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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제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방담회 첫 번째 이야기

 

박형주(이하 박) : 오늘 방담회는 지지봄봄 2012년 마지막 회를 맞아, 특별히 외부에 계신 분들을 초청하지는 않고 올 한 해 지지봄봄을 이끌었던 편집위원들이 모여서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해 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진짜 말 그대로 현장 돌아다니면서 느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학교 안의 문화예술교육 강사 이야기도 해보고 제도도 연결 지어서 다양하게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다. 방담회라는 게 자유로운 느낌이니 만큼, 방담회 방향에 대해서 좀 더 덧붙이거나 다른 방식을 제안할 게 있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 봐도 좋을 것 같다.

 

 

 

 

(1)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제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강원재(이하 강) : 올해 다양한 현장을 돌아본 것 같다. 현장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서 각기 개인적으로 좋았던 수업, 나빴던 수업이 있을 건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수업이 갖는 특징, 발현되는 환경, 그 안에서 예술 강사와 교사의 역할, 그들이 수업을 이끌어나가는 태도. 또 그러면 그런 교사, 강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럴 때 제도와 환경 이야기가 이어져서 뒷부분에서는 정책까지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재춘(이하 임) : 이전에 제도 관련해서는 우리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 적이 있다. 그런 것을 이번에도 먼저 이야기하기 보다는, 오히려 환경적인 측면에서, 또 원론적인 차원에서 지금 필요한 것, 가꿔져야 하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제도나 정책은 그 다음의 문제일 수 있다.

 

고영직(이하 고) : 특별하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꺼내며 해도 좋을 것 같다.

 

박 : 방담회 전에 고영직 선생님이 먼저 공유해주신 ‘품위 있는 사회’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는 것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고 : 보통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많은 이가 원론적인 이야기에 빠지고, 또 정부를 향해서 청원하는 식의 흐름으로 가곤 한다. 개인적으로 이제 좀 큰 주제나 비전을 가지고 이야기하는게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비사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 는 상당히 격조 있는 인상을 받고 있는 책이다. 책은 미적교육에 대해서라기보단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데, 즉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가 품위 있는 사회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마갈릿은 기본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것 보다 품위 있는 사회를 추구하는 게 더 훌륭하고, 급선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책의 문제나 제도의 문제를 본다면, 대증적인 차원에서의 즉자적 문제제기가 아닌 좀 더 거시적이고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문화예술교육 제도나 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세상을 바꾸는 비전의 문제는, 특히 공무원들과 같은 집단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중에 하나가 아닌가.

 

ㅇㅇ은 대학연구소 강원재 1소장(왼쪽)과 하자센터 박형주 교육팀장(오른쪽)

 

 

 

(2) ‘존재적 규정’이 없는 체로

    ‘일자리’ 프레임과 교육테크닉만이 중시되는 예술강사사업

 

강 : 현장에서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종종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정부 공모 사업이면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였다. 예술강사 혹은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사업이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어떻게 읽혔냐면, 예술강사는 수업 자체가 퍼포먼스나 활동, 하나의 작업 같은 그런 건데 이걸 다 규정을 해놓고 그 규정된 틀 안에서만 움직이게 하니깐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없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으로 읽혔다. 가령 한 작가는 수업을 하면서, 혹은 수업을 생각하면서 그 틀을 벗어나서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한 새로운 감각들, 트렌드들이 생겨나서 그걸 가지고 아이들을 현장에서 새롭게 만나기도 하고 싶다는데, 규정된 컨텐츠, 규정된 차수에서 움직이니깐 그 안에서 작업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없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 이후에 제도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실제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더라. 문화예술전문인력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게 우리나라 법 같은 경우는 ‘존재적 규정’은 없고 ‘기능적 규정’만 하고 있더라. ‘문화예술교원 이외의,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기획, 진행, 평가 및 보수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 이게 규정의 끝이다. 미국이나 뉴잉글랜드 등의 법률에서는 분명하게 존재적 규정을 하고 있다. ‘전문예술인으로서, 자신의 예술관점, 기술을 다양한 지역의 환경과 연계하여 활동하는 사람’, 혹은 ‘상호 호환적 기술과 교육과의 감성을 가지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전문예술가’ 이렇게 분명하게 그 존재적 규정이 되어있다.

