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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넘봄 | 서평
빛깔 좋은 생각 도구들도 꿰어야 보배다, 어떻게?
강정석 / 지식순환협동조합


창의성을 ‘강박’으로 요구하는 사회


 아마도 ‘창의성’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손꼽힐 것이다. 거의 모든 사회적 분야에서 우리는 창의성을 요구받는다. 나 스스로를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각종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홍수와 함께 급변하는 뉴 미디어의 어지러운 환경 아래에서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창의성은 21세기의 ‘강박’과도 같다. 하지만 그러한 강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것 아닌가. 그저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본다면, 어떠한 강박이나 구속 없이 자유롭게 내 생각을 가지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퍼즐놀이 하듯 ‘논다면’ 어느 순간 창의성은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아닐까. 굳이 우리가 ‘창발성’ 같은 어려운 개념을 떠올리지 않아도, 창의성은 당연히 자유로운 생각들, 그리고 전혀 다른 생각들의 충돌과 마주침 속에서 비로소 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어쩌면 우리는 ‘창의적’이기 위해 사회에서 강박적으로 요구하는 ‘창의성’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기묘한 역설과 마주하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편으로, 최근 인지과학이나 신경과학, 뇌과학 등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지닌 기본적 능력 중에 ‘상상력’이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즉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누구나 가진 ‘상상력’이라는 능력을 통해 ‘창의성’을 발현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이를 가로막는 여러 방해물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창의적’일 수 있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Robert Root-Bernstein)·미셸 루트번스타인(Michele Root-Bernstein) 의 저서 『생각의 탄생』은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사람을 사로잡았던 책이다. 저자들은 누구나 ‘창조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사상가·과학자·예술가들이 가진 창작의 경험들을 분석하고 유형화하는 과정을 통해 ‘13가지의 생각 도구(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마지막으로 통합)’들을 제안한다. 이 13가지 생각 도구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으며, 창의성은 이 도구들을 훌륭하게 활용한 결과라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우리는 저자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이를 충분히 익히고 적절한 훈련을 통해 발전시킨다면, 누구나 ‘창의적’일 수 있다. *이 책이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을 비롯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널리 소개되고 읽힌 이유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커리큘럼을 구성할 때 활용될 수 있는 유용한 팁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점도 이 책이 가진 중요한 장점 중 하나이다. 


창의성 발현을 위한 13가지 생각 도구

 하지만 아무리 13가지 생각 도구들이 잘 정리되어있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이 이 도구들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특정한 도구들에만 특화된 감각을 지니고 있다면 잠자고 있는 창의성을 깨우긴 어려울 것이다. 저자들 역시 이를 “‘환상’과 ‘실재’ 사이의 단절”(36p) 이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수학 공식을 달달 외우고 논리적 사고 능력이 뛰어날지라도 실생활에 이를 적용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고질적인 ‘주입식 교육’이 이런 ‘헛똑똑이‘을 양산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칸트가 오래전부터 강조했던 이론적 인식을 위한 ’지성‘과 타자와의 관계를 위한 ’감성‘, 그리고 이를 연결해주며 윤리적으로 성찰하게끔 만드는 ’반성적 판단력‘이라는 인간 인식의 황금률은 결과적으로 지성의 비대함과 감성의 쪼그라짐, 그리고 결과적으로 반성적 판단력의 부재로 인한 성찰과 공감능력의 상실 등으로 이어져 왔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이과와 문과, 그리고 예체능을 나누는 ‘분과 학문’적 교육이 얼마만큼 창의적 생각들을 저해하는지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마치 과학자나 수학자 등 소위 ‘이과’로 분류되는 쪽에서는 논리적 사고능력이 필수적이며, 반대로 예술, 인문학 등 ‘문과’로 분류되는 쪽에는 창의성과 유연성, 감각능력 등이 필수적이라는 우리들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놓는다. 오히려 과학자들조차 특정한 ‘느낌’이나 ‘감정’, 그리고 자유롭고 유연한 ‘상상’을 통해 논리적 개념에 이른다는 것이다. 즉 예술가, 과학자, 사상가 할 것 없이 창의적인 사람들은 어떤 느낌과 직관을 갖고 특정한 대상에 접근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느낌 또는 직관은 적절한 훈련과 연습, 즉 ‘교육’을 통해서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창조적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느낌과 감정과 직관의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은 절대적인 명령과 같다. 그것이 ‘정신적 요리’, 혹은 교육의 요체다.”(32p)

