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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더봄 | 기획대담
‘문화분권’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하자
새 정부에 바란다: 문화예술교육 정책
 
일시 : 2017.07.05.(수)
장소 : 서울혁신센터 청년허브
진행 :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박희주
참석자

 - 정연희(前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진흥본부장)

 - 차재근(서울시 청년허브센터 센터장)

 - 최지원(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지봄봄》 담당자)

 - 김은기(녹취)
 - 권하형(사진촬영)

 

 

최지원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동일하게 제기되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결의 터닝 포인트 없이 사업의 양적 성장에만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지지봄봄》 이번호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담아 정책에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번호 좌담은 정책에 대한 큰 이야기들을 나누는 대담과 더불어 현장에서의 실천적 움직임에 대한 의견을 듣는 좌담으로 두 차례 진행됩니다.

박희주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문화 쪽에 신경을 쓰며 자율성을 존중해 주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가시적으로 문화예술교육정책, 문화예술정책도 확대될 것 같은데요. 《지지봄봄》 이번호에서는 지금까지의 문화예술교육,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생긴 시점과 그 이전부터 어떤 문제점이 누적되어 왔는가를 살피고, 앞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 중앙정부의 역할과 진흥원, 각 재단, 광역 자치단체, 기초단체의 역할은 무엇인지 듣고자 두 분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그간의 누적된 문제점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정책에 따라 위에서 떨어지듯, 혹은 밀어내는 사업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차재근

  

 현재 문화예술교육정책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점들에 대한 진단은 사실 문화예술교육정책 10년을 맞이했을 때 좀 더 면밀히 진행되었어야 했는데, 그 논의 시기를 놓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책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성과에 대한 우호적 평가와 진정성 있는 진단이나 점검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설계가 진행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형식적으로 ‘자화자찬’에 가깝게 진행되어 논의 시기를 놓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근래에 예술강사 문제도 큰 이슈로 떠올랐지요? 현재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이 학교문화예술교육-사회문화예술교육 두 축으로 나뉜 상황에서 학교문화예술교육은 공교육 내 예술교육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교육부가 아닌 문체부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가는 것은 결국 공교육 내 예술교육을 피폐하게 하고, 이것이 고착화되었을 때 우려되는 것은 공교육 내에서 “예술은 뭐하러 하나, 국영수만 하면 되지”라는, 예술교육은 불필요한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팽배한 인식입니다.

박희주

 

 학교 수업은 대학 진학에 필요한 입시 위주 교육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공교육 영역에서 예술강사 사업이 굉장히 ‘형식’에 치우친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지만 학교 수와 학생 수, 예술강사의 수가 점점 늘어가는 데 이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강구해야 하는지 걱정스럽습니다. 

 


다시, 왜 문화예술교육은 왜 필요한가?

정연희

  

 문화예술교육정책 생태계 내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가야 한다는 논의는 오랫동안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단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을 낳은 것 같습니다. 학교문화예술교육 측면을 보면 정확한 목표 설정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의 본질적 목적은 모든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인데, 이를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균형 있는 포괄적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예술이 인문 분야에 포함된 현재의 인문 대(對) 과학의 양자 구도가 아니라, ‘인문-과학-예술’이 트라이앵글처럼 균형을 이루어야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교육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교육정책 활성화는 ‘전국 모든 학교에 예술강사 1명씩’처럼 정량적 목표에 방점을 두고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의 본질적 가치에 기반을 둔 목표 설정을 외면하며 도구적 가치를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양적인 성장은 이루었으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질적인 결핍과 함께 참여한 많은 이들의 성장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새 정부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논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본질적, 공적(public) 가치에 대한 기준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뻔한 것 같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정책 결정자들이 간과해온 부분입니다. 이를 다시 규정하는 노력, 기본과 기준, 목표를 다시 설정하는 작업을 새롭게 면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희주

 

 그렇습니다. 가치지향을 고민해야 하죠. 지금 중앙 단위 여러 사업 지원은 양적 팽창만을 부추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는 해마다 반복된다는 느낌도 있고요. 어떻게 하면 새로운 요구들을 수용할 수 있을까요?

