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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더봄 | 좌담회
문화예술교육의 기본을 교육예술로 묻다
일시: 2016.11.16. (수)
장소: 수원 달보드레
진행 : 임재춘(커뮤니티스튜디오104)
참석자
 - 김희동(통전교육연구소)
 - 박형만(해오름평생교육원 으뜸일꾼)
 - 성국모(사단법인 밝은마을)
 - 김인규(서천고등학교 수석교사)
 - 이기복(청석에듀시어터 대표)
 - 손채수(초암교육예술연구소장)
 - 전지영(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센터장)
 - 박아롬(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지봄봄 담당)
 - 한상은(녹취록 작성)

임재춘

  안녕하세요? 임재춘 입니다. 지지봄봄 20호 좌담회에 모여주신 선생님들께 저의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2002년 즈음부터 경기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업으로 현장에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제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스승들과 혹은 선배들과의 이야기를 곁에서 볼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됐죠. 사실 “교육예술”이 문화예술교육의 영역에서 친숙한 언어는 아니에요. 그런데 왜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교육예술을 꺼낼까 생각해 봤어요.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제도로서 그 주도력이 강하다보니 굉장히 많은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고 그 문제들은 문화보다는 다분히 교육에 가까운 것들이지요. 단지 툭툭 쳐주기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슈에 끊임없이 직면하게 되는 거예요. 물론 문화예술교육 영역 안에서는 예술의 언어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고 문화의 언어로 풀어야 할 문제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최소한 인간에 대한 혹은 생명에 대한 태도는 예술이냐 문화냐 교육이냐의 영역 구분과는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개념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교육예술을 통해서 예술 전반이나 문화예술에서의 예술의 모습, 형식 등을 구체적으로 짚어낼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최소한 인간, 생명, 교육 그리고 폭넓은 의미에서의 배움을 우리가 어떻게 사고해 볼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교육예술을 이야기할 때 떠올렸던 분들을 모시고 이번 호에 담아야할 이야기가 무엇일지를 미리 학습하는 자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이 자리가 마련이 되었고요. 저희가 지지봄봄 회의를 통해 만난 것이긴 하지만 이 웹진 이후에도 생각해야할 것을 연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연이 될 거라는 기대가 됩니다. 이런 자리가 필요 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최근에 교육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어요. 지금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잘 되어가고 있는가, 예술강사지원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는가, 아이들은 그 교육과정을 접하면서 변화를 느끼고 있는가 등을 짚어보는 것은 이미 많이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교육예술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과는 다른 감각을 가지고 교육예술을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경기문화재단을 떠나 생활인으로 살게 되면서 이전에 다뤘던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어요. 개인적인 삶의 변화와 사건들을 겪게 되었는데요, 사적인 이야기지만 아버지의 죽음, 결혼, 출산 그리고 살림을 하게 되면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계절’이었거든요. 계절은 계속 바뀌는 데 우리는 바뀌는 계절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게 되는 것이지요.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문화예술교육 현장들이 겨울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교육과정으로 연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게 위 질문들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워 봤어요. 교육예술이라는 언어가 무엇인지 짚어보고 과거부터 있었던 교육 철학과 그것이 지금까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도 지지봄봄의 중요한 역할이 되리라고 생각하고요. 꼭지를 정해두고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더 깊이 생각해볼 것들을 글을 쓰거나 현장을 취재하는 방식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로 문화예술교육은 다들 접해보셨겠지만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고요. 또 하나는 교육예술이라는 것.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개념은 설왕설래해요. ‘문화교육이다’, ‘예술교육이다’, ‘교육예술이다’라는 세 가지 주장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교육예술은 대부분의 문화예술교육이 예술가와 결합이 되어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교육예술이라는 말은 그다지 적극적으로 논의되거나 활용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교육예술이 낯설고 어색한 용어일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용어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으로 진행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전지영

  사실 ‘교육이 예술이다’, ‘교육이 “ART”다’, 라는 말은 흔치 않은 표현이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말이죠. 제게 교육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 무척이나 좋게 다가옵니다.


