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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넘봄 | 서평
세상 헛것들에 던지는 날카롭고 꼿꼿한 시선
정양의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 (모악, 2016.) 서평
최기우 / 극작가, 최명희문학관 학예연구실장

  귀싸대기를 때리고 싶은 때가 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들려오는 세상사는 이야기는 그 마음을 더 간절하게 한다. 썩은 계란으로 과자 만들어 파는 상인, 추가 근무 수당 받으려고 실리콘으로 가짜 손가락 만든 공무원,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아파트 평수 따라 아이들을 줄 세운 교사, 강의를 볼모로 시간강사의 강의료를 삥 뜯은 교수, 병원 지원금에 눈이 멀어 노숙자들을 감금시키고 사람 장사한 병원장, 멀쩡한 남의 집 가장을 뺑소니를 한 파렴치한,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장관·총리하겠다고 발악하고 발악거리는 놈, 일당 4백만 원 종이접기로 황제노역하는 놈, 위장전입·투기·탈루·표절 4종 세트에 병역 면제까지 자격 조건 착실하게 갖춰 주신 정치인…. 잔인하고 비열하고 치사하고 간교하고 악착스러운 세상이 드러날수록 귀싸대기의 짜릿함을 느끼고 싶다. 그러나 서민이 불행한 나라, ‘갑질’에 주눅이 든 세상에서 소시민은 귀싸대기를 칠 호기는커녕 알게 모르게 맞고 맞으며 살아간다. 
  시인 정양의 『헛디디며 헛짚으며』(모악, 2016.)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귀싸대기 올려붙일 줄 아는 시인의 눈 부라림이 생생한 시집이다. 

수사권도 기소권도 없이 백성들은 / 되감기는 세월의 과녁을 정화하게 쏜다 / 
이게 진상이냐 이게 구조냐 / 이게 루머냐 이게 불온이냐 / 
이게나라냐이게나라냐이게나라냐 / 바다도 비좁다고 파도는 몸부림치고 / 
꽂히는 화살마다 부르르 떤다
-「이게 나라냐」 부분 

  시인은 가장 낮은 자리에 시선을 두고 삶의 바닥을 더듬는다. 헛딛고 헛짚으며 살아온 한국 사회의 맹점을 자신의 경험에서 꺼낸다. 시대의 질곡과 역사에 대한 진중한 성찰과 반성. 자신의 비분강개를 여과 없이 쏟아내지 않고, 그곳에서 딸려오는 기쁨과 슬픔과 노여움과 애잔함까지 한 덩어리로 끌어안는다. 각각의 시편에서 드러나는 헛헛한 웃음은 덤이다. “자식에게 예사로 경어를 쓰는 / 아들녀석 말투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시인은 세 살짜리 손자에게 “현관을 발로 힘껏 걷어차고 / 야이 씨팔 문 안 열래? / 큰 소리로 외쳐보라고” 문 여는 방법을 알려주는 “솔찬히 아구똥한 할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손자는 시키는대로 / 야이 슈발 문 안 열래? / 야이 슈발 문 안 열래? / 시키지 않아도 거듭 걷어차며 외친다”(「야이 슈발」).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다. 

“세상이 많이 변했으니 문학적 상상력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래도 시인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봐야해. 또 그렇게 해서 우리 사회를 개선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어야 하고. 서정시를 쓰더라도 역사에 대한 통찰을 전제로 해야 하고. 시에서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의 진정성이겠지. … 그저, 어둡고 고단한 시대를 견뎌온 사람들의 열정만은 쉽게 지나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야.”(정양) 

  시인의 진정성은 고단한 시대를 견뎌온 사람들에게 건네는 오랜 시선에서도 찾아진다. 그가 2005년 시집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문학동네)를 통해 풀어낸 유년의 기억. 징용을 피하려고 전쟁 내내 벙어리 행세를 한 장구재비 기수 아저씨(「아 그 장구재비가 글씨」)와 시집올 때 가마에서 방귀를 뀌었다는 루머에 평생을 시달린 꽃각씨 할머니(「꽃각씨 할머니」), 소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쇠자래기로 죽을 쑤어 먹고는 학교 가는 길에 취해서 논두렁에 픽픽 쓰러지던 아이들(「쇠자래기죽」)…. 한국전쟁부터 5·16군사쿠데타에 이르는 질곡 많은 시절을 견뎌 온 사람들이다. 

중간고사 끝난 다음 주 노총각 영어선생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용출이를 불러내더니
답안지 한 구석을 손가락으로 꾹꾹 찍으면서
시험이 장난이냐 이 쌍녀르 새끼야
쌍소리 묻은 쓰리빠로 철썩철썩
용출이 낯바닥을 때리다가
쓰리빠도 내던지고 주먹질로 발길질로
미친 듯이 퍽퍽퍽 두들겨팼다 
…(중략)…
해브 투로 짧은글 짓는 문제에
우이 해브 투 핸드플레이라고 썼더니 저런다고
눈물을 훔치며 용출이는 더 크게 울었다 
-「We have to」 부분