정연희

 

 사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정책적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논의를 할 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위원회를 통해 이를 점검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쳤었는데, 그 이후 보수 정권 하의 정책결정 과정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보이지 않았고, 정책에 대한 밀도 있는 논의과정을 거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왜’에 대한 철학적 논의보다는 ‘무엇을’ ‘얼마만큼’에 대한 논의가 지난 10년간 계속됐습니다. 새 정부 들어서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논의할 때는 ‘무엇을’이 아니라 ‘왜,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해온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 따르면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게 되어 있고, 지역은 이를 반영하여 지역문화예술교육 계획을 수립해 발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권한을 법에 의해 부여받은 결정 주체들이 그동안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이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예를 들면, 진흥원에서 무언가가 결정되었지만 어떤 절차로 되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진흥원에 물어보면 문체부의 결정이라고 하고, 문체부는 또 책임지지 않는 이러한 상황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사결정 주체들의 권한 측면에서 “그 권한을 합리적인 사회적 규범 안에서 행사 했는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는가”를 확인해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를 구성해서 민간과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결정하도록 법에 명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았고, 2017년 초에야 국회의 요구에 의해 위원회가 결성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년간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가 구성되지도 않았고, 운영도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절차를 걸쳐 정책이 결정되고,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지속 가능하도록 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리더가 바뀌고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고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해 관계자들의 지혜를 모으고 전문적인 의견수렴을 통해 최선의 결정을 해야 했음에도 지난 10년간 그런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과 관련한 중요한 정책적 결정 사안들이 있었는데 그 맥락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또한 문화파출소 등의 사업도 계획이 수립되어 내려오지만, ‘어떤 맥락’에서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라는 큰 목표 하에 ‘어떤 지점’을 보완하고자 ‘어떤 체계’ 안에서 구성이 되었는가에 대한 아무런 사전 합의나 정보 제공도 없이 상명하달 식으로 던져진 것이죠. 이렇게 되면 사업 또한 지속 가능하지 않고, 협조를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작이 그렇기 때문에 결과까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지방분권’ 통해 사업 내실화 꾀하자   

차재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민주주의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하물며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더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과정상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은 시민 개개인이 미학적 가치를 가진 창조적 예술 행위를 하자는 정책적 목표를 가진 사업은 아닙니다.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 예술을 통해 얻어지는 가치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점에서 보면 마을공동체, 생활문화사업, 문화적 도시재생 등 문화정책의 확장 영역의 부분에서도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등식은 더욱 유효합니다. 문화정책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그런 것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하나는 결국 이 또한 민주주의와 연결되어 있는데 ‘분권(分權)’입니다. 이번에 3주 정도 유럽 리서치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여러 사례들을 보고 들었던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지방분권’이 잘 갖춰지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사업 환경이 조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이번 리서치출장의 결론입니다. 다행히 새 정부는 ‘문화분권’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역문화국을 신설해서 이를 뒷받침하겠다는 장관의 의지도 밝혔습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뿐만 아니라 예술지원정책 등 다른 문화정책 전반도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과 환경에 맞는 정책 수립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추가로 유럽 4개국을 돌아다니며 느낀 소회를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심지어 민간단체나 개인 활동가가 하고 있는 개별 프로젝트마저도 시민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시민의 요구가 있을 때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고,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의 요구에 의한 정책 생산과 집행이 아니라, 결국은 정책 당국자의 인사고과 자료나 성과 자료 또는 해당 정부의 일자리 창출 등 여러 가지 눈에 보이는 정량적 성과에만 주목하다 보니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는 구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희주

 

 경기문화재단 북부문화사업단에서 주관하는 ‘인생나눔교실’이라는 문화예술위원회 사업이 있는데, 이 사업은 결국 문체부에서 만들어서 문화예술위원회에 예산을 주고 실행하는 형식입니다. 은퇴자가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적 소양을 나누자는 교육적 측면이 강한 사업인데, 이 사업의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사업을 되풀이하며 자가 발전하거나 자기만족에 도취되는 수준이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흥원이 설립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이 나온 지 20년 가까이 되었으나 예산이 증가하는 등 양적 팽창은 이뤄졌지만 사업의 내실(內實)을 다지는 것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생애주기별로 문화예술교육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 집중하기도 하고, 소외계층에 집중하기도 하고, 다문화에 집중하기도 하는 등 파편적이고 단편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죠. 어떻게 총체적 맥락 속에서 묶어내야 할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차재근