임재춘

  문화예술교육이 정부주도로 진행되는 것을 조금 설명하고 넘어갈게요. 처음에 “문화연대”라는 민간단체에서 ‘문화교육’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어요. 문화 이론가들이 문화교육을 이야기했던 것이죠. 그분들이 말하는 문화교육은 예술이라기보다 교육문화를 바꿔내는 대안으로써의 문화교육을 이야기하셨던 거예요. 그런데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그것을 수용하게 된거죠. 그러면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용어가 나왔고요. 그 용어에 대해서는 굉장히 논란이 많았지만 어쨌든 그런 정책이 국가 단위에서 생긴다는 거에 대해 많은 민간 단위들은 지지하는 추세였고요. 우리나라 입시문제나 수월성 교육을 정부가 스스로 반성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창했기 때문에, 민간에서의 우려도 있었지만 사실은 지지하고 긍정하는 분들도 많았지요. 그리고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나 조례 등을 통해 진행이 되면서 제도적으로 추대를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는 다양한 현장을 사회와 학교로 구분을 한 거예요. “사회”문화예술교육과 “학교”문화예술교육으로요. 학교문화예술교육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일자리 창출이었어요. 예술가들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일자리가 없잖아요. 그들의 일자리 창출 개념으로 학교에 파견하는 것을 문화예술교육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으로 취한 거죠. 이걸 “예술강사지원사업”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지속적인 인연을 맺기가 어려운데 예술강사들은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을 만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교육이 기존의 지식전달식 수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문제가 생겼어요. 그러므로 문화예술교육도 아닌, 협동이 필요한 교육도 아닌, 굉장히 도구적이고 보조적인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죠. 문제는, 문화예술교육정책 예산의 80%가 다 이 예술강사지원사업으로 흘러가요. 정책의 전달 체계도 ‘탑-다운’ 방식이고요. 이러한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어떤 문제제기도 수렴되기 어려운 보수적인 체계이고요. 어떤 제도든 문제는 있기 마련이지만 최소한 문제제기를 계속하면 누군가 듣고  바뀌거나 논의가 되는 환경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그 부분이 아주 심각할 정도로 배제되어 있는 상황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더 골이 깊어지고 그게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나 의미들을 흐리죠. 외부의 시선으로는 본질을 왜곡되게 바라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한 거예요. 예술강사의 자질 문제나 그들의 노동권 문제 등등 여러가지 문제가 혼재되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일일이 짚어내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사실 이미 많이 짚어보기도 했어요.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한 쪽에서 누군가는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워야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질문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짚어내는 것보다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질문, 즉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질문하는 게 문제의 해법을 다져가는 데 더 긴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지영

  실제로 경기 지역의 경우 연간 100억에 가까운 예산이 학교예술강사사업에 투입 되고 있어요.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 제도가 있는데요, 1년이 채 안되는 커리큘럼 수강 과정을 이수하고는 자격증을 따면 예술강사로 진입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예술적 영감이나 경험치를 전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예술가로서 학교에 가서 수업하는데 상당한 예산이 쓰여지고 있다는 점이지요. 그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에 진입하는 새로 하는 분들은 그게 문화예술교육의 전부인지 안다는 것이 저희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거죠. 문화예술교육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저희가 역질문을 해서라도 그분들이 철학적 가치를 고민하는 계기 조성이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이기복

  경기도교육청에서 하는 ‘꿈의 학교’에 대해서는 알고계시죠? 제가 작년부터 그걸 하고 있어요. 그게 “마을교육 공동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 거죠. 사실 저는 할 생각이 없었어요. 이미 제 공간을 가지고 있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2011년에 퇴직하고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광주문화재단에서 ‘꿈에 학교’ 사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권유를 하셔서 설명회를 들으러 경기도 교육청 북부청사에 갔어요. 지역에서 교육활동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1500명 정도의 사람이 모였더라고요. 저는 공교육이 싫어서 교직생활을 떠나 아이들과 자유롭게 지내고 있는데 사업을 진행하면 생길 규제가 걱정이 되었어요. 하지만 이 사업은 수당 지급에 대한 절차와 연간 교육 계획 이수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전부 저희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이 참 좋더라고요. 



전지영

  사실 중앙기관에서 기존에 진행해왔던 문화예술교육의 실패 사례를 전향적으로 점검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즉, 기존 문화예술교육 제도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행착오, 예를 들어 규제라든가 하는 것들을 다 풀어버리고 최소한의 규제만 두고 자율성을 담보하는 사업을 세팅함으로써 매개자들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이기복

