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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 두 번째 방담회 : 미적 교육

 

2. 미적교육, 현장의 균열과 한계, 그리고 아이디어

 

 

 


박형주 : 일반적으로 미적 교육이라고 이야기하면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서 단순하게 예술 교육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미적 교육이라는 이야기의 맥락을 보기 보단 음악 미술 체육, ‘음미체’가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학문이니까 그것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서 머물잖아요.

 

 그런데 배움, 교육이라고 하는 걸 어떤 한 인간을 살아갈 수 있게 ‘배움의 환경’에 놓이게 하는 것이라고 보고, 그 배움의 핵심이 ‘자기결정성’이라고 (글에서) 김인규 선생님은 보시는 것 같아요. 말씀을 들어보면 엘리트 화된 개인이냐 더불어 사는 공동체냐는 문제 이전에 미적 교육은 한 인간으로서 ‘자기결정성’을 가질 수 있게 배움의 동기나 힘을 유발시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문제처럼 느껴지거든요.

 

 즉 미적 교육은 ‘배움의 환경’에 놓이게 하는 건데, 어떤 배움의 환경에 놓이게 해야 하는 것이냐. 그리고 배움이라는 것이 어떻게 촉발될 수 있는 것이냐 라는 점이 궁금해지네요.

 

 또 연결해서 학교라는 곳이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학교가 배움의 환경이 아니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든 사회든 상관 없이, 우리는 어떤 ‘배움의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한가. 그 핵심키워드는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게 되네요.

 

 손채수 선생님의 경우도 아이들하고 많이 작업을 하셨고, 윤현옥 선생님도 조금 떠나계셨어도 시장에서 이런저런 작업들을 많이 하셨기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 않으셨을까 궁금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매 순간 배움의 환경에 놓여있다고 생각을 해요. (현장에서 사유하고 느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신다면 좀 더 구체적인 지점에서, 단순한 정의로서의 미적 교육이 아닌, 경험적 범위로서의 미적 교육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현장에서 바라보는 미적 교육이란 무엇인가?



손채수 : 저는 ‘미적 교육’을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교육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아름다움을 ‘자각’하게 하는 교육이 아닐까 합니다. 즉 자기 안에서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제 나름대로의 목표도 그렇고요.


 교사는 예술적인 다양한 것들을 통해서 제공해주고 그런 기재들을 통해서 자신의 어떤 것을 만날 수 있게 학생을 도와주는 거죠. 그걸 제 나름대로는 ‘예술적 교습법’이라고 생각해요. 때에 따라서는 흙을 만지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고 연극을 하고. 여러 가지를 그 안에서 적절히 매칭하면서 아이들의 자기발견을 돕는 거죠. 저는 제가 아름다움을 ‘가르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가르치기 보다는 가이드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 최근 고민 중 하나가, 예전 학생들과 요즘 지도하는 학생들을 비교했을 때 아이들이 훨씬 ‘손’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손으로 사유하고 생각하는 능력. ‘생각하는 손’. 그걸 되살려줘야, 부활시켜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그 과정속에 몰입하면서 다른 사람의, ‘잘했다, 못했다’고 하는 가치판단은 배제하고 자기가 온전히 그 과정에 스스로를 투여하면서 맛보는 만족감, 기쁨, 그래서 그 느낌을 맛보게 하는데 가장 큰 목적을 둬요. 그런 거 많이 보셨을거예요. 애들 눈에서 ‘팍’ 뭐가 튀잖아요. 그 번뜩이는 그것.

 

 오늘도 어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왔는데, 아이를 데리고 수업에 함께 참가하는 어른 분들이 예컨대 ‘인형 만들기’라고 했을 때 기능위주로 인형을 ‘만들어 가는 거’라 생각을 하세요. 만든 결과물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실은 문화예술이라는 것은 원래 기쁘게 즐기고 그것을 가지고 ‘...ing'로 진행되는 그 과정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자기들 입었던 옷을 가지고 인형을 만든 적이 있어요. 자랐지만 그 입었던 옷에는 아이들 추억이 담겨 있거든요. 그 추억과 함께 천으로 인형을 만들고, 만들고서는 그 아이와 그림책 등을 가지고 새로운 놀이를 할 수도 있고. 근데 오시는 분들 중에는 중학생 자녀를 데리고 오신 분들도 계신데, 그 분들은 이걸 만들어서 ‘어디에다가 쓸 거냐’는 고민을 하세요.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 만드는 그 과정에서 함께하는 것. 부모님과 같이 인형을 만들면 굳이 대화를 안 해도 그것 자체가 얼마나 그 가족을 행복하게 해요. 대화 매개가 되기도 하는 거죠. 만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과정과 뒤에 진행되는 그것들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봐요. 결과가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안 그렇거든요. 계속 확장될 수 있는게 많아요.