 

 그 연장선에서 좁혀, 가령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으로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앞서 말씀드렸던 ‘분권’이 왜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고용의 주체, 예술 강사의 파견영역, 장르 등이 중앙기관에서 정한 틀로 진행됩니다. 어찌 보면 분권이 어느 정도 형성된다면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제, 요구는 그 지역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이런 문제가 보완되려면 이 분야의 예술강사가 필요하다.” 고용주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환경적 특색에 맞춰야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독일 로이틀링엔(Reutlingen) 음악학교처럼 ‘방과후 예술학교를 공적 영역에서 만들겠다’라는 정책적 목표를 추구한다면, 가령 한 가정에서 두세 명의 자녀가 그 학교에 다니면 등록금을 싸게 해준다거나, 소득에 따라 수업료를 조정한다거나, 예술강사와의 1:1 수업은 조금 비싸게 받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지역 나름의 방과후 예술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고용주체 문제도 그렇습니다. 예술강사의 역할을 정책영역 안에서만 한정하지 말고, 예술강사 그룹이 문화적 도시재생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연구와 조사도 할 수 있도록 예술강사 그룹의 활동영역을 넓혀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문화예술교육 정책영역 내의 예술강사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체의 조합을 형성해서 그 조합이 고용을 한다거나 하면, 그 조합에 소속된 예술강사들은 자생력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가령 어떤 지역은 또 ‘공적영역에서 그들을 교육공무원의 일부로서 활용하겠다’ 같은 대안을 만들 수도 있겠죠. 지역이 스스로 지역 특색에 맞게 예술강사를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문화예술교육 정책 초기의 지향점에는 ‘문화다양성’이라는 중요한 키워드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이 가진 다양성을 관찰하고 보전할 수 있는 기능을 하는 정책을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문화분권의 틀을 갖추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 혁신과 변화의 기본

박희주

  

 말씀에 동의합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 영역에서의 예술강사는 역할이 한정되지만, 문화예술 분야 전체의 관점으로 본다면 활동영역이 확대될 수 있습니다. 경기도 특정 지역, 예를 든다면 북부 지역의 리서치를 하고 싶은데 기존의 예술강사 풀(pool)을 제외하고 다른 곳에서 그 인력을 찾는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한계가 있습니다. 통합적으로 지역에 맞게 사업이 운영된다면 예술강사로도 활동하고, 도시재생이나 다른 교육영역에서도 활동이 가능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의 틀이 아니라 전반적 문화활성화라는 사업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분권’이라는 것은 결국 지역 특색에 맞는 정책을 발굴해 냄으로써 굳이 ‘일자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감’이 되어가는 과정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예술가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일자리에 목 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정연희

 

 사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는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담겨 있습니다. 지역센터의 설립에 관한 것, 지자체장의 예산편성 의무, 지역 학교와 문화기반시설의 장(長)이 문화예술교육의 여건을 마련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분권, 지역 중심의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라는 접근 방법이 이미 법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2006년 3월부터 진흥원에서 근무를 했는데, 이미 2006년 말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지역 이관에 대한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며 초기계획이 중단되고, 지금의 중앙 주도의 방식으로 되돌아간 상태에서 십년간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중앙에서 노력해야 하는 것은 예산을 늘리는 것보다 ‘지역이 어떻게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지,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진흥원이 문체부와 함께 대부분의 권한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은 지역대로 결핍을 겪고 있고, 중앙은 중앙대로 어려운 상황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책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정책의 취지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은 법에 명시된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여러 방법론을 얼마나 제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는가에 대한 성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 예산이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도에 대폭 확대되었습니다. 교육부 예산과 매칭되어 예산이 커지면서 지역 이관과 진흥원의 기능 전환을 위한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이 기회들을 놓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희주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진흥원의 역할은 전 국민의 생애주기별로 어떤 방식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진행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 일반성인, 장년, 노인 등 각각의 생애주기별로 어떤 가치를 담은 교육정책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진흥원의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팔다리가 자유로워야 하는데, 지금은 짐이 너무 많아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중앙 단위 기관에서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하고, 그 짐들은 광역이나 기초로 내려서 지역에서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모든 권한이 다 중앙에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정해진 대로 할 수밖에 없고 그 외 모든 것은 중앙에서 진행되는 구조이지요.