  ‘꿈의 학교’ 사업을 끝내고 장원에 있는 교육연수원에서 1박 2일 동안 사례 발표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느꼈어요. ‘괜히 퇴직했나(웃음), 내가 퇴직하니까 왜 이렇게 교육 여건이 좋아지고 있지?’ 생각도 했어요. 그 때 의정부 장학사가 “청소년을 미래의 마을 청년으로”라는 얘기를 했는데 거기에서 딱 꽂혔어요.
  제가 1981년에 경기도 광주에 왔을 때 인구가 15만 명이었어요. 거기에 하남시가 떨어져 나가면서 8만 명으로 줄었고요. 그게 뭐가 중요하냐면요, 아이들이 작은 지역에 사는 걸 창피하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수학여행갈 때 초록색 관광버스를 타고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 쯤에서 쉬는데 휴게소에 내릴 때 신나하던 아이들이 다시 탈 때는 다 울면서 타요. 서울에서 온 차들 앞에 경기 넘버가 붙은 촌스러운 초록색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 싫다고 말해요. 그러면 저는 혼란스러운 거예요. ‘왜 경기도 사람인 게 창피하고 더군다나 광주 사람인 게 창피할까’ 생각하죠.  
  사업 결과 보고회 때 의정부 장학사의 말이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내가 너 정말 잘 가르칠 테니까 성공해서 여기를 떠나! 성공해서 서울로 가, 여기는 사람 살 데가 못 돼!” 이렇게 가르쳤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에반해 마을 공동체의 기본 이념은 우리가 사는 이 동네의 주인공이 돼서 살아가는 거예요. 저희 공간은 4시 반에서 5시 반이 되면 여기저기서 애들이 뛰어오는 게 보여요. 그냥 오는 게 아니라 막 뛰어와요. 뛰어올 정도로 아이들이 공간을 사랑하고 지역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임재춘

  ‘꿈의 학교’는 학교 밖 교육인가요?


이기복

  맞아요. 제가 ‘꿈의 학교’ 교장이에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게 교육청에 우리 극장에서 교사 직무 연수을 할 수 있게 개설해달라고 했어요. 마침 그게 경기도교육청의 권장사항이더라고요. 그래서 여름방학 때 강좌를 개설했어요. 그리고 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했죠. ‘8일 동안 당신들은 연극을 다섯 편을 보고 공연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각오가 된 사람만 와라’라고요. 그랬더니 40명이 왔었는데 정말 치열하게 직무 연수를 했고 그 분들이 교사극단까지 만들었어요. 자기들도 배워서 해보겠다고요. 


임재춘

  제가 ‘꿈의 학교’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사회문화예술교육 학교문화예술교육으로 나누는데 사실 원래 사회문화예술교육에서 우리가 강조했던 것은 학교문화예술교육과의 연결되는 지점이었거든요. 물론 그것을 체계화, 이론화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것까지는 부족했지만 최소한 문화예술교육정책을 지지하면서 사회문화예술교육을 하셨던 분들은 학교와 지역사회를 구분하는 것보다 서로가 못하는 것들을 어떻게 보완하고 연결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셨어요. 저희가 봤던 사례 중에 많은 학교들이 지역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배움의 결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교육과정을 가졌었어요. 그러면서 사회문화예술교육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할지에 대해 많은 레퍼런스가 되어주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에 실제로 현장에서 진행됐던 방식은 완전 단절이에요. 최근에는 학교 안에서만 해야 한다든가. 학교 안에서 모집을 했으면 지역에서 못한다거나 하는 식의 지침을 내리면서 의도적으로 연결을 못하게 하는 거죠. 문화부 사업은 아니지만 꿈의 학교가 그 중간, 비어 있는 중간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요.


이기복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해요. 광주에서 제일 잘 되는 복지회관은 노인복지회관이에요. 그 원인을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만남의 장소더라고요. 연애도 하세요. 식사 값도 1000원씩만 받고요. 그런데 제가 거기에서 하는 문화 프로그램 중에 못마땅한 게 뭐냐면요, 밸리 댄스, 타악같은 프로그램만 진행하죠. 저도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저는 그런 식으로 노년을 보내고 싶지 않거든요(웃음). 사회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제는 노인들이 변했다는 거예요. 


전지영

  저도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실제로 올해 여러 차례의 노인문화예술교육 세미나에 다녀왔는데요, 그만큼 노인문화예술교육이 지금 화두이지요.


이기복

  그래서 연극이 끼어들 자리가 굉장히 많아요. 왜냐면 우리 세대는 교회나 성당에서 다 한번씩은 연극을 해봤고 낭독 공연도 해봤던 세대이고 연극을 참 좋아했던 세대거든요. 인생의 깊이를 나타내는 데는 연극이 참 좋아요. 인문학적 지식도 있어야 하고 철학도 있어야 하고 말이죠. 저와 가까운 교장 선생님이 퇴임을 했어요. 그분이 퇴임하시고 저희 극단에 와서 단원으로 받아달라고 하는 거예요. 농담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건물을 대안대학으로 만들까 생각하잖아요. 


