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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 두 번째 방담회 : 미적 교육

 

3.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것, 그 방법과 현장에서의 환경

 

 

 

 

 

임재춘 : 김인규 선생님 글에는 자기결정성이라는 표현을 쓰셨고, 현광일 선생님은 공동체의 대척점으로서의 개인과 개인성을 이야기하셨고, 윤현옥 선생님의 말씀 중에는 이것과 관련해서, ‘용기’라는 말을 하신 것들이 개인적으로는 특별하게 와 닿았어요.

 

 미적 교육을 정의내릴 때 경험이 우선인지 학문이 우선인지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있어요. 그런데 결국은 장르적이고 기능적일 수 있는 ‘예술교육’이라는 말이 미적 교육으로 대체되기에는 상당한 한계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이야기 되는 자기결정성이라던가 혹은 자기주체성, 이런 것들이 미적교육을 통해서만 획득되는 것이냐, 혹은 다양한 성장의 과정 중에서 이런 것들을 증폭시킬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 거기서 미적교육이라는 게 어떤 부분,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 것이냐 이 부분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문화예술교육이 사실 이 부분에 대한 ‘숙고’가 없는 것 같거든요. 현장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 없이 아까 말씀하셨던 아름다워야 한다, 착해야 한다, 함께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관념상으로만 떠도는 것 같아요. 그게 극단적으로 공교육의 어떤 시스템으로 발현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기결정성은 무엇인가?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는가?

 

 

김인규 : 결국 자기결정성은 사이개념이 아닌가 싶어요. 질서와 무질서사이. 무질서에도, 질서에도 자기결정성은 없거든요.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 결국은 사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여백 일수도 있는 건데, 떤 창의적인 판단, 결정이 발현되는, ‘사이에 있는 영역’이라고 여겨져요. 즉, 교사가 무엇인가를 한다는 ‘결정’, 그 목적성. 그리고 그 결정에 오기 이전에 어떤 아이들의 사고의 영역에 ‘미적’이라는 의미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고등학생들 하고 수업할 때, 미술 수업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사실 미술, 혹은 예술의 장르성을 떠나 다른 모든 교육에도 이 자기결정성이란 영역은 존재할 수 있어요. 근데 거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놀이’, ‘즐거움’이란 개념인 거고, 그것이 바로 ‘예술’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봤을 때 다른 교과에서도 어떻든 예술이 개입할 수 있죠.

 

 

 

윤현옥 : 학교에서 공개 수업할 때 가보면, 선생님들 능력이 대단히 좋으세요. 프레젠테이션도 ‘기차게’ 만들어 놓으시고, 쇼맨십까지 곁들여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준비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이에서 아이들이 잠시도 ‘딴 짓’을 할 수가 없어요. 여백이 없는 거죠. 그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사고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죠. 멋진 엔터테인먼트였고, 지식전달 측면에서 집에 가서 복습하면 좋은 공부가 되겠지만, 저는 답답했어요. 행복해보이지 않았다는 거죠. 너무 ‘이상적’으로 짜여져만 있더라구요.

 

 

 

김인규 : 그게 현재 학교 시스템이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식인 것 같아요. 완전 엔터테인먼트. 그런 방식을 최선의 교습 능력이라고 보는 건데. 그게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게 아닌 것을 이야기를 한번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윤현옥 : ‘딴 짓’이, 학교에서는 전혀 비생산적이고 '루저'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저는 앞서서 ‘깊은 심심함’을 이야기했던 이유가, 실은 그 속에서 ‘깊은 창의성’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창의성’이 ‘피로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기재라고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손채수 : 그 말씀하신 ‘깊은 심심함’에 대한 부분은 그냥 심심함으로 놓이는 건 아닐 텐데, 어떤 것들로 채울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들어요. 예술적인 어떤 것들과 연관이 될 수 있을까요?