정연희

 

 문화예술교육 관리기관으로서 진흥원의 역할도 정책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인 것 같습니다. 관리기관이 문화예술교육 전문성을 갖고 있는가, 집행 과정에서 유관 기관과의 협의·조정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또 책무성을 구비하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볼 때, 진흥원은 이 세 가지 측면, 다시 말해 전문성 확보, 협의·조정 역량, 책무성에 있어 매우 회의적인 평가를 현장에서 받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진흥원이 여러 측면으로 보았을 때, 말씀하신 분권의 기회를 놓치면서 기관 차원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을 설계할 때 “과연 이 관리 기관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가?”를 솔직하게 진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 ‘모든 국민의 문화예술교육 기회 보장’이 기본 원칙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그것이 해당 정책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의 기본 원칙이고, 그것을 항시 고민하는 주체가 진흥원이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책사업은 ‘택배사업’이 아니다 

박희주

 

 안타까운 것은, 아직까지 문체부가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체부에서는 각 시·도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뿐만 아니라 재단 관계자를 모아 ‘그것을 할까말까’ 하는 단편적 고민보다는 ‘전반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가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주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잘 운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연희

 

 둘 다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근본을 다시 따져보면서 문제의 핵심을 진단해 보는 작업도 필요하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이 동시에 병행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변화가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큰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재근

 

 문화예술교육정책 초기 문화예술교육의 지향점을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예술교육 앞에 ‘문화’를 붙인 나라는 우리뿐일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전 세계 예술교육정책의 지향점과 비교하면 우리의 그것은 굉장히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초기 담론이 그만큼 두터웠고, 이를 형성하는 과정 또한 괜찮았다는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각론은 도식화되어 진행되어 왔습니다. 도식화된 전달체계의 관점에 맞춰져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다원주의에 입각한 현장이 발견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생애주기별 정책 설계 또한 실패한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크랑(Jack Lang) 장관이 만든 프랑스 문화예술교육 5개년 계획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전략적이고 디테일합니다. 우리처럼 ‘지원법-센터-위원회 설립’ 전달체계 차원이 아닌 구체적 추진과제 중심의 계획이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초등학교 합창단을 1,000개 만드는 것이 중앙정부 주요 핵심과제 중 하나로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제가 도출될 수 있었던 데에는, 사람의 음감(音感)은 10대 이전에 형성되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면 어렵다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지요, 그만큼 각론에 충실하게 계획이 짜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 안에서는 이러한 것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핀란드 베이직 스쿨: 유아에서 노인까지

박희주

 

 인간이 성장하는 단계에 있어서 일반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고 그것이 실제로 필요한 것이죠. 우리에게는 이것이 부족하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차재근

 

 그리고 ‘합창’이라는 공동체 예술영역이 가진 보이지 않는 가치들(화합, 배려, 조정, 양보, 공동체에 대한 자기 기억)을 초등학교 시기에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르떼를 중심으로 말했지만, 정책연구, 조사 기능들은 사실 진흥원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들에서도 거의 놓치고 있습니다. 이 기관들이 제일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인데 이 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개선되어야만 합니다.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을 둘러싼 문제들에 광역문화재단들이 반기를 들고, 다양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제 생각에는 재단이 적극적 입장을 견지한다면 역설적으로 굉장히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경기문화재단에서 중앙정부, 예술강사 혹은 다른 예산지원을 전제로 한 이런 사업에 끌려다닐 게 아니라 재단이 의지를 갖고, 중앙정부에 의지하기보다는 경기도 자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설득하고, 경기도만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만들어 내고, 이에 따른 세부 실행과제를 만든다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다른 광역재단, 기초재단이 함께 이러한 움직임을 만들어 가면, 중앙정부는 지금처럼 ‘택배’ 방식의 정책을 포기하고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박희주

 

 한편으로는 학령기,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엄청난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데, 실질적으로는 그 이후인 장년층,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은퇴 세대나 노년층에 대한 문화예술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교육 안에서 자기 성찰의 기회를 찾기 어렵습니다. 입시, 취직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직에 있다보면 자기를 되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도 문화예술교육의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장년이나 노년층에 대해서는 ‘나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생애주기별로 뚜렷한 가치 지향과 목표가 있고, 이에 근거한 전반적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문체부가 주도하여 각 자치단체와 역할 분담을 하며 만들어가는 것을 이번 정부 들어서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연희

