 진행했다. 결국 201412월 창립총회를 열고, 20153월 신학기에 개교했다.

 

 

뭐라도? 뭐라도!

 

 “뭐라도 배우고, 뭐라도 나누고, 뭐라도 즐기고, 뭐라도 행하자뭐라도 학교가 내걸고 있는 이 한 문장의 구호만으로 학교의 성격이 확 드러난다. ‘뭐라도라는 말에서 누군가는 자조적인 뉘앙스를 읽어낼지도 모르지만, 여기에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다. 뭐라도학교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을 보면 자신감의 속살이 조금은 드러난다. 과정은 기본 클래스, 전문 클래스, 창작 클래스 등 모두 3개로 구성된다. 기본 클래스는 뭐라도학교의 출발점이 된 인생수업1년에 2회 진행된다. 전문클래스는 시니어의 성장을 도모하는 심화과정 단계로 사회공헌/사회적경제 아카데미’, ‘시니어 전문강사 양성과정’, ‘우리들교실 강사워크숍등이 있다. 창작클래스는 시니어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배움과 나눔의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회원 스스로 주제와 강사를 선정하여 함께 배우는 공개강좌 월담’, 회원 스스로 강좌를 개설하여 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우리들 교실’, 회원 간의 교류와 활동의 장 커뮤니티등이 운영되고 있다.

 

 공개강좌 월담은 매달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과 담을 넘는다(=경계를 넘는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월담은 시니어들이 원하는 교육을 시니어 스스로 기획하자는 의도에서 준비되었다. 뭐라도학교의 구성원들은 시니어 관련 정책과, 교육을 비롯한 프로그램 일체를 모두 젊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시니어 스스로가 자신의 욕구에 대해, 필요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월담에서는 회원들이 주제를 정하고 강사섭외까지 모두 진행한다. 그 동안 죽음과 노년의 사랑을 영화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배낭여행, 반려동물, 패션, 음악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뤄왔다.


 ‘우리들교실은 한 발 더 나아간다. 강의 자체가 외부강사가 아닌 회원들의 강의로 이루어진다. 회원들이 스스로 만든 강좌를 회원들이 선택하여 운영하는 방식이다. 뭐라도학교에서는 누구든 한 강좌 이상을 반드시 개설할 것을 권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강좌를 연다는 것은 스스로를 점검하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강좌 콘텐츠는 뭐든지 가능하다. 지금까지 개설된 강좌들을 보면 레몬티 만들기, 스마트폰 사진으로 동영상 만들기, 시니어 브랜드 명함 만들기, 사진과 함께 하는 세계여행, 만화로 배우는 일본어, Fun Pops, 서양화 기초, 타로 이야기, 나의 블로그 만들기, 인물 스케치, 유전자조작(GMO) 알아보기, 기분 좋은 정리수납 등 분야와 내용을 넘나드는 수많은 내용들이 축적되고 있다.

 

 가르치고 배운다는 말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가르치는 것은 스스로 배우는 과정이며, 배우는 사람 역시 자신을 배움으로 이끌면서 스스로를 가르친다. 결국 가르치고 배우는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자 서로의 관점에서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만나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렛츠 컨퍼런스[각주:3]로 알려진 지식 품앗이 시스템이 이런 과정들을 잘 보여준다. 수원시평생학습관의 누구나학교, 은평구평생학습관의 숨은 고수찾기, 똑똑도서관, ㅇㅇ은 대학, 대구의 내마음은 콩밭 협동조합 등이 배움과 가르침의 이중주를 일상화한 활동들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뭐라도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시니어, 짐이 아니라 힘

 

 학습으로 모인 시니어들은 사업단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시니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도 관심이 많다. 노인들이 컴퓨터를 이해할 때까지 11로 가르치는 '시니어 일대일 컴퓨터 교실', 노인들의 빛바랜 사진을 모아 영상 자서전을 만들어주는 '추억디자인연구소', 웰다잉 문화를 교육하는 '좋은 3()4() 연구소', 음악적 재능을 기부하는 '어울림한마당', 그리고 시니어들의 팟캐스트 방송인 '뭐라도야그팟' 등이 사회적경제사업단의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일부 사업단은 활동을 통해 올린 수입을 회원들에게 배당하기도 한다. 사실, 액수로는 큰 금액이 아니지만 함께 하는 일을 통해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시니어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시니어 일대일 컴퓨터 교실'은 전국화를 모색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사업이다. 사실, 인터넷이나 정보통신 기술은 노인들에게 더욱 유용한 경우가 많다. 인터넷 뱅킹만 해도 그렇다. 은행에 가려면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는 데다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인터넷뱅킹을 활용하면 단 몇 분 만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국제전화 비용 때문에 일본에 사는 딸과 소식을 주고받지 못하다 컴퓨터 교실 수강 후에 이메일과 화상통화로 소식을 주고받게 된 77세 할머니의 사연은 이 수업의 가치를 뚜렷하게 증명한 사건이었다. 올해는 93세 할아버지가 수업 전체를 소화하고 수료해 많은 회원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뭐라도학교에는 이밖에도 맘에 맞는 사람들이 훌쩍 여행을 다니는 어디든 여행단’, 책읽기 모임 책보’, 포크댄스 동호회 등 시니어들의 문화 활동을 위한 동호회들도 여럿 활동 중이다. 인생 후반전을 위한 배움부터 이렇게 배우고 나누고 즐기고 행하는 과정들은 유기적으로 엮여 스스로 배우고 도전하는 액티브시니어들의 베이스캠프라는 학교 소개말을 뒷받침한다.

 

 뭐라도학교의 비영리단체 등록에서 발생한 웃지 못 할 일화는 학교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단체 등록을 위해 관공서에 간 김정일 교장은 교육정책과, 시니어과, 일자리정책과를 뺑뺑이돌다 공무원과 다툴 뻔했다고 한다. 시니어들의 모임이면서 학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일자리에 대한 고민도 놓지 않고 있는 복합적인 학교의 성격이 담당 공무원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걸까. 성격은 복잡해도 학교는 순항중이다. 학교 출범 3년 만에 25명의 회원은 180명으로 늘어났다. 2016년에는 대한민국 평생교육대상을 받았고, 2017년에는 수원시가 유네스코 학습도시상을 받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뭐라도학교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시니어들의 자발성, 자기기획이 갖는 역동성은 노인이 사회의 짐이 아니라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 “구전 전통과 관습에 의존하는 문명들이 노인들에게 더 호의적이었다. 그러한 사회에서 노인들은 세대 간의 연결 고리이자 집단의 기억의 전수자 역할을 했다. 노인들은 기나긴 야회와 법적 소송에 필요한 존재였다. 그리스, 그리고 특히 중세가 그러한 경우였다. 반대로 관습에 대한 그들의 지식을 무용한 것으로 만드는 문자와 문서 기록, 성문법의 발달은 노인들에게 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와 르네상스는 그들에겐 흉조였다. 법률을 존중하는 이 문명들은 노인의 관습적 경험을 덜 필요로 했다. 더구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역사가 상대적으로 가속화되어 노인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용한 것들의 대열로 낙오하는 데 한몫했다.” 조르주 미누아, <노년의 역사> 540쪽, 아모르문디(2010) [본문으로]
  2. 고영직/안태호, <노년예술수업> 5장, 서해문집(2017) [본문으로]
  3. 서울시 NPO 지원센터 아카이브에서 발췌 http://www.seoulnpocenter.kr/bbs/board.php?bo_table=npo_aca&wr_id=22 “렛츠(LETS)는 공동체 안에 이미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동시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고, 공유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배움과 지식의 품앗이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렛츠(LETS)는 Local Energy Trading System의 앞글자를 합친 말인데 지역화페운동인 LETS(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습니다. 창작자들을 위한 렛츠 컨퍼런스가 2010년 3월, 국내에서 처음 개최되었습니다.” (렛츠 컨퍼런스는 ‘지속가능한 창작공동체’(지창공)라는 단체를 통해 소개되었지만, 현재 지창공 사이트(https://sites.google.com/site/balsangcc/)의 자료 링크들이 작동하지 않아 관련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의 주소를 연결했다.) [본문으로]
지지봄봄
23호 곁봄 | 칼럼
가르침과 배움의 균형에 대하여
백현주 / 수원시평생학습관 기획실장

 

 나는 수원시평생학습관이란 곳에서 일한다. 평생 교육이 아니고 평생 학습이라고 한 데에는 사람들이 그저 강의를 듣고 지식을 쇼핑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배움과 깨달음이 일어나는 곳이길 바라서이다. 저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필요에 맞는 배움의 방향과 기술을 터득해서, 스펙이 아니라 진짜 삶에 필요한 힘을 기르면 좋겠는 거다. 강의보다는 선생 없이 서로 배우고 익히는 학습자 모임을 조직하도록 자극하고, 학습관 안에서가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뭔가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더 힘을 쏟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자발적인 배움을 조직하는 데 나서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극소수이다.

 

가르침 또는 이끄는 자에 대한 목마름

 

 근대 학교교육 이래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은 역할 구분을 넘어서 위계가 분명한 일이 되었다. 가르치는 자는 위에, 배우는 자는 아래에 자리하게 됐고, 전자는 성인이면서 권위 있는 자, 학습의 주체로, 후자는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로, 설교를 듣고 받아쓰고 암기하는 복종하는 자, 학습의 객체로 호명되었다. 사실 지금의 성인들, 곧 우리 대다수가 이런 교육 분위기에서 자라왔다. 반면에 평생학습은 학교로 독점되었던 교육의 장을 전 생애에 걸친, 일상의 모든 시공간으로 확장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학교를 벗어나서 배울 뿐 아니라 생애 전 과정에 걸쳐, 그러니까 아동이나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도 배운다. 아이들을 미성숙의 상태로 규정하고, 이들을 적응의 규율을 내면화한 성인으로 키워내고자 한 것이 학교교육이고, 이 학교교육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변혁적인 개념이 바로 평생학습이다. 평생학습에서는 성인이 학생의 자리로 내려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의 관계를 해체한다. 성인은 능동적으로 가르치는 자와 협상할 수 있고, 교육의 내용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평생학습의 현장에서 만나는 성인 학습자에게서 능동성을 쉽게 찾아보긴 쉽지 않다. 참여하는 배움의 형태도 대개는 강의여서 성인이라 할지라도 한계가 있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오면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나를 성찰하고 교훈을 얻는 쪽이 아니라 강사와 강의에 대한 품평, 소비자의 상품리뷰에 가까워졌다. 교육이 마치 리모컨을 돌리듯 다양한 강의 프로그램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그 시간을 보내도록 디자인된 새로운 콘텐츠 서비스가 된 것이다. 여기서는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의 일방적인 쇼가 있을 뿐이고 진짜 배움이 일어날 리 만무하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배우는 자로서의 낮은 위치에 대한 익숙함, 나서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수줍음, 능동적 주체로서의 경험 부족, 그런 이유들로 인해서 소극적이기는 해도, 배움의 태도를 함부로 저버리지는 않는 학습자들이 더 많다고 믿고 싶다. 그들은 강사의 말 한마디, 글귀 하나에 의미를 따져가며 귀 기울여 듣고, 자신을 투영하며 반성하고 아파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가르침에 목말라있다.


 얼마 전 개봉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한 장면은 사람들이 이 가르침에 대해 기대하는 바를 한마디로 집약해준다. 새로운 포스(force)’의 소유자이자 주인공인 레이는 마지막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절 이끌어주었으면 좋겠어요. I need someone to show me my place in all of this.”

 

 스스로 자신의 포스를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한 레이는 루크에게 가르침을, 스승이 되어줄 것을 구하고 있다.

 

 한유(韓愈)사설(師說)에 의하면 스승이란 책을 주고 문법을 익히게 하는 자가 아니라, ()를 전하고 학업을 제공하며(授業), 의혹을 풀어주는(解惑) 존재이다. 도란 길이고, 레이의 말처럼 스승은 길을 이끌어주는 존재다. 수많은 길 앞에서 어디로도 성큼 발을 내딛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그 때에 누군가, 나보다 지혜롭고 현명하고 성숙하다고 믿는 누군가가 그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그 길에 들어선 나를 응원해준다면, 나는 그 길을 완전히 불안을 떨쳐버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비교적 경쾌하고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미혹의 시대에는 길을 물어보는 이도 없고 진정한 스승도 가르침도 들어설 자리를 잃어 간다. 비록 강의실 안이기는 하지만 애타게 가르침을 구하는 이들은 그래서 우리에겐 희망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두가 가는 저 길이 맞는지 의심을 품고 그 의심을 풀고자 배우고자 하고 스승을 곁에 두길 원하기 때문이다. 막상 다른 길로 접어들 한 발짝은 스스로 떼지 못하고 자꾸만 스승을 돌아보긴 해도 말이다.

 

평생 학습이 아닌 평생 학생


 배움의 한자인 ()은 본받음, 곧 자신의 부족과 결핍을 자각하고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현재의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이를 바탕으로 갖게 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자신이 알지 못하고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만나 관점과 사유를 성장시키는 일이다. 이를 통해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가능성이 실제의 변화와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하다. 새롭고 낯선 것을 충분히 다룰 수 있게 되는 과정, 아는 정도를 넘어서 할 줄 알게 되는 과정, 즉 익힘 ()의 과정이다.