임재춘

  그렇다면 교육예술이 뭔가요? 누군가 교육예술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한 마디로 꼭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야기로 교육예술을 다루면 좋을지 시작해보고 싶어요.


김희동

  저는 교육예술에 대해 여기 계신 분들만큼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아이들이 온전하게 성장한다는 게 뭘까 늘 고민했어요. 한쪽으로 많이 치우치면서 아이들을 만났던 경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고요. 권위주의 교육에 대한 반감 때문에 자유 지향적이 되어 아이들에게 다 해보라는 식으로 갔다가 능력의 한계도 있었던 것 같고, 생각지 못한 많은 부작용을 겪으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게 아니라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왼쪽으로 가면서 오른쪽으로 가려는 것처럼 둘 다 동시에 얻겠다는 것은 욕심이고 모순이지요. 이끌어주는 것과 내버려두는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흐름과 순차를 두는 것입니다. 발달과 성장의 원리에 따라 이끌어줄 때는 이끌어주고 내버려둬야 할 때는 내버려두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부모와 교사에게 중요한 과제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발달의 제 때를 아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전체를 보는 눈, 저는 ‘온눈’이라고 부릅니다만, 이 온눈을 가지는 것이 절실하다고 여겨요.  


  저는 예술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 그게 필요하다고 여겨요. 그런데 아름다움에 대해 의무감, 책임감을 갖게 되면 예술 활동의 방향이 뭔가 좋아 보이고 괜찮아 보이는 것을 더해야하는 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꾸미고 칠하고 외부의 것을 보태어 가지요. 
  물론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저의 짧은 교육경험 속에서 자꾸만 반복 자각하는 것은 무엇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었다고 믿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 안에서 진지함도 솟아나고 감동도 오고 열정도 솟아나고요. 저는 아이들에게서 정말 보고 싶은 게 진지한 열망이에요. 물론 즐기기도 하고 까불대면서, 청소년기답게 반항도 하고 일탈도 하는 것을 다 포함해서요. 그럼에도 무언가에 불타오르는 진지함 말입니다. 좀 더 고상해질 수 있는 과정에서 인격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아이들과 노래를 많이 부르는 편인데요, 심심찮게 그림도 그리고요. 아직도 잘 안 됩니다만 늘 정성을 기울이면 거기서 아름다움이 솟아난다고 봅니다. 


전지영

  이야기만 들어도 설레네요.(웃음)


임재춘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하고 계시는 교육이나 그에 관한 고민을 이야기할 때 “내가 지향하는 교육은 이런 거다” 하는 표현이 있나요?


김희동

  있기는 한데 워낙 낯선 용어라 잘 안 씁니다. 저는 “통전(統全)”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얼, 몬, 새가 통전됐다”고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거는 완전히 지어낸 말입니다. (웃음) 말놀이에 지나지 않죠.


임재춘 

  사실 저희 동네에 슈타이너 학교가 있어요. 그 학교에서 2년 동안 교사연수 과정을 하셨던 분이 자주 저와 산책을 하셨는데요, 졸업 말미에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본인은 천주교 신앙인인데, 슈타이너가 거의 하느님인 이 상황이 힘겨웠다고 하셨어요. 당신은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 교육을 하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난처했다고요. 개인적으로 종교적 신앙도 있고, 삶의 경험도 있고 교사로서 그동안 만난 경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부정당하고 슈타이너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야하는 거에 대한 어려움이 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게 인지학이나 슈타이너 교육을 아는 것과 실제로 자신이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주체적으로 어떤 교육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다른 문제였다는 걸 비로소 다시 생각해보게 됐거든요. 꼭 합의되지 않더라도요, 교육이라는 건 굉장히 열린 거잖아요. 이 “얼, 몬, 새가 통전됐다”는 것도 아직은 뜻을 잘 모르겠지만 슈타이너 교육과는 다른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전지영

  “얼, 몬, 새”가 무슨 뜻인지 여쭈어보겠습니다.


김희동

  얼은 말 그대로 정신을 뜻하고, 몬은 물질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에요. 새는 사이를 뜻하고요. 정신과 물질 사이라는 뜻도 되고 거기에서 새로운 뭔가가 나오기도 한다는 뜻이에요. 제가 슈타이너 인지학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건 양극성의 조화라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천지인 사상에 들어 있다고 보는데요. 정신과 하늘, 땅과 물질 그리고 두 세계 사이를 조화롭게 만들고 새로운 것을 이끌어내는 것이 사람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늘, 땅, 사람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것. 이렇게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것을 “통전”이라고 해요. 