 이러한 맥락 아래 저자들은 피카소(Picasso) 같은 화가와 아인슈타인(Einstein) 같은 과학자, 바흐(Bach)나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같은 음악가나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같은 무용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같은 소설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뛰어난 ‘천재’들의 연구 또는 창작 과정을 묘사하면서 앞서 언급한 ‘생각의 13가지 도구’들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 과정은 그 자체로서도 굉장히 흥미진진한데,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아인슈타인(Einstein)이나 모차르트(Mozart) 같은 ‘천재’들의 비밀스러운 머릿속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저자들은 특정 분야에서만 뛰어난 ‘전문가’가 아니라 13가지의 생각 도구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통합적 사고능력, 즉 ‘종합지(綜合知, synosia)’를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필요한 것은 종합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전인적, 통합적 교육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은 ‘전인’을 길러내는 데 있어야 한다. 전인이야말로 축적된 인간의 경험을 한데 집약하여 ‘전인성(wholeness)’을 통해 한 조각 광휘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통합교육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오로지 그것 하나이다.”(429p) 13가지 생각 도구들의 종합적 이해를 통한 전인성의 획득, 이것이 바로 교육의 목적이며 창의성 발현의 기본적 전제조건이다.


경쟁적·도구적 창의성을 넘어, 협력적·공공적 창의성을 위한 상상

 하지만 저 13가지 생각의 도구들을 그저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내 안에 잠재된 창의성의 불꽃을 일으킬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저자들이 강조했던 ‘종합지’, ‘전인성’, ‘통합적 이해’를 창의성 개념에 대한 이해 자체에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또 다른 창의성 연구자인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가 ‘창의성의 시스템 모델’을 통해 강조했듯이, 창의성은 단지 하나의 ‘개인(Individual)’의 역량으로만 발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개인’의 창의성이 표출될 수 있는 특정한 ‘영역(Domain)’과 이 영역으로 진입하기 위한 ‘문지기’ 역할을 하는, 즉 창의성의 결과물이 그 영역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분야(Field)’가 함께 구성되어야 한다. 즉 한 명의 개인에게 잠재된 창의성은 ‘영역’과 ‘분야’라는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서야 비로소 발현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창의성 자체는 오로지 ‘개인’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를 발현시키기 위한 사회적 환경이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앞서 강조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창의성을 강박처럼 요구하고 있다. 창의성이 오로지 개인의 ‘역량’으로 환원되어 소비되고 있는 탓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개인의 역량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창의성은 결과적으로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써 기능할 뿐이다. 우리는 이를 ‘경쟁적’ 또는 ‘도구적’ 창의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생각의 탄생』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단지 개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창의성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우리는 이 책을 발판삼아 13가지 생각 도구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즉, 개인에게 강박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경쟁적·도구적 창의성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매개를 통한 상호 성장을 도모하는 창의성, 즉 협력적이면서도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창의성을 상상해야 한다. 더욱 구체적으로, 그러한 창의성을 가능케 하는 시간과 공간의 가능성을 우리는 ‘학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학교가 살벌한 경쟁과 무관심, 그리고 냉소로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창의성의 불꽃을 주조해낼 가능성의 시공간으로서의 ‘학교’를 다시금 상상하고 구체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바로 창의적인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강정석

 영화감독을 꿈꾸다 우연한 계기로 영상미디어교육 및 대안적 고등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어 관련 분야의 연구 및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에서 판돌로 근무했으며, 지금은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사무국장, 다사리문화기획자학교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미래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공저), 『누가 문화자본을 지배하는가』(공저), 『노오력의 배신』(공저) 등이 있다.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