 習()은 깃 ()에 흰 (), 날개가 하얗게 보일 정도로 날갯짓을 하는 새의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새가 그토록 날갯짓하는 이유는 날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는 상태로 변화를 꾀함인데, 피나는 날갯짓 연습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익숙하고 편안한 둥지를 박차고 나와, 낯설고 위험한 둥지 밖으로 몸을 던지는 선택이 아니면 날 기회는 생기지 않는다. 둥지 밖은 비상이 아니라 추락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한 번 진짜로 날아보아야 한다. 그런 위험을 감행하는 무모함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결코 날 수 없다. 둥지 안에서 숲을 멀뚱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새는 추락을 경험하면서 죽기 살기로 날갯짓을 한 이후에야 비로소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학습’, 배우고 익힘의 결과이다.


 태어나고 자라 내 삶의 길을 선택하고 나아감에 있어서 때로는 외부의 어떤 것에 의지하고, 때로는 나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과 주체적 의지에 따른다. 그러니까 내 삶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보면 가르침과 배우고 익힘이란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하고 긴장하는 관계로 내 삶을 이끄는 그 무엇이다. 따라서 외부의 가르침에 의지할 것이냐 자신을 믿고 의지하느냐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것이고, 그것을 함부로 비판할 수는 없다. 결국 어쨌거나 가르침의 의미는 가르치는 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배우는 자가 꾸려나가는 삶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핵심을 가리고 배움과 가르침의 긴장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 교육시장과 교육정책을 만드는 교육의 공급자들이다. 이들은 배우는 자, 자신의 길에 접어든 자에게 현실세계로 나아가 익힌 것을 적용해보는 과정을 안내하기보다는 이들이 가진 두려움의 심리를 가르침의 세계에 묶어두어 교육시장을 키우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시장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공영역에서조차 교육의 목적은 배움의 능동성과 성장하는 삶에 있지 않고 교육사업과 교육 프로그램의 영속성에 있게 되었다. 교육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관의 프로그램 실적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고객이다. 그러다 보니 학습자가 어린이든 성인이든 능동성을 키우는 쪽이 아니라, 당장의 욕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다시 고객이 될 수 있는 쪽으로 모든 교육기획이 방향을 맞추게 되었다.


 여기에 적응한 사람들은 이제 현실로 나가 해보는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실전을 최대한 유예하는 대신 계속해서 교육받는쪽을 택한다. 더군다나 일자리도 설 자리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사회는 이런 분위기를 증폭시킨다. 그리하여 이들은 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성숙한 개인으로서 필요한 때에 자신과 이웃과 세계에 책임 있는 당당한 주인으로 나서기보다는, 항상 뒤에 숨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평생 학생으로 남는다.

 

문화예술교육, 가르침을 다시 세우기


 문화예술교육은 어떤가. 비대해진 예술강사제도는 학습자가 아니라 가르치는 노동의 지속성이 우선되는 정책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회당 강사비 지원을 기본 틀로 하는 많은 지원사업들은 학습자가 누구이든 결국은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통제하기에 쉬운 방식으로 펼쳐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교육이 가르침이 과하게 작동하는 예능교육의 대안으로, 일그러진 학교교육에 대한 대항으로 출발했지만, 문화예술 전공자들의 일자리 창출과 결합하는 순간, 이 정책은 쉽게 비난할 수도 없는 영역이 되고 말았다.


 “가르침에서 배움으로라는 지지봄봄의 제안은 공급하는 자 혹은 가르치는 자의 입장이 압도하게 된 문화예술교육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그것은 가르침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가르침이 제거된 배움을 전면화하자는 게 아닐 것이다. 오히려 가르치거나 공급하는 쪽에 진정으로 문화예술교육의 가르침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침과 배움의 본질을 환기해준다. 이 호에서 함께 다루게 될 광주의 청소년 플랫폼 마당집이나 수원의 시니어 플랫폼 뭐라도학교’, 그리고 아쉽게도 다루고자 했으나 게재가 여의치는 않았던 장애인 노들야학의 사례는 이를 위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스타워즈 얘기로 돌아가 보자. 레이의 스승 요청은 거절당하지만 그녀는 포스를 다룰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그녀가 평범한 사람의 자식인 것이 드러나면서 포스란 특별한 피의 유산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밝혀진다. 잠들어 있는 포스들은 결국 누구에게서나 스스로 깨어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빛의 포스가 될지 어둠의 포스가 될지는 결국 포스의 주인이 살아가는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가르침일 터이다.



지지봄봄
22호 곁봄 | 칼럼

'몸소 겪는다'는 것

김소연 / 연극평론가

 이번 호 지지봄봄의 주제는 체험에서 경험으로. 체험과 경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체험 : 자기가 몸소 겪음. 또는 그런 경험. <심리> 유기체가 직접 경험한 심적 과정. 경험과는 달리 지성언어습관에 의한 구성이 섞이지 않은 근원적인 것을 이른다. <철학>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기 전의 개인의 주관 속에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생생한 의식 과정이나 내용. 경험 :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철학> 객관적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하여 깨닫게 되는 내용. 철학사전의 정의는 이렇다. “생철학에서 쓰이는 용어. 경험이란 용어와 비교하여, 경험이 인식적 의미, 즉 무엇인가에 대해 안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에 대하여, 체험은 개별 인간에 있어서 지적(知的)인 것만이 아니라 정의적(情意的) 요소도 포함한 의식 활동 전체의 상태를 가리키는 극히 주관적인 의미를 가지는 말이며, 반드시 대상과의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고 정신작용 내에서만 나타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생철학은 이러한 의식상의 사실을 기초로 하여 세계나 인생의 진상을 밝히려고 한다. 이 용어는 독일어 특유의 것으로 다른 유럽어에서는 경험(experience)에 특정한 설명을 덧붙여 체험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체험 [Experience, 體驗, Erlebnis]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체험과 경험은 거의 동어반복에 가까울 정도로 비슷한 의미이지만,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체험과 경험은 몸소 겪음이 의미의 중심을 이루지만, ‘겪음의 형식이나 내용에서 주관/객관, 정의(情意)/() 등의 차이를 구별하고자 할 때 양자를 갈라서 말한다. ‘체험경험을 구별하고자 하는 지지봄봄의 의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감각의 과정을 제거하는 체험교육

 

 문화예술교육(부터 교육 전반)에서 체험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몸소 겪음의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흔히 만나게 되는 체험 교육들에서 몸소 겪음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어떤 예. 수년 전 아이들과 함께 간 어린이 전시실의 체험 활동은 파편들을 맞추어서 빗살무늬 토기의 형태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평면적 퍼즐 맞추기를 공간화하기 위해서인지 이미 토기의 형태를 갖춘 틀에 파편들을 자석으로 붙여 넣는 것이었다. 과연 이러한 체험 활동에서 몸소겪음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 프로그램에서 직접 제 몸을 움직이는 것이란 조각을 집어서 마련된 틀에 붙이는 것이다. 조각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모형이었고, 당연히 흙으로 빚어진 토기의 질감을 느낄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의 몸소란 조각 집기이다. 영아 손 근육 활동이 아니라면 이것을 과연 몸소라 할 수 있을까. (그 체험교실은 영아 대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영아 손 근육 활동에서도 손 근육을 쓰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상의 질감도 중요하게 고려된다.) 게다가 파편들은 크고, 이미 형태가 완성된 틀이 있으니 평면의 퍼즐 맞추기보다 더 쉬웠다. 평면의 퍼즐 맞추기가 조각조각이 이어지면서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면, 토기의 형태를 갖춘 틀에 파편 조각을 붙여가는 것은 과정을 즐기기에는 단순했다. 이러한 방식의 조립 용품 세트로 전개되는 체험 교육의 예는 무수히 많다. 수많은 축제의 체험 부스에 마련된 탈 만들기 체험은 이미 거의 완성된 탈에 채색하는 과정만을 남겨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종이 탈 만들기의 과정에서 종이의 물성을 직접 제 몸으로 겪으면서 형태를 만드는 과정은, 체험 교구 회사들의 대량생산 체계가 떠맡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예.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서 참관하게 된 미술교육 프로그램. 미술사 강의와 작품 활동을 결합한 기획안이 흥미로웠다. 특히 미술사를 매체의 변화를 중심으로 구성한 커리큘럼이 주목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참관한 수업은 프레스코화에 대한 수업이었다. 프레스코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대표작들을 보여주고 이어서 프레스코화를 그리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직접프레스코화를 그리는과정이라는 것이 이미 준비한 재료들에 그림 그리기였다. 선생님은 프로그램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는데, 미리 반죽과 판을 준비해왔고, 작은 판에 반죽을 발라 아이들에게 작은 벽처럼 보이는 것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판을 받은 아이들은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물론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다른 점들이 있었겠지만, 그 다름은 이색체험에 머물렀다. 종이와 반죽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 때문에 색감이나 표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다름이 새로운 시도나 표현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사유의 과정은 없었다. 정해진 시간 동안 분방한 그리기는 도화지에 그리기나 마찬가지로 진행되었고, 아이들은 완성한 그림판을 들고 귀가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매체의 특징을 몸소 겪어서이해하려면 어떤 재료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반죽이 만들어지는지 직접 몸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판에 반죽을 바르는 과정이라도 아이들이 직접 해보는 것은 어떨지, 매체의 특성과 표현을 탐구해볼 수 있는 과정을 만들 수는 없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선생님의 이야기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원하는 주어진 시간에 아이들이 완성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하다 보니 그런 과정들은 생략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도리어 수업을 이렇게 진행해야 교구를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러한 방식의 체험 교육에서 생략되는 것은 결국 감각이다. 예로든 빗살무늬 토기 퍼즐 맞추기는, 전시 관람보다도 더 관찰과 감각을 삭제해버린다. 전시 관람에서는 토기라는 물성에 대한 관찰, 비록 촉각을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시각을 통해서도 거친 표면 등등의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면, 플라스틱 조각들을 붙이는 체험 활동에서는 토기라는 물성에 대한 관찰과 감각의 기회마저 차단당하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토기의 형태가 완성된 틀로 주어져 있으니 토기의 형태에 대한 관찰마저도 제거된다. 프레스코화 수업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마련한 반죽과 잘 발라진 판을 제공하는 것은 직접 몸으로감각해야 할 체험의 과정을 선생님의 수업 준비 과정으로 옮겨놓고 있는 것이다.

 

 체험이 직접 몸을 움직여 다양한 감각을 활용한 교육 활동이라면 우리가 종종 만나게 되는 체험 활동은 일상의 보다도 더 협소한 감각만을 요구할 뿐이며, 과정의 단순함은 결국 겪음의 내용마저도 협소하게 하고 만다. 이러한 상황들은 체험의 본래 의미를 왜곡하고, 교육의 과정과 목표를 왜곡한다. 직접 몸으로 겪는다는 것은 키트의 조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 몸으로 겪는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들을 일깨우고 그러한 감각들을 통해 일상에서 간과했던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가.

 

 

창의성과 갈등

 

 또 다른 예. 초등학생 대상의 연극 수업이었다. 젊은 선생님들이 그룹으로 진행하는 수업이었는데, 각각의 역할을 나누고 과정을 세세하게 준비해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참관한 수업은 어떤 상황이 제시되고 범인을 추리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그룹으로 나뉘어 자기가 속한 팀원들과 함께 단서를 찾고 그것을 근거로 범인을 추리해 가는 것이었다. 단서 찾기와 추리는 관찰과 논리가 중요하다. 선생님들은 단서를 발견하기 위해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의 방법론을 역할 놀이 속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너무 감추어져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드러나 있지도 않은 단서들이 추리라는 형식 속에서 논리적으로 구성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진행했다. 이제 추리의 마지막 단계에 왔을 때, 한 그룹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룹의 리더를 뽑아야 하는데, 여학생이 그 역할을 맡자 그 팀에 속한 남학생이 수업을 거부한 것이다. 물론 이런 사정은 수업이 끝난 후 전해들은 것인데, 갑자기 한 남학생이 그룹에서 나와 진행을 보조하던 선생님과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내내 대화를 하다가 추리가 모두 끝난 놀이 시간에야 수업에 합류했다. 수업이 진행되는 한편에서 보조 선생님은 그 남학생과 대화를 하면서 그러한 행동이 왜 올바르지 않은지, 특히 여자, 남자 성 역할의 편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비단 이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그룹 활동에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펴서 진행을 어렵게 한다든가 혹은 그룹 활동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해 소극적이 되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내가 지켜봤던 수업들에서 선생님들은 그런 상황이 발생할 때 수업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별도의 장소에서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택했다. 내가 직접 대화를 들은 것은 아니지만, 대화 후 아이의 행동을 보면 좋은 대화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과연 이것이 갈등에 대한 적절한 교육일까 라는 의문 때문이다. 특히 연극교육의 과정에서 이러한 장면을 목격할 때면 왜 이 교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현명한 선생님의 개입으로 해소되어야 할까. 실재의 갈등은 해소된 채, 프로그램으로 짜인 가상의 갈등만을 교육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연극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는 연극은 갈등이라고 쓰여 있다. 종종 많은 연극 교육 전문가들은 기존의 완성된 희곡을 재현하는 것이 창의적 교육이 아니라는 비판을 한다.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장면을 만들고 이야기를 짜보라고 권한다. 물론 그런 활동과 교육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러나 성공적 사례로 언급되는 그런 수업들을 볼 때, 혹은 발표를 볼 때, 연극 교육은 자기표현의 해방감을 주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토론 연극의 과정에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데, 제시되는 갈등의 상황에 대한 관객들의 개입은 대체로 봉합이거나 화해인 경우들이 적지 않다. 물론 이것은 관객들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적 상황의 제기, 개입을 이끌어가는 토론 연극 사회자의 역할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해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갈등이 회피된다는 것이다.