 

 

 

김인규 : ‘깊은 심심함’이 사실은 제일 힘들어요. 미술시간에, 아이들한테 “선생님이 이것저것 시키지 않고 물감이며 재료며 다 끄집어내놓고 놀아!”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애들이 ‘생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건 제가 졸라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심심한 것을 못 견디기 때문이에요. 자기 자신의 현재의 시간을 심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마저도 아이들이 할게 없죠. “다 끝났어?”라고 물어보니까 아이들이 “선생님, 이 책상하고 캐비넷 다 때려부수면 안되요? 유리창도 깨고 싶은데” 그러더라구요.

 

 

 

윤현옥 : 페이스북에서 어떤 사람의 수업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요. 한 강사가 수업에 들어와서 아이들 핸드폰을 제자리에 놓고 밖으로 나가게 했데요. 30분인가 돌아다니다가 돌아오게 해요. 나갔다 들어와서 아이들 하는 소리가,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햇빛의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자연을 ‘잡아뜯고’, ‘던지고’ 그랬다는 거예요.

 

 핸드폰이야 말로 ‘강박’의 대표거든요.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무엇을 하지않으면 불안하게끔 하죠. 그걸 놓은 30분 동안 전혀 다른 세계가 보였다는 거예요. 늘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것. 예술의 기능은 바로 그것이거든요. 항상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해주는 게 예술이잖아요. 즉, ‘테크네’라는 개념이, 뭔가를 잘 만들어내는 능력이지만 뜻의 기원은 ‘진리를 밝혀주는 능력' 인 것 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해주는 것이 바로 진리를 밝혀주는 것. 저는 예술이 그 기능을 한다고 생각해요.

 

 

 

김인규 : 아이들이 굉장히 훌륭한 아이들이었던 것 같아요.

 

 

 

윤현옥 : 대학생들이었어요. (웃음)

 

 

 

임재춘 : 현병철씨 책에서의 ‘깊은 심심함’은 물리적인 시간의 문제나 방법적인 측면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했듯 문화예술교육이 다분히 프로그램화 되어있는 문제들. 즉 끊임없이 조작된 설정들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나는 상황들로부터 어떻게 아이들에게 ‘자기 결정의 시간’을 줄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나온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게 하는 것’이 바로 교육기획이겠죠. 그런 포괄적인 의미의 ‘깊은 심심함’으로 이해를 했던 것 같아요.

 

 

'본배 교육'이 사라진 때, 아름다움도 '기본'은 가르쳐야 한다

 

 

 

손채수 : 만나는 학생의 대상에 따라서 아름다움을 만나게 하는 방법은 다 다른 것 같아요. 제가 가르치는 초등학교 고학년들의 경우는 자기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발견하게 할 것이냐는 점이 제나름의 초점이죠. 그런 방향에서 환경을 만들어주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가이드 하면서 가르쳐야 되더라고요.

 

 ‘본배 교육’이라는 게 있잖아요? 옆에서 보고 배우면서 큰다는 거. 예전에는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던 여러 가지 것들이 본배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여건을 제공해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여건이 너무 어려워지다 보니깐 가정도 최소한의 기능으로만 압축되어 버리고, 마을 공동체도 사라지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주변으로부터 접해야 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요소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이웃이라는 개념도 거의 없잖아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소통되어야 할 것들이 소통되지 못하다 보니까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도 결여 되고, 그 부분에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밥 한 그릇을 같이 먹으면서 함께 느끼는 “아~ 배불러”하는 거 그것도 아름다움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마음 놓고 무엇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가 못해요. 안전에 대해서 이렇게 걱정해야 하는 때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오더라도 아이들이 오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는 거예요. 또 예전에 있던 본배 교육이 끊어지면서 이제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움의 기본은 가르쳐야 하는 세상이 왔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주입식 말고, 가이드해주는 방식으로. 그 가이드의 키워드가 ‘아름다움’이 되는 거죠.

