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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더봄 | 좌담회
2016 지지봄봄 18호 “메신저가 메시지다” 좌담회
참  여 : 고영직(사회), 정은균(군산), 송인현(화성), 박영길(청주), 안태호(부천), 전지영, 박아롬(경기문화재단)
일  시 : 2016.08.16 (화) 16:00-18:00
장  소 : 경기문화재단 1층 카페 gap
작성자 : 한상은


교육은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가


고영직

  안녕하세요? 지지봄봄 18호 편집장을 맡은 고영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_메신저가 메시지다라는 주제로 지지봄봄 18호 좌담회를 진행하기 위해 네 분을 모셨습니다.

  먼저 소개해드릴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공부해서 용 되자)의 박영길 선생님은 올해 요리활동을 출간하셨는데요. 저는 책에서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위해 잘 먹고 잘 싸우자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반대를 평화라고 말하지만, 어느 시인은 전쟁의 반대는 / 평화가 아니고 일상”(김정환)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는 일상(日常)’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문화예술교육(활동)에서도 일상의 한 부분인 요리를 많이 접목시키지만, 대부분 프로그램화된 형식으로 요리하기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박영길 선생님은 활동가 중심 네트워크를 지향하며 요리활동을 통해 지역 청소년들과 만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분은 화성 민들레 연극마을대표를 맡고 계신 송인현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의 생활이 예술과 어우러지는 일상을 꿈꾸며, 선생님의 고향인 화성시 우정읍의 한 마을에 연극마을을 꾸리시고 국내외 연극팀을 초청해 연극 축제를 기획·운영하고 계십니다.

  그 옆에 앉으신 정은균 선생님은 올초 출간한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이며, 현재 군산 영광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 책을 보며 존 듀이의 철학에 견주어 학교는 작은 민주주의의 공간이라는 것에 입각해 교육 문제를 풀어나가는 점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태호 선생님은 문화행정가로서 얼마 전까지 부천문화재단서 일하셨고요. 지금은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신 분들 중에서는 공공기관과 행정 시스템에 가장 밀접하게 관계 맺으셨던 분이시니, 그런 시각에서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2016지지봄봄의 대주제인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면 결국 좋은 삶(good life)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근대 사회의 가장 큰 저주는 자기가 사는 삶의 터전에서의 뿌리 뽑힘을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살 것인지가 이번 좌담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


  그럼, 먼저 한 분 한 분 자기소개를 겸해서 어떤 (교육)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요즘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는지,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은균

  저는 올해로 교직생활 17년차이고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업시간을 통해 글쓰기와 글읽기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수업 방법과 제가 재구성하여 진행하는 수업을 비교하자면 아이들의 반응과 교실 분위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중학교 교과서에 ‘OO을 소재로 글쓰기를 해보자라는 학습 활동이 제시되면 저는 아이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체험이나 주변의 상황을 소재로 글을 써보게 합니다. 작은 변화지만 아이들의 참여는 훨씬 활발해지지요.

  저는 늘 삶과 일상이 교실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명제를 생각하며 수업을 디자인하고 설계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렇게 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교과별로 교육 과정 성취 기준이 있습니다. 학습 목표 하나하나를 도달해야 할 기준으로 잡아 놓았습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이후 학습 목표가 전부 성취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습 기준을 살짝 다르게 해석해서 삶과 수업을 연결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입장도 일부 동조하면서도 과연 이러한 해석이 올바른 방법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삶과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은 대다수 선생님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규정한 교육 과정의 성취 기준이나 목표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재구성하는 것은 교사들의 부담감이 큽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 교육 과정의 편성권평가권을 교사 또는 학교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혁신 학교나 자율 학교에서는 20~30% 범위 내에서 교과 과정을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는데요. 그 폭이 넓어졌으면 합니다.