 

 물론 연극이라는 표현의 형식이 주는 해방감이나 자기발견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좋은 희곡은 그것이 고전이라든가 작가의 권위 때문에 좋은 희곡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에서 겪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같은 파국적 상황에 이르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갈등을 대면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키게 되는 것이다. 창의성이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닌 삶에 대한 성찰이라 할 때, 연극 교육은, 그것이 직접 창작하는 것이든 감상하는 것이든, 어떻게 갈등을 대면할 것인가에 그 목표가 놓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체험과 경험

 

 최근 있었던 문화예술교육 정책토론회의 중요한 화두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였다고 한다. 물론 이 캐치프레이즈는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연속토론회에서 많은 발제자나 토론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의 에 대한 담론 부재였다. 즉 문화예술교육의 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지봄봄이 제안하는 체험에서 경험으로 역시 이러한 지적과 잇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논의를 몸소 겪음의 의미, ‘몸소 겪음의 교육적 목표와 과정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가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직접 몸으로 겪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그 과정과 목표에 대한 분석과 비평이다. 담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만큼 정의를 넘어 실제 문화예술교육현장에서 더 많은 분석과 비평이 다투어 제시되길 바란다.

지지봄봄
22호 곁봄 | 칼럼
상상력의 징후에 대한 내밀한 자기고백(기획의 변)
김월식 / 무늬만커뮤니티 디렉터


예술가에 의한 예술가를 위한 예술가의 문화예술교육 


 오래된 생각이다.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몇 가지 질문의 답을 구하느라 이리저리 방황하며 고민의 출구를 찾으려 했지만 대체로 돌아오는 답은 또 다른 질문과 흔들리는 신념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마 미리 확정해 놓은 예술(가)의 신화적, 종교적 은혜로움이라는 가당치 않은 가설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개인과 몇 안 되는 주변인들의 경험으로 이 가설을 주장한다는 것이 우리만 즐거운 ‘그들만의 파티’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예술가들의 미에 관한 탐구가 흥미롭지만 그런 예술가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고집과 아집, 소통 부재의 삶에서 나오길 꺼리는 예술가들과 이미 세상의 언어가 되어버린 자신의 예술을 인지 못 하고 낭만적인 자기방어에 익숙한 예술가들과의 교류는 안타깝고 부끄러운 변명의 향연 같은 아이러니한 나락의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어쩌면 30년 가까이 예술가로 살아오면서 숱하게 보아왔던 예술(가)의 편협한 삶을, 예술을 보편과 타당이라는 로직의 알고리즘으로 번역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모순된 욕심이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불편한 심정을 뒤로하고 ‘상상력의 징후’는 시작되었다.


목적이 무엇이든지 과정은 늘 다르다

 무슨 호기로움이었을까? 몇 해 전부터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열정에 반하는 안타까운 접근들에 대한 대안으로써 생각하게 된 이 신념 같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여러 자리에서 ‘상상력의 징후’에 대한 이야기를 설파했고, 결국에는 경기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이 제안을 흥미롭게 받아들여 모든 시작이 가능했다. 많은 사전 회의를 통해 의미에 대해 공감하고 가능성을 감지했지만, 결국 언어적 의미가 가진 예술(교육)의 특수성이 선명하게 전달될지는 의문이었다. 말을 모으고 다듬어 ‘상상력의 징후’에 대한 타당성을 만들었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메울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징후’에 대한 불확정적인 개념을 온전하게 전달할 만큼의 정의를 유보하고, 열려있는 개념으로서 참여자가 그 의미를 완성하는 방식의 워크숍 초안을 만들고 이것이 결국 ‘상상력의 징후’를 설명하는 목적이 되었다. 견고한 목적이라도 전달 과정에서 흔들리고 해체되는 경험을 많이 해 보았다. 그래서 이 열린 개념이 온전하게 워크숍 끝까지 전달될지, 마지막에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참여하겠다는 예술가들이 모이고 결국 우리는 이 불투명한 워크숍 안에서 불안하게 더듬거리는 자신들을 목도했다. 더듬거리는 것은 분명 예술의 징후이지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다. 이 감각에 다가서기 위해서 처음 작성했던 모호하게 열린 ‘상상력의 징후’의 개념을 역추적해보기로 한다. 징후와 시작, 과정과 결과의 구조로는 부족한 예술(교육) 그 내부의 민낯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홍보 초안과 결과의 창의적인 거리

 ‘상상력의 징후’의 초안과 워크숍의 과정에서의 흔들림, 마치고 난 이후의 단상을 정리해본다. 
 
초안

‘상상력의 징후’는 예술가들이 창작하기 전에, 혹은 창작 중에 발생하거나 개입되는 다양한 신호나 행동, 사건들이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에서의 창의력, 상상력, 수행력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렇게 감지되는 징후들이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상상력의 통로를 여는 가능성이 될 수 있을지를 실험하는 워크숍이다. 온전하게 예술가들에 의한 예술가들을 위한 예술가들의 창작 실험과 이를 상상력의 가능성으로 읽고 문화예술교육의 언어로 번역해줄 모더레이터, 이 모든 과정을 객관적 관점에서 기록해줄 기록자들이 함께 이 워크숍에 참여한다. ‘상상력의 징후’는 많은 예술가가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자신들의 예술 철학에 기반을 둔 창작 작업을 문화예술교육의 철학과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힘들어하거나, 교육에 대한 편견과 강한 교육적 프레임에 갇혀 예술가 본인이 갖고 있었던 예술 철학과는 동떨어진 혹은 전혀 다른 교육적 관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문제 해결을 위한 모색으로써의 실험적 워크숍이다. ‘상상력의 징후’는 예술가의 머리와 몸, 마음을 작동시키는 기제의 추상성을 구체적인 감각으로 체험하고 인지하며 이를 공유의 장에서 차이와 공감의 이슈를 바탕으로 예술가 스스로 재해석하는 과정이다. 예술(작업, 창작)을 시작하기 전, 그 분명한 신호 안에 설정된 다양한 창의와 상상, 창작 의지의 알고리즘의 세계를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상상력의 징후’는 매력적이다. 이해와 오해 사이에 ‘상상력의 징후’는 존재하고 결정적 단서를 뺀 단단한 심증으로 그 상상력을 호명한다.


과정과 결과의 단상들

 “ ‘상상력의 징후’는 예술가들이 창작하기 전에, 혹은 창작 중에 발생하거나 개입되는 다양한 신호나 행동, 사건들이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에서의 창의력, 상상력, 수행력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렇게 감지되는 징후들이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상상력의 통로를 여는 가능성이 될 수 있을지를 실험하는 워크숍이다.”
 
- 창작하기 전에는 다양한 시그널들이 존재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나 조각을 하는 예술가는 대체로 관찰이 그것이다. 그 관찰은 숱하게 보아 왔던 일상의 풍경이 대상일 수도 있고, 여행 중이나 낯선 곳에서 포착된 기이한 대상일 수도 있다. 이 모든 대상이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혹은 추상적인 감정으로 작가를 혼란하게 하더라도 작가의 미적 관점에 포획된 대상은 강렬하게 작가의 인식에 자리 잡게 되고 이는 곧 상상을 발동하는 기제가 된다. 그런데 대상을 관찰하는 방법과 속도가 제각각이다. 작가는 찰나(刹那)의 감각으로 셔터를 누르는 손, 붓질하는 손까지의 거리를 최소화하기도 하고, 한 대상을 길고 오랜 시간 응시하면서 대상의 존재, 혹은 대상과 풍경과의 관계, 대상의 이면 등을 맘껏 상상하며 표현의 수위를 설계하기도 한다. 동시대 예술가는 이 관찰의 개별적 특성이 작업을 진행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동 기제임을 인지하고 더욱 다양한 방법과 속도로 관찰한다. 

 예술가는 시각적 차원을 넘어서 오감을 모두 개방하여 관찰하는데, 심지어 오감을 넘어서는 육감적 관찰을 상상의 채널로 활용한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는 것은 샤먼과 예술가에게만 주어진 유일한 특권일 수 있다. 죽은 조상을 불러내 그들과 소통하는 샤먼과 타인이 보지 않은 미감을 대신 발견하거나 기록해 타자에게 보여주는 예술가는 모두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보이게 하는 특이한 재주를 가졌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예술가는 때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기 위해 손과 몸으로, 혀와 코로 관찰한다. 음악 장르의 예술가에게는 귀로 관찰하는 것이 특히 중요한 창작 기제일 것이다. 그런데 비단 음악 장르의 작가뿐 아니라 타 장르 예술가에게도 청각을 통한 관찰이 만드는 창작의 통로는 매우 중요한 ‘상상력의 통로’가 된다. 작가의 관찰은 생각보다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이다. 말하자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도 못 본 척한다. 매우 미세한 감각으로 돋보기 현미경을 뛰어넘는 미시적인 영역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숲을 보느라 나무를 아예 보지 않기도 한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던 손끝의 감각에 포착된 그곳에 천착하기도 하고, 또 어떤 예술가는 손끝에 포착된 그곳을 천착하는 몸의 감각으로 상상력을 발동한다. 한 가구 디자이너는 가구를 만들 때 자신이 가구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가장 편안한 가구의 형태로 몸을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사람이 온전하고 편안하게 앉아 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 구조대로 가구를 제작한다고 한다. 결국 본다는 것은 오감과 육감을 넘는 몸의 감각을 입체적으로 날을 세워 관찰하는 것이고, 이 입체적 관찰이 작가의 개별적 관찰 및 성찰, 실천의 속도와 연동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는 매일 보며 살아가는데 그 관성 때문에 어쩌면 아무것도 못 보는 것일 수 있고, 나의 보는 방법은 나의 상상력을 만드는 모든 징후가 된다. 

 ‘상상력의 징후’ 워크숍 도중 참여한 예술가는 자신의 보는 습관과 방식을 공유했다. 작가적 관찰이란 매우 첨예하게 사적이면서도 공개하기 꺼려지는 부분이 있는 비밀스러운 창작의 영역이기 때문에 실제로 깊은 이야기가 공유되지는 못했다. 다만 어떤 작가든지 자신이 보고 있는 세상을 말하면서 더듬거리고, 주저하고 부끄러운 듯 말의 호흡을 조절했다. 말과 사유가 동시에 혼재하면서 타자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에는 또 다른 생각의 징후들이 포착되는 듯했다. 작가의 생각과 상상력이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타자와 비로소 만나는 첫 지점의 떨림과 흔들림, 그리고 그 흔들림을 뚫고 나오는 개인의 소리가 모두 그 예술가의 시그널이다. 이 불확정적이고 불가해한 소통이야말로 또한 ‘상상력의 징후’가 된다. 심정적이고 직관적으로 답을 향해 무한 수렴하고 있는 관찰과 상상의 긴장에는 무한한 우연과 오해의 개입이 존재할 수 있고, 그 헤아릴 수 없는 파장 속에 예술이 위치한다. 

 “온전하게 예술가들에 의한 예술가들을 위한 예술가들의 창작 실험과 이를 상상력의 가능성으로 읽고 문화예술교육의 언어로 번역해줄 모더레이터, 이 모든 과정을 객관적 관점에서 기록해줄 기록자들이 함께 이 워크숍에 참여한다.”

- ‘상상력의 징후’에 참여한 참여자와 모더레이터, 워크숍의 전 과정을 기록하는 사람도 모두 예술가이어야 한다는 사전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참여자는 각자의 포트폴리오를 소개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모더레이터 역시 본인의 포트폴리오를 모두에게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더레이터는 예술 장르, 매체와 상관없이 참여 예술가들의 창작과정과 결과물에서 ‘상상력의 징후’를 읽고 이를 다시 여러 참여자에게 전달하였다. 교육적 언어 구사를 불편해하는 예술가나, 본인의 작업에서 문화예술교육적 가능성과 프로세스를 인지하지 못 하는 작가에게 본인의 작업이 갖고 있는 교육적 잠재성을 일깨우는 매개자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모더레이터로 참여한 한 예술가는 작업 결과물에 숨어 있는 창의적 경로를 끊임없이 읽어주면서, 작가가 본인의 이야기를 불편해하지 않고 말할 때까지 섬세하게 배려하며 기다려주었다. 이 모더레이터는 다양한 예술의 언어를 교육에 필요한 적절한 언어로 번역했던 경험이 풍부하였고, 예술가이자 교육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또 다른 모더레이터는 작업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에 경험이 많은 예술가로 다양한 매체를 유연하게 융합, 해체하면서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과 우연적 상황을 메시지에 개입시키는데 자유로운 작가다. 모든 모더레이터가 유머를 작업의 한 태도로 숨겨두었고 이 모든 기제가 참여자의 창작적 기제와 만나 ‘상상력의 징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을 만들었다. 

