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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가봄 | 현장스케치
내 안에 살아 있는 신화
2016년 여름 해오름어린이살림학교
최정필 / 오름어린이살림학교 교사
  1997년부터 해마다 계절학교를 준비해오면서 살림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맨 처음 하는 일은 주제를 정하는 일입니다.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지식과 정보 속에 사는 요즘,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감각을 닫아버립니다. 감각을 깨우고 스스로 당당해지는 힘을 갖기 위해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내면에 품고 있던 힘으로 예술 활동을 하고 나면 닫아놓았던 감각이 열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올 여름학교는 신화를 통해 자신만이 가진 신성(神性)으로 미래에 싹 틔울 내면의 씨앗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아이들은 학년에 맞는 신화를 듣고 찰흙으로 신나는 조소활동을 하면서 신화를 내면화합니다. 


첫째 날

  서울에서 홍천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익히고 노래를 배웁니다. 이 자리에서 배운 노래는 수업을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 부르면서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고 몰입했던 수업에서의 긴장감을 풀어주기도 합니다. 결이 고운 동요와 시는 아이들의 마음을 맑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노래 부르기를 거부하던 고학년들도 어느새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까지 신나게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행복해 보입니다.
  여름학교가 열리는 홍천의 해오름숲속학교에 도착한 아이들은 전체가 모여 차 안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고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합니다. 또 이 시간에 교사들은 간단한 시와 노래를 보여주면서 이번 주제에 대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낮선 공간과 낮선 사람들 속에서 긴장하고 있는 아이들 마음이 편안하게 풀어지고 빨리 친숙해져야 깊이 몰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풀밭에 노끈으로 미리 만들어놓은 달팽이 모양에서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달팽이 중심과 끝에 진을 치고 두 편으로 갈라섭니다. 양편에서 한 명씩 나와 달팽이를 따라 달리다가 마주치면 가위 바위 보로 승부를 가립니다. 이긴 사람은 앞으로 계속 달려가고 진 편에서는 다음 사람이 달려 나와 마주치면 같은 방법으로 승부를 가립니다. 상대편 진으로 들어가면 승리하는 놀이입니다. 두 번째 놀이는 네 박자의 리듬을 치면서 대나무를 건너는 쿵쿵짝입니다. 선생님 두 분이 대나무 두 개를 마주 잡고 앉아 리듬을 치기 시작하면 작년에 왔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시작을 합니다. 먼저 리듬을 익힌 고학년들이 따라서 뛰고 겁이 많은 1, 2학년은 대나무가 내는 소리에 맞춰 선생님과 선배들 손을 잡고 제자리에서 리듬을 내면화합니다. 리듬이 익숙해지면 대나무를 뛰어넘습니다. 움직이는 나무를 넘는 경험에 도전해서 성공한 아이들의 눈빛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자랑스럽습니다. 때로는 나무에 발이 걸리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점차 처음 가졌던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면서 즐기게 됩니다. 


  전체 활동을 마친 아이들은 학년에 따라 세 모둠으로 나뉘어 모둠 활동을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콩주머니를 넘기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평화를 위한 규칙을 정합니다. 그리고 색지와 도화지로 공책을 만들어 색연필로 시와 노래를 예쁘게 적어 넣습니다. 2박3일 동안 활동하고 나면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기도 합니다. 흙과 친해지기 전에 시에 맞춰 마음과 힘을 모으는 동작도 익혔습니다. 높은 하늘과 넓은 땅 사이에 곧고 당당하게 서서 세상을 살아가는 나를 마음에 담아봅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세상이 열립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마주 보며
세상이 시작됩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바로 서며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이제는 찰흙과 친해질 시간입니다. 커다란 덩어리의 옹기토는 느낌이 다른지, 학교에서 교구로 쓰는 작은 찰흙을 대할 때의 모습과 달리 아이들은 경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찰흙 덩어리에서 두 손에 그득히 담길 만큼 떼어 반죽하기를 배웁니다. “영치기 영차, 노를 저어라~” 리듬에 맞춰 노를 젓듯이 찰흙을 누르면서 밀고 들어 올리면서 당기기를 반복하는 과정은 또 하나의 작은 리듬이 되어 호흡을 고르게 해줍니다. 체온을 품고 부드러워진 반죽 덩어리에서 찰흙을 떼어 공을 만듭니다. 두 손 안에 쏙 들어갈 만큼의 찰흙은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가며 모양을 만듭니다. 빨리 잘 만들고 싶은 아이들은 손바닥에서 찰흙을 굴리기도 하지만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손바닥 전체로 공을 만듭니다. 눈을 뜨고 공을 본 아이들은 믿기 힘들만큼 동그란 공 모양에 안심하고 뿌듯해합니다. 만든 공은 옆에 친구에게 넘깁니다. 친구가 만든 공은 똑같은 찰흙으로 만들었는데도 내 공과 온도도 다르고 단단하기도 다릅니다. 아이들은 “이 찰흙은 굉장히 따뜻해요.”, “이 흙은 매우 차가워요.”, “와~ 이 반죽은 엄청 부드러워! 누구 거야?” 하며 저마다 자신이 반죽한 것과 다름에 신기해합니다. 옆으로 계속 넘기던 아이들은 자신의 공이 돌아오면 자신의 공이라는 것도 알아챕니다. 공을 한 손에 잡고 시를 낭송하며 동작을 반복해봅니다. 찰흙공을 잡은 두 손이 가슴에 머무르는 마무리 동작에서 다시 한 번 호흡을 고르고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이번에는 발로 찰흙 만나기를 합니다. 반죽해놓은 찰흙 덩어리를 한 손에 들고 수제비처럼 작게 떼어 바닥에 흩뿌립니다. 서로 부딪치지 않게 자리를 잡고 서서 발가락으로 찰흙을 집어옵니다. 움직이지 않는 발바닥 아래에 모은 찰흙은 발바닥과 발가락으로 반죽을 합니다. 발가락 사이에서 느껴지는 찰흙의 느낌이 이상하다고 했던 아이들도 정성껏 반죽을 합니다. 이번에는 친구들이 해놓은 반죽으로 옮겨가 느껴봅니다. 손으로 만들었던 공처럼 각자 다른 느낌에 아이들은 다시 한 번 신기해하고 이번에는 누구 것인지 맞춰보기도 합니다.