  독일에서는 교사들이 교과서와 교재를 직접 만들어서 활용한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형태를 지향하고 싶은데요. 저도 나름대로 교과서 내용을 재구성하여 삶과 연결되는 글쓰기수업 등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고영직
  박영길 선생님의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좀 자유롭지 않나요? 7년 전부터 마을카페 이따공룡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하고,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영길
  저는 <공룡> 활동 전에 초등학생, 중학생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했습니다. 공부방에는 2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학업에 관심이 없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서 공부보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활동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수업이 미디어 수업입니다. 아이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영상을 찍어, 편집했는데,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아이들이 착해지거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긴 하는데, 그들의 삶이 변화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의 일상과 생활에 부딪혀 보고자 같이 수업을 진행했던 선생님들과 공부방에서 나와 공룡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공간이 사회이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기가 살아갈 삶에 초점을 맞춰 수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실업계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소개해 주기도 합니다. 한 아이는 입학한 지 1년이 채 안돼서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니까 학교 선생님이 공룡에 가보라고 보내주셔서 같이 지내고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저는 공룡의 아이들에게 검정고시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맹목적으로 대학에 흡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아이들이 삶을 사는 다양한 방식을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학교 밖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과연 교육제도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삶을 담는 문제를 넘어서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답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최근 여러 지역에서 학교를 향하여 일방적으로 마을 자원을 쏟아붓는 방식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마을에게 작은 공간조차 내어주지 않더라고요. 이러한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공룡을 시작한지 7년이 지나니, 지금은 마을학교처럼 다양한 활동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청년 노동권과 철학 등을 같이 공부하고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수업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해보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영직
  말씀 중에서 교육제도 안에서 아이들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말씀이 가장 와 닿네요.


송인현
  저는 사실 문화와 예술에 교육이 함께하는 순간, 문화예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은 모든 인간에게 중요하지만 단어의 한계 때문인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국회에서 예술강사지원사업 관련 공청회할 때도 반대를 했지요. 그때 국회에서 제가 발언했던 내용은 학생들에게 좋은 문화예술을 접하게 하자는 취지가 아니고, 왜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 개념으로 이 사업을 시작하느냐였어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의 일자리 마련을 목적으로 삼고 있으니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잘못된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해결점이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문화예술교육이 만날 때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창의교육 세미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저는 “‘창의교육이 어떻게 접목되느냐, 창의는 교육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어야 생긴다.”라고 했어요. 아이들의 창의력은 선입견을 없앨 때 생깁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아빠와 요리했을 때 가장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해요. 엄마는 집에서 밥하고 아빠는 나가서 일한다는 선입견을 없애는 순간,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틀이 생긴다는 거지요.

그동안 저의 큰 고민은 예술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는 예술가가 이기적일 때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커뮤니티아트(community art)’라는 용어를 쓰기 전부터 동네 할머니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극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소위 지원금을 주는 공공기관에서는 커뮤니티아트의 결과물을 바라지요. 예술을 통해 꼭 뭐가 이루어져야 하나요? 그냥 해보는 거지요.

더하여 말씀드리자면 예전에 동아일보에서 해외의 유명한 과학자를 모시고 과학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지식콘서트를 하더라고요. 거기서 한 고등학생이 "과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 질문에 그 해에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하는 말이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예술가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은 매우 창의적이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했어요. 그 답변이 저의 생각을 바꿔 놨습니다. “예술은 공익을 위해 해야 한다던데, 내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예술이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창의적인 작업이 무엇인지도 고민하게 되었고요. 얼마 전까지도 세금(지원금)을 받아서 사회와 공공을 위해 활동하는 것에 당당했는데 지금은 예술가라는 그 자체로서지원금을 받는 것이 당당한 위치에 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세 분 말씀을 다 들어보니 송인현 선생님께서는 정책 사업의 현장에서 예술가의 결과물만 기대하는 풍토를 비판하셨고 박영길 선생님께서는 정책 사업과의 거리를 두려고 하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까지 기초문화재단에 계시다가 백수가 된 안태호 선생님께서 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태호
  저는 세 달 전까지 부천문화재단에서 문화진흥 팀장을 맡았었고, 그 전에는 생활문화사업팀장으로 일했습니다.

  송인현 선생님께서 지원금을 주는 공공기관에서는 결과물을 바란다고 이야기 하셨는데요, 정책 사업을 진행하는 어느 기관도 결과물에 창출에 대해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에 대한 압박으로 현장의 불만은 크거든요. 이것이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도 재단에 있을 때는 현장 컨설팅 제도를 불신 했습니다. 컨설턴트가 A프로그램에서 B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고 C프로그램에 가면 B프로그램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러한 컨설팅은 무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요. 지금은 하나의 프로그램 현장에 오롯이 몰입하는 활동가들이 직접 다른 현장을 찾아가서 경험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교류시켜줄 수 있는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적으로는 컨설턴트와 활동가가 대화 하며 스스로 자신들의 좌표를 인식하는 과정이 되기를 바라고요.