 “ ‘상상력의 징후’는 많은 예술가가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자신들의 예술 철학에 기반을 둔 창작 작업을 문화예술교육의 철학과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힘들어하거나, 교육에 대한 편견과 강한 교육적 프레임에 갇혀 예술가 본인이 갖고 있었던 예술 철학과는 동떨어진 혹은 전혀 다른 교육적 관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문제 해결을 위한 모색으로써의 실험적 워크숍이다.” 

- ‘상상력의 징후’에서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작동시키는 기제에 주목한 이유는 제도 안의 많은 문화예술교육에서 단순화된 접근 방법과 사례가 공유되면서 정체성과 변별성이 없는 교육이 양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써 새로운 발상과 접근, 실천력을 갖춘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예술(가)적 실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상상력의 징후’는 출발하였다. 

 예술가들은 종종 예술교육 현장에서 예술강사의 역할을 담당할 때 실제 자신의 창작 세계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전형적인 예술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마치 문화예술교육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이는 그동안의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이 교육적 설계와 과정, 목표와 결과가 분명한 안전하고 견고한 접근에 기반을 둔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제도 안의 예술교육은 정해진 시간 안에 목적과 과정을 수행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시간과의 긴장이 중요하다. 또 윤리적이며 안전하고 정서적으로 순화된 언어와 접근만을 허용한다. 그래서 제도 안의 예술교육은 검증된 콘텐츠 외의 상상과 접근을 가지고 교육을 수행하는데 많은 장벽이 있다. 교과서 안의 예술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을 요구하므로 개별적 사유와 실천이 개입될 수 있는 중요한 단계를 친절하게 압축하여 전달한다. 이러한 미적 교육을 통한 경험은 교육 대상자의 심미적 경험을 단순화하면서, 예술에 대한 보편적 사고를 전체화하는데, 이 부분이 예술(교육)에 대한 전형을 만들기도 한다. 동시대 예술 언어의 비선형적이며 부조리한 부분을 애써 번역하여 사회와 학교, 교사와 학부모를 설득하는 과정에서의 불편함을 마주하기 싫은 예술가는 제도 안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언어와 접근의 예술(교육)로 되돌아간다. 친절하고 안전한 제도적 예술교육은 결국 교육의 프레임이라는 동시대성의 자기 기만적 상식망 안으로 예술(가)을 가두는 관성이 있다. 결국 동시대의 문화예술교육은 가치와 내용 중심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늘 이해하기 쉬운 상식적 예술 장르의 기능교육을 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 ‘상상력의 징후’는 예술가의 머리와 몸, 마음을 작동시키는 기제의 추상성을 구체적인 감각으로 체험하고 인지하며 이를 공유의 장에서 차이와 공감의 이슈를 바탕으로 예술가 스스로 재해석하는 과정이다.”

- 이러한 측면에서 ‘상상력의 징후’는 워크숍 참여 작가의 다양한 창작 기제를 보편적 교육언어로 직접 번역하는 과정을 워크숍 설계 단계에서 지워버렸다. 수년간 예술교육 매개자의 역량강화 프로그램은 예외 없이 워크숍의 결과 단위에서 교육 안을 만들고 그 교육 안을 실습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브레인스토밍과 사례의 교류, 멘토링을 받은 매개자들은 구조가 이미 설계되어 있는 행정 서류 양식에 크고 작은 변화와 성찰의 철학을 써넣는다. 이 과정에서 다시 예전의 제도적이며 관성적 예술(교육)의 언어로 회귀하고, 행정 서류 양식이 원하는 설계 방식으로 내용을 압축시킨다. 몇 년 동안 수차례 진행된 이와 같은 역량강화 워크숍에서 예술(강사)가의 확장된 교육적 접근과 실험의 가치를 매우 쉽게 패턴화시키는 경향을 발견하였고, ‘상상력의 징후’에서만은 다시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견은 가장 중요한 워크숍의 태도가 되었다. 그래서 일련의 과정을 대체할 장치로써의 모더레이터와 기록자의 역할이 중요했다. 모더레이터는 워크숍 과정에서 참여 예술가의 창작 기제에 대하여 다양한 상상의 여지와 경로를 함께 읽어주고, 예술가는 그 언어에 각자의 언어와 철학으로 화답한다. 때로는 아무 말 대잔치 같은 애매하고 모호한 소통이 지루하게 이어지기도, 단절된 대화 속으로 침묵이 개입되기도 하지만 참여자들이 겪는 즉자적인 소통의 과정을 기록자는 여과 없이 자신의 언어로 기록한다. ‘상상력의 징후’에는 ‘기록자의 언어’라는 세 번째 번역 과정이 존재하는데 기록자들은 대화와 소통을 일방적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반영하여 현장을 기록한다. 이 기록이 참여자들에게 예술(교육)의 정답이 아니라 질문과 답, 고민과 문제의식을 만나는 또 다른 ‘상상력의 징후’가 되길 기대하면서. 

 “예술(작업, 창작)을 시작하기 전, 그 분명한 신호 안에 설정된 다양한 창의와 상상, 창작 의지의 알고리즘의 세계를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상상력의 징후’는 매력적이다. 이해와 오해 사이에 ‘상상력의 징후’는 존재하고 결정적 단서를 뺀 단단한 심증으로 그 상상력을 호명한다.” 

- 아무도 예술가의 창작 이전의 다양한 작동 기제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수없이 많은 예술(가)의 가치는 단정 지을 수 없는 다양함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 다양성은 예술의 다양성이지만 예술가의 다양성이면서 삶의 다양성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DNA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기질의 총화와 성장하면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 사건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개별적 정체성이 예술(가)의 언어를 구사하게 한다. 우리는 이런 다양성을 학습으로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지만, 결국 개별적 상상력을 통한 주체적 삶의 성찰과 실천은 스스로 깨치지 않으면 쉽게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마음 같은 것이다. 몸은 움직여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느끼는 거짓의 상태를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하고, 불편해하는 까닭과 비슷하다. 우리는 ‘상상력의 징후’를 통해 다양한 예술가의 창작 이전과 창작 과정의 기제를 읽는다. 예술(가)의 다양성만큼 기제 들은 다양하고,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창작이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놀라기도 하고 의아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 아침 밥상에서 밥을 먹는 행위가, 밤에 일상의 피로로 고단한 몸을 눕히고 잠을 청하는 행위가 어떤 사람에게는 평범한 삶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창작의 기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 2017년을 살아가는 동시대 75억의 세계 인구가 맞이하는 아침과 저녁의 잠자리가 같지 않듯이, 어떤 예술가의 아침밥은 따듯함과 초라함, 아름다움과 추함, 즐거움과 불행함을 관찰하고 사유하게 한다. 특정한 아침 식탁의 풍경이 예술가의 언어로 번역되어 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하고, 공연장의 무대로 오르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의 낯익은 풍경을 전시와 공연으로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며 관찰과 사유 속에서 새로 발견된 독립적인 의미와 가치들은 이미 삶의 풍경 속에 가득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예술교육은, 문화예술교육은 근대의 장르적 예술 결과물의 권위에 익숙해져서 그 결과를 만드는 기술적 경로에만 치우치지 않았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그리는 기술과 행위 이전에 그리는 자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판단의 주관적 해석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그것을 그리고, 연주하고, 쓰도록 결정했을 때 사용하는 언어(매체)는 누가 선택했고, 그 언어가 본인의 언어로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는지, 불편을 감수하고도 지속해볼 의지가 발동하는지 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전제는 무척 피곤하고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든다. 사실 이런 전제 없이도 우리는 그동안 그럭저럭 문화예술교육을 별 탈 없이 잘 성장시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력의 징후’에서만큼은 이 전제들이 우리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성찰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유하고자 했던 고단한 시간의 정체가 실천을 만들기 위한 주체적 사유의 시간이었고, 결코 버리거나 무시하기 어려운 마음을 사용하는 시간이었음을 잊고 싶지 않다. 그렇게 쌓이는 마음은 문화예술교육의 또 다른 혹은 새로운 가치와 과정을 상상하게 한다. ‘상상력의 징후’는 그런 것을 마음에 품는 신념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목적 없는 합목적성

 “욕구 능력은, 그것이 단지 개념에 의해서만 즉 목적의 표상에 적합하게 행위 하도록 규정될 수 있는 한,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어떤 대상, 마음 상태 또는 어떤 행위 등의 가능성이 목적의 표상을 필연적으로 전제하지는 않을지라도, 우리가 목적에 의한 인과성을, 즉 어떤 규칙의 표상에 따라 그 대상이나 행위 등을 그렇게 정해 놓은 하나의 의지를 그 근거로 가정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그것들의〔어떤 대상, 마음 상태 또는 어떤 행위 등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설명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다고 하는 이유만으로도, 그러한 대상이나 행위 등은 합목적적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 

 ‘상상력의 징후’를 준비하면서 칸트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 중요한 레퍼런스가 되었다. 징후가 목적의 표상을 필연적으로 전제하지는 않을지라도 ‘상상력의 징후’가 문화예술교육에 타당한 합목적성을 갖추었다는 믿음을 채찍질하는 텍스트로써 ‘목적 없는 합목적성’은 매우 중요한 영감이기도 하였다. 
 

 결국 우리가 워크숍을 통하여 포획한 징후 안에는 더듬거리기, 조몰락거리기, 치유를 위한 시간 보내기, 자기 탐색의 시간, 축적, 매개와 매개의 관계, 소문과 팩트, 불편한 질문하기, 탈 학습된 자기 경로는 찾아가는 탐색 과정, 어색함, 미시적이고 탐미적인, 우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칭적 촉각성, 통합적 사고를 원하는 혹은 시키는, 몸의 생각, 통해서 보는 읽는 세상, 감각의 번역, 쉬운 너무도 손쉬운, 애틋함, 기다림, 실천과 수행이라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면서 또 구체적인 합목적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 징후의 정체를 암묵지에서 호명했으며, 호명된 징후들이 문화예술교육의 언어로 번역되는 또 다른 수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의 예술처럼 말이다.




  1. 김상현, 『철학사상』 별책 제5권 제6호 칸트 『판단력 비판』,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5, p.75 [본문으로]
지지봄봄
22호 곁봄 | 칼럼
단두대 위에 올라선 체험주의
임상빈 / 잔꾀


느리고 고집스러운 농부로부터


 유기농법에는 땅에서 돌을 골라내지 말고 극심한 가뭄이 아니면 물도 주지 말라는 충고가 있다. 땅에는 흙과 함께 다양한 크기의 돌들이 뒤엉켜 있다. 돌을 골라낸 토양에서는 작물이 잘 자란다. 수확량도 많다. 한 마디로 농사를 잘 지었다는 세간의 평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땅은 힘을 잃는다고 한다. 반대로 땅을 골라내지 않는 밭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비가 내린 이후에 땅속의 큼지막한 돌 밑에는 소량의 물이 고여 있다고 한다. 작물은 그곳을 향해서 뿌리를 뻗어간다. 멀고 깊어 보이지도 않는 단단한 돌 밑으로.  


얇은 세상을 달리는 두꺼운 얼굴

 체험을 모토로 한 지역축제의 현장을 보면 이렇다. 밤 줍기 행사에서는 야밤에 밤 자루를 들고 와서 나무 아래에 흩뿌려 놓는다. 밤은 중국산이다. 산천어와 빙어 축제는 양식장에서 배송된 것을 풀어 놓는다. 지역 특산물이 아니다. 이렇듯 먹거리 프로그램은 어느 곳에서나 유사한 틀로 짜인다. 도자기 축제에서는 물레 위의 흙을 붙잡아 보는 것으로 끝난다. 재밌는 것은 알면서도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체험행사는 여전히 호황을 누린다. 서로 속이고 속아주는 문화가 언제부터 어떻게 누구 때문에 가능해진 것인지는 따져봐야 의미가 없다. 이것은 오늘날의 소비문화이자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우리는 얄팍해졌다. 깊이를 찾는 것은 오래 걸린다. 참지를 못한다. 빨리 느껴야 한다. 우리는 문화-조루증을 앓고 있다.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드러낸다. 성과라는 이름으로. 한 철 장사와 한탕주의로 점철된 문화산업의 페스트푸드화가 버젓이 성행하고 있다. 체험은 저급한 대중문화가 되었다.