 

 이전에 ‘체육’이라고 있었다면, 이젠 ‘미육(美育)’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을 해요. 예전에 당연하게 주변과 아이들이 누리고 공감하던 것들이 사라졌으니깐. 그래서 ‘미육’이라는 것은 쉴러 시대의 계몽주의에서 요구되던 그것과는 좀 다른 차원에서 필요한 시대적 상황이 온 게 아닌가 생각해요.

 

 

 

현광일 : 아름다움과 관련한 최초의 기록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카타르시스’예요. 인간이 창조나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과도기적 혼돈이 있는데, 그 과도기가 인간에게 주는 비극적 갈등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카타르시스’가 인간이 미적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기재 중 하나라는 거죠.

 

 최근에 ‘시’라는 영화를 봤는데, 거기에는 ‘아름다움’의 순간을 회상하는 이야기 나와요. 자기가 느꼈던 일생의 경험들. ‘아름다움’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고 그것이 어떤 경우에 일어나느냐,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 있죠.

 

 오늘 이야기되었던 자기결정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환경이나 대상으로부터 ‘거리두기’가 가능해졌을 때 생긴다고 봐요. 맥락에서 탈맥락화되는 것, 거리두기가 가능한 사고력이 필요하죠. 그 극단적인 예가 바로 ‘수학’이예요.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이야기하면서, 기호학 못하는 사람은 (제자로) 들어오지 말라고 이야기했어요. 다 버리고 기호만 실험하잖아요. 또 그것과 똑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게 바로 ‘미학’이죠. 그리고 그것들을 사유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바로 예술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것을 칸트는 ‘반성적 사유’라고 하는 것으로 규정하죠. 사람의 사유의 알고리즘을 미학과 연결시키면서 근대 사회에 대한 도전, 미래사회를 돌파해나가는 힘, 창의성 등의 다양한 화두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죠.

 

 근데 현재 입시교육이나 공교육은 그런 반성적 판단력 자체를 사유할 수 있는 커리큘럼 자체가 없어요. 교육과정 자체가 규범적 사고에서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이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결정성. 어떤 미학적 체험을 통해서 자기결정성을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그것을 가지면, 내용이 필요 없다기 보다는 뭔가를 배웠을 때 ‘가지고 놀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물론 놀 수 있는 건 줘야 되요. 주되 가지고 놀지 못했을 때, 그것이 문제인 것이죠. 근데 애들이 늘 스트레스 받고 지쳐있으니깐 못 노는 것. 그런 측면이 있다고 봐요.
 
 또 하나는 ‘사이’라는 것. 그게 뭐냐면, A와 B가 있으면 하나로 지속되어있지 않고 그 사이 어떤 관계의 모습이 존재하잖아요. 그것에 집중하게 될 때, 그 속에서 천재들이 자란다고 봐요. 몰두해서, 어떤 순간들을 끄집어내야 할 때 집중력과 주의력이 발현되는 것이죠.

 

 

 

손채수 : 무엇보다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고 조건을 만들어줘야 되요. 문제는 시간적인 부분이 좀 크죠. 몰입하다가도 시간이 딱 깨져버리면 ‘끝나거든요.’ 그 순간을 보호해줄 수 있다면 아이들은 더 깊게 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시간 끝나고 다음 시간에 계속하고, 이건 그렇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거든요. 그 연속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고 봐요.

 

 

 

김인규 : 아까 말씀하신 그 내용을 교육 과정 상에서 구현해낸 게 ‘재량활동’ 시간이에요. ‘벽돌’처럼 짜인 교육과정을 물렁물렁하게 만들기 위해서 재량활동을 도입했는데, 그 재량활동은 사실상 문화예술교육으로 다 채워져 있는거죠. 근데 그게 장르교육으로 체워져버리면 재량활동의 의미가 다 사라지는 문제가 있죠. 어찌됐든 학교의 기능적 한계 자체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노력, 그런 차원에서 (진정한) 문화예술교육이 나온다고 봐요.

