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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남 선생이 쓴 『꿈의 도시 꾸리찌바』(녹색평론사 2009)를 보다가 “꾸리찌바에서 태어난 생명은 가치 있다”라는 구절에서 한참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재미와 장난이 만든 생태도시를 표방하는 브라질 꾸리찌바 시의 시정(市政) 철학이 이 한 줄에 함축적으로 요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보며 놀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컴퓨터를 배우고 자판을 익히는 꾸리찌바 시민들의 《타자연습》 교재에 적혀 있는 예문들을 보면서도 퍽 놀랐다. 어린이와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타자연습》 교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신이 울고 싶을 때 나를 불러라.
그러면 나는 당신과 함께 울어줄 수 있다.
당신이 웃고 싶다고 느낄 때 나에게 말하라.
그러면 우리는 함께 웃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필요치 않을 때에도 역시 나에게 말하라.
그러면 나는 누군가를 찾을 수 있다.

 

 

 이웃의 윤리를 생각하고, 환대(歡待)하는 마을을 상상하는 무수한 표현들 가운데 이토록 멋지고 감동적인 표현을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성의 본질이란 결국 책임감과 연대라고 할 때, 위 표현은 그것에 대한 공동체의 관습과 법도를 표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사람과 장소에 대한 새로운 가치의 전환을 꾀하고, 그런 가치의 실현을 실생활의 디테일한 부분에까지 적용하고자 한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장소를 바꾸는 ‘통합예술’을 구현하고자 했던 셈이랄까. 이 작은 예만 보더라도 왜 꾸리찌바가 존경의 수도(首都)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떤 사례에 대한 과도한 낭만화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품위 있는’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마을공동체 사업이 시급한 우리 실정에서 꾸리찌바 사례가 좋은 참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화와 예술에 기초한 마을 커뮤니티 사업이 다른 무엇보다 사라져가는 또는 비어가는 (공적) 공간을 정비하여 ‘사람’을 채워넣는 일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누구랄 것 없이 삶의 목표를 잃은 정신적 난민(難民) 신세와 다를 바 없는 우리 현실에서 이와 같은 가치의 전환이 요구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동네가 키우는 아이들, 동네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마을 커뮤니티(community) 형성이라는 가치의 전환이 시급하다. 19세기 영국 여성시인 메리 보탐 호위트가 썼듯이,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내는 까닭은 / 시합에서 일등을 만들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다.”(「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내는 것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십수 년부터 추진되어온 작은 도서관 운동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작은 도서관 운동은 제대로 된 자녀교육을 바라는 중산층 시민들의 자치(self-rule) 욕구와 문화․교육에서의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사회운동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이러한 작은 도서관 운동은 아이는 물론 마을 어른들까지 함께 나누고 어울릴 수 있는 동네의 다목적 복합문화공간 구실을 함으로써 도서관의 ‘문턱’을 낮추는 데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이 점은 빈민촌에 건립된 꾸리찌바의 <지혜의 등대> 도서관이 빈민촌 문화의 횃불이 된 것과 같은 효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 관(官)에서 움직이지 않으니까 시민의 힘으로 작은 도서관 건립과 운영은 물론 프로그램 기획 과정을 추동하고, 민-관이 함께 도서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을 커뮤니티 형성과 강화를 위한 사업에서 제재와 관리보다는 ‘허용’과 이용자들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는 작은 도서관 운동이 중요한 것은 작은 도서관 특유의 낮은 문턱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의 만남, 소통, 교육의 장소로 활용되는 작은 도서관의 이용자는 마을 아이들과 주부들이지만, 주요 프로그램 대상자는 아이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현재 작은 도서관 10곳이 운영 중인 고양시작은도서관협의회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다원예술과 책이 만난 작은 도서관 이야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작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30~40대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약자) 엄마들을 대상으로 다원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북(Book)새통 UCC>를 추진한다는 점이다. 영상, 책, 미술이 어우러진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부들이 육아(育兒)의 고민은 물론 ‘나’와 마을 이야기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동네에 대한 애착을 높이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프로그램 진행은 마포공동체라디오(FM) 활동에서 배출된 숨쉬는문화예술교육 ‘자몽’의 강사들이 맡았다. 참여한 주부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활용해 마을의 일상을 탐색하고, 작업 결과물을 통해 이웃과 소통하게 된다. 초등학생 및 청소년과 진행하는 다른 프로그램은 라디오방송 제작 등을 경험한다는 점이 다를 뿐 큰 차이는 없다.


 

 신도시 지역의 작은 도서관 운동의 주체는 대체로 고학력 중산층 주부들이다. 이들은 아이들의 육아를 위해 도서관 건립에 조합원으로 참여해 도서관 운영과 프로그램 진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문제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도서관 운영에서 점차 손을 놓게 되고, 동네에 대한 관심 또한 시들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지속가능한 작은 도서관 운영에 있어서 엄마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예술교육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다른 작은 도서관의 사정 또한 대동소이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작은 도서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의 방향을 일종의 ‘마을강사’를 육성하는 차원에서 아이들은 물론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지원으로 시선을 적극 전환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마을강사 육성과 역량강화 활동을 통해 배양된 작은 도서관 운동가 엄마들이 아이들 교육에 관한 프로그램을 자체 진행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지속가능한 도서관 운동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산의 대안 책방 어린이도서관 맨발동무, 인디고 서원, 청주 도깨비어린이도서관, 서울 성대골 어린이도서관, 난곡 새숲어린이도서관 같은 경우를 비롯해 최근 배영환 작가의 제안으로 경기문화재단이 2010년부터 추진한 ‘컨테이너 책방’ 형태의 5개의 <내일책방> 사례는 마을의 교육공동체로서의 작은 도서관의 기능과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가운데 특히 시흥 연꽃마을에 위치한 맹꽁이책방과 양평 정배마을의 배꼽마당 사례는 작은 도서관 운동의 새로운 질적 도약의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 핵심은 우발성과 즉흥성을 중시하면서 도서관 내부에서 마을 커뮤니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간’을 쌓아가는 일의 아름다움이다. 고양작은도서관협의회 [다원예술과 책이 만난 작은 도서관 이야기] 프로그램에서 아쉬운 점이 바로 이 점이었다. 차후에 이 사업을 진행할 때는 작은 도서관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면서 ‘마을강사’ 육성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 설계가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쉽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을 어른들을 중심으로 한 내부역량을 강화하고 도서관의 비전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작은 도서관 운동이 추구해온 육아공동체로서의 설립 목표는 ‘내 아이주의’라는 이기심 때문에 정체될 수도 있다.


 

 도서관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 우리는 아직도 학교와 동네에 도서관을 짓는 운동조차 ‘기적’을 운운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육아․보육 예산 등을 참여예산제를 통해 ‘지원’하는 게 아니라 ‘투자’한다는 프레임으로 주민들을 설득한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 같은 정책적 프레임 형성과 후속 지원책이 요구된다. 작은 도서관 내부에서도 자체 역량강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과 함께 비조합원에 대한 문호개방을 통해 커뮤니티 외부로 시선을 확장하려는 열린 마음을 통해 마을 커뮤니티의 안과 밖을 상상하고 사유하면서 ‘환대하는 마을’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마을의 작은 도서관에 가는 이유는 책이 아니라 인간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 관련 기사

     도서관, 아이들에게 라디오 방송을 허하다! [기사 보기]

    - 고양시 느티나무작은도서관 '북(Book) 새통 UCC' 프로그램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