어른의 울타리와 아이들의 도약력

 최근에 나는 아동·청소년들과 함께 우드가스 스토브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적정기술의 이념과 가치는 두더지 게임처럼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가 무관심 망치를 얻어맞고 표면 아래로 파묻혀 버렸다. 아이들한테는 공식적인 불장난 프로그램일 뿐 그 이상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요즘 아이들은 살아있는 불을 혼자서 만들어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난생처음 성냥을 손에 쥐어 본 아이는 스냅으로 발생한 불꽃에 놀라 기겁하며 막 타오르는 성냥을 던져버렸다. 불을 처음으로 마주한 인류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아무튼, 성냥 1개비가 누구도 건들지 못한다는 중2를 벌벌 떨게 했다. 이것이 경험 없는 본능의 문제였다면, 경험을 쌓지 못한 이성의 문제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연료를 만들도록 나무젓가락 뭉치를 던져 주었더니 하나씩 토막 내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꺾겠다고 낑낑댄다. 하나씩 꺾기가 쉽다는 것은 알지만 오랜 시간 같은 노동을 반복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캔 스토브에 들어가는 나무젓가락은 대략 14개 정도로 이등분 하는 데 1분이면 충분하다. 어른과 아이의 경험치가 만든 시간의 상대성을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이때 내가 취한 처방전은 좀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무젓가락은 치워 없앴고, 각목과 도끼날을 던져놓고 장작을 쪼개서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이들은 새로운 도구에 관심을 보였지만, 이내 한숨이 많아졌다. 육체노동을 벗어나고 싶은 한 아이는 새로운 연료라며 한 봉지의 뭔가를 들고 나타났다. 그것은 목공실에서 가져온 톱밥이었다. 그러나 톱밥은 불씨는 옮겨도 불타지는 않는다는 문제점 때문에 연료가 되지 못한다.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문제점을 들고 왔지만, 대책은 되지 못했다. 일이 여기서 끝났다면, 아이는 프로그램의 동력을 잃어버려 겉돌게 되었을 것이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이 대화를 엿듣게 된 다른 선생님이 해결책을 던져주었다. 톱밥을 뭉쳐 다시 나무화하는 방법이었다. 점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고안해 낸 것은 놀랍게도 햇반이었다. 아이가 만든 문제 하나를 놓고 두 선생의 대화는 만리장성 축조 시에 쌀과 석회가 혼합된 반죽이 쓰였다는 역사까지 논의하게 되었고, 아이는 신나서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제2막이 열린 것이다. 점입가경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수업 풍경 아니 무대가 바뀌었다. 절구통에서 햇반을 찧는 아이와 오순도순 모여앉아 톱밥 동그랑땡을 만드는 아이들 그리고 커다란 접시에 톱밥 동그랑땡을 담아서 전자레인지에 구워 말리는 아이로 역할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반복적인 육체노동을 꺼리던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가내수공업의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이 오래 간 것은 아니다. 생각만큼 그렇게 재미난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아이들은 이제 불장난이 자연스러워졌다. 그 모습은 불에 익숙해진 듯 보였고,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벼운 휴지를 태우면 불꽃이 불새처럼 날아다닌다고 좋아했고, 스토브 불이 꺼지면서 발생하는 연기를 주사기로 빨아들여서 밀도 높은 연기 방귀를 뿜어내며 놀았다. 이런 풍경은 내가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그림이다. 나는 어느 순간 선생이 아니게 되었다. 함께 화장실 휴지를 다량으로 훔쳤고 함께 도망쳐 달렸다. 연기가 많이 나도록 일부러 불을 꺼뜨려 주었으며, 더 큰 주사기를 사다 줬다. 수업의 목적은 사라졌고 불놀이만 남았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이날은 송진 덩어리를 녹여서 젓가락 횃불을 만들어 놀고 있었다. 선생들은 멀리 있었고, 아이들은 불의 마법에 걸려 불꽃의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연소 실험을 하는 장소에는 초기 점화를 유도하는 착화제로 알코올이 상비되어 있었는데, 한 아이가 알코올을 조금만 붓는다는 것이 그만 쏟아버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불의 덩치는 엄청나게 커졌고 당황한 아이는 불을 제압하겠다고 엉겁결에 대팻밥 더미를 쏟아버렸다. 실수는 언제나 또 다른 실수를 불러들인다. 이제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넓게 번졌고, 아이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불은 손쉽게 진압되었다. 사실 불은 크게 나지 않았다. 반경 50cm 정도 안팎에서 타올랐을 뿐이다. 그러나 사건 안에 있던 아이와 사건 밖에 있었던 어른의 체감은 매우 큰 차이가 났다. 방화를 저지른 아이는 엄청난 충격에 빠져 멍한 상태로 콘프라이트를 한 움큼씩 폭풍 흡입하길 반복했다. 공동 책임을 물어 다 함께 청소를 하면서는 재를 쓰레기봉투에 담았다가 비닐이 뚫리고 연기가 발생하는 2차 방화사건이 추가로 일어났다. 이제 다시 불은 무서운 것이 되었다. 그리고 불과 가연성 물질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이는 쭈뼛거리며 다가와 정중히 사과했고, 나는 내가 유년에 저지른 더 큰 사건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어제의 기억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그림일기로 토해놓으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다고 꼬드긴 것이다. 남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 중에 죄의식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건을 무용담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조만간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시도하지 못한 금기를 깨뜨린 아방가르드로 변신할 것이다. 아이들의 모험심은 울타리 밖을 넘볼 때 부풀고 어른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성장하는 법이다. 나는 아이의 과장법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이 사건은 아이에게 소중한 경험적 사유로 오랫동안 몸에 기억될 것이다. 왜냐하면, 고개 숙여 사죄하는 반성적 태도를 드러냈다는 것은 몸속에 자리한 기억이 괴로워서 취하는 행동패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발적 행동에 대한 자책과 친구들의 나무라는 시선이 뒤엉켜 심리적 타격과 정신적 충격이 몸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은 것이다. 만약 평소의 불장난처럼 놀이의 차원에서 끝났다면, 아마도 단순 체험이 되어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낯선 체험은 결코 몸에 머물지 못한다.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성과 능숙함을 필요로 한다. 


매끄러운 프로그램은 의심스럽다

 프로그램이 매끄럽게 진행된다는 것은 강사가 잘 가르친다는 것으로 회자되곤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현장 컨트롤과 템포 조절 능력이 좋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의심을 던져본다. 참여율과 집중도가 높은 프로그램들은 아이들 개개인의 속도 차이를 어떻게 좁혀 놓을 수 있었을까. 럭비공처럼 돌출행동과 이상기류를 만들어 내는 아이들을 어떻게 잠재우고 동참시킬 수 있었을까. 어느 현장에나 무관심한 아이, 삐딱한 아이, 되바라진 아이, 그냥 놀고 싶은 아이 등등 개성 강한 아이들이 포진되어있었을 텐데 어떻게 하나의 관심으로 상황을 몰아갈 수 있었을까. 아이들의 목적과 강사의 목적이 다를진대 어떻게 아이들은 집단 최면에 빠져든 것일까. 이런 현상은 몸을 쓰는 프로그램에서만 일어나는 괴현상일까. 일정한 수준을 끌어내야 다음 과정을 만들어 낼 수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억제력을 발휘해야 하는 장르의 특수성 말이다. 아니면 집단행동이기 때문에 홀로 딴짓을 하기가 뻘쭘해서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는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일까. 

 실상 프로그램이 도달하려는 지점은 아이들에게 흥밋거리도 되지 못한다. 한동안 나는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으며, 이런저런 방법적 시도들은 전부 구겨져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그래서 이념적 가치는 아이들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포기해야 하는 영역으로 다가왔다. 왜 하는지에 대한 진지함의 결핍으로 표면을 훑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목 넘김이 불편해도 아이들이 외치는 그냥주의에 편승하여 타협할 도리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손 들고 한 발 물러서니 나의 강박 때문에 시야가 좁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예술교육의 여정은 쳇바퀴 운동도 아니고 패키지여행도 아니었다. 주입한다고 흡수되는 백신이 아니었다. 예측한다고 계산되는 것이 아니었다. 코스모스가 아니고 카오스로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이었다. 의미 덩어리를 만들어 놓고 함께 뜯어 먹으며 살찌우는 것이 아니라 더듬어 가며 만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해하게 되었다.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것과 엘리스처럼 토끼굴에 빠진다는 말들이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새로움이라는 속성이 얼마나 우연성에 의지하고 있는지를. 담벼락의 개구멍이 활로가 되어 숨통이 트인다는 것을. 빈틈의 중요성을.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두통의 묘약은 허탈하지만, 아이들의 무목적성과 불확정성에 있었다. 아이들은 재미를 쫓는 루덴스에 가깝지 생각하는 사피엔스와는 거리를 둔다. 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관심은 언제나 프로그램 주변을 맴돈다. 잠깐 흥미를 보이다가도 금세 딴짓을 일삼는다. 프로그램의 가치와 의미론 같은 어려운 얘기는 어른들의 합의일 뿐 아이들은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예술 강사의 제안과 부모의 선택 그리고 재단의 심의와 지원 및 평가는 모두 어른 간의 합의다. 아이들의 의견과 취향 그리고 욕망은 언제나 빠져있다. 이것이 우리 어른들의 착각이며 간과하고 있는 팩트다. 우리의 아이들은 자신이 왜 배우는지도 모른 채 부모의 손에 끌려와 주어진 예술 활동을 해야 하는 난감한 상태에 빠져 건성건성 하곤 한다. 혹시 아이들은 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야만 하는 연극적 몸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깊이 배울 마음이 애당초 없었기 때문에 얕게 발을 담그는 것으로 아이의 방어기제가 작동되고 있다면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은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간혹 가다 한 번 해봤다고 으스대며 허세를 부리는 아이들도 있다. 마치 겉 담배를 피우며 건들거리듯이 체험은 가오를 잡는 빌미까지 제공하고 있다. 만약에 체험을 위한 체험이 아니라 체험을 경험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사용한다면, 이것은 필요한 과정이 될 테고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은 토양의 사회

 떠나고 있다. 예술 강사들도 떠나고, 행정 요원들도 떠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에 숙련된 사람들의 이탈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뿌리를 깊이 내렸음에도 버티질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체험주의(비정규직 시스템)는 뿌리내린 사람이 거목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깊고 높은 경지로 다다를 수 없다. 고도를 기다리는 어리석음처럼 하향평준화의 추세는 이제 사회 전반에 퍼진 만성피로증후군이 되었다. 모두가 체험 직업군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풍파에 휩쓸리는 것인지 자율적 의지의 표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손발을 좀 맞췄다 싶은 요원들의 품귀현상은 씁쓰름하고도 허무하며 애잔한 술잔을 기울이게 한다. 좋은 요원이 좋은 강사를 만드는 법이다. 믿을만한 요원과 특이한 강사는 상호이익을 받으면서 같은 토양에 생식해 있는 공생재배 작물과 닮아있다. 혼작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서로 간에 생육을 촉진해주고 병해충의 침입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해 주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지금의 비정착지대에서는 유목민이 아니라 떠돌이 난민으로 튕겨 나가고 있으므로 서로를 돌볼 여지가 없다.


동일한 패턴으로 훼손된 고유성

 어떤 컨설팅 위원은 모순감정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더 나은 프로그램을 안착시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길잡이 역할을 해왔는데, 도달한 지점에서 다름과 차이가 밋밋한 상태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산을 열심히 올라서 한숨 돌리고 둘러보니 고지가 아니라 평지를 만났으니 얼마나 당혹스럽겠는가. 이와 유사한 그림이 있다. 시골이 도시 풍경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프렌차이즈와 벤치마킹으로 편리성을 갖추게 되었지만, 다양성은 사라지고 있다. 세상은 점점 구별 짓기가 어려운 동일성으로 세팅되고 있다. 고유한 맛과 개별적인 멋은 중화되고 표준화와 동질화로 뭉뚱그려져 모두가 친인척 관계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처음 보는 것도 어디서 본 듯한 분열-착란증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좋은 것을 나눠 먹고 함께 성장하다 보니 체형과 기질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체험 자체의 얕은수가 아니라 비슷한 체험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갇힌 우리의 모든 것을 걱정해야 한다.


지지봄봄
22호 곁봄 | 칼럼
문화의 생산 주체로서의 예술 교육
박도빈 /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 공동대표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은 문화예술을 매개로 일상을 나누며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문화예술 단체이자 플랫폼이다. 6년째 다양한 형태의 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예술 전공자나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구성원이 별로 없다. 종종 지원사업의 심사과정에서 전문성과 역량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예술 활동 경험이 별로 없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날 때 매개자 역할을 하는 데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서 좋은 편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주목받는 예술 교육에서의 경험은 예술은 잘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잘해야만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좋아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은 아닌데, 여전히 많은 예술 교육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배우고 성장하는데 있는 듯하다. 전업 예술가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예술을 좋아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예술 교육이 예술을 매개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을까. 

 동네형들은 그동안 나름대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하게 진행해 왔지만 정작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본인들의 활동을 예술 교육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연습이 아닌, 예술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활동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듯이, 누구나 일상적으로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예술을 상상한다. 그래서 철가방을 들고 학교로 간다. 




 
 학교 벽화는 주로 예술가를 섭외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제작한다. 하지만 정작 그 공간을 이용하는 학생들에게는 누군가가 그려준 아름다운 그림일 뿐, 별다른 의미가 없다. <<찾아가는 예술 철가방>> 은 참여자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장면을 몸으로 표현하여 시트지로 벽화를 제작한다. 주로 농어촌 소재의 작은 학교들을 찾아가다 보니 전교생 30명 정도의 모든 아이의 모습이 학교 공간 곳곳에 남겨진다. 서로 몸을 대고 그려주면 되니 그림을 잘 그릴 필요가 없고 간단한 칼질 후 배경을 떼어내면 작품이 만들어진다. 