 

 

 

교육이 근대적 훈육개념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은 하나의 '오해'

 

 

현광일 : 하나의 오해라고 생각되는 점은, 교육이 근대적 훈육개념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많잖아요. 근데 최근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비고츠키라든지 이런,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는 경우도 많아요. 부정적인 경우들은 보통 자기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경우도 많죠.

 

 

 

임재춘 : 비고츠키도 그렇고 ‘교육’이라는 용어 때문에 오는 오해도 있는 것 같거든요. 쉴러도 미적 교육도 그렇고, 모두다 ‘교육’이라는 용어를 쓰나요?

 

 

 

현광일 : 교육이라고 써요. 왜냐하면 근대에 인간의 성장문제가 굉장히 중요해졌고, 성장에 대해 말할 필요가 계몽주의는 물론 낭만주의에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유가 나중에 국가체제 안에 공교육의 틀로 수용되는 거죠. 근데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빡빡하진 않았죠. 오히려 근대 이후에, 실증주의 등이 들어오면서 학교 자체가 ‘순응적’으로 변한 면도 있다고 봐요. 때문에 우리가 체험했던 훈육적 측면에서 교육을 고찰하면 오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교육은 교육대로 보고, 문화라는 것을 어떻게 교육과 관계지을 거냐 라는데서 ‘문화’를 이야기하고, 또 예술이라는 것은 그것을 각 개인의 ‘자기결정성’으로 내면화 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고, 교육은 그것들이 잘 이루어지게 배워야 할 것들을 제때 공급해줘야 하지 않나. 이 세 가지가 새롭게 조합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가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선생님이 ‘왕’이잖아요. 중고등학교는 미학이라는 것 자체를 교과의 주요한 개념으로 가지고 있는 선생님도 없는 것 같고, 학급 추스르기도 힘든 반면에 초등학교는 그런 가능성이 구조상이나 커리큘럼상 가능할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문화예술교육을 집중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요.

 

 

학교교육현장에서의 '미적'교육의 가능성

 

 

 

김인규 : 제가 보기에는 경기도라는 이런데서 주로 혁신학교라 해서, 초등학교에서 성과를 많이 나타내잖아요? 중고등학교는 거의 없는데, 사실 입시 때문에 엄두를 못내는 것 뿐이지 고등학교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요

 

 

 

윤현옥 : 고등학교가 시도를 안 해서 그렇지 가능성은 많은 것 같아요

 

 

 

김인규 : 그러니까요. 저도 그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지금 고등학교에서 시도하는 것을 엄두 못 내는 이유가, 입시라는 것이 너무 크다 보니깐 이것 돌렸다가 입시교육에서 실패하면 망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거든요.

 

 

 

윤현옥 : 입시 때문에 되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에서 문예창작반 수업을 하는데 거기 애들한테 “이거 너희 포트폴리오 만들 수 있는 수업이야” 이러니깐 완전 출석률 좋아요. 집중도가 좋아지더라구요. ‘입학사정관제’하고 맞물리면서요.

 

 고등학교 아이들은 야간자율학습을 하잖아요? 근데 야자시간에 여기 와서 이걸 들으면 차라리 좋은 거예요. 1학년 아이들 같은 경우는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요, 이걸 타겟으로 하라고 진흥원이나 경기도에도 이야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괜찮은 성과들 나올거라고. 특히 커뮤니티 아트 하고 연결하게 하면, 작년에 통인시장에서 했던 프로젝트도, 예술고등학교 아이들 쭉 들어온 게 ‘입학사정관제’ 그것 가지고 꼬셨죠 뭐. 아이들 완전 열심히 했어요.

 

 

 

김인규 : 천안에 1500명 정도 규모 되는 인문계고등학교에 4년 정도 있었어요. 그 동안 지켜보니깐 고등학교가 바뀔 수 있겠는 거예요. 입학사정관 뿐만 아니라 수능까지 포함해서.