 

고 : 언어가 의식을 규정하고, 존재를 규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이, 세상이 사회가 달라지는 건데, 언어의 프레임 자체가 너무 기능적인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교육학자나 공무원들의 행정에 관한 논의가, 테크닉만을 중시하는 데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강 : 아마 이 제도나 법 문구를 만들 때 예술가들은 한 명도 참여를 안했을 것 같다. 만약 참여했다면 이런 식의 규정이 나올 수가 없다. 배재된 상태에서 작업이 들어갔고, 만든 사람들은 예술가가 아니니깐 존재규정 자체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예술가들의 어떤 거버넌스나 논의체제 위에서 만들어졌으면 존재적 정의가 가능했을 건데 그런 과정은 없었다는 게 이 문구 자체에 내포가 되어있는 것 같다.

 

박 : 부처 간 협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지나치게 ‘교육화’만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잘 가르친다’는, 가르치는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예술에 대한 환경, 예술가의 아우라, 혹은 예술가의 작업으로 바라보게 하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러다보니 기능적으로 그 (교육적) 행위를 어떻게 잘 할 것이냐, 또 이런 기능을 위해 이런 역할이 필요하다는 시선으로 계속 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떤 교육을 위한 기계적 노동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예술적 노동으로 바라보는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고 : 예컨대 법에서 규정하는 급여 규정만 봐도, 한 마디로 ‘영혼 없는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어제 한국예술종합학교 심광현 교수를 만났는데, 그런 상황에 대해서도 아주 격렬하게 비판을 하더라. 교육부나 문화부간 협의뿐만 아니라 학교 안 교사하고 학교 밖 예술강사도 소통 없이 손발이 안 맞는 다는 거다. 심 교수는 학교 안 ‘문예체(문화, 예술, 체육)’ 교육은 사실 포기 단계에 있고, 학교 밖 강사들에게 위탁 관리하는 식으로 해올 뿐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문제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학교 안과 학교 밖에서 동시의 성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국영수를 잘하는 아이가 있고, 또 어떤 아이는 국영수는 못하지만 문예체 쪽에 특출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전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법이나 제도 추진 과정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런 점들에 대한 고려가 다 결락되어서 이와 같은 결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임 : 사실 예술 강사 사업의 가장 큰 문제가, 학교에서 어떤 아이들에게 어떤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가라는 고려 없이 ‘예술 강사’의 기능적 측면에 중점을 두어 분류를 해놓고 선발해서, 배치하는 식으로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일자리 사업처럼, 오천 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점만 성과지표화 하고 그 다음 문제는 사실상 'I don care', 되면 좋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라는 거다.

 

강 : 그래서 강사들을 사실상 일자리 지침에 맞춰서 시수나 이런 것들로 관리하는데, 참 답답하다.

 

임 : 예술강사들이 많은데도 현장의 변화가 있지 않은 게 바로 그 프레임 때문이다. 일자리 프레임 때문에 다른 상상력, 다른 문제의식들을 예술강사들도 갖기가 어렵다. 문제제기라고 해봤자 처우 문제에 집중이 되고, 생산적인 정책 제안 등이 어렵다.

 

강 : 어떻게 보면 장기적으로는 일자리 개념에서 문화예술강사의 처우가 보장되는 방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면에서 약간 기대되는 면이 없진 않다. 제도적 개입들은 아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측면 정도에서 이루어지지 않겠나.

 