 처음 학교에 도착해서 철가방에 담긴 시트지와 짬뽕 그릇에 담긴 커터칼을 꺼내며 우리는 지금부터 벽화를 만들 예정이고, 우리는 모두 예술가가 될 것이라 하면 아이들은 웃는다. 여러 명의 강사가 소규모 그룹별로 수업을 진행하지만, 기본적인 설명 외에 별다른 개입은 하지 않는다. 미술 수업과는 다르게 눈치 볼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재미없는 학교 공간에 낙서할 기회를 얻은 아이들은 마음껏 떠들고 상상하며 고민한다. 예술적인 재능이나 기술이 필요 없는 간단한 작업 방법은 모든 아이가 최대한 자신의 감각과 표현에 집중하며 능동적으로 작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공간이 아이들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바뀌고, 아이들의 이야기는 작품이 되어 공유된다. 예술가로서의 경험으로 부족함이 없다.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 동네로 나가면 더욱 자유로운 작품이 가능하다. 익숙한 골목과 건물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많은 공간과 사물을 발견하고 자세히 관찰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영국의 작가 뱅크시(Banksy)처럼 그래피티로 작업하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으니 동작을 사진으로 찍어 시트지에 출력해 오리거나, 그냥 잘라서 붙인다. 작품 설치 후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깐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모습에 아이들이 즐거워한다. 공간뿐 아니라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경험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예술 프로그램은 주로 창작 자체의 즐거움에 집중하지만, 청년의 경우에는 주로 일상의 고민을 나누는 과정을 충분히 가지는 편이다. 이러한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보통 청년으로 살아가는데 예술씩이나 하고 살기에는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고, 예술 교육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서로 공감받고 위안을 얻는 데 있어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 뜨거운 이슈였던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자들과의 예술 워크숍은 정책과 지원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다양하고 개별적인 문제들을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이었다. 자신의 일상적인 고민이 여러 사람에게 공감되는 순간, 그 고민은 작품이 되었다. 매일 같이 쓰는 자기소개서에 절대 쓸 수 없는 단어가 자신의 ‘꿈’이라는 것을 알고 ‘꿈’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도록 자판을 뽑아버린 키보드는 전시회에서도 취업준비생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고, 어렸을 때부터 연주하던 첼로를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용기를 내 마련한 첼로의 장례식에는 여러 청년이 함께 향과 국화를 올렸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무 명 넘는 청년들의 내적 변화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시를 마무리한 후의 소감에는 왠지 모를 후련함이 느껴졌다. 그들이 전시한 작품은 어쩌면 불합리한 세상에 내지르는 큰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희망두배 청년통장 참여자들과는 예술을 주제로 8개월간의 모임을 운영했는데, 그 과정이 여느 예술 교육 과정보다 좋았다. 모임 활동이다 보니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모임 지기를 담당하여 활동을 제안하고 결정하여 준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초반의 활동 내용은 주로 공연, 전시 관람이나 악기를 배우기, 축제 참여 등 일반적인 예술 체험 정도였으나 모임의 경험이 누적되고 서로 간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외부 활동보다는 오히려 모임 내적으로 공동체 영화 상영과 토론, 스터디 등 놀자고 만든 모임이 서로 배움의 장이 되어버렸다. 시작부터 전시 개최를 목표로 시작한 모임이긴 하지만 참여자들 대부분 예술 활동의 경험이 없는 상황이라 전시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전시 공간까지 새로 빌려 전시를 개최하였다. 

 때로는 좋은 정책이나 지원보다 공통된 관심사 하나가 좋은 복지가 될 수 있다. 그냥 예술에 관심이 있어 모인 사람들에게 예술 활동은 새로운 관계를 생산하는 매개가 되었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친구이자 난생처음 함께 전시한 동료 작가가 되었다. 이 모임은 10월에 공식적인 활동을 종료했지만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내년에도 지속할 것이라 한다. 

 예술 교육에서의 경험이 자신 일상과 주변을 변화시킨다고 느낄 때, 참여자는 생산의 주체가 된다. 그것이 공간이든 사람이든 내면이든 혹은 관계이든. 예술이 변화시킬 수 있는 일상의 영역은 훨씬 더 다양하고 섬세할 것이다. 예술 교육을 계속 규정하고 정의할 것이 아니라 예술 교육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고 예술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현장들로 확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처음 밝혔듯이 동네형들에는 예술 전공자가 없지만 해마다 몇 번씩은 함께 전시에 참여한다. 그동안 진행해왔던 예술 교육의 성과와 가치, 한계를 스스로 객관화하여 말하기에도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계속해서 우리만의 예술 교육을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 우리 스스로가 매개자이자 참여자이고,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지지봄봄
22호 곁봄 | 칼럼
플럭서스에서 배우다
구정화 / 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


경험으로서 예술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은 산업현장과 더불어 교실의 모습을 바꾸어왔으며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화두인 오늘날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미래학자는 향후 소멸할 몇 개의 키워드로 학교라는 시스템을 꼽아왔다. 극단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이러한 주장에는 인간이 정보를 습득하는 환경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특히 명시적이고 안정적인 차원의 정보를 주고받았던 20세기와 달리 암묵적 지식의 세계를 향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교육도 큰 변화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암묵적 지식의 세계라는 개념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기술혁명을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거나 새로운 정보 검색을 위해 별도의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일단 먼저 사용해 본 후 오류를 수정하면서 암묵적으로 연결해보는 과정을 거쳐 사용법을 흡수한다. 유사해 보이는 것을 연결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동원해가며 기존의 지식을 수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습득되는 지식은 개인의 경험과 실험에 의해 흡수되기 때문에 교사의 일방적인 전달만으로는 배움이 가능하지 않다. 또한, 우리의 감각을 통해 신체에서 학습이 일어나기에 두뇌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인지적 과정과 더불어 경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명시적 지식의 전달이 무의미해진 지금의 교육 현장에서는 교사가 가르치지 않아도 학생은 스스로 배울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미래 교육에서는 참여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며 배운다. 암기를 통해 자신의 배움을 증명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미지의 것을 알아가면서 좀 더 좋은 질문을 통해 지속해서 배움을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질문과 탐구, 열정, 기질, 그리고 공동체라는 환경이 된다.[각주:1] 이처럼 감각을 열게 하는 경험과 질문, 탐구를 강조하는 교수법은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체험학습, ‘통합교육’의 이름으로 실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교육 예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새롭게 주목받아 왔다. 

 교육 예술은 인간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창조적 활동으로서 예술을 간주하고 그 교육적 의미를 새롭게 정립한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에서 시작되었다. 듀이는 예술을 수단화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예술이 인간의 일상으로 복귀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이 막 분화를 마치던 시기에 오히려 그는 예술과 삶의 통합을 이야기하며 ‘경험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였다. 그가 볼 때 일상의 경험은 인간이 한 생명체로서 환경과 맺는 상호작용이며 세계와의 능동적이고 활발한 교섭을 의미한다. 이것이 결국에는 예술의 근원이자 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듀이는 일상을 구성하는 아주 작은 경험이라도 일정한 리듬으로 구성되면 미적 경험으로 전환된다고 보았다. 즉 일상의 경험은 일정한 리듬을 갖게 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며 이러한 리듬감의 회복이야 말로 삶과 예술의 중요한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듀이는 기존 예술 개념을 넘어서는 예술의 교육학적 전망을 제시하면서 삶과 예술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발견해내었다. 듀이가 주장한 ‘경험으로서의 예술’은 이후 플럭서스 예술가들에 의해 구현되었고 예술사적으로 저평가된 플럭서스 예술을 교육 예술의 맥락에서 재규정하는 작업도 현재 진행되고 있다. [각주:2]


실패를 배우다

 20세기 예술사에서 가장 독특한 활동을 한 괴짜들의 집단인 플럭서스는 1960년대를 전후하여 유럽과 미국에서 결성된 다국적의 젊은 예술가 그룹이다. 플럭서스(Fluxus)라는 용어는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1931∼1978)가 1961년에 만든 것으로 라틴어의 ‘fluere’에서 유래한다. 흐르다, 혹은 흐르는 상태를 의미하는 플럭서스는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경계에서 활동하던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예술가 그룹의 특성을 잘 대변해준다. 마키우나스를 비롯한 백남준(Nam June Paik, 1932∼2006), 오노 요코(小野洋子, 1933∼), 딕 히긴스(Dick Higgins,1938∼1998), 시게코 쿠보타(久保田 成子,1937∼2015), 조지 브레히트((George Brecht,1926∼2008), 앨리슨 놀즈(Alison knowles,1933∼) 등의 플럭서스 작가들은 플럭서스가 어떤 하나의 예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태도이자 정신이 되길 바랐고 일상에서 예술적 경험을 발견하고 조직하고자 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에 의해 구체화된 ‘경험으로서의 예술’은 존 듀이에서 존 케이지로 이어지는 20세기 중반 미국의 자유로운 실험학교의 학풍에서 기원하며 근본적으로는 창의성과 자발성을 담보한 창조적 시민이라고 하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연결되어 있다.[각주:3] 일방적이고 단일한 정보의 전달에 도전하는 것은 단지 참정권의 획득과 같은 정치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정보가 생산되는 모든 곳에, 소통이 필요한 모든 자들에게 국면의 전환이 요구되었고 예술가들 중 가장 먼저 응답하고 실천한 자들이 바로 플럭서스 작가들이었다. 

 예술에 대한 개방성과 반예술적인 태도로 인해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매체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예술이 음악, 공연, 춤, 문학이 동시에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각 장르가 섞여 있는 형태를 딕 히긴스는 인터미디어라는 개념으로 총괄하였다.[각주:4] 이벤트, 플럭서스 키트, 메일아트, 게임아트와 같은 플럭서스 예술 형태들은 모두 이러한 미학적 실험때문에 탄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플럭서스는 육체가 어떻게 감각과 지식을 총합하여 표현할 수 있는 지에 관심을 가졌으며 인간 신체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의미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각주:5] 

 플럭서스 이벤트는 미국의 블랙마운틴 칼리지(Black Mountain College, 1948년과 1952년의 여름학기)와 신사회연구소(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1958-1960)에서 있었던 존 케이지의 실험적인 강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각주:6]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분위기는 기술적이거나 유형적인 접근보다는 역사적이고 실험적인 접근을 통해 예술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실패하는 것이 교육의 한 과정처럼 다루어지는 분위기였다고 한다.[각주:7] 케이지는 1952년 블랙마운틴 칼리지에서 있었던 자신의 수업에서 우연성의 미학에 근거해 작가의 의도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일상의 반복적 행위를 동시간대에 펼쳐놓는 행위를 기획하였다. 케이지가 ‘협동 행동’ 혹은 ‘동시적 이벤트들의 자율적 습성’이라고 명명한 이러한 활동은 훗날 플럭서스 이벤트의 출발점이 되었다. [각주:8]케이지에 의해 시작된 이벤트는 일상에서의 미적 경험을 위한 것으로 일상의 행위에 리듬감을 부여해 의미를 만드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임을 보여준다. 

관계를 엮어 리듬을 부여하다

 플럭서스 이벤트에서 예술가는 관객과 평등한 관계 속에서 경험을 만들어간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어떤 변화를 이루어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의 교류를 통해 관객이 일상에 대해 강화된 의식을 갖도록 했다. 또한, 관객이 반드시 그 장소에 있지 않아도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지리적, 공간적, 언어적 경계를 뛰어넘은 사회적 소통의 공간을 창출하였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플럭서스 작가들은 전 세계에 분포하면서 이동하였고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을 했다. 이들은 화랑이나 미술관뿐만 아니라 모든 공간을 이벤트가 벌어질 수 있는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차용한 재료와 언어를 사용하였다. 인터미디어라고 총칭되는 플럭서스의 독특한 방법론은 결과적으로 재료나 기술에의 충실함을 넘어서 예술의 평준화를 지향하였다. 이는 예술을 더욱 접근 가능하고 민주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기인한다. 

 결과적으로 플럭서스 퍼포먼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객 혹은 참여자와의 상호작용이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정보의 조직과 매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플럭서스 퍼포먼스로 통칭하는 이러한 예술 경험에는 사물과 사람(관객), 그리고 그사이를 매개하는 행위가 늘 상정되었다. 플럭서스 작가들은 의미를 생산하는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더 나아가 그 의미의 수신자와 발신자의 관계를 바꾸어보고자 했고, 관객이 작가가 제공하는 정보를 뛰어넘어 자신의 눈과 귀로 느끼며 수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플럭서스 예술에서 행위는 환경에서 받아들인 자극에 대한 반응이자 정신적 활동으로서의 지식이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경험을 재조직할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은 어떤 의미에서 한 사람의 일생을 따라 계속적으로 시간과 장소의 재정의를 유도하면서 배움의 과정을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존 듀이가 말했던 것처럼 배움이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삶의 가치와 소통하고 그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예술 작품이 개인들이 삶에서 공유할 수 있는 가장 내밀하고 생기 넘치는 보조수단이 될 거라고 믿었다.[각주:9] 

 ‘경험으로서의 예술’은 환경 속에 존재하는(살아가는) 인간의 창조적 활동으로 예술을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분리되어 있던 예술과 삶의 관계를 접합하고자 한다. 플럭서스 예술이 다장르적이고 총체적이며 수행적인 특징을 갖는 데에는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어떤 하나의 경험으로 예술을 재규정하고, 그 경험을 창조하는 자로서 예술가를 새롭게 배치하였기 때문이다.[각주:10] 이들이 창조한 예술가는 고립된 일상의 경험에 리듬을 부여함으로써 연속적이고 생기 있는 삶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매개자이자 관계의 조직가이다. 