 

 교육하시는 분들이 들을 필요가 있는 게, 현재 입시교육 방식으로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 아이들은 상위 10프로 아이들이예요. 나머지 90프로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해요. 이 아이 문화적이든 경제적이든, 여건이 안 되는 거거든요. 3년 동안 눈빛이 죽어가는 아이들을 자기과제 중심의 활동으로 돌려버리면, 오히려 수능성적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봐요. 고등학교 특히 중하위권 아이들 쪽으로 잘 접근해 들어가면, 우리 교육의 전반적 흐름을 한번 흔들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보편적인 차원에서는 '기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현광일 : 특성화된 어떤 방식으로서의 접근은 가능하고, 저는 보편교육 차원에서 말씀드렸던 거예요. 저도 그 부분은 동의해요. 입학사정관제와 같은 틀에서는 그럴 수 있는데, 저는 이제 좀 순수한, 보편적 교육의 위치를 가진 다음에 가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또 하나의 기능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게 우려되는 거죠. 교육의 기회주의적인 문제가 우려되는 것 때문에 말씀드리는 거고, 그런 틈새는 저도 충분히 가능 하다고 봐요.

 

 

 

박형주 : ‘제대로’ 라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네요. 입학사정관제나 초등학교의 경우도 그렇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 초등학교에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대게 장르중심이지 않습니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거고, 도구화되는 측면도 있는 거거든요. 즉,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제대로 구현하는 측면도 중요한 것 같아요.

 

 거리두기라고 하는 것. 아무대책없이 ‘놀이’로 즐기게 하는 게 아니라 앎의 참 맛을 보게하는 ‘유희’, 그게 곱씹어지면서 배움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거고, 심심함이라고 하는 것도 빽빽하지 않게, 놓치는 것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 신 것 같은데, 즉 ‘배움의 환경’이라는 것에 대해서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키워드들이 현장에서 교사들이 염두 할 중요한 포인트이지 않겠냐고 봐요.

 

 존 듀이의 이야기도 결국은 무조건 경험 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했던 경험을 재구성하면서 어떻게든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게 포인트거든요. 그랬을 때 결국 내적인 배움이 가능한 거지 경험 자체가 배움으로 직결되지는 않아요. 이런 것들 사이에서 말씀하신 논의들을 돌아보면 예술 강사를 하시는 분들이, 염두 할 포인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 방담회 내용


첫 번째 이야기 : 미적 교육이란 무엇인가? 왜 주목해야 하는가? [바로 가기]

  

          - 미적 교육의 이론은 무엇인가? 왜 주목해야 하는가?

          - 현재의 문화예술교육은 장르 교육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 학교 현장에서 미적 교육론은 적용 가능한가?

          - 공동체성에 관한 문제

 

두 번재 이야기 : 미적 교육. 현장의 균열과 한계, 그리고 아이디어 [바로 가기]

 

          - 현장에서 바라보는 미적 교육이란 무엇인가?

          - 학교라는 현장의 '균열'

          - 미적 교육에 대한 공교육의 불가피한 한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 그냥 놔둬도 되는데 '일부러' 가르치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 :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것. 그 방법과 현장의 환경 [바로 가기]

 

          - 자기결정성은 무엇인가?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는가?

          - '본베 교육'이 사라진 때, 아름다움도 '기본'은 가르쳐야 한다

          - 교육이 근대적 훈육개념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은 하나의 '오해'

          - 학교 교육 현장에서의 미적 교육의 '가능성'

          - 보편적인 차원에서는 '기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네 번째 이야기 : 교사들에게, 그리고 '학교 밖 마을'에 대해서 [바로 가기]

 

          - 연수나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반영했으면 하는 점

          - 관료화되어 있는 학교의 한계, 그리고 '마을'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