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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가봄 | 현장스케치
제작·놀이·실험의 아지트, 릴리쿰에 가다
송수연 / 언메이크 랩


(출처 : 릴리쿰, reliquum.co.kr )

 


 DIY 문화, 개인 제조에서 교육, 사회문제 해결에 이르기까지 제작과 기술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도시재생 프로젝트, 메이커 스페이스 등을 매개로 제작 이슈가 확장되고 있고, 직접 생산적인 일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기류는 정책과 공적 기금 지원, 문화예술 현장에도 영향을 미치며 또 다른 순환을 만들어 낸다. 제작문화에 대한 수사가 많아지는 부흥의 시기다. 하지만 이 부흥적 기류가 실제 쌓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 예측은 어렵다.

 

 제작 또는 만들기에는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함의가 있다. 그 중 교육과 관련해 중요한 지점은 만들기를 통한 수행적 배움이다. 그것은 "나만의 ㅇㅇ"을 만들고 사용하는 것을 넘어, 보다 자기 삶에 대한 분별과 연구가 이루어 질 수 있게 하는 배움이나 태도에 이르는 것에 가깝다. 지속적인 수행의 과정 속에서 만들면서 질문하고 실패하고 다시 생각을 확장해가는 것이 만들기, 제작의 힘이다. 이런 과정은 사물을, 또는 도구를 세련되게 잘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원리나 구조를 이해하며, 모르는 것을 인지하고 다른 맥락으로 감각과 지식을 확장 또는 연결, 질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교과서나 정리된 매뉴얼에는 없는 개인의 층위에서 일어나는 배움이기도 하다. 이런 배움의 과정은 지식의 바로미터가 되기보다는 삶에 대한 태도로 내재화된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에서 제작 또는 만들기는 새롭게 환기해서 해석해 볼 수 있는 이슈이기도 하다.

 

(출처 : 릴리쿰, reliquum.co.kr )

 

 하지만 이런 수행적 배움이라는 과정이 지금의 현실에서 유효한 것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획일화된 주거 공간에 맞추어진 인스턴트형 조립식 가구의 애용자, 블랙박스처럼 밀봉된 전자 사물들을 쉽게 뜯어 볼 수 없는 수동적 소비자, 표준화된 마트형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삶의 모습.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쉽게 의견을 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우면서 유머 있게, 민첩하게 지속하며, 질문해야 하는 것이 문화와 예술의 힘이기도 하다.

 

 이번 현장 탐방에서는 만들기를 이슈로 실험과 모험을 하고 있는 릴리쿰을 찾았다. 연남동 작은 차고를 개조해서 만든 공간 릴리쿰은 제작·놀이·실험의 아지트이다. ‘놀면서 만들고 만들면서 논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땡땡이공작으로 시작한 그들의 활동은 일과 놀이, 삶이 분리되지 않는 다양한 발신을 시도한다. 이들의 진화하고 있는 수행 모험담을 릴리쿰의 호랑, 물고기와의 이야기를 통해 정리해 보았다.

 
릴리쿰을 만들게 된 배경과 멤버들이 함께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릴리쿰이란 공간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 자연스러울 거 같다. 릴리쿰이라는 공간은 땡땡이공작이라는 활동을 하면서 공간의 필요를 느끼게 되어 자연스럽게 만들게 되었다. 땡땡이공작은 2012년 초 활동을 시작했다. 참여 멤버 각자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활동을 함께 추구해 보자라는 취지였다. 1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활동을 좀 더 제대로 하고 싶고, 욕심을 가지고 제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작은 공간과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다들 일을 하고 있어서 쉽지 않았다. 그때 오랜 친구였던 도요가 헬싱키에서 5년을 유학하고 귀국을 한 상황이었다. 그 친구도 작업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함께 해보자 라는 얘기를 나누어서 이태원에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임대료가 낮은 공간을 원했는데 우연히 큰 공간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 공간을 어떻게 쓸까 고민을 했는데, 그 이전에 서교동에 있던 ‘노닥노닥’이라는 공간에 함께 있으면서 공유공간에 대한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을 각자의 일, 그리고 공간과 연결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기존에 해왔던 ‘만들기, 놀이, 삶의 방식’ 이런 것들을 좀 더 연결하며 폭넓게 정의를 하며 공간을 시작했다. 첫 번째 공간인 이태원의 릴리쿰 공간은 2013년 9월에 시작했고, 이곳 연남동으로는 2015년에 왔다. 

 

 공간을 만들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공간일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목표가 현실화되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준비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좋다. 현재 릴리쿰이 주력하는 활동은 놀이-기술-예술분과로 나누어져 있다. 지금은 공공 놀이터를 열거나 놀이 공간 혹은 도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고, 기술은 ‘전자놀이연구소’를 하고 있다. 연속성 있는 프로젝트는 그 두 가지인 거 같다. 

 

 


땡땡이공작부터 릴리쿰에 이르기까지 활동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스스로 그리고 함께 배움을 확장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이런 활동이 본인들의 삶에 어떤 질문과 의미를 갖고 있는가? 

 올 초에 전시 준비를 하며 우리의 활동을 정리해보니 ‘놀이, 자율, 생산’ 세 가지로 정리되었다. 세 가지 키워드는 우리가 이 활동을 하며 느끼는 의미를 정리를 해본 거였다. 물고기는 회사 조직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 나왔고, 호랑은 조직 생활을 좀 무서워하며 피했던 거 같다. 누군가가 그린 그림, 판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을 찾고 발신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인 거 같다. 스스로의 삶에서도 그 세 가지의 전환이 있었던 거 같다. 

많은 사람들이 릴리쿰의 『월간 실패』를 인상적으로 보는 것 같다. 릴리쿰에게 실패의 의미는 무엇인가?  