고 : 그 점에 대해서는 심광현 교수도 주장하는 바다. 학교 안에서 예술강사를 ‘이등 국민’처럼 취급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정규직화로 가야 한다고 보고 있더라. 하지만 최근에 심광현 교수가 쓴 『창의적 문화교육 : 미래 교육의 열쇠』에서처럼 당장은 그런 단계가 힘들고, 또 그 보다 더 시급한 건 부처간 협의를 통해서 일단 예술강사 스스로도 정말 다양한, 훌륭한 ‘선생의 자질’을 길러야 한다는 걸 강조를 하더라. 소통의 문제도 많이 고민해야 하고, 또 강사 인력도 지금 5천명에서 두 배 정도로 늘어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강 : 경계가 생겨나 버린 것이다. 교사들하교, 예술강사들하고 소통이 잘 안된다. 서로 수업에도 잘 안들어가고, 교사들은 아이들은 맡겨놓기만 하는 것 같다. 철저하게 예술강사에게만 맡겨져 버리는 형태로 보든 부담을 예술강사 혼자 감당해야 하는. 또다른 우리 사회의 경계를 보면 ‘마을’도 그런점이 있다. 예술가가 들어가면 마을에서도 예술가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깐 자기들 작업하려고 온다고만 생각하고, 예술가들도 마을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뭘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접근방법을 모른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드는 건 그렇다면 그 중간을 ‘매매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박 : 가르친다는 ‘스킬’의 부분에 있어서, 교사는 강사를 비전문가로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예술가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서, 또 그 작업이 나의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겠다고 하는 감이 없이 수업의 어떤 파트, 어떤 커리큘럼을 할 수 있다고 보내어지는 강사를 맞이한다. 교사 입장에서 강사들 교안을 보면, ‘허접’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교사들이 접근할 수 있는 예술강사 시스템이 있는데 거기 들어가서 교안을 보면 ‘너무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올 정도’라고 교사들이 이야기한다. 그 기준으로만 보면 아무리 좋은 예술가들도 그냥 ‘알바’하는 사람들로 보이고, 오히려 이런 ‘비전문가를 정규직화 하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르친다는 프레임 안에서 순위경쟁 하는 것 밖에는 안되는 것 아닌가. 그 보다는 어떤 작업을 하는 작업자인지, 어떤 문제의식과 영감을 줄 수 있는 예술가인지를 드러내주는 교류의 장 같은게 필요해보인다. COP같은 경우도 그런 장이면 좋은데, 지금은 예술강사들이 자기 교습법이나 매뉴얼 만드는데 그치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고 : 심광현 교수 책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이 책은 교육과정의 전면 개편에 관한 것이다. 왜 필요하냐. 아이들에게는 기존의 문제를 뽑아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잇는 능력 두 가지를 길러주는 게 중요한데 기존의 정규선생님들 만으로는 부족하고, 폭 넓게 문화교육이라는 차원에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차원에서 예술 강사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있고, 또 비고츠키나 프뢰네 같은 사람들의 교육철학적인 부분이 도입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서울이나 경기도에 잇는 혁신학교 모델에서 작은 희망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 : 중간에 만났던 한 작가의 경우는, 너무 ‘예술가’라 자기가 짜인 교육을 한다는 것 자체를 싫어하더라. 사실 고민하는 게 그 작가는 아이들 만나서 뭘 할지는 만나봐야 알지 내가 계획을 가지고 어떻게 거기에 맞추면서 할 수 있냐는 점이었다. 이 양반은 작가로서, 작품 활동의 시작과 결과까지 모두 아이들하고 ‘온 체험’을 통해 만들어가면서 바라만 봐도 ‘눈이 건방진’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걸 보면 놀라웠다. 교사가 수업방법론을 가지고만 끌고 갈 수 없는 아이들을 어떤 작가와 작품의 아우라 속으로 초대하는 행위였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나는 교습방법론을 중심으로 예술가를 판단하는 것은 예술에 대해서 너무 무지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예술이 제공할 수 있는 삶의 어떤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서 나와 내 주변을 바꿔나가는 힘을 배워나간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이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강사들이 어떻게 학교에 접근할 거냐만 계속 가르치는 것 같다. 예술가들더러 학교 현장에 ‘적응할 것’만 요구하니깐 자존심이 상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상호적으로 접근해서 물론 예술가도 학교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학교도 ‘작가를 맞이하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이해를 위한 공부를 한 학교만 예술강사를 파견하도록 해야 한다. 학교도 일정한 이수를 안하면 예술강사를 받을 수 없도록 제도를 만들 필요도 있을 것 같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 : 일종의 상호문화교육, 상호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제도적으로도 강제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사실 초임교사들은 잘 모르겠지만 전교조를 포함해서 많은 수의 선생님들이 ‘직업인’화 되어있다. 일전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교육정책을 학교 현장의 20프로정도 되는 선생님들을 보고 끌고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80프로에 달하는 선생님들이 대체로 그렇다는 거다. 예술가들의 나이브함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선생님들의 경직됨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지금 현재 계속 경직함과 나이브함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임 : 그러다보니 문화예술교육이 뭐냐, 가르친다는게 뭐냐, 배움이라는게 뭐냐 이런 고민들을 다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물론 잘짜여진 커리큘럼이나 학습지도안이 필요한 영역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배움과 성장의 의미가 어떻게 해서 생성되는 것이냐를 생각할 때, 특히나 예술의 관점에서는, 학습지도안 보다는 수업을 통해서 매개되는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고 유지하냐는 문제로 가야되는 것이지 않겠냐.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교육예술이라고 하면서 학습지도안과 이를테면 세 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할지, 수업의 목표와 주제 같은게 규정되지 않으면, 그걸 제대로 된 수업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냐.