 

 요새는 어디 거창한 것, 많은 돈을 들여서 봐야 하는 것, 특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또 어려워하고 멀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조금만 둘러보면 주변에 재밌는 것, 확장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말이죠. 그러니까 굳이 특별히 뭘 가르쳐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 가깝게, 편하게, 소박한 기쁨에 다가갈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발견해내는 것에 집중하면 좀 더 관념에서 자유로워지면 훨씬 더 자발적인 창의력이 샘 솟아 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교사들에겐 꼭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문제죠. 요새같이 어려운 시기가 없잖아요. 여간해선 아이들도 배우려하지 않으니깐 자꾸 ‘재미’로 가야 할 것 같은 거죠. 저는 근데 그 재미가 그 재미가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진정한 것은 앎의 재미, 행함의 재미, 그 맛을 아이들이 접촉하게 하는 것. 접촉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건 고민될 필요가 없이 굴러갈 수 있거든요. 그 방법이 관건이 될 뿐이겠죠.

 



임재춘 : 지금 말씀하신 그 ‘재미’라는 부분이 쉴러가 이야기했던 욕망이라는 부분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학교라는 현장의 '균열'


 

김인규 : 아까 말씀하신 ‘두 계층’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요. 그게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느냐. 제 경험을 비춰보면 보통 중학교 1학년 정도까지는 아이들이 대상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약해요. 나 이외의 타인에 대한 관심도 굉장히 약하고요. 그래서 어디에 집중을 하냐면 자기욕망에 집중을 해요. 내가 즐거운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10여 년 전에 이 아이들 데리고 공부시킨다고 산에 갔었어요. 자연과 하늘을 관찰합니까? 안 해요. 하는 건 뭐냐면 잡아 뜯고 집어던지고, 밀어붙이고 이런 거예요. 이런 상태에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접근을 하냐면, 억누르고 자제시키는 거죠. 때려야 하고 벌줘야 되고 질서교육을 시켜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 두 가지가 서로 붙어있는 게 아니라 따로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러면서 그렇게 억누르고 넘어가기가 성공한 아이들은, 엘리트가 되는 거고 못 넘어간 아이들은 교육적으로 실패하는 것이 되는 거죠.

 

 그런데 분명히 이 두 가지가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을 거거든요. 아까 말했던 ‘즐거움’이란 것처럼. 좀 전에 학교에서 가능하냐라는 물음을 던지셨는데, 저는 이를 교육내용적인 측면에서 풀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매커니즘을 만드는게 중요하고, 그걸 교육의 한 일반화된 원리로 만들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그게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고.

 

 

미적 교육에 대한 공교육의 불가피한 한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현광일 : 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다만 공교육 내에서 그에 대해 동의하는 지점을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지어 전교조나 정교사들 내에서도요.

 


 

김인규 : 음, 물론 공교육은 어떤 의미에서 ‘공장’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한계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 공유지점에 대한 부분은 교육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육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서 지금 좌-우파를 떠나서 굉장히 사고가 경직되어 있고 별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는 거죠.

 

 

 

임재춘 : 관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교육에 대한 교사의 관점이라는 거죠?

 

 


김인규 : 그렇죠. 교사의 관점입니다.