 『월간 실패』는 아이디어는 나누었지만 계속 마음만 먹고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작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패 경험들을 매뉴얼로 만들어 공유하는 프로젝트다. 제작에서 실패의 경험은 성공 매뉴얼보다 더 많이 생산되고 중요한 자원이다. 2015년 <공간의 생산>이라는 토크에 초대되면서 시작되었고, 모임에서는 제작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패 사례들을 주제어와 에피소드로 모아놓고, 사람들이 주제어를 보고 신청하면 우리가 일종의 오디오북이 되어 그 사례에 대해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계속 추가해서 만들게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실패하더라도 『월간 실패』에 소개할 사례로 받아들이면서 실패에 대한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런 실패들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우리 활동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후 『월간 실패』는 오브제와 텍스트가 결합된 아트북 형태로 만들어져 계속 제작되었다. 릴리쿰이 실패를 기꺼이 선택하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릴리쿰, reliquum.co.kr )

 


지난해 『손의 모험』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책의 출간 과정은 어땠나? 

 『손의 모험』은 코난북스에서 먼저 제안이 왔었다. 온라인을 통해 우리 활동을 알게 된 이정규 편집장이 손으로 만드는 작업들과 어우러지는 릴리쿰 공간에 호감을 느꼈고 그런 것들이 책으로 전달되면 좋겠다고 얘기하셨다. 처음에는 가벼운 에세이처럼 구성되길 원하셨고, 우리도 그렇게 접근을 했는데 쓰다 보니 내용이 더 무거워졌다. 그러다 보니 3년간의 활동 경험을 갈무리하는 것과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같이 섞이면서 출간에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책이라는 매체가 주는 무게감이나 현실과의 거리감이 우리의 생각을 가두는 것 같기도 했다. 출간 과정은 우리가 해온 실험들만큼이나 순탄치 않았다. 

 

전자요리라는 쉬운 전자공작을 위한 콘텐츠를 키트 형태로 계속 개발하고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키트 개발과 제작, 유통이 쉬울 것 같지 않은데 전자요리는 릴리쿰에서 어떤 화두를 가지고 있나? 

 전자요리는 누구나 쉽게 전자적 정보를 알고 요리 하듯이 전자적인 것을 다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키트를 매개로 한 콘텐츠 개발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유통이 쉽지는 않다. 아직 개발을 하고 있는 단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기반으로 생각으로 하고 있는데 아직 느슨하게 하고 있다. 

 

 다른 프로젝트와 비교해보자면, 놀이터 프로젝트의 경우는 전체적인 기획과 실행 그리고 전할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구성한 후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놀이터를 만든다. 누군가가 놀이를 하게 하는 건 너무 즐거운 일이니까 크게 어려운 점은 없지만, 문제는 놀이터를 행사로 만들면서 이걸 서비스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공통의 놀이 공간이 열렸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놀이동산에 왔을 때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마음과 행동이 작동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최대한 줄이고 공간과 상황 설정만 만들었다. 참여 작가들이 진행을 하는 프로그램은 없애고, 사람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렇게 운영을 하니 놀이가 일어나는 상황, 공간, 시간의 세팅이 재미있게 구성되었다. 놀이터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에서 펼치는 걸로 바뀌니 사람들이 또 그걸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전자요리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사람들이 기본 원리를 알고 나면 스스로 탐색하며 놀이로 전환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이 되길 바란다. 

 

 


최근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측면에서도 ‘만들기’와 ‘제작’에 대한 관심이 많이 있는 거 같다. 기술적인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장에서 이런 시도와 기획을 하시는 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우리의 정체성은 교육자라기보다는 ‘출동’이라고 해야 하나. 시추선 같은 느낌이다. 먼저 연구를 해보고 그것을 알려주는 프론티어(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교육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을 하는 분들과는 차이가 있을 거 같다. 우리는 설계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준비 기간이 무척 긴데, 회의를 엄청 오래하고, 어떤 생각을 담을 것인가에 대해 많이 얘기하고, 프로토타입은 굉장히 설렁설렁하게 한다. 설계가 우리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과정 자체가 설계인 것 같다.

 

(출처 : 릴리쿰, reliquum.co.kr )

 


우리는 지금 기술권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권과 관련해 릴리쿰의 활동, 만들기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로우 테크놀로지(low-technology)’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로우테크는 좀 더 가지고 놀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기술인 거 같다. 하이테크 쪽을 사용자로서는 많이 쓰고 있지만 사실 생산자로서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로우테크인 것 같다. 여러 가지 분야의 로우테크를 땡땡이공작 초반에 건드려 봤던 거 같기도 하다. 로우테크는 뜯어 볼 수 있는 것, 뜯어 볼 수 있으면 분해도 조립도 수리도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것을 다 뜯어봤다. 뜯어보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까지가 로우테크인 것 같다.

 

 『손의 모험』을 출간을 할 즈음에 아쉬운 지점이 기술 이슈에 대한 것이었다. 더 고도의 기술이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고 주변에서 4차산업혁명에 대한 질문도 하시는데, 그런 지점이 책 출간 이후에 이슈화된 점도 있어서 책을 보는 독자는 자신에게 닥칠 기술적 삶과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정리를 해보진 못했지만 최근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부분-젠더, 여성과 기술, 인공지능-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자극이 되면서 우리 활동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지점이 되었다. 지금은 우리가 하는 일, 나누고 싶은 것들은 로우테크로 방점을 찍고 있지만, 앞으로 달라질 수 있을 거 같다. 그래도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소비하는 방식보다는 이제껏 릴리쿰이 해왔던 것처럼 또 다른 탐험의 방식을 만들어갈 것 같다.

릴리쿰 http://reliquum.co.kr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