  『헛디디며 헛짚으며』에는 1940-50년대 교육현장을 그린 시들이 있다. 귀싸대기를 올리고 싶지만, 귀싸대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 이 시집에는 “머리통에 어깻죽지에 / 뭉치자 삼천만, 깨뜨리자 삼팔선 / 그런 종이 띠를 두르고 / 양팔간격으로 늘어선” 1940년대 국민(초등)학생들이 있고, 양팔간격 사이로 “줄 틀리는 아이들을 단속”하는 선생님들이 있다(「깨뜨리자 삼팔선」). 수업 시간에 “출입문 드드륵 밀고 들이닥쳐 / 머리 긴 아이들 머리통에 한 줄씩 / 드르륵 드르륵 신작로를 내놓고” 나가는 1950년대 바리깡 훈육부 선생님이 있고, “그렇게 길들기가 죽어라 싫어 / 일주일 넘게 신작로를 그대로 이고 다닌” 학생도 있다(「신작로」). 시인은 스스로 이 시절은 “황량했다”고 고백한다. 바르지 못한 시대의 바르지 못한 일들. 실제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철썩철썩 학생들의 귀싸대기부터 갈기는 선생들이 꽤 많았다. 반세기가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 그 시대의 선생과 학생들은 복잡하고 참담한 시대를 살아가는 노(老) 시인의 애잔한 그리움이자 씁쓸함이며, 여전한 통증이다. 

  그리고 시인이 기억하는 두 선생님이 있다. 정작 이름 석 자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이들이 보여준 행동은 그의 귀를 번쩍 열리게 했고, 입술까지 지그시 깨물게 했다. 

  “원래 건달이었는데 이사장 친척이라서 / 자격증도 없이 체육선생이 되었다고들” 했던 “별명이 무식이었던 체육선생님”은 농구공·배구공·축구공을 던져주고 알아서 편을 짜고 놀다가 끝나면 공들만 체육실로 가져오라 시키고 당당하게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시간에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고 들이닥친 훈육부 선생들에게 “왜정 때 배운 대로만 풀어먹을라고 저 지랄들을 해댄다.”고 쌍욕을 하며 막아서기도 했다(「잃어버린 이름」). 분필 하나 달랑 들고 교실에 들어서는 “왔다리갔다리 시계불알 화학선생님”은 출석도 안 부르고 차렷 경례 끝나면 곧바로 노트도 책도 없이 고개를 한 번씩 좌우로 저으며 수업 내용을 칠판에 빼곡하게 적었다.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거나 발을 구르거나 말거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시험 답안지에 모두 “×”를 친 시인에게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화학선생님」)이라고 말하던 선생님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옳은 일보다 그른 일들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그이들에 대한 기억은 시인을 지금의 시인으로 성장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정양 시인은 다른 시인들과 달리 “발표한 작품이라도 고칠 데가 있으면 고쳐야한다”고 말한다. 시대도 사람도 변하다 보니 지나간 것을 보면 당연히 고칠 게 많다는 것이며, 이는 “눈 감기 전까지는 자기가 쓴 시를 고치는 것이 시인의 의무”라는 믿음이다. “주례를 한 번 서더라도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하물며 시는 더하지요”라는 게 시인의 말이다. 시집에 실린 시를 다시 고쳐 내듯이 시인은 묵히고 삭힌 기억들을 또렷하게 다시 살려낸다. 그 아득한 기억들은 어둡고 답답한 굴레에서 벗어나 소소한 것을 위대하게 하고, 비루한 것을 장엄하게 한다. 사람들의 곁에서 시글시글 스멀거리며, “헛디디며 헛짚으며 갈 데까지”(「핏발 선 눈을 가리고」) 가더라도 기어이 귀싸대기 때릴 순간을 기다린다.


○ 시인 정양


194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시인은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1968),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1977)에 당선돼 등단했다. 반세기에 이르는 시 쓰기와 함께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까지 중·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으며, 1981년부터 2007년까지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지도했다. 전북작가회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전북 문단을 이끌고 가꿨다. 시집 『까마귀떼』, 『수수깡을 씹으며』, 『빈집의 꿈』, 『살아있는 것들의 무게』, 『철들 무렵』와 수필집 『백수광부의 꿈』, 평론집 『판소리 더늠의 시학』, 『한국리얼리즘 한시의 이해』 등이 있다. 제1회 아름다운 작가상, 제7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정양’은 프로필 몇 줄로 끝나지 않는다. 소설가 김병용이 어느 시집 발문에 썼던 것처럼 우리는 늘 “정양 선생이 아니었다면…”을 반복한다. 
“정양 선생이 아니었다면, 최소한 우리 술자리의 삼분의 일쯤은 소집되지 않았거나 훨씬 일찍 파했을 것이다. 정양 선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미국이나 총칼로 집권한 군인들을 조금 덜 미워했을지도 모르지만, 육회나 바지락죽의 깊은 맛도 몰랐을 것이다. 이병천 형이 수도 없이 막걸리 값을 치르는 일도, 늘 바쁜 안도현 형이 새벽에 전주에 도착하고도 집 대신 ‘새벽강’으로 달려오는 일도, 톱 연주자 같은 박남준 형의 노래를 그렇게 자주 공짜로 듣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김병용)

*최기우 
1973년 전북 전주 출생.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03년과 2014년 전국연극제 희곡상 수상. 희곡집 『상봉』, 창극집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여행서 『전주 느리게 걷기』 등이 있다. 최명희문학관 학예연구실장.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