박형만

  새가 관계를 뜻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홍익인간’과도 뜻이 닿아 있는 것 같네요.


김희동

  저는 홍익인간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았어요. 흔히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이익과 손해의 관점, 다소 이기적인 태도가 불편했습니다. 이 ‘익’자가 ‘이로울 익’이 아니라 ‘더할 익’인데 말입니다. 더하면 이롭다고 생각했을까요? 자구 그대로 해석하면 ‘사람을 더해간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죠. 단군신화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보아요. 환웅이 재세이화(在世理化)의 뜻을 품으며 도우려 했던 사람, 곰이 원화위인(願化爲人)의 마음으로 진정으로 되고자 했던 그 사람. 사람을 향한 하늘과 땅의 간절함을 보면서, 여기서 사람은 저는 그냥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 참다운 사람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홍익인간은 널리 참 사람을 더해간다, 그런 세상이 되어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임재춘

  김희동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대안학교를 시작하셨나요?


김희동

  기존 학교에는 교장 선생님이 계셔서 돌아가기 싫었어요(웃음). 교육청하고 하도 많이 부딪혀서 내가 교장 해야 되겠다 생각했죠. 


임재춘

  어떤 면에서는 우리 교육의 핵심에 대한 고민을 해요.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라든가 교육이 가진 행정만이라도 변화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게 교장과 선생으로 나뉘는 구조적인 문제인 건지 아니면 문제 해결방식의 문제인지, 혹은 사람의 철학에 대한 문제인지에 대해 생각이 복잡합니다. 학교교육의 문제들이 그 부분에서 바뀔 수 없는 것이 그 지점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다른 선생님들은 교육예술을 어떻게 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박형만
 
  저는 김희동 선생님께 많이 배웠어요. 제가 슈타이너를 알게 된 1994년 즈음에 만났어요. ‘처음처럼’이라는 교육 잡지를 통해 송순재 교수님, 고병헌 교수님 두 분께서 대안학교를 많이 소개했었는데, 그 때 대안학교 분야에 김희동 선생님께서 우뚝 서 계시더라고요. 그 이후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죠. 저는 해오름에서 독서논술 잡지 ‘배워서 남주자’를 펴내면서 제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어요. 대안학교에 대한 저만의 상이나 꿈이 있었는데 그게 완전히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없이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해오름이 평생교육원을 통해 지도자과정을 열고 있는데 1996년부터 초등은 교육예술을 중심으로 해요.  


  교육예술이 뭐냐고 물으면 저는 얼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얼굴은 말 그대로 얼이 통하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순우리말이에요. 얼굴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매일매일 변해요. 교육예술이란 늘 새롭게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예요. 지금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의 얼굴로 바뀔 것이지, 인간의 진정한 내면을 밝히는 얼굴로 변할 것인지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플라톤이 이데아를 이야기할 때 진선미에 대해 말하잖아요. 그 ‘진’도 미고 ‘선’도 미고 ‘미’도 미잖아요. 미로 다 통합되는 건데요. 기계적 통합이 아니라 각각의 독립적 영역이 존재하는 거죠. 진은 사람(사단, 四端)으로 보면 십이지신처럼(시비지심是非之心) 지(智)의 개념이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인 힘, 참된 것을 발견하는 힘을 진이라고 해요. 그리고 왜 순서는 진선미라고 했을까? 선은 고도의 정신적인 미거든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미는 선이라고 본 거예요. 미는 뭘까 하니, 신영복 선생님 강의에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미는 숙지성(熟知性), 즉 ‘알 만하다’는 거죠. 아름다움이 ‘알 만하다’에서 명사형으로 바뀌는 과정이라는 거예요. 양이 커가는 과정을 보면서 양을 키우는 주인이 흐뭇해하는 것.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흐뭇해하는 것을 미라고 봤어요. 저는 이게 참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플라톤은 미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미는 행동이라고 봤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실천이 이뤄질 때가 미라고 봤어요. 저는 얼굴에서 어떻게 진선미의 세계를 강화시켜갈 것인가가 이게 교육예술의 목표라고 생각해요. 슈타이너 선생의 인지학에서도 강조했지만,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인간이 죽을 때까지 찾아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렇다면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끝나는 것인가, 아니라는 거죠. 아니다 끝없이 발견해야할 것을 찾는 것을 ‘도덕’이라고 하는 거예요. 플라톤이 이데아에서 중요시하는 것도 ‘선’이잖아요. 그 ‘선’은 평등한 것이고요. 같은 테이블에서 같이 먹고 마시고 서로가 동등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거에요. 교육예술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테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인규