  조금 전 박영길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문화예술교육이 삶을 담는 문제를 넘어서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답을 줄 수 있을까?”가 오늘 좌담의 요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나 문화예술이 삶을 바꿀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송인현
  하버드에 팔로워십(followership)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결과물 없음을 전제로 활동 자금을 지원해요. 그 결과 노벨상에 준하는 엄청난 결과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예술 활동이 결과물 없음을 전제로 할 때 오히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나라 제도의 엄격함 지수가 세계에서 5위라고 합니다. 엄격함 지수가 높으면, 창의를 바탕으로 하는 특허출원이 적다고 하죠. 


전지영
  전략보다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경기문화재단에 들어와서야 단체나 예술가들이 공모사업을 지원하는데 제한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는 공모사업을 진행하며 결과물이 아닌 과정 중심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합니다. 더하여 지원사업의 절차가 바뀌었으면 해요. 선정 과정은 치열하게 하되 선정된 후에는 결과물에 대한 부담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단체와 예술가의 전문성을 존중하여 최소한의 규정과 절차만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것이죠.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왜 불가능한가



고영직
  이제 질문을 바꿔 볼게요.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은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좌담회를 시작했지만, 불가능한 지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네요. 그렇다면 각자의 현장에서 왜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이 불가능한지에 경험적 진실을 말씀해주시면 논의가 훨씬 깊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영길
  저는 문화예술교육의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교과 수업을 진행 할 때 아이들의 변화가 큰데요, 교수법이나 아이들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예술강사가 정규수업에 단순 결합될 때보다 학교에 대한 이해가 있는 교사가 직접 예술수업을 진행했을 때 효과가 더 큰 것 같아요. 학교가 예술가와 결합했을 때 원하는 방향은 단순 아카데미 교육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통해 사회와 삶, 관계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문화예술교육을 향유하게 하는 것보다 마을에서 건강한 삶을 살기위해 문화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송인현
  교육자가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고,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교육적 관점이 갖춰져 있지 않은 예술가에게 교육을 수행하라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교육은 예술가들이 쉽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예술가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한 지점은 감상 교육이에요. 미술관에 가야만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작품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유엔 헌장 중에 어린이는 누구나 균등한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아이들이 예술을 감상하러 특정한 공간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문화예술을 향유 할 수 있기를 바라요. 예를 들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학교 느티나무 아래에서 음악회 감상한다면, 이 경험은 아이들의 인생에 있어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최고의 경험일 것이에요. 아이들에게 행복한 경험을 만들어준 다음에야 문화예술교육이 삶 속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존 듀이는 행복한 경험을 섬광(閃光), 불꽃놀이라고 표현합니다. 행복한 경험을 해야만 상투적인 삶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갈 수 있어요,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은 왜 불가능한지 무엇이 막고 있는 것인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마 학교에 안 문화예술교육이 가장 힘들 것 같아요. 


전지영
  사실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이 모두가 향유하는 문화예술이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전국 학교에 예술강사를 파견 하는 사업이에요. 하지만 갓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정도 자격증 취득 수업을 이수한 후 예술가적 정체성 없이 학교에 파견되는 경우도 꽤 있지요. 또한 중앙 기관에서는 그저 예술강사를 전국 학교에 파견하면 모든 아이들이 균등한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정은균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 교사, 학부모, 학생 등 교육 주체들의 시선이 너무 좁지 않나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문화예술이 우리의 삶에 행복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제도로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아요.

  글쓰기와 관련된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2년 전 <어깨동무>라는 이름으로 한 학년 전체가 반별로 모둠일기, 단체일기를 쓰는 활동을 했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어떠한 형태든 제약 없이 글을 쓰는 방식의 활동입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모둠일기 공책을 안 가져오는 거예요. 불러서 타일러도 보고 당부도하고 화도 내며 일주일간 실랑이를 했더니, 결국은 딱 두 문장을 써왔더라고요. ‘나는 김OO이다. 나는 15살이다.’ 그 일기를 본 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잘 봤어. 좀 짧구나. 이 문장을 왜 썼는지 궁금하다”, “15살이잖아요”, “2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구나”, “짤막한 대화였지만 스스로 본인이 15살이고, 중학교 2학년 시기를 건너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봅니다.

