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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곁봄 | 칼럼
해외사례로 본 예술교육
남인우 / 극단북새통 예술감독


 필자는 2013년 서울문화재단의 ‘해외 우수 문화예술교육기관 교류사업’ 방문단의 일원으로 유럽 4개국 주요 문화예술교육 관련 기관을 탐방하였다. 영국 런던의 ‘오페라하우스’에서부터 벨기에의 ‘ABC하우스’까지 공공극장의 예술교육에서부터 민간단체의 예술교육 공간까지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예술이 실험과 시도가 다양한 만큼 예술교육도 각국의 특징에 맞게 독특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실험하고 시행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 다양한 방법 속에서 공통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공통점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질적,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예술교육이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예술교육을 대하는 태도 _ ‘예술교육은 학습이 아니라 경험이다’라는 생각과 ‘예술 그 자체가 가진 교육적 가치’에 대한 믿음
 

(출처 : 아난딸로 홈페이지, http://www.annantalo.fi/)

 

 핀란드 헬싱키 시의 초등학생들은 졸업 전에 <2X5>라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반드시 이수해야만 졸업이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은 바로 현재 가장 훌륭한 예술교육 공간과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아난딸로 아트센터(Annatalo Arts Center)’의 대표적인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오직 예술만이 점수 없이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자존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만족감을 준다. 이것은 더 잘 살게 하기 위한 웰빙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아난딸로 창립자인 마리아나 카얀티엔드(Marianna Kajantieand)는 예술교육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린이들이 진짜 예술을 진지하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교육 프로그램에 함께 하는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가들도 어린이들 못지않게 성취감과 자존감, 성장하는 경험을 얻는다고 강조한다. 교육 참여자와 교육자가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훈육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들을 예술의 세계로 인도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동등한 예술가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 설정이 있었다. 

 

(출처 : 아난딸로 홈페이지, http://www.annantalo.fi/)

 즉, 예술교육은  예술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참여자를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예술권력’이라는 부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비평집에서 밝혔듯이, ‘예술은 해석되고 분석해야 하는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하고 나에게서 어떻게 변화가 이루어지는지를 관찰하고 소통하는 직관과 체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예술이 지식의 영역에 있을 때 우리는 예술이 가지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야기할 수 없다. 지식 영역에서의 예술은 우리에게 어떠한 감동도 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해석해야 하는 예술에는 지식 관점의 정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해석할 수 있는 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관의 영역, 경험의 영역으로의 예술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예술을 체험할 때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고 특별한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의 지식이 나에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고가 바로 예술교사의 태도를 전환시켰다.

안내자로서의 예술교사

 예술교사는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예술과 창작의 안내자이며 판을 운영하는 이끔이, 길을 안내하는 셰르파(sherpa) 같은 존재이다. 특히 예술을 지식적 관점이 아닌 체험을 통해서 본인 스스로 경험하고 느껴본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체험으로 가는 통로에 빛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대부분의 예술 교육기관들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예술교사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이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 여정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참여자들과 그 여정에 함께 있었다. 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길에 있는 참여자들이 중요했다. 그 길의 풍경이 참여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참여자들은 어떻게 느낄지 집중하고 충분히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도 그 길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혹은 예술교사로서 그 길에서 스스로 경험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태도는 참여자들에게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예술교사들이 예술가로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했다. 
 