  저는 공교육에서 오랫동안 생활 있었어요. 사실 문화교육을 이야기기할 때 하고 교육예술을 이야기할 때의 어감차이가 있어요. 문화교육이란 용어는 ‘역량’에 방점이 있죠. 시민성이라든지 개인이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의 역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는데요. 2015년 개정교육과정을 보면 ‘역량’을 처음 등장해요. 그러고 보니 우리 교육이 이미 그동안 역량에 방점을 찍어왔던 거예요. 그런데 교육과정에서 그걸 전면에 드러내니 그 문제가 보이는 거지요. 역량은 교육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지 역량을 목표로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할 때, 그 말 속에는 ‘역량성’이 내포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 말하는 교육예술은 ‘역량성’ 이전의 차원과 관련이 깊지 않은가 생각을 해요. 현재 공교육의 문제점이 뭔가 생각하면서 ‘아이들의 역량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요.  ‘이렇게 기를 것인가, 저렇게 기를 것인가’하는 식의 논의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것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고 그럼으로써 현재 공교육의 문제도 같이 해결될 지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진짜 제대로 논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교육부가 던졌고 그걸 논쟁하면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지영

  한편으로 더 생각해볼 지점은 역량이라는 언어의 의미가 지금은 대부분 ‘기능’, ‘개발’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역량이라는 단어가 재능을 뛰어나게 만드는 어떤 기술적 목적에 갇혀있다고 생각해요.


김인규

  교육이 반드시 역량을 기르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게 맞는가 하는 고민이 있는 거죠. 교육부에서 역량을 들고 나왔을 때 이게 뭔가 싶었는데, 자꾸 교육 과정을 되새겨 볼수록 오히려 이게 함정을 파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교육목표의 구체화라 이게 함정이구나 생각하죠.



임재춘

  생각해볼 것들이 있네요. 아까 말씀에 문화예술교육에 역량이라는 부분이 내재화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문화교육을 이야기하면서 리터러시가 가진 합의에 대한 내용이 지금 지적하신 문제가 아닌가요? 


김인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을 그 지점에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직접 느낀 것은 아이들이 원하지 않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의 저항이 저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임재춘

  김인규 선생님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한 한 가지 사건이 있었어요. 2011년에 선생님께서 ‘이전에는 교육과 예술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작업이 됐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교육예술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일치가 떠오르더라고요.


  손채수 선생님은 어떠세요? 지금 하고 계시는 활동이나 아이들을 만나는 방법에서 이어간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손채수

  저는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렸을 때 기억 중에 하나인데요, 서너 살 때 저희 집에서 일하시는 언니를 붙잡고 죽지 않게 해달라고 엉엉 울면서 빌었어요. 그 언니가 너무 당황해서 계속 달래줬었거든요. 그리고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한 기억이 있어요. 물속에서 기절을 했다가 깨어났는데 눈앞에 형언할 수 없는 빛이 보였어요. 그 빛을 보다가 놀라서 입을 벌리는 순간에 물을 먹어서 다시 기절했어요. 그게 4살쯤에 삼천포에 갔다가 겪었던 일인데 너무나 아름다운 기억이었던 거예요. 하늘에서는 햇빛이 쬐고 있고 모래와 물고기가 왔다갔다 하는데 빛이 반짝반짝하는 거예요. 그 빛에 대한 개념이 계속 저를 쫓아 다녔어요. 꿈을 꿔도 계속 빛이 나오는 꿈을 꾸고요. 저는 지금 그 빛을 아이들 눈에서 봐요. 어느 순간에 눈이 반짝 하는데, 그걸 보면 너무 행복해요. 아이들하고 활동을 하고 오면 그날은 탈진을 해요. 그런데 그게 너무 행복한 거예요. 나한테 있는 것을 주고 왔다는 행복감에요. 

  저는 파블로 선생님이나 톨스토이 선생님의 책을 많이 봤어요.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 그 존재에 대한 사랑을 우리가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뭘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들께 강의할 때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꼭 이야기해요. 저에게는 교육예술이 사람 안에 이미 있는 것을 자기답게 끄집어내는 게, 밖으로 드러나게 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자신이 가진 격, 자기 안의 아름다움, 그 빛이 나오면 빛이 퍼지잖아요. 그 빛으로서 세상을 밝게 하고요. 때로는 캄캄한 속에서 서로 빛을 내주는 게 교육예술이 아닐까 제 나름대로 생각했어요. 또 그 과정 속에서 슈타이너 선생님의 교육론 같은 것은 스터디를 하기도 했고요. 이런 연구 측면에서의 진지함은 어떤 다른 분들을 따라잡기 어렵겠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부분에서는 똑같은 마음이라는 거예요. 아이 하나가 하나의 우주니까요. 이런 고민 속에서 지금까지 끌고 온 게 지금 하고 있는 교육예술인 것 같습니다.