 

 사실 십여 년 동안 예술강사들이 현장에서 노인, 유아 문화예술교육을 해 왔으나, 이 경험들을 축적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만 뽑아서 보내고, 일자리 창출에만 신경을 썼지, 지속 가능성과 질적인 성장은 고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학교 시스템 역시 예술강사에 의한 문화예술교육 경험을 학교 변화와 연결시키지 못한 채 단순한 이벤트로 치부해 버린 것이지요. 문화예술교육의 경험들이 모여서 융합되어야 거기서 새롭게 진전된 아이디어와 방법론이 탄생할 텐데 그것을 함께 풀어놓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금 길지만 핀란드의 사례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베이직 스쿨’이라는 시스템은 예술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대안학교이지만, 전공자를 위한 곳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이 일정 기간 학교를 떠나 더 집중적으로 양질의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지요. 베이직 스쿨에서 이수한 교육 시간은 일반 초·중·고등학교에서 모두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질적, 양적으로 충분치 않은 일반 학교의 예술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보완적 시스템입니다. 유아,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예술교사들을 위한 전문연수도 시행합니다, 이 학교는 교장 1명과 상근 예술강사 3~4명이 운영하며 반(半)상근 예술강사가 소속되어 있습니다. 여기 모여서 같이 연구도 하고 학교로 파견을 나가기도 합니다. 양질의 예술교육을 위한 최고의 공간과 장비를 구비해 놓고, 유아부터 노인까지 그리고 전문가들을 위해 100%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온전히 축적되어 새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술 전문성을 기반으로 모든 예술교육 자원이 축적되는 평생예술교육 시스템인 것이죠. 핀란드와 비슷한 사례가 한국에서도 조금씩 발견되고 있습니다. 서울에 6개의 예술교육센터, 그리고 대구의 예담학교 등입니다. 교육청 단위에서 폐교 등을 활용해 예술교육만을 위한 공간을 조성한 것이지요. 
 이처럼 그냥 예술강사를 보내는 차원이 아니라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터전, 즉 양질의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고 그 경험이 축척되고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이 앞으로 문화예술교육정책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오히려 뒤에 생겨난 생활문화정책 단위에서 생활문화센터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고, 교육부의 평생교육 시스템도 이미 충분히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의 변화와 연계 가능성 등에 대해서도 새 정부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양질의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일자리도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공교육에 예술교육이 균형 있는 비중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재설정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육부와 문체부의 협치(協治)가 필요하겠지요. 교육부 산하에 예술교육중앙지원단이 생겼습니다. 학교예술교육 R&D 기능을 하는 곳이죠. 그리고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도 예술교육 지원사업들을 하고 있고요. 문화부와 교육부의 실질적인 협력이 없다보니 중첩 기능과 유사 중복사업들이 생긴 것인데 범정부 차원의 해법을 반드시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엘 시스테마의 실패와 ‘로컬 투 로컬’ 원칙

차재근

 

 문화예술교육만 보면 학교/사회 이렇게 나눌 수 있는데, 학교문화예술교육은 이제는 공교육 현장으로 돌려줘야 합니다. 예술가, 특히 청년들의 제대로 된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도 지금처럼 고용 형태임에도 생계 유지가 어려운 예술강사 제도를 지속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공교육 내에서, 예술을 전공한 사람들의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학교문화예술교육은 공교육 내 예술교육 정상화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진흥원에는 사회문화예술교육이 남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생활문화진흥원이 하고 있는 사업 영역과 많은 부분 중복됩니다. 평생교육 영역 또한 예술교육이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얼개로 가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새롭게 대두될 문화다양성 정책, 이것도 결국은 문화예술교육의 넓은 영역에 포함되기 때문에 정책적 결단과 조정이 반드시 요구됩니다. 
 현재 진흥원이 하는 국제교류사업 중 대표적인 게 엘 시스테마(El Sistema)인데요,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Adolfo Dudamel Ramirez)이 엘 시스테마가 키워낸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었지요. 그 분의 스승이 부산과 대구시립교향악단에 계셨던 곽승 선생입니다. 엘 시스테마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에 제가 다른 프로젝트 관련하여 곽승 선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엘 시스테마는 사회운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교육으로 보는데 그 시작은 사회적 운동이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엘 시스테마가 담고 있는 가치라든가 보이지 않는 성과 같은 것은 사회적 환경에서 포착되고 읽어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시스템조차도 제대로 도입하지 못한 채,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히려 엘 시스테마에 대한 ‘모독’이 맞겠지요. 마약, 총기, 폭력에 찌든 카라카스 우범지대에서 시작된 엘 시스테마의 오랜 성장 과정은 없어지고, 이 사례가 왜 국제적 의미를 가진 것인지에 대한 고찰도 없이, 그냥 모델만 가져다가 전국적으로 ‘배달’시킨 것이죠. 이것은 벤치마킹도 아니고 국제교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요즘 국제교류의 추세는 ‘로컬 투 로컬(Local to Local)’입니다. 지역 스스로 바로 자기 지역에 맞는 모델들을 보고, 어떻게 ‘변형’시켜 우리 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재단이나 지역의 역할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정연희