  활동에서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유,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틈이나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훌륭한 의도를 가진 예술강사들이 오시더라도 효과를 내기가 쉽지 않아요. 또한 인성교육과 예술교육 두 가지 모두를 수행하려고 하니, 혁신학교가 아닌 이상 일반 학교에서는 더 힘들 가 있습니다. 외부 예술강사가 아니더라도 학교 안에서 뜻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시기는 한데 모둠수업을 한번 하려고 해도 학교나 학부모의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에요.


고영직
  엄기호 선생님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라는 책을 보면 학교 안에서 뜻있는 교사가 활동을 하려고 할 때 동료들의 냉소적인시각이 힘들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동료 교사 간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많이 깨져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전지영
  교육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잖아요. 교육을 주관하고 담당하는 분들의 생각, 제도와 정책 안에서 교육이 비틀어져 있는 거지요. 제도권 교육이 기형적이기 때문에 교육자체를 버리려고 하는 태도가 생기는 것 같아요.


안태호
  각 학교 풍토나 교사의 성향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더라고요. 몇몇 교사들을 만나보면 교사로서 저렇게 폭 넓은 활동이 가능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한 분들도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폐쇄적인 학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학교와 지역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박영길
  최근에 <학교밖청소년지원사업>에 대해 청주시와 이야기를 했는데요. ‘학교 밖 청소년의 핵심은 학교인데 교육청은 그 청소년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까라며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시청 공무원에게 물어봤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학교 밖 청소년을 학교로 보내는 것 아니냐라고요. 이 문제는 학교가 변하고, 교육부가 교사와 이야기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아요. 학교가 건강하면 지역 사회가 건강해지는 사례들이 있어요. 학교 안에서 마을축제도 하고 동네 주민들이 학교 시설도 이용하는 사례들이지요


전지영

  실제로 학교에 안 나가는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학교에 대한 향수(鄕愁)’가 분명히 존재해요.



고영직
  이태석 신부님이 쓴 책에 출소한 소년범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출소한 소년범들과 학교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는데 옆자리의 학생들을 보며 그 소년이 나도 교복입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래요. 학교 밖 청소년들의 관심은 학교이고, 그 아이들도 학교의 시간표를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대낮에 학교 밖 청소년들이 돌아다니지 않죠.

  여러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을과 학교 사이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 있어요. 최근 학교와 지역이 만날 수 있는 움직임들이 있지만, 문제는 교육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교육부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 합니다. 문화부와 교육부가 협력체계를 만들어가기를 바라지만 교육부의 폐쇄성 때문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요?




안태호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할 때 문화 다양성’을 주제로 학교 교사와 지역 사회의 노동/인권/문화단체가 함께 커리큘럼을 짜서 한 학기 교육을 진행했어요. 서로 낯설었지만 재밌었던 경험이었지요.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이나 자유학기제 제도를 시행하면서 지역 단체들에게 이러한 커리큘럼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태를 들여다보면 공동 기획으로 프로그램을 같이 짜는 것이 아니라 단체가 일회성 이벤트를 제공하는 것이더라구요. 저는 이런 방식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학교에 공동으로 협력하는 사례나 노력들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은균
  자유학기제 정책이 학교에 도입되면서 외부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부천문화재단에서 실행하신 것처럼 커리큘럼을 같이 짜는 방식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재 출강하고 있는 예술강사들에게 학교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수준, 태도를 고려하여 새로운 커리큘럼을 짤 수 있게 한다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영직
  작년에 안양문화재단에서 예술강사와 학교 교사(부림중학교)가 공동 기획하여 프로그램을 짜고 실행하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예술강사들은 자기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는 대부분 진로탐색 위주의 활동을 원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은 그저 하나의 방편이 되는 측면이 많고요.