 프랑스도 예술교육, 특히 미적체험에 있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특히 작가의 작업실을 개방하고 그곳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예술교육 방법 중 하나이다. 참여자들은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예술가의 고민의 흔적을 따라간다. 배우고 가르치는 학습의 공간이 아닌, 상상하고 만드는 창작의 공간에서 체험을 하는 것이다. 이곳에는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예술교사 대신 참여자의 창작 활동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과정을 공유하고 싶은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물론, 예술가와 예술교육가는 다른 부분이 있다. 예술가와 예술교육가의 차이가 예술이나 교육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예술을 타인과 공유하는 방식의 차이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해외 예술교육센터들은 예술교사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며, 대부분 예술가들이 예술교사의 특별한 영역을 훈련받는다. 각 센터별로 대부분 각자의 예술교육 방법론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교사 훈련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특히 뉴욕의 링컨센터( Lincoln Center), 영국 런던의 로열오페라하우스(Royal Opera House), 벨기에의 ABC하우스(Art Basics for Children), 덴마크의 댄스 할레(Dance Halle)는 아주 엄격한 방식으로 교육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미적체험 예술교육이 보편화되지도 못했지만, 예술가 스스로도 사실 미적체험을 해본 사람이 별로 없다. 아직까지는 근대적이며 보수적인 방법으로 예술을 교육받고 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예술을 체험하고 느끼기도 전에 예술을 학습했다. 우리 세대의 예술에는 정답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의 변화의 필요성이 일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창작만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를 공유하는 방법이 중요해졌다. 단순히 작품 홍보의 영역이 아니라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 과정을 타인이 경험하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타인과 함께 행위하고 경험하는 것 자체가 예술작품이 되기도 한다. 예술교육은 예술과 분리된 혹은 예술가들과 상관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새로운 영역이 되는 것이다. 
 
 예술교육이야말로 예술가들이 새롭게 자신의 미적체험과 예술적 경험, 창작 과정들을 공유하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유럽의 사례들을 보며 확고히 들었다. 필자 역시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팀원들과 예술교육적 방법으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힘으로 관객과 다시 만난다. 공연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반영하기도 한다. 이것도 하나의 창작 과정이며 결과가 되는 것이다.

예>덴마크 댄스할레   


덴마크 댄스할레에는 무용수 혹은 안무가를 위한 2년 간의 코스워크(course work)를 통해서 예술교육가를 육성한다. 그 다음 예술교육가들은 각 기관이나 학교에 파견된다. 댄스 할레는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예술가에서 예술교육가로 거듭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덴마크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무용수들의 지원이 적었다고 한다. 창작자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부담감,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생각, 무엇보다 그런 일은 한물간 예술가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짙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한다. 그들은 예술교육 과정이 자신들의 창작 과정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경제적인 활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레슨’의 개념이 아닌 현대무용의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이해하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각 지역사회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이슈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으로써의 예술교육 _ 예술교육 방법의 다양성
 
 ‘안나의 집’이라는 뜻의 핀란드의 ‘아난딸로’는 정답이 없는 예술을 경험하면서 참여자 스스로 자신의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고 일상 속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한때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지역의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핀란드 예술교육의 중점이 바로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고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예술교육에 접근하는 벨기에의 ‘ABC하우스’(Art Basics for Children)는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연합(EU) 수도인 브뤼셀의 외진 곳의 폐공장을 수리하여 만든 곳이다. 이곳의 예술교육 감독이며 연극연출가이자 교육철학가인 게르하르트(Gerhard Jager)는 ‘어린이들은 영감을 주고받으며 배운다. 따라서 예술교육이란 어린이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이 환경이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예술교육이란 예술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예술의 힘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열린 상태로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예술교육의 가치와 환경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ABC하우스 프로그램은 5~10명 정도의 소그룹으로 진행되며, 각 그룹들이 서로 열린 공간에서 다른 그룹들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타인과 자신의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한다. 즉, 예술이라고 할 때 빠지기 쉬운 자기중심적, 감정 우선주의를 경계하여 예술 안에서 나와 타인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출처 : ABC하우스 홈페이지, http://www.abc-web.be/)

 

 ABC하우스의 교육과정은 비단 나와 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은 책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단순한 책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섹션이 ‘르네상스’라고 한다면 그 공간에는 르네상스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테이블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의상, 소품, 도자기 등을 다뤄보고 만질 수 있도록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받은 영감을 창조의 과정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창작을 위한 도구들도 놓여 있다. 즉, 책을 통해 영감을 얻고, 예술활동을 통해 다시 책으로 다가가는 상호작용을 공간에서부터 설계하고 있었다. 아마 이것은 벨기에가 가진 역사적 배경이 반영된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로부터 가장 피해를 많이 받았으나 가장 빠른 시간에 복구에 성공한 나라이지만, 북쪽 지방과 남쪽 지방의 오랜 분열과 갈등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벨기에에서 필요했던 예술교육이 가치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설립자이자 예술교육 감독인 게르하르트가 말한 ABC하우스의 철학이 이해된다. 그 밖의 다른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예술교육 방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공통된 것이 있다면 바로 ‘지역사회, 지역공동체 안에서 예술이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가?’에 모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 ABC하우스 홈페이지, http://www.abc-web.be/)

