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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2013년 도입예정인 문화예술교육사 제도에 대해 문화예술교육인력의 법적자격기준과 관리체계 마련사회적 인식제고와 신뢰 구축”, “전문성과 경력관리 역량강화”, 그리고 양성교육과정개발을 목적으로 한다고 <예술 강사 대상 문화예술교육사 설명회> 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다.

 

 사실 문화예술교육사에 대한 논의는 이미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제정되던 2005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지만, 최근 몇 년간 청년백수 백만시대에 들어선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맞물려 예술강사의 증가와 예술교육에 대한 현장수요의 확대가 이어지면서 다시 제도화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던 예술가의 사회적 위상과 제도적 신분 보장이 전무한 현실에서 이번 제도화가 환영할 만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사 제도를 도입한 개정 문화예술교육법안을 살펴보면 그간 현장에서 어려움을 호소해왔던 여려가지 문제들이 여전히 내포되어 있다.

 

 먼저 개정된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은 법이 명시하는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기획, 분석, 평가 및 수업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로 문화예술전문인력을 새롭게 규정하면서, 이러한 주체가 예술가인지 교사인지 여전히 밝히지 않고 있다. 예술은 생성, 조화, 해체와 재생성이라는 존재적 특성으로 인해 참여 주체들의 성장을 촉진해가기 때문에 그 자체로 교육적이라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예술가를 교사라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교육의 목표는 감성과 이성이 조화로운 전인으로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예술 안에서 일어나는 미적경험의 원리를 갖고 있지만 이를 수행하는 교원을 예술가라 할 수는 없다. 물론 교사와 예술가가 분리되지 않고 넘나들면서 교육도 하고 예술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서는 특별히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사회 교육현장의 실상이 그러한가? 경쟁적 입시 중심의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만이 전부인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 아닌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둔 채 자유가 존재기반인 예술가에게 그러한 학교에서 그러한 교사의 역할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는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제도에 관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사를 국가 공인의 자격으로 두면서 대학을 중심으로 양성하는 것을 이 법은 명시하고 있는데, 그간의 청소년지도사청소년상담사’, ‘평생교육사제도가 어떻게 학제 중심의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하였고, 그리하여 도입취지를 무색하게 했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일정 정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2급 자격이 주어지도록 되어 있는 문화예술교육사는 관련 학과의 학생들에게 작가로서의 삶을 사는 것과 관련 분야에 취직하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진로가 될 것은 분명하지만,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창작행위를 교육적 활동에 두는 작가의 출연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게 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제도화된 2005년 이래로 수많은 교육현장에서 학생들과 만나며 예술적 영감을 이끌어 내고 참가자들의 미적 성장을 견인해온 무늬만커뮤니티 김월식 작가의 고민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가는 그가 어디에 있든 예술가이며, 학생들과 만났을 때 그 만남이 창의와 미적 경험으로 빛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에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창작열을 불태우며 예술동지로서의 교감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김작가의 생각이다. 이럴 수 있을 때 그러한 창작의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도 작가의 예술동지로서의 경험을 함께 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사의 정체성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 선 이가 해낼 수 없는 예술가의 고유한 활동 영역임이 분명하다.

 

 세 번째는 전문교사 양성을 목표로 구성된 문화예술교육사 교육과정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교육심리, 교육평가에 교무행정, 문화정책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 2급 과정도 그렇고, 초중고 교사들의 전문역량인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이나 예술행정을 익히고 교육프로그램 개발하고 운영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육은 학습자 한 명 한 명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거기에 맞춤된 과정이 새롭게 만들어질 때 생생한 경험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지금 우리교육의 교무행정과 교과운영시스템은 이를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현장 교사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과정을 삶의 미시적이고 찰나적인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생동케 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예술가들의 몸에 잘 맞지 않을 거란 건 충분히 예측되는 일이다.

 

 그래서 보호관찰청소년이나 탈학교청소년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미적 경험으로 안내하고 있는 부천 아트포럼리의 이훈희 작가의 다음 학기 수업계획서는 늘 지난 학기 아이들을 만나면서 즉흥적으로 이끌어냈던 작업과정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실제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 갈 때는 새롭게 만난 아이들의 상태에 따라 새로운 과정을 시도하면서 계획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이훈희 작가의 수업은 늘 생생하고, 아이들은 그러한 생생함에 기꺼이 동기화되면서 헌신하게 된다.

 

 끝으로 제도가 잘 짜여지면 문화예술교육현장에서 설립 취지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제도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지원과 예술가의 교육적 개입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요건이어야 한다. 관료적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을 보다 체계화하려는 시도겠지만, 그런 이유로 복잡해져 온 교육제도가 오늘의 학교와 교육을 얼마나 망쳐왔는지 생각해본다면, 이제 7년쯤 되는 문화예술교육제도가 이를 답습하지 않을 이유 또한 충분하다.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위계적 구조의 복잡한 전달체계를 강화하기보다는 현장의 교사도 예술가도 학생들도 학부모도 쉽게 알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으로서의 제도가 되도록 하고, 그 안에서 현장의 자율성과 책임성이 강조되는 문화예술교육 사례가 발현되도록 해 가야 할 것이다.

 

 그러할 때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학교교육현장의 교원이나 사회교육현장의 담당자들이 그간 해온 관행에 근거하여 예술가에게 학생들을 만날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육과정 짜는 것도 서툴고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도 서툰 예술가들이 각종 학사서류를 만들고 수업분위기를 통제해야함과 동시에 스스로 학생들과의 관계의 정도를 검열하면서 문화예술교육활동에 임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제도가 시행령과 시행규칙, 시행방침 등을 통해 강제할 것이 있다면 예술가나 교사에 대해서가 아니라 지역마다 문화예술교육지원협의회를 두고 지역문화예술교육의 발전을 위한 정책과 중장기계획을 내놓아야 하며 거기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항을 지키지 않는 지자체들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더불어 문화예술교육지원에 적극 협력해야 하는 학교장의 임무방기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 문화예술교육현장은 비로소 아이들과 예술가, 교사들이 서로의 창의성과 감수성으로 춤추며 생동하며, 미적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곳이 될 것이다.

 

 자존감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술가는 특히 그러한 이들이다. 인류는 현실원칙과 자유원칙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추동해왔고, 예술가들은 자유의 원칙에 가까이 있을 때 존재감이 분명했다.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문화예술, 창의교육, 그리고 미적 인류의 탄생은 여전히 현실을 저버리진 않는 자유원칙에 기반할 것이다. 현실을 무너뜨리지 않아야 하기에 문화예술교육제도가 필요함을 인정하면서도 제도를 너무 강화하여 그 중압감으로 자유로운 예술적 유희와 미적 경험이 싹트지도 못하도록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