 

 


현광일 : 지금 현재의 교육론이라고 하는 것이, 전반적인 교육과정 자체가 지식기반, 학문기반에 대한 구성론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그런 것과 관련해서만 치중하시는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미적 교육’과 같은 것들이 융합되기에는, 낭만주의나 계몽주의, 쉴러와 같은 쪽에서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넘어야 할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놔둬도 되는데 일부러 가르치고 있다


 

 

윤현옥 :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할께요. 읍내 의사가 왕진 가방을 들고 헐레벌떡 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묻더래요. “의사선생님 누가 위독하신가 봐요?” 그랬더니 의사가 “아니, 내가 가기 전에 나으면 안 되잖아” 그랬데요. 그러니까 병이 치료가 되기 전에 달려가서 치료를 해야 자신의 치료가 먹힌 걸로 된다는 거죠. 교육에 적용을 해보면 그냥 나눠도 스스로 알아서 배울 걸, 일부러 가서 가르치고 있다는 거죠

 

 제가 최근에, ‘교육 뭐 필요 있냐?’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주요한 계기가 무엇이냐 하면 한병철씨 『피로사회』를 읽고 난 후예요. 거기서 성과중심 사회에서 긍정의 과잉 때문에 누가 누군가를 착취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를 착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성취가 자기 안에 내면화 되었다는 거죠. 개인이 성과를 내야하는 상황이 자기 안에 내면화 되었기 때문에 누가 공부해라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엄마보다 더 잘 알고, 창의적 인재가 되어야 한다, 이거 다 알고 있어요. 그게 사실이예요. 그런데 그렇게 못되는 아이들은 ‘루저’가 되는거죠.

 

 ‘루저’라는 개념이 현대사회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루저’라는 것에 대해서 부모나 사회나 아이들이나 모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그래서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는데 한병철씨는 그것에 대해서 해법으로 발터 벤야민의 말을 따서 ‘깊은 심심함’이란 개념을 제시를 해요.

 

 사실 우리 세대들은 다 알지만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누워서 빗물이 얼룩지는 천장을 들여다 봤을 때가, 정말 자신이 창의적이고 가장 기억나는 순간들이예요. 그 빈틈, 여유, 아무 것도 없었던 순간들. 아무런 강박도 없는 상태. 이런 것들이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안에 일어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거죠. 물론 ‘왕진의사’ 같은 분들도 필요합니다만 저 지점들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봐요.

 

강박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여러 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심에는 ‘용기’가 필요할 거예요.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 교육현장에서 ‘너 여기 떨어져도 돼. 밑에 쿠션을 깔아놨으니깐 실패해도 괜찮으니깐 한번 해보자.’ 이렇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감히 뛰어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그런 것들. 교육체제 안에서는 실패해도 되는 거잖아요? 사회에서야 그럴 수 없을 지라도. 실패해도, 그 안에 가치 있는 것들이 있고 자기가 믿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하는, 그 믿음을 통해서 자기를 던질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번역한 책에서, 어떤 물리학자가 이야기하기를 ‘천재성’은 칸트나 반 고흐 같은 특출한 사람을 떠나서, 자신의 능력을 순간, 짧은 순간에 최대 출력으로 올리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 사람의 말대로라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죠. 어느 순간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천재성에 대한 성취가 쌓이다 보면, 이질적인 것에도 적응하거나 혹은 치밀하게 무엇을 만들어가는 능력이 높아지는 거죠.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신뢰나 자기 믿음, 자신감 이런 것들이 강해지기 때문이죠. 이런 능력이 활성화된다면 ‘공동체성’이라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고요. 사실 공동체성은 기존에 항상 ‘있는 것’이었잖아요. 다만 그 이질성, 타자성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나 하는 수용능력에 대한 문제일 뿐.

 

 성취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것들이 창의성으로 연결되는 요소인 것 같아요. 용기 있게 감행해 보고, 틀도 깨고 ‘꼴리는 대로’도 해보는 것. 자신 있게 실패하는 것. 그 안에서 자기가 인정할 것들을 찾아보는 것, 성취감, 이런 것들이 창의성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을 해요.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초반에 문화예술교육의 개념을 설계했던 분들을 최근에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여전히 ‘문화예술교육’ 이라는 개념은 엉뚱한 개념을 묶어놓은 사생아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왜냐하면 문화, 예술, 교육 다 따로잖아요. 물론 여기에 대한 철학적 논이나 근거기반들 다 빼고 요즘에는 이 개념이 통용되는 분위기긴 하죠. 뭔가는 차이가 있는, 문화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 류재홍씨가 쓴 칼럼에는 문화예술교육은 문화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문화화 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쓴 것 같아요. 또 다르게 문화계에서는 여전히 문화예술교육을 ‘장르교육’이라고 보고 있고요.