 

강 : 나는 그 부분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예술가는 만들어지거나 양성된다기 보다는 ‘발견’되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짜오는 게 작업 방식과 맞는 예술가가 있을 수 있고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맞는 작가들은 원래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잘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즉 문화예술교육에 맞는 ‘발견된’ 예술가들이 교육 현장에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만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예술가들 스스로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기회들을 많이 주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한번 들어왔으니깐 끝까지 다해라 이건 또 서로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

 

임 : 어떤 면에서 예술강사 사업은 사실 ‘양성되는’ 과정인건데, 그건 고도의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그 트레이닝 과정 없이 배치되는 방식이다 보니깐 갭이 너무 큰 것 같다.

 

박 : 행정적 효율성을 계속 따지다 보니깐, 배치 시스템 안에서 한 강사가 어떤 예술가인가가 이미 클릭하기 전에 평가가 되어버린다. 시스템 자체가 사실 안 바뀌면 답이 안 나오는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중앙에서 계속 그렇게 한다고 했을 때 지원센터 차원에서 보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강 :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사람이 교사인데, 교사들이 예술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 방법이 별로 없다.

 

고 : 센터의 위상과 권한이 그런 부분을 위주로 좀 강화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3) 단절된 관계를 복원해줄,

     학교와 강사 간 ‘매개자’가 필요하다

 

강 : 매개자 이야기를 연관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Creative Agency)’다. 학교에 파견된 에이전시가 있어서, 교사들이 ‘아이들하고 이런 문화예술교육을 좀 하고 싶어’하고 느끼면, 에이전시에게 가서 상담을 받는 거다. 그러면 에이전시는 거기에 맞는 예술강사를 섭외해주는 방식이다. 이런 매개자가 학교에 상주하면서 그런 작업을 해낸다면, 교사들도 예술을 모른다는 걸 사실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되고,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작업이 아이들에게 맞을까 라는 걸 ‘불안해’하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범적으로 내년에, 혁신학교 몇 군데에 파견해보고 거기서 나오는 성과들을 보면 좋을 것 같다. 학교 안에 그냥 예술수업만 있나? 축제도 있고 공간 만드는 것도 있고 예술가들이 할게 너무 많다. 에이전시가 그런 일들로 예술가들을 계속 학교로 초대하고 아이들은 그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문화예술적 소양을 기른다면 이게 가지는 힘이라는게 있으리라 생각한다.

 

임 : 문화코디네이터라는 제도가 있긴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기존 코디네이터의 문제는 ‘예술의 비전문가’가 문화코디가 되어왔던게 대부분이었다. 또 학교에서 수업을 ‘강요’받는 문제도 있었다. 에이전시의 역할 같은게 뭔가 루즈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쉬운, 그런 역할로 보였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혁신학교는 자체 계획에 의해서 채용을 하겠다는 프로포즈를 넣고 있기도 하다. 분명 그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은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교사들도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스스로 없다는걸 과정상에서 비판받고, 부끄러움 당하는 과정들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문화코디 같은 제도를 통해서 보완이 되고, 상호적 관계로 갈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강 : 서로 모른다는 건 사실 당연한 건데 그걸 부끄러워한다. 교사들이 문화예술을 모를 수도 있지 않냐. 당연한 건데 마치 그걸 부끄러워하면서 잘 찾아보지도 않고 자존심의 문제로 생각해버리는, 그러면서 자기가 잘 아는 것만 지키고 강조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고 : 문화코디가 예산 등에 대한 권한이 있는지?

 

강 : 그게 있어야 핵심이다.

 

임 : 오히려 예산을, 펀드레이징을 해 와야 하는 경우도 많다. 죽을 맛이라고 한다.

 

강 : 코디가 파견되면 학교 안에서 강사 몇 명을 초대할 수 있다든지 하는 재량권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또 코디가 학교에만 계속 있는 게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예술가들 만나고 접점 고민하고 섭외하고 그런 것을 계속 해야 할 것이다. 학교 안에만 붙잡아 놓으면 ‘교사 될 뿐’이다.

 

임 : 근태 문제로 돌아다니는 걸 못 참아 한다더라.(웃음)

 

강 : 자유직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같다.

 

 

 

- 목  차 -

 

 

1부 : 현장과 제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바로 가기]

 

 -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제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 ‘존재적 규정’이 없는 체로 ‘일자리’ 프레임과 교육테크닉만이 중시되는 예술강사사업 

 - 단절된 관계를 복원해줄, 학교와 강사 사이‘매개자’가 필요하다

 

 

2부 : 예술 강사제도의 한계와 돌파구 [바로 가기]

 

 - 예술 강사,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어

 - ‘자기검열’하지 말고 예술이 가진 힘을 활용해야

 - 지역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라

 

3부 : 현장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보다 더 나은 제도를 위해 [바로 가기]

 

 - 제도의 ‘제 역할’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

 - 마무리 : '비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태도’ 가져야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