(이 글은 필자의 글 「러닝머신」 (백남준아트센터, 2013)의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1. 더글러스 토머스, 존 실리 브라운, 『공부하는 사람들』,서울, 라이팅하우스, 2013, p.103∼121. [본문으로]
  2. 한나 히긴스는 플럭서스의 예술형태가 갖는 교육적 의미를 존 듀이에서부터 시작되는 경험하는 예술의 교육철학과 연결하여 플럭서스 페다고지로 재해석하고 있다. Hannah Higgins, Fluxus Experienc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크레이그 세이퍼는 ‘플럭서스 실험실’이라는 개념 속에서 실험적인 학교로서의 플럭서스 예술 운동에 주목한다. Craig Saper, “Fluxus as a Laboratory”, The Fluxus Reader, Ken Friedmen ed., London, Academy Editions, 1999. [본문으로]
  3. Craig Saper, “Fluxus as a Laboratory”, The Fluxus Reader, Ken Friedmen ed., London, Academy Editions, 1999, P.138 [본문으로]
  4. Astrit Schmit-Burkhardt, Maciunas’s Learning Machines From Art History to a Chronology of Fluxus, The Gilbert and Lila Silverman Fluxus Collection, Detriot, 2003, P.9 [본문으로]
  5. Kristine Stiles, “Between Water and stone”, IN THE SPIRIT OF FLUXUS, Waker Art Center, Minneapolis Minnesota, 1993, pp.94∼95. [본문으로]
  6. 블랙 마운틴 칼리지는 1933년 설립, 1956년 폐교된 학교로 존 케이지와 머스 커닝엄, 조셉 알버스 등의 예술가들이 교수로 있으면서 실험적인 교육 방식을 통해 미국 현대예술에서 주요한 예술가들을 배출하였다. 순수 예술은 물론 무용가와 작곡가, 시인, 극작가와 음악인들이 몰려들었다. Martin Duberman, Black Mountain: An Exploration in Community, New York, Dutton, 1972 [본문으로]
  7. 학교가 폐쇄된 후에도 존 케이지와 머스 커닝엄, MC 리차드 등의 교사들은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강의를 지속하였다. Craig Saper, ibid , P.138 [본문으로]
  8. 학생들이 모인 구내식당에는 저녁 식사 후 케이지와 동료들이 의자를 모아 두었고 의자 위에는 하얀색 컵이 한 개씩 놓였다. 케이지는 계단 위에 올라서서 강의를 시작했고, 커닝햄은 통로에 작은 개를 풀어두고 솔로 안무를 선보였다. 튜더는 케이지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으며 찰스 올슨(Charles Olson)과 메리 캐롤린 리차드(Mary Caroline Richards)는 시를 낭독했다. 라우셴버그와 케이지는 확성기가 달린 구식 빅터 축음기(Victrola)에 오래되고 잡음이 심하게 섞인 음악을 틀었다. 이 시연은 의자 위에 놓인 하얀 컵에 하나씩 커피를 채우면서 한 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Tomkins, Calvin. Off the Wall : A Portrait of Robert Rauschenberg, Picador, 2005, p.68. [본문으로]
  9. Dewey, Art as Experience, New York:Milton Balch, 1934,p.334; Hannah Higgins, Fluxus Experience,,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P.208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0. Hannah Higgins, “Teaching and Learning as Art Forms : Toward a Fluxus-Inspired Pedagogy”, Fluxus Experienc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pp.188∼189 [본문으로]
지지봄봄
21호 곁봄 | 칼럼
코칭으로서 교육과 진리 생산공동체로서 학교
함돈균 / 문학평론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우리가 엄두를 못 내는 경우, 그 이유는 문제를 한꺼번에 전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문제의 파악은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시야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문제의 풀이는 정교하고 구체적이며 부분적인 방식으로 출발해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라도 쥐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자. 한국 사회에서 교육 문제는 지극히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로서 인식되는 대표적인 문제다. 개인의 생존과 사회재생산의 차원이 얽혀 온갖 사회 모순의 응축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 문제의 핵심을 커다란 사회구조적 차원으로 접근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실사구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한국 교육 문제의 해법을 사람과 사람, 스승과 배우미가 만나 이루어지는 교육 현장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방법론의 혁신이 교육개혁의 핵심과도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처럼 ‘입시교육’을 교육의 유일한 본질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사회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교육구국’이라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지만, 한국 사회의 교육이 실패한 교육이며, 교육이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문제 그 자체가 되었다는 사실 역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아마 이 문제 인식의 지점은 교육현장, 즉 학교가 실패하는 지점과도 매우 밀접하게 닿아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현장은 의무교육 과정인 초·중등학교부터 보다 전문적인 성인교육의 일환이라고 할 대학교까지 교실의 풍경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기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방법론적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이 문제점을 잘 인지해 오면서도 달리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하는 식의 자포자기적인 회의론에 빠져 이 관성적 체제를 유지해왔는지도 모른다. 배우는 이의 주체성을 철저히 억압하고 자율성을 전혀 키우지 못하는 ‘타율교육’이 그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교육 행위 자체가 인간을 스스로 서게 하는 성장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주체성의 억압과 자율성의 부재에 기초한 교육방법론에 과연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일까. 푸코나 부르디외 같은 사회철학자들의 관점을 빌리자면, 현행 한국의 교육-학교제도는 감옥이나 병영 시스템 비슷한 사회규율적 신체 만들기 프로그램이나 상징자본 획득을 위한 구별짓기의 장(場, field)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교육방법론 차원에서 보자면, 즉 교사와 배우미라는 두 주체 간의 지식이 교환과 의사소통 방식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의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주체들 간의 분명한 위계적인 차이를 전제로 한 일방형/수동형/결과중심형/정보형 지식전달 행위라고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이미 획득한 정보를 소유한 교사가 학생에 대해 인격적 우위를 전제한 채, 교사-교수의 고정된 식견이 ‘학생’이라는 교육 현장의 또 다른 존재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된다. 교사-교수의 지식은 지식의 위상이나 권위나 가치에 변화가 없이 정보-물건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상호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없는 위계구조 속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소통이 아니라 물건의 ‘배달’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 위계적 지식은 배달이 잘 이루어졌는지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역시 사물화되고 관료주의적인 형태의 확인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의 시험제도이며, 이 배달 확인에 따른 상벌체제를 사회적으로 확고하게 제도화한 절차가 바로 ‘(대학)입시’다.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정보-지식의 교환체제가 갖는 일방성이 대단히 놀라운 것은 ‘학교’라고 불리는 현장에서 학생을 정보-전달의 확인 대상이자 수신처로만 간주할 뿐, 그들도 ‘살아 있는’ 존재이며 따라서 그들 역시 지식의 중요한 생산자이자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배우는 이들이 ‘주체’로서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서 인식되지도 않으며, 이에 따라 행위의 독립성이나 생각의 자율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교수를 통해 전달되는 택배형 정보는 이미 완성된 기존 결과물의 송신에 불과하므로,  여기에서 배우는 이들의 성장을 위한 혹은 그들이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공동지식의 생산과정은 교육 행위의 주된 관심 사항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얼굴을 대면하며 말과 생각을 주고받는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이토록 일방적이며 위계적이며 결과중심적인 행위-상벌체계가 제도적으로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었을까. 이 현장에서 배우는 이들이 가진 생각과 감각과 의견과 재능이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의 ‘성장’은 학교의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그는 ‘정보-물건’의 배달을 받는 사물화된 송신처·주소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형적인 학교에서, 교실에서, 대학의 학과에서, 심지어는 전문적인 식견을 지닌 소수의 연구자를 키워내는 대학원에서조차 교사-교수는 배움의 주체가 되는 학생들이 어떤 생각-재능을 가지고 있는지에 특별한 관심이 없으며, 그 존재를 동등한 대화의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다. 한국의 학교에서 학생들도 진리의 도정에 참여하는 공동 주체라는 인식, 생각의 협업을 위한 파트너라는 인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일방적인 정보 전달형 교육 시스템에 근거한 사회가 불행히도, 아니 매우 다행히도, ‘종말’의 시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지식의 유형과 지식유통의 형태 자체가 유동적이며 혁명적으로 변화되는 문명의 전환점에서 교육의 위기는 학생의 위기 이전에 유감스럽게도 교사-교수-학교, 기존 정보-지식 전달자의 위기로 먼저 다가오고 있다. 사물화된 지식은 이제 그들-그곳으로부터 굳이 비싼 수업료와 시간을 써가며 습득될 필요가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동적 세계, 불확실성의 세계, 테크놀로지 혁명의 분기점에서 인간의 지식은 개별화되고 다양화되며 비가시적인 차원의 잠재적 능력의 원천으로서 다시 인식되어야 할 필요성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다. 

 

  교사-교수가 정보 전달의 유일한 원천 소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문명론적 차원에서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환상이다. 국가가 정형화된 지식의 소스를 제공하고 검열하며 그에 맞는 획일화된 기준을 가진 검열-상벌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철지난 망상이다. 교육 현장의 방법론 차원에서 보자면, 이것은 종래 ‘피교육자’로 간주한 학생을 진정한 주체로 간주하고, 학교 현장을 정보-지식-진리의 공동 생산 과정으로 여기는 인식론적 대전환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 전환을 ‘공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학교는 그 자체로 창조성을 생산하는 ‘생각-디자인랩(design lab)’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지식의 원천, 창조적 사유의 근거가 교사-교수-학교-사회가 아니라 배우는 이들에게 있다는 180도 프레임 전환이 요구되며, 교사-교수와 학생은 그 장에서 동등한 대화자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배우는 이들은 학생인 동시에 지식의 생산자일 수 있으며, 교사-교수 역시 교육 현장에서 배우는 이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져야만 한다. 교육은 학생 개인의 고유한 가능성을 꽃피우고 그 삶의 잠재적 행로를 창의적이고 주체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모두에게 똑같은 사회적 행로를 강요하고 그 길에서 이탈하는 것을 겁주어 온 군중교육, n+1의 기성품을 생산하는 교육이 아니라, 개인의 잠재성을 통해 그를 유일한 하나(the One)로 가이드해주는 살아 있는 교육의 길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교육은 에듀케이션(education)이라는 추상화된 사회적 제도로 이해되기보다는 ‘배움(learning)’이라는 차원에서 재인식되어야 하고, 교육현장의 방법론은 티칭(teaching)이 아니라 ‘코칭(coaching)’이라는 차원으로 시급히 대전환될 필요가 있다.

 

   최근에 필자가 스탠포드대학의 교육공학자 폴김 교수와 함께 낸 교육대화집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세종서적 2017)에서 폴김 교수는 코칭을 ‘교실은 농구팀이다’라는 비유로 제시했다. 폴김 교수는 본인이 수업을 하면서 교사-교수를 ‘교육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농구팀의 코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이 가능하려면 학교-교실의 주인을 ‘정말로’ 학생으로 여겨야 한다. 필드에서 뛰는 것은 학생이다. 그들이 재미있게 게임을 즐기고 즐거운 ‘승리’를 할 수 있으려면, 교사-교수는 그들의 각기 다른 재능과 능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코칭’을 해야 한다. ‘코칭’은 획일적이고 고형화되어 있으며 위계를 갖춘 정보-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스스로 재능을 꽃피우는 데 필요한 유연하고 순발력 있는 코멘트이며, 상황에 맞는 대화이며, 개별적인 관심 속에서 진행되는 진정한 멘토링이다. 폴김 교수는 이 책에서 ‘좋은 스승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을 했는데, 왜냐하면 가르칠수록 학생은 스스로 생각하며 문제를 찾고 해결해 나갈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식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 자체가 변화하며, 정보 그 차제보다도 지식의 가공·배치와 적용·실천이 훨씬 더 중요한 상황이 된 지금 시대에 매우 적실한 방법론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이는 교육 현장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배움은 단순하고 무차별적인 차원의 정보 전달이 아니라 교육 주체에게 적절하게 스미는 창조적인 영감이라는 차원에서도 그렇다.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시대가 임박했다는 문명론적 증후가 여기저기서 암시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정보 능력에 관해서라면 ‘인간교사’는 지식저장-기계를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티칭에서 코칭으로’의 교육방법론적 대전환은 국가가 주도하는 획일적 입시체제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지식생산·소통·유통-검사-상벌체계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다른 이유를 떠나서 교육이 인간의 성장을 돕고 한 인간이 어떠한 타율이나 억압이나 강요 없이 제 삶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문명의 ‘자율주체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코칭의 교육방법론을 가장 탁월하게 실천했던 인물들이 실은 소크라테스나 공자 같은 고대 사회의 현자들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이 즈음의 현실에서도 새삼스레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지식을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제자들과 늘 대화와 문답을 통해 진리생산의 동등한 공동체를 구성했으며, 제자들의 특성에 따라 늘 다른 방식으로 대화했다. 이 스승들은 답하지 않고 주로 물었다. 그들은 자신을 지식을 낳는 산모가 아니라 배우미들의 진리생산을 돕는 ‘산파’로 규정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이 수수께끼처럼 보였던 것도, 공자의 인간다움(仁)에 대한 정의가 그렇게 다양한 것도 모두 그들이 티처(teacher)가 아니라 코치(coach)였기 때문이다.     
 