  고학년들은 길가메시 신화를 듣고 길가메시의 모험을 찰흙으로 표현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인상적인 장면, 좋아하는 인물을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길가메시, 엔키두, 훔바바, 하늘의 황소 등을 만드는 아이도 있었고 죽음의 강을 건너는 길가메시, 영생의 풀을 먹는 뱀,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싸움 등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작품은 내면에 숨어 있던 창조성을 드러내는 예술작품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발표하는 아이들은 신화의 의미를 다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길가메시의 모험과 도전을 마음속에 굳게 새긴 아이들은 다가올 미래를 도전해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가운데 학년은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를 듣고 천지창조와 세상의 조화를 표현했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의 아이들은 ‘나는 어디에서 왔지?’,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처럼 근원적인 물음을 갖기 시작합니다. 혼돈과 고요함에서 신이 되어 세상을 만들어본 아이들은 마무리 발표 시간에 9명 모두 신이 되었습니다. 
  땅의 신, 바다의 신, 불의 신, 지혜의 신, 동물의 신, 예술의 신, 사람의 신, 음악의 신, 퀴즈, 배려의 신입니다. 이들 신들은 서로 협력하여 이 세상을 창조합니다. 땅의 신과 바다의 신이 춤을 추며 땅과 바다를 만들고, 불의 신이 온 세상을 따뜻하게 밝혀줍니다. 이윽고 지혜의 신이 지혜를 세상에 퍼뜨리고, 동물의 신이 찰흙 대신 종이로 접은 종이학을 보며 주문을 외면 갑자기 까마귀, 거북, 늑대, 호랑이 등의 동물들이 각자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사람의 신은 찰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피리로 생명을 불어 넣어 움직이게 합니다. 예술의 신도 신비한 주문을 읊조리고, 음악의 신은 옆에서 다른 신들이 신비하게 보이도록 신비로운 선율을 연주합니다. 마지막으로 배려의 신은 이 연극을 보고 있던 다른 신들에게 퀴즈를 냅니다. 아홉 신들은 어떤 신들일지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누가 봐도 어떤 신인지 알 정도로 잘 표현해서인지 다 맞춥니다. 

  이해하기보다는 느끼는 감각이 발달하는 시기의 저학년 아이들에겐 세상은 따뜻하고 그 안에서 ‘나’는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중요합니다. 마고할미 신화와 삼신할머니 이야기는 세상의 시작과 소중한 나의 탄생에 대해 안정감을 갖게 해줍니다. 발로 만났던 찰흙에 이어서 한라산과 백록담을 만드는 마고할미가 되어보고, 삼신할머니가 귀중한 나에게 준 보물은 무엇인지 생각한 아이들은 찰흙으로 만든 두꺼비집 속에 자신만의 보물을 간직했습니다. 양보하는 마음, 용기 있는 마음, 잠자리를 잘 잡고 싶은 마음,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아이들의 보물입니다. 