 

 제 나름대로는 예술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교육적 상황과 많이 겹쳐있다는 생각을 해요. 예술은 일반적 감상활동이 아니라, 특히 커뮤니티 아트 같은 경우 삶의 활동이며 수동이든 능동이든 자신의 삶이 변화하는 과정을 느끼게 되는 데에 교육적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예술이 가지는 기능이나 교육이 가지는 기능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왕진 가방’ 필요 없다는 거죠. 자기안의 치유 능력으로 스스로 낫는 것. 그런데 문화계에서는 대게 문학, 그림, 연극, 노래 이런 장르교육을 예술교육이라고 지칭하는 거예요. 예술은 이미 확장되었고, 틀 자체도 없어졌다고 이야기하는데 도저히 이게 안 먹혀요.

 



김인규 : 교사들 스스로가 장르 접근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 상황을 벗어나자니 막막한 무언가가 있는 거죠. 또 한 가지는 학생들도 이미 두 계층으로 분화가 되었잖아요. 중산층 학생들은 과업에 대한 실패의 문제가 가장 큰 스트레스고, 중하위층 학생들은 맹목적으로 생존하는 삶이 어렸을 때부터 체득되어 있기 때문에, 이게 학교에서 감당이 안되는 영역이라는 문제가 있어요. 이게 학교폭력이라던가, 이런 양상으로 나타나거든요. 이에 대한 해법이라는게 이런 상황 때문에 굉장히 복잡해져요. 학교선생님들 조차 막연하다 보니깐, 전통적인 체벌과 폭력, 일방적인 의사소통만이 있는 거죠.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교육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좀 더 명확히 상을 그려줘야 현장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박형주 : 손채수 선생님의 하시는 경우. 교육예술이라고 표현을 하셨잖아요. 그것도 말씀하신 교육의 문화화나, 이런 것들과 좀 맥이 닿아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교육방법론에서도 조금 참조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면요.

 

 


손채수 : 문화교육에서는 일반학생들의 문화이해적인 측면도 고려가 많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예술교육에서는, 예술의 기초 언어들을 제공함으로 아이들을 ‘즐거운 만남’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고요.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그 접근방법을 알려주는 거죠. 그리고 그 접근방법을 고민할 때, 예술이 왜 필요한가는 논의들이 함께 되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해요. 또 장르별로 나누는 게 아니라 굳이 구분없이 자연스럽게, 예술에 의해서 가령 화학과 생물을 같이 배울 수 있다면 훨씬 더 아이들이 재밌고 신나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아이들의 발단단계를 고민하면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본다면, 여지가 적지 않을 것 같아요.


 

 


두 번째 방담회 내용


첫 번째 이야기 : 미적 교육이란 무엇인가? 왜 주목해야 하는가? [바로 가기]

  

          - 미적 교육의 이론은 무엇인가? 왜 주목해야 하는가?

          - 현재의 문화예술교육은 장르 교육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 학교 현장에서 미적 교육론은 적용 가능한가?

          - 공동체성에 관한 문제

 

두 번재 이야기 : 미적 교육. 현장의 균열과 한계, 그리고 아이디어 [바로 가기]

 

          - 현장에서 바라보는 미적 교육이란 무엇인가?

          - 학교라는 현장의 '균열'

          - 미적 교육에 대한 공교육의 불가피한 한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 그냥 놔둬도 되는데 '일부러' 가르치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 :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것. 그 방법과 현장의 환경 [바로 가기]

 

          - 자기결정성은 무엇인가?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는가?

          - '본베 교육'이 사라진 때, 아름다움도 '기본'은 가르쳐야 한다

          - 교육이 근대적 훈육개념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은 하나의 '오해'

          - 학교 교육 현장에서의 미적 교육의 '가능성'

          - 보편적인 차원에서는 '기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네 번째 이야기 : 교사들에게, 그리고 '학교 밖 마을'에 대해서 [바로 가기]

 

          - 연수나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반영했으면 하는 점

          - 관료화되어 있는 학교의 한계, 그리고 '마을'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