* 함돈균: 문학평론가이며,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의 공동대표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있다. 인문정신에 스민 공공성과 시민정신을 발굴하고 사회적으로 실천·확산하기 위해 동료 학자·작가들과 함께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을 만들었으며, 시민사회와 대학, 여러 인문예술기관과 공공기관 등에서 다양한 인문예술기획을 설계·제안·실천하고 있다. 문학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2016) 인문철학에세이 『사물의 철학』(2015) 교육대담집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2017) 인문교육강연집 『교사인문학』(공저 2016)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지지봄봄
21호 곁봄 | 칼럼
해외사례로 본 예술교육
남인우 / 극단북새통 예술감독


 필자는 2013년 서울문화재단의 ‘해외 우수 문화예술교육기관 교류사업’ 방문단의 일원으로 유럽 4개국 주요 문화예술교육 관련 기관을 탐방하였다. 영국 런던의 ‘오페라하우스’에서부터 벨기에의 ‘ABC하우스’까지 공공극장의 예술교육에서부터 민간단체의 예술교육 공간까지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예술이 실험과 시도가 다양한 만큼 예술교육도 각국의 특징에 맞게 독특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실험하고 시행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 다양한 방법 속에서 공통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공통점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질적,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예술교육이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예술교육을 대하는 태도 _ ‘예술교육은 학습이 아니라 경험이다’라는 생각과 ‘예술 그 자체가 가진 교육적 가치’에 대한 믿음
 

(출처 : 아난딸로 홈페이지, http://www.annantalo.fi/)

 

 핀란드 헬싱키 시의 초등학생들은 졸업 전에 <2X5>라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반드시 이수해야만 졸업이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은 바로 현재 가장 훌륭한 예술교육 공간과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아난딸로 아트센터(Annatalo Arts Center)’의 대표적인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오직 예술만이 점수 없이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자존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만족감을 준다. 이것은 더 잘 살게 하기 위한 웰빙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아난딸로 창립자인 마리아나 카얀티엔드(Marianna Kajantieand)는 예술교육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린이들이 진짜 예술을 진지하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교육 프로그램에 함께 하는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가들도 어린이들 못지않게 성취감과 자존감, 성장하는 경험을 얻는다고 강조한다. 교육 참여자와 교육자가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훈육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들을 예술의 세계로 인도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동등한 예술가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 설정이 있었다. 

 

(출처 : 아난딸로 홈페이지, http://www.annantalo.fi/)

 즉, 예술교육은  예술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참여자를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예술권력’이라는 부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비평집에서 밝혔듯이, ‘예술은 해석되고 분석해야 하는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하고 나에게서 어떻게 변화가 이루어지는지를 관찰하고 소통하는 직관과 체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예술이 지식의 영역에 있을 때 우리는 예술이 가지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야기할 수 없다. 지식 영역에서의 예술은 우리에게 어떠한 감동도 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해석해야 하는 예술에는 지식 관점의 정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해석할 수 있는 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관의 영역, 경험의 영역으로의 예술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예술을 체험할 때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고 특별한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의 지식이 나에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고가 바로 예술교사의 태도를 전환시켰다.

안내자로서의 예술교사

 예술교사는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예술과 창작의 안내자이며 판을 운영하는 이끔이, 길을 안내하는 셰르파(sherpa) 같은 존재이다. 특히 예술을 지식적 관점이 아닌 체험을 통해서 본인 스스로 경험하고 느껴본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체험으로 가는 통로에 빛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대부분의 예술 교육기관들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예술교사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이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 여정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참여자들과 그 여정에 함께 있었다. 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길에 있는 참여자들이 중요했다. 그 길의 풍경이 참여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참여자들은 어떻게 느낄지 집중하고 충분히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도 그 길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혹은 예술교사로서 그 길에서 스스로 경험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태도는 참여자들에게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예술교사들이 예술가로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했다. 
 
 프랑스도 예술교육, 특히 미적체험에 있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특히 작가의 작업실을 개방하고 그곳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예술교육 방법 중 하나이다. 참여자들은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예술가의 고민의 흔적을 따라간다. 배우고 가르치는 학습의 공간이 아닌, 상상하고 만드는 창작의 공간에서 체험을 하는 것이다. 이곳에는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예술교사 대신 참여자의 창작 활동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과정을 공유하고 싶은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물론, 예술가와 예술교육가는 다른 부분이 있다. 예술가와 예술교육가의 차이가 예술이나 교육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예술을 타인과 공유하는 방식의 차이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해외 예술교육센터들은 예술교사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며, 대부분 예술가들이 예술교사의 특별한 영역을 훈련받는다. 각 센터별로 대부분 각자의 예술교육 방법론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교사 훈련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특히 뉴욕의 링컨센터( Lincoln Center), 영국 런던의 로열오페라하우스(Royal Opera House), 벨기에의 ABC하우스(Art Basics for Children), 덴마크의 댄스 할레(Dance Halle)는 아주 엄격한 방식으로 교육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미적체험 예술교육이 보편화되지도 못했지만, 예술가 스스로도 사실 미적체험을 해본 사람이 별로 없다. 아직까지는 근대적이며 보수적인 방법으로 예술을 교육받고 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예술을 체험하고 느끼기도 전에 예술을 학습했다. 우리 세대의 예술에는 정답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의 변화의 필요성이 일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창작만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를 공유하는 방법이 중요해졌다. 단순히 작품 홍보의 영역이 아니라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 과정을 타인이 경험하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타인과 함께 행위하고 경험하는 것 자체가 예술작품이 되기도 한다. 예술교육은 예술과 분리된 혹은 예술가들과 상관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새로운 영역이 되는 것이다. 
 
 예술교육이야말로 예술가들이 새롭게 자신의 미적체험과 예술적 경험, 창작 과정들을 공유하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유럽의 사례들을 보며 확고히 들었다. 필자 역시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팀원들과 예술교육적 방법으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힘으로 관객과 다시 만난다. 공연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반영하기도 한다. 이것도 하나의 창작 과정이며 결과가 되는 것이다.

예>덴마크 댄스할레   


덴마크 댄스할레에는 무용수 혹은 안무가를 위한 2년 간의 코스워크(course work)를 통해서 예술교육가를 육성한다. 그 다음 예술교육가들은 각 기관이나 학교에 파견된다. 댄스 할레는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예술가에서 예술교육가로 거듭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덴마크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무용수들의 지원이 적었다고 한다. 창작자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부담감,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생각, 무엇보다 그런 일은 한물간 예술가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짙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한다. 그들은 예술교육 과정이 자신들의 창작 과정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경제적인 활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레슨’의 개념이 아닌 현대무용의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이해하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각 지역사회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이슈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으로써의 예술교육 _ 예술교육 방법의 다양성
 
 ‘안나의 집’이라는 뜻의 핀란드의 ‘아난딸로’는 정답이 없는 예술을 경험하면서 참여자 스스로 자신의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고 일상 속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한때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지역의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핀란드 예술교육의 중점이 바로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고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예술교육에 접근하는 벨기에의 ‘ABC하우스’(Art Basics for Children)는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연합(EU) 수도인 브뤼셀의 외진 곳의 폐공장을 수리하여 만든 곳이다. 이곳의 예술교육 감독이며 연극연출가이자 교육철학가인 게르하르트(Gerhard Jager)는 ‘어린이들은 영감을 주고받으며 배운다. 따라서 예술교육이란 어린이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이 환경이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예술교육이란 예술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예술의 힘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열린 상태로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예술교육의 가치와 환경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ABC하우스 프로그램은 5~10명 정도의 소그룹으로 진행되며, 각 그룹들이 서로 열린 공간에서 다른 그룹들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타인과 자신의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한다. 즉, 예술이라고 할 때 빠지기 쉬운 자기중심적, 감정 우선주의를 경계하여 예술 안에서 나와 타인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출처 : ABC하우스 홈페이지, http://www.abc-web.be/)

 

 ABC하우스의 교육과정은 비단 나와 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은 책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단순한 책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섹션이 ‘르네상스’라고 한다면 그 공간에는 르네상스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테이블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의상, 소품, 도자기 등을 다뤄보고 만질 수 있도록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받은 영감을 창조의 과정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창작을 위한 도구들도 놓여 있다. 즉, 책을 통해 영감을 얻고, 예술활동을 통해 다시 책으로 다가가는 상호작용을 공간에서부터 설계하고 있었다. 아마 이것은 벨기에가 가진 역사적 배경이 반영된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로부터 가장 피해를 많이 받았으나 가장 빠른 시간에 복구에 성공한 나라이지만, 북쪽 지방과 남쪽 지방의 오랜 분열과 갈등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벨기에에서 필요했던 예술교육이 가치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설립자이자 예술교육 감독인 게르하르트가 말한 ABC하우스의 철학이 이해된다. 그 밖의 다른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예술교육 방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공통된 것이 있다면 바로 ‘지역사회, 지역공동체 안에서 예술이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가?’에 모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 ABC하우스 홈페이지, http://www.abc-web.be/)

 

 즉, 우리가 어떤 예술교육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넓게는 미래의 인류와 한국 사회를, 좁게는 지금 내가 만나는 나의 교실, 나의 공동체에는 어떤 예술의 가치가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특정한 공간이 아닌 개별적 공간에서 활동하는 예술교육가들은 커리쿨럼, 특정 콘텐츠에 대한 고민보다 먼저 지금 내가 만나는 공동체, 내가 만나는 참여자의 개별성을 탐구하는 것으로부터 나의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런 모든 문제들을 예술교육가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들을 둘러싼 교육환경이나 교육제도들이 미래 지향적인 예술교육가들에게 여전히 과거 지향적인 예술교육을 강조하거나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학습과 발표 중심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부터 어떻게 예술가들은 미래 지향적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을까? 이것이 지금 현재 상황에 예술교육이 풀어야 하는 숙제 중 하나일 것이다. 
 
철학이 콘텐츠를 만들고, 콘텐츠가 공간을 만든다 _ 예술교육 감독의 설계 및 운영 
 
 이미 IT 업계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회사를 운영한다. 애플사도 엠에스 소프트도 페이스북도 실리콘벨리의 많은 회사들도 그러한 모습이다. 해외의 많은 문화예술기관도 마찬가지였다. 행정가들에 의해 만들어낸 공간이 아니라 공간을 운영할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가들의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곳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40년간 한 명의 예술교육 철학자로부터 시작한 든든한 철학적 기반 아래 만들어진 링컨센터

 

 링컨센터는 지난 40년 간 상주 교육철학자로 활동한 맥신그린(Maxine Greene, 콜롬비아대학교 예술철학교수)의 예술교육철학의 바탕 아래 모든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파트의 예술교육 전문가를 고용하여 오랫동안 연구하고 보편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각 학교, 예술교사(TA) 등을 교육하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의 아난딸로는 초기 설립자가 은퇴하기 전 약27년 간 설립 철학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으며, 벨기에 브뤼셀의 ABC하우스는 현재 설립자가 지금까지도 예술교육 감독을 맡아 핵심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좋은 예술교육센터들은 예술교육 감독이 상주하면서 설립부터 공간 운영, 콘텐츠 운영까지 모두 책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의 유니콘 씨어터(Unicorn Theatre)는 극장을 설계할 때부터 극장 관계자, 지역 주민, 어린이 관객, 예술가들이 모든 설계 과정에 함께하여 극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지어진 극장은 현재 런던에서 가장 좋은 어린이·청소년 전용극장으로 손꼽힌다. 이렇듯 콘텐츠를 먼저 설계하고 사람이나 철학을 끼어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철학이 설립되고 그 철학을 바탕으로 콘텐츠가 설계되며 그 콘텐츠에 맞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술가가 중심이 되는 예술교육 공간을 꿈꾸며

 핀란드의 아난딸로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그저 모든 것이 부러웠다. 멋진 공간에서부터 정부로부터 90% 이상의 지원은 받지만 예술가가 주도하는 운영 시스템, 무엇보다 학교와의 네트워크, 그리고 그들의 자부심까지 부러워서 ‘당신들의 25년 전의 행운을 우리가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설립자 마리아나 카얀티엔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25년 걸렸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좀 더 빨리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 핀란드가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은 오로지 ‘문화’였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귀에 쟁쟁 울린다. 

 

 이제 우리에게도 예술교육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반갑기도 하고, 한편 두렵기도 하다. 과거의 문화예술회관 건설 붐처럼 ‘일단 짓고 보자는 기관 중심의 문화행정’이 되풀이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이 해외의 성공적인 예술교육 공간들의 공통점은 모두 활동가들에 의해 공간이 설계되고 그 활동가들이 지속성을 유지하면서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비로소 그 공간에 정신이 깃들고, 프로그램에 맞는 공간이 고안되고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행정가나 정책가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실제 활동의 예만 취하는 방법론에 주목하기보다 그들의 철학과 이에 기반을 둔 활동과 공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집중해주기를 말이다.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