 

 엘 시스테마가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했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정책 또한 그 태동기에 문화연대와 전교조가 함께 한 교육문화운동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 병폐에 대해 교육문화운동 차원에서 “교육이 문화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문화적 삶에 기여하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다른 교과(역사, 사회, 국어) 선생님들도 참여했으나 교육과정의 경직성으로 인해 실천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예술교과는 ‘문화적 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 아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문화운동의 핵심이 예술교육이 되었고, 그 ‘삶을 위한 예술교육’이 참여정부의 ‘향유자 중심’ 정책 패러다임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정책에 녹아든 것이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출발점을 생각하고 학교 교육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교육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다시 조망하고 의미를 되살려야 합니다.

차재근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초기 담론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집행하는 중앙기관들이 이러한 담론을 외면해 왔습니다. 초기 지향점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죠. 현재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대부분의 사업이 정량적 목표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종의 정책을 주도하는 그룹, 문화행정, 전문가 그룹도 그런 면에선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비판적으로 본다면 그 동안 정책 영역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리더가 부재했고, 조직 자체 내에서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정연희

 

 법이 만들어지면서 문화예술교육정책에서 지배구조(structure of dominancy)가 만들어 졌습니다. 새로운 정책을 설계하기까지는 의견수렴과 현장에 대한 진단 등의 노력이 있었으나, 법이 일단 만들어지고 안정화되면서 지배구조가 형성된 것이죠. 그 지배구조에서 권한을 가진 문체부나 진흥원이 편향성의 동원을 지양하고 절차와 합리적 규범에 따른 결정을 하고 이를 추진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앞으로도 이런 부분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권한을 독점하는 것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정책에 대해서 아주 치열한 토론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보수적인 정권과 그를 따르는 관리자들에 의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10년 동안 정말 안타까운 일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그런 작업들 때문에 지금까지 이 정도의 명맥이라도 유지가 가능했겠죠.
 또 한 가지 사례는 문화예술교육이 사회운동, 문화운동 차원의 가치로부터 출발했고 그것은 창의성과 문화 다양성이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거든요. 내용과 방법론에서 그것이 전부인데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기도 전에 문화다양성 교육이란 이름으로 또 별도의 교육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려가 됩니다. 문체부 내에서조차 소통과 협력·조정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화다양성 교육과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고민 없이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 내기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화는 지역에서부터 시작된다
_ 문화적 교육을 위한 광역문화재단의 역할

박희주

 

 그렇습니다.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만들고 그것들이 지역에 그대로 넘어오는 형태로 되어 있죠.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중앙 단위의 정책 등에 대해 반성을 했습니다. 사실 경기문화재단의 경우 부끄럽게도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운영을 위해 문체부(국비)와 경기도(도비)와 매칭해서 내려오는 예산 외에는 자체 문화예술교육사업 예산이 없는 상태입니다. 물론 재단 산하의 각 박물관, 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은 있는데, 이것은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전시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관객을 확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외에는 지금 생활문화팀, 지역문화팀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경기도만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을 수립하여 실현해나갈 조직이 없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 점에 대해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차재근

 