송인현
  삶에서 문화예술이 자리잡는 데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가정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정책부터 일반 가정까지 문화적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내세웁니다. 가정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가치가 생겨야만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교육이 중요한데요. 조상님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교육적인 가치를 감각적으로 전달했는데, 요즘은 구체적이고 지시적인 서양교육이 들어오면서 인지적 교육만을 중요시하니 문화예술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가난한 연극쟁이가 그림을 삽니다. 엄청난 사치지요. 그런데 그런 사치가 굉장히 즐겁습니다. ‘좋은 사치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삶 속의 문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삶을 위하여




고영직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내가 꿈꾸던 이상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이 하루하루 일상이 될 수 있는 경지는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 합니다. 아직 답은 없지만,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송인현
  연극마을을 운영하면서 꿈꾸고 있는 것이 결국은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들레 연극마을은 학생들이 마을에 와서 하루종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돌아가는 시스템입니다. 연극마을에 찾아온 학생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삶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겉으로 엉성해 보여도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경험치를 얻고 갔으면 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체험 프로그램이 아닌 아이들의 삶에서 계속 반추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이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사회적으로는 예술가가 이만큼 고생하고 가꾸어 놓았으니 많이들 와서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안태호
 감상교육으로 받는 감동 자체가 여전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풀 편성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았을 때의 감동이라든가 과천 현대미술관에 처음 갔을 때의 짜릿함, 소극장 맨 앞줄에서 배우들의 숨소리를 들었을 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이 주는 고양감이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요.

  고등학교 때 시인 김남주(1946-1994)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때에는 그분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대학에서 운동권을 그만두고 김남주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내가 운동을 하며 김남주 선생님의 시를 제대로 읽었으면 결코 이탈하지 않았겠구나하는 생각에 뒤늦게 각성했어요. 김남주 선생님의 시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꾼 문화예술 텍스트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지지봄봄》 취재차 민들레 연극마을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 뿐이지, 아이들만을 위한 연극은 만들지 않는다라는 송인현 선생님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문학자 배병삼이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위민(爲民)이 아니라 여민(與民)에 있(백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더불어 함께하는 것)’라고 이야기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교육과 예술도 그런 고민이 있어야 삶에 섞여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은균
  행위난지(行易知難)’라는 말이 있어요. 멋모르고 행하기는 쉬워도 진정한 앎이란 지독히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태전 선생님의 책에서 저 단어를 보면서 뜨끔했습니다. 저도 학습을 하려는 노력보다는 어설픈 지식을 바탕으로 일단 하면 되겠지라고 성급한 기대감을 가졌었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이 증명된 것인지 어느 정도 상식에 맞고 교육의 본질에 맞는 것인지를 꼼꼼하게 따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쉽게 빠지는 착각 중 하나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이고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안에서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요. 교사들이 꾸준히 학습을 하지 않으면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이 수업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선생님들의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제도적인 뒷받침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만들어져야 하고요. 쉽지 않겠지만 저부터라도 실천을 하겠습니다.

  지역과 학교에서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선생님들을 밀알’, ‘소금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저는 한국의 교사 자원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수하다고 믿습니다. 학교도 서서히 변해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박영길

  교육이 문화예술을 도구로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며 부당하다고 느끼는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부모님 세대와 싸울 줄 알았으면 좋겠고, 학교의 시스템에 저항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싸움은 폭력적인 형태가 아닌 그림이든 낙서든 음악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반항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과정이 없는 아이들은 어른이 됐을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현재 시스템에 불만을 느끼고 저항할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역할은 문화예술이 해야 합니다. 


전지영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돌아보는 자리가 참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고영직 선생님을 18호 편집장으로 모셨을 때 문화예술 덕분에 살아가고 계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모신 선생님들도 각자의 삶에서 문화예술을 통해 고민하고 있는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영직
  최근에 철학자 한병철 선생님의 아름다움의 구원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현대 문화와 자본주의 예술의 특징을 매끄러움이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그러나 우리의 삶은 울퉁불퉁, 좌충우돌하지만 함께 살며 연대하는 거잖아요.   ‘매끄러움이라는 현재의 징후야말로 삶으로서 문화예술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인 것 같습니다.

괴테가 파우스트마지막 부분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고 말했는데요. ‘여성적이라는 것은 연약하고 보드랍고 사소한 것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자기 삶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일상을 꾸리며, 각자의 현장에서 자기의 사례를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오늘 선생님들을 모셨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삶을 위한 불꽃놀이를 위해서이고, 다음의 불꽃놀이가 계속 이어져야 우리 삶이 더 즐겁고 기쁘지 않겠습니까. 살아가면서 그 점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