둘째 날

  이른 아침, 마을 이장님 댁까지 2km를 걸어가서 감자를 캤습니다. 호미로 흙을 뒤집고 감자를 꺼내는 선생님의 시범을 본 아이들은 서로 호미를 잡고 싶다고 난리입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 여름의 더위가 무색할 만큼 저마다 열심입니다. 처음 호미를 잡았던 아이들 중 몇은 감자가 상하지 않게 흙을 뒤집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고 슬그머니 호미를 내려놓기도 합니다. 조심스럽게 감자를 캐고, 주워 담던 아이들이 아침밥을 먹기 위해 숙소로 돌아간 자리에는 힘에 부쳐 찾지 못한 감자가 자꾸 나옵니다. 아이들이 캔 감자는 포슬포슬하게 쪄서 물놀이 할 때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갈아서 전으로 부쳐 먹고 반찬도 해먹었습니다. 그렇게 먹고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캔 감자의 맛에 감동해서 자꾸 감자를 달랍니다.

  점심을 먹고 찰흙으로 커다란 공동 작품을 만드느라 온몸에 찰흙 범벅이 된 아이들과 계곡으로 가서 물놀이를 합니다. 먼저 도착해서 놀기 좋게 둑을 쌓은 고학년들은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둑을 쌓았는지 알아!” 하면서 자신들의 공을 알아달라고 합니다. 교사들과 동생들의 칭찬에 우쭐해진 아이들은 바깥 온도에 비해 너무 차가워서 물에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동생들도 잘 데리고 놉니다. 물장구를 치고 다슬기와 물고기를 잡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체격이 작은 아이들의 입술이 파르스름하게 변하려고 할 즈음 뜨끈한 감자와 옥수수 간식이 도착했습니다. 감자가 채 식기도 전에 시원한 매실차와 수박을 곁들여 금세 다 먹어치우고는 다시 물놀이를 시작합니다.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선생님 신발 한 짝이 물에 떠내려가요!” 하고 소리칩니다. 신발을 잡기 위해 교사도 뛰고 아이들도 뛰는데 정작 신발이 벗겨진 아이는 꿈쩍도 안하고 가만히 서 있습니다. 결국 6학년 아이가 빠른 계곡물보다 빨리 달려 신발을 낚아채 동생에게 신발을 신겨주고 박수를 받았습니다. 

  물놀이를 다녀온 아이들은 젖은 옷 때문에 방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더니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해 들어가 씻고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순서를 기다립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고 배려하는 아이들이 참 대견합니다. 어른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감자 캐고 무더위에 커다란 찰흙과 씨름 하고 물놀이까지 다녀오느라 힘들었을 텐데도, 아이들은 저녁밥 먹고 나서까지도 쌩쌩합니다. 저녁 모둠활동을 마친 아이들은 손가락에 봉숭아를 물들이고 잠자리에 누워 오늘도 이야기를 세 편이나 듣고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셋째 날

  여름학교에 와서 벌써 두 번이나 잤습니다. 아침 산책을 다녀와서 밥을 먹고 아이들은 모둠별 발표를 준비합니다. 그동안 불렀던 시와 노래 중에서 가장 익숙한 것을 고르고 동작까지 맞춰봅니다. 그리고 이틀간의 이야기와 활동에서 느낀 내용으로 퍼포먼스를 만들고 서로 독려하며 연습을 합니다. 

  첫날 전체가 모여 노래하고 놀이했던 강당으로 모였습니다. 앞에 나서서 발표를 해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들떠 있는 아이들이 교사들의 시와 노래를 들으며 차분해집니다. 저학년 모둠은 노래에 맞춰 리듬이 있는 동작을 합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가운데 학년들은 쑥스러움을 살짝 감추고 색깔 보자기를 활용해 개성을 드러냅니다. 고학년들은 가운데 학년 아이들이 썼던 보자기와 가지고 있는 물건까지 최대한 활용합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연습하고도 마치 할 수 없이 하는 것처럼 쑥스러움을 감춥니다. 

  발표도 잘하고, 아픈 사람 없이 건강하고 즐겁게 지냈으니 내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격려 박수를 쳐주고 노래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모둠방에 올라가 2박3일을 되돌아보면서 모둠 선생님과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정리했습니다.

  아직 어른의 호흡이나 맥박의 리듬을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리듬은 중요합니다. 안정적인 리듬은 일상생활과 학습의 장면 모두에서 아이들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내면의 힘을 키워 밖으로 영향을 주게 합니다. 그래서 살림학교의 2박3일의 일정 동안 주제를 풀어내는 수업시간 이외에도 자고 먹는 것까지 모든 활동에서 리듬을 갖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리듬을 갖는지 알지 못하지만 아침 7시부터 밤10시까지 이어지는 일정에도 지치지 않고 신나게 움직입니다.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우리나라 교육에서 공부는 힘들고 어려운 것이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초등학생 아이들이 공부를 하며 재미있어 한다면 놀기만 하고 배우는 것은 없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육이 예술적으로 이뤄진다면 아이들은 열정적으로 즐겁게 배웁니다. 이것은 독일에서 시작된 발도르프교육을 만든 루돌프 슈타이너의 이론입니다. 즐거운 공부를 경험한 아이들의 열정을 품은 눈빛은 교사도 성장하게 합니다.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