이기복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김희동

답이 나왔네요.(웃음)


이기복

  교육예술이라는 게 사실 행복이잖아요. 내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거고요. 격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공교육에서는 가르치고 나서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어요. 시계만 자꾸 쳐다보면서 ‘왜 종 안치지 ‘퇴근하고 술이나 했으면’ 하고요. 
  저는 극단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어떻게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지, 존중해줘야 하는지 등을 교육했어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스스로 적극성을 발휘하게 해줘야 제대로 된 거라고 교육했죠. 저희는 애들이 들어오면 뭐하고 싶은지 꼭 물어봐요. 종류는 연기, 조명, 음향, 연출, 기획, 의상까지 있어요. 선택 했으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말하며 하나의 작품을 책임지라고 말하죠. 그 후에 그 아이가 정말 아무것도 못해도 그건 저희 관심사가 아니에요. ‘난 널 믿어’ 라고 하면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고 고민하지만 반드시 해내야 해요. 공연을 하면 부모들은 막 울어요. 그때 아이들은 내 삶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의지로 충만해져요. 


임재춘

  사실 파발이라는 형식이 대단히 새로운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쌓이는 만큼 사람의 연이 쌓이고 계속 이어지죠. 선배가 관객으로 와서 후배들이 하는 연극을 지켜봐주고 박수를 쳐주고 그 시간을 함께해주면서 연이 쌓이는 문화가 없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해요.


이기복

  저는 교사 초임 때부터 아이들하고 있는 게 정말 좋았거든요. 주말만 되면 학교에 테니스부랑 우리 연극부만 남아요. 그 기억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똑똑한 교사가 필요한게 아니라 아이들은 자기를 이해해주고 같이 있어주고 사랑해주는 선생이 필요해요.


임재춘

  두 가지 이어지는 질문들이 생각이 나는데요. 하나는 ‘교사’ 그리고 ‘의지’에요. 아이들이 좋다고 하는 것만으로 의지가 불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떤 면으로는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너무 흔하지만 중요한 말인데요.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말씀하신 교육예술의 개념이나 철학이 현장에서 구현된다고 할 때 교사로서 갖춰야할 자질 혹은 덕목, 배움의 과정이 궁금했고요.

  또 하나는 ‘교육의 판’이라고 할까요, 교육 현장의 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문화예술교육에서는 그것을 사회와 학교로 구분했는데요, 사실 기존에 학교에서 교육예술의 개념을 고민하고 실천과제로서 담아내기가 어렵잖아요. 이런 가치나 개념, 실천 과제를 펼쳐나가기 위한 교육의 현실적 마당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궁금해요. 그것이 기존의 교육현장을 확장해서 다양한 사회의 관련 시설까지 연계되고 조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싶어요.

  해오름평생교육원의 경우는 학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죠. 오히려 학교 밖 교육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해오름이 고민하고 있는 교육적 입장이나 태도가 올곧고 흔들리지 않았을 것 같아요. 교육예술이라는 가치가 학교를 나와야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박형만

  교육예술의 주체와 범주에 따라 내용이 결정된다고 봅니다. 대체로 우리 교육에서 가장 결핍된 부분 중의 하나가 인간에 대한 이해거든요. 아이들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성장해야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헤 깊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장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한 것이지요. 교육예술이 하나의 형태로 드러날 수도 있지만요. 예를 들어서 김희동 선생님이 주력하는 부분이 음악입니다. 작사도 하시고 작곡도 하시고. 해오름 교사양성 과정에서 김희동 선생님이 만든 노래가 있거든요, 그걸 자주 불러요. 나이대별로 만든 노래, 계절별로 만든 노래 등 다양합니다. 예술적 형태를 띄어야 교육예술인 게 아니라 교육의 모든 부분이 예술적인 거예요. 그러면 교사가 아이를 대할 때도 예술적이고, 한 아이가 아이를 대할 때도, 교구를 만들 때도 예술적인 거고요. 그런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이 안에 내재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것들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빨려들게 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제가 어린이 글쓰기 프로그램을 할 때 도시 아이들을 철물점에 데려갔어요. 그래서 철물점에 있는 것 중 하나를 골라서 세밀화로 그리게 해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상상하게 합니다. 그리고나서 철물점 주인에게 물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어요. 언제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요. 그렇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아이들이 또 철물점에 가자고 해요. 그럼 한 달 내내 철물점에서 수업하는 거예요. 