 

 즉, 우리가 어떤 예술교육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넓게는 미래의 인류와 한국 사회를, 좁게는 지금 내가 만나는 나의 교실, 나의 공동체에는 어떤 예술의 가치가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특정한 공간이 아닌 개별적 공간에서 활동하는 예술교육가들은 커리쿨럼, 특정 콘텐츠에 대한 고민보다 먼저 지금 내가 만나는 공동체, 내가 만나는 참여자의 개별성을 탐구하는 것으로부터 나의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런 모든 문제들을 예술교육가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들을 둘러싼 교육환경이나 교육제도들이 미래 지향적인 예술교육가들에게 여전히 과거 지향적인 예술교육을 강조하거나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학습과 발표 중심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부터 어떻게 예술가들은 미래 지향적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을까? 이것이 지금 현재 상황에 예술교육이 풀어야 하는 숙제 중 하나일 것이다. 
 
철학이 콘텐츠를 만들고, 콘텐츠가 공간을 만든다 _ 예술교육 감독의 설계 및 운영 
 
 이미 IT 업계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회사를 운영한다. 애플사도 엠에스 소프트도 페이스북도 실리콘벨리의 많은 회사들도 그러한 모습이다. 해외의 많은 문화예술기관도 마찬가지였다. 행정가들에 의해 만들어낸 공간이 아니라 공간을 운영할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가들의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곳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40년간 한 명의 예술교육 철학자로부터 시작한 든든한 철학적 기반 아래 만들어진 링컨센터

 

 링컨센터는 지난 40년 간 상주 교육철학자로 활동한 맥신그린(Maxine Greene, 콜롬비아대학교 예술철학교수)의 예술교육철학의 바탕 아래 모든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파트의 예술교육 전문가를 고용하여 오랫동안 연구하고 보편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각 학교, 예술교사(TA) 등을 교육하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의 아난딸로는 초기 설립자가 은퇴하기 전 약27년 간 설립 철학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으며, 벨기에 브뤼셀의 ABC하우스는 현재 설립자가 지금까지도 예술교육 감독을 맡아 핵심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좋은 예술교육센터들은 예술교육 감독이 상주하면서 설립부터 공간 운영, 콘텐츠 운영까지 모두 책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의 유니콘 씨어터(Unicorn Theatre)는 극장을 설계할 때부터 극장 관계자, 지역 주민, 어린이 관객, 예술가들이 모든 설계 과정에 함께하여 극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지어진 극장은 현재 런던에서 가장 좋은 어린이·청소년 전용극장으로 손꼽힌다. 이렇듯 콘텐츠를 먼저 설계하고 사람이나 철학을 끼어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철학이 설립되고 그 철학을 바탕으로 콘텐츠가 설계되며 그 콘텐츠에 맞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술가가 중심이 되는 예술교육 공간을 꿈꾸며

 핀란드의 아난딸로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그저 모든 것이 부러웠다. 멋진 공간에서부터 정부로부터 90% 이상의 지원은 받지만 예술가가 주도하는 운영 시스템, 무엇보다 학교와의 네트워크, 그리고 그들의 자부심까지 부러워서 ‘당신들의 25년 전의 행운을 우리가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설립자 마리아나 카얀티엔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25년 걸렸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좀 더 빨리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 핀란드가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은 오로지 ‘문화’였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귀에 쟁쟁 울린다. 

 

 이제 우리에게도 예술교육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반갑기도 하고, 한편 두렵기도 하다. 과거의 문화예술회관 건설 붐처럼 ‘일단 짓고 보자는 기관 중심의 문화행정’이 되풀이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이 해외의 성공적인 예술교육 공간들의 공통점은 모두 활동가들에 의해 공간이 설계되고 그 활동가들이 지속성을 유지하면서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비로소 그 공간에 정신이 깃들고, 프로그램에 맞는 공간이 고안되고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행정가나 정책가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실제 활동의 예만 취하는 방법론에 주목하기보다 그들의 철학과 이에 기반을 둔 활동과 공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집중해주기를 말이다.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