 문화예술교육정책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문화정책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기문화재단은 문화예술교육팀이 없고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만 있는데, 제가 볼 때는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를 확대·개편하여 생활문화팀(혹은 문화예술교육팀)을 부서화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 관련 부서는 재단의 중추부서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화예술교육은 모든 문화정책이 시작되는 지점이고 시민 전체의 삶, 생애 동안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공유되어야 합니다. 특히 경기도라는 지역적 측면에서 보면 끄집어 낼 것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평화, 한강이라는 환경적 부분, 각 기초 시·군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문화다양성 등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이야말로 경기도의 문화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배양하는데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임을 인식하고,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중앙정부와의 매칭 유무를 떠나서 도비를 확보해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 혁신정책 등이 일본 아니면 거의 유럽 특히 북유럽 모델을 많이 가져오는데, 사실은 정말 우리에게 맞는 모델과 정책은 지금 여기, 지역과 현장 그리고 서사(敍事) 속에 있는데 이를 모르고 평가절하합니다. 그것과 우리는 환경이 다릅니다. 북유럽은 분권이 잘 되어 있고, 인구 규모가 다르며, 기부문화와 민간영역 NPO 등의 역량이 높고, 사회 전반에서 이들의 비중이 굉장히 큽니다. 그들이 각 정책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지지와 참여가 있어야 가능한데 우리는 아직 그 단계는 아닙니다. 서울시에서 혁신정책을 한다 해도 결국은 공공자원으로 출자출연 기관을 만들어 진행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간영역의 개체층이 얇거나 없을 경우에, 그 준비를 위한 지원을 해가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시기까지는 공공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스스로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재단과 경기도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정연희

 

 문화예술이 개인의 자유, 사적 가치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 가치의 영역에 속한다는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경기문화재단에서 미술관,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기관의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실 텐데, 해당 기관의 존립과 지속 가능성을 전제로 했을 때도 기관 설립 시 부여한 핵심기능 위주로 운영한다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래의 핵심 기능의 비중을 줄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과 소통하는 방식이 필요한데 그 대안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육의 비중을 30% 혹은 50%까지도 확대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2009년에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간 적이 있는데, 당시 기관에서 하는 일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자 한 장으로 된 조직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미술품 수집, 전시가 본래의 기능일 텐데, 조직도를 보여주며 “미술관 조직이 이제 큐레이터 50%, 에듀케이터 50%가 되었다. 그리고 직원 구성은 과거에 백인이 80%였지만 지금은 유색인종의 비율이 50%가 되었다”라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인적 구조는 기관이 지향하는 가치를 보여줍니다. 수집과 전시라는 기존의 기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시민들을 미술관에 오게 하고, 만나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 교육의 비중을 높였고, 문화다양성을 지향하는 전시와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죠. 현재 기관의 비전을 ‘조직도 한 장’으로 전달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바꾼 이유는 미술관,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을 찾는 시민들이 일부의 백인 계층이었다는 것이죠. 많은 이민자들이 영국 런던에도 있는데 그들의 표현 욕구를 충족시켜줄 전시가 없으니까 오지 않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이들을 오게 하기 위해서 다양성에 기반해서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던 것이죠. 또한 전시라는 향유 방식과 단절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더 풍성한 교류를 위해서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수적입니다. 
  
박희주

 

 새 정부가 들어서고 문화정책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새로운 기조가 도출될 텐데 경기문화재단은 거기에 따른 수용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고, 두 분이 말씀 해주신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차재근

 

 부가적으로 말씀드리면 중앙정부가 손에 잡히는, 실현 가능한, 성과가 예측되는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모델이나 손에 잡히는 주요 정책은 ‘현장’에 있기 때문이죠. 현장은 사실 지역에 있고요. 그런 면에서 더욱 능동적이고 적극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재단은 산하의 미술관, 박물관 등 기관에서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육 프로그램이 기관의 전시와 연결되어 있는데 사실 그것은 전혀 방어 논리가 될 수 없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혹은 생활문화라는 것은 시민의 일상의 삶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접근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경기도박물관, 미술관은 그 인접 시민을 수용할 뿐, 광활한 경기도 지역 전체를 포괄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경기도의 기초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의 일상 영역은 경기문화재단이 그 역할을 맡아줘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도나 의회에 내부 구성원, 리더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책 자료라든가 그런 것을 제시할 능동적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희주  

 

 네,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