  그리고 해오름에서 계절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꼭 하는 프로그램이 농사예요.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도구를 배워요. 땅을 갈 때 맨발을 땅에 비벼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식으로 접근하는데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교육의 전 과정이 예술성과 함께 진행된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예요. 형식적 예술이 아니라. 수학도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발도르프 교육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뭐냐면요, 내년부터 학교에서 융합교육을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이미 모든 것들이 융합되어 있었어요. 역사 공부를 하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하는 식으로 통합되어 있어요. 우리가 왜 그렇게 못하는가 하면, 교사들의 연수가 HRD개념이잖아요. 기본적으로 교사들의 역량이 성장하지 않고 계속 자판기 식으로 뽑잖아요. 결국 교사들이 아이를 대할 때 아이가 존중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그걸 바꾸기 위한 교육 철학이 필요합니다. 교육예술은 기본적으로 교육철학이 들어가야 합니다.



전지영

  이 이야기는 글로써 꼭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문화예술교육에 진입하시는 선생님들을 뵐 때,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매력을 못 느끼겠어요. 교사들 자체의 매력이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교사들의 아우라 자체가 아이들이 보기에 예술적인 경험치가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런 접점이 없으면 아이에게는 그저 추상적인 이론일 뿐일 거라고 생각해요. 


임재춘

  교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길러지고 ‘배출’되는지를 살펴보면 경험을 통해 교사로 길러지지 않잖아요. 사실 교사가 왜 그런 경험을 가지지 못한 채 학교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은 다른 여러 가지를 짚어내야 하는 문제라서 다루기 어렵기는 하죠. 유아 때만 하더라도 교사가 장래희망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죠. 왜일까요? 자기가 만났던 선생님의 모습이 롤 모델이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겠죠. 흔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교육예술이라는 언어를 떠나서 왜 교사가 되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교사양성교육이 가능해져야 한다는 거죠.


전지영

  실제로 학교에 나가는 예술강사분들 중에 학교 교사하고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아이들 인성 교육 하러 왔습니까? 예술교육 하러 왔죠” 하는 분들이 종종 계신다는데, 이율배반적인 말 같아요. 그래서인지 지금 나누어주시는 이야기들이 젊은 문화예술 활동가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시대에는 선생 혹은 진정한 스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렵지만 선하고 순리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진짜 진지하게 실천하는 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문화예술교육가로의 삶을 희망하는 많은 분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박형만

  김희동 선생님 팬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김희동 선생님은 쉽게 말해서 교사 양성소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아무도 안 하는 건데 혼자 조용히 만들어가시면서요. 강좌를 한번 열면 “아, 저렇게 살고 싶다”고 하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와서 강의를 들어요. 센터장님께서 말씀하신 분이 여기 계시네요.(웃음)
 

임재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김희동 선생님이 말씀하신 ‘교육예술’이란 언어가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보니 이 언어의 함정에 빠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예요.


성국모

  결국 진지와 정성을 계속 강조하시는데 교육자는 몰두해야 해요. 몰두할 수 있는 교육자가 학생들도 몰입시킬 수 있는 거죠. 예술을 통해 또는 예술로서 아이가 가진 것을 발현하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육예술의 요체는 ‘몰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죠. 김희동 선생님께서도 20여 년 동안 한 가지에 몰두하시는 진지한 모습을 보고 다른 분들이 배우기도 하고요. 학생들도 그런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웁니다. 
  저는 영어 교사에요. 저는 예술을 하지 안잖아요. 그런데 영어로서 아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예술로서 영어를 굳이 발견하자면 음악이나 연극을 가미해서 대본을 줄 수도 있고, 노래 가사를 쓰면 예술로서의 영어 과목이 성립할 수는 있겠다 싶어서 시도해본 적도 있어요. 연극, 뮤지컬, 시, 팝송 등등. 결국 이런 활동의 요체도 몰두하게 하는 것이죠. 저도 큰 목표를 잡고 몰두하고 아이들도 과제에 몰두하면서요.



임재춘

  오늘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3시간이 지나갔네요.  


전지영

  오늘은 이쯤에서 자리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희가 모인 자리가 문을 닫아야 해서 급하게 마무리를 짓는 것에 양해의 말씀드립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이렇게 보내드려야 하니 너무 아쉽습니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함께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못다 한 이야기는 이후 쓰시는 글에 넣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정말 많이 배웠고, 내년에 좋은 계기를 마련하여 또 반갑게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