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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넘봄 | 서평
나이 듦과 삶의 완성
로마노 과르디니, 『삶과 나이: 완성된 삶을 위하여』 김태환 역(문학과 지성사, 2016.) 서평
박경미 /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이 책의 저자인 로마노 과르디니는 매우 중요한 현대 가톨릭 신학자이다. 과르디니는 좁은 의미에서의 신학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의 사고 범위는 대단히 넓었다. 그는 1885년 생으로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태어나고 활동했지만, 신학적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길을 예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20세기 현대 문명이 제기하는 도전을 신학적 성찰의 주제로 받아들임으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선구자가 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교회는 현대 세계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방어적으로 대응했다. 당시 신흥국가였던 이태리에게 교황령을 빼앗겼던 가톨릭교회는 세속 국가들이 교회의 활동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또한 20세기 초 부상하는 공산주의를 파시즘이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잘못된 기대를 가짐으로써 가톨릭교회는 나치즘과 무솔리니, 스페인의 프랑코를 묵인하고 동조했다. 이런 수세적인 입장을 일거에 뒤집은 것이 1962년 시작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였다. 현대 세계에서 고통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교회는 두려움과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 현대 세계의 인류와 그 삶에 개입하게 되었고, 교회 자신의 개혁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근저에 깔려 있는 정신은 신앙과 실천, 신앙과 문화의 유기적인 통전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점에서 과르디니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신학자이다. 과르디니는 1910년 사제 서품을 받은 이후 학자로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면서도 사목 활동을 했다. 특히 그는 청소년 운동에 관심을 쏟았다. 또한 그는 사제로서, 학자로서 나치에 굴복하지 않았고,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했다. 1930년대 가톨릭교회가 나치의 활동에 대해 묵인하고 있던 상황에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던 그는 나치 당원의 감시를 받다가 1939년 베를린대학 강의를 박탈당했다. 이후 그는 나치에 대한 신학적 고찰로 『신화 속의 구원자』, 『계시와 정치』를 썼다.

  이러한 과르디니의 행동은 그가 신앙과 실천의 일치에 대해 예민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의 연구 주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과르디니의 박사 학위 논문과 교수자격 취득 논문 주제는 둘 다 보나벤투라의 신학이었다. 과르디니는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에서 유래한 분석적이고 추상적인 신학적 경향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에 관심을 가진 보나벤투라의 신학 쪽으로 기울었다. 또한 그는 프란치스코회의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신학 방법, 즉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과 주제들을 끌어들이는 종합적인 신학방법론을 선호했다. 그는 인간 삶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통해 “기독교적 세계관”을 밝히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아마도 이러한 신학적 경향이 신앙과 실천의 유기적 통합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그를 이끌었을 것이다.

  또한 과르디니의 전 신학적 경향을 관통하는 것은 신앙과 문화의 상관성이다. 그는 신학자는 신학, 철학만이 아니라 문학과 정치, 사회학, 과학 등 지식 전반을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방대한 연구는 현대 기술 문명과 근대성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되었다(『근대의 종말』). 이후 과르디니의 문명 비판을 잇고 있는 인물로 이반 일리치를 들 수 있다. 과르디니는 문화 연구에 기초해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밝히는 데 주력했고, 전후 여러 해 동안 뮌헨 대학에서 이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또한 그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현대 세계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들에 대해 많은 방송 강의, 대중 강연을 했다. 그는 100편이 넘는 책을 썼으며, 그 글들은 한결같이 전문적인 신학의 경계를 넘어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면서도 결코 녹록하지 않은 깊이와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저술을 접하면 마치 스테판 츠바이크를 읽을 때처럼 원숙하고 풍요로운 인문학적 지식과 통찰,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 역시 강의록과 방송 강연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그의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면서도 상식을 토대로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 과르디니는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며 자기를 형성하고 쇠락해가는 삶의 여정을 통해 어떻게 완성된 삶으로 나아가는지를 삶의 전체성에 입각하여 각 시기의 의의를 기술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삶을 유년, 청년, 성년, 중년, 노년, 말년 여섯 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의 특징과 윤리적 과제를 기술하고 있다. 각각의 시기 사이에는 위기가 있고, 그 위기의 성격으로부터 다음 시기의 과제와 특징이 도출된다.

  과르디니는 가치형상(Wertfigur)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각 시기를 기술한다. 가치형상이란 “몇몇 지배적인 요인의 영향 속에서 고유한 특성을 지닌 일정한 가치들의 그룹이 형성되고 부각되는 것”을 가리킨다. 각 시기의 구조에 근거한 가치형상은 그 시기의 삶에 자연스러운 동력을 부여하며, 적극적인 윤리적 규범을 발전시키게 된다. 각각의 삶의 시기는 고유한 가치형상을 발전시키고, 이와 함께 고유한 윤리적 가능성과 과제가 정해진다.

  이에 따라 과르디니는 이 책에서 인생의 각 시기의 전형적인 형식을 발견해내고 그것에 근거하여 성숙한 인격, 완성된 삶을 향한 길이 어떠한 것인지 모색하고 있다. 가령 청년기의 가치들에는 진실성, 용기, 순수함 등 여러 항목들을 포함하지만, 이것들을 엮어주는 하나의 지배 요인은 청년이 스스로를 떠맡아야 한다는 요구이다. 따라서 청년에게 요구되는 윤리의 핵심은 자신에 대한 용기이다. 자신의 인격과 그에 따른 책임을 향한 용기,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일하며 자신의 생명력과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용기인 것이다. 청년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청년은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 요소, 즉 경험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기에 다른 사람의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청년기에는 자신을 향한 용기와 새로운 것으로 과감히 나아가는 모험심이 기존의 것을 따르며 타인의 경험을 이용하는 태도와 함께 변증법적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과르디니는 이러한 방식으로 각 시기의 지배적인 가치형상을 기술하고, 그로부터 윤리적 과제와 위기를 이끌어내며, 그 위기의 극복과 함께 다음 시기가 형성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것이 완성된 삶을 향한 여정인 것이다. 이 여정의 최고 절정은 노년과 고령의 삶이다. 가장 품위 있게 그 의미가 부각되는 것도 이 시기의 삶이다. 과르디니는 노년의 위기를 물러남의 위기, 끝이 있다는 사실이 원초적이고도 직접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덧없음이 노년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늙어감과 생이 끝나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다. 끝을 받아들임으로써 삶 전체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매우 고상한 태도와 가치들이 실현될 수 있고,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삶의 형상을 이룰 수 있다. 

  삶의 끝도 역시 삶이다. 과르디니가 이 책에서 가장 의미 있게 되살려 놓는 것은 노령 다음, 고령의 시기이다. 그는 ‘죽음’을 삶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임으로써 이 시기를 삶의 완성기로 그리고 있다. 과르디니는 고령의 인간에게서도 가치형상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과거에 사람들이 죽음의 기술이라 불렀던 것, 즉 죽음을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삶을 오직 청춘의 활기가 넘치는 상태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죽음은 부정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여졌고, 보이지 않게 긍정적 가치의 선상에서 치워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죽음은 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게 된다. 삶 자체 속으로 미리 들어와야 할 죽음의 의미는 실종되고, 죽음을 향해 다가갈 때만 얻을 수 있는 인간 삶의 중요성과 위엄이 있다는 사실이 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죽음을 영원에 대한 궁극적 결정으로 이해했기에 좋은 죽음, 복된 죽음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늙는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고, 죽음이 다가옴에 따라 실존의 근원은 드러나며,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이란 공허로 해체되는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것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각자 찾고 결정해야겠지만, 신에 대한 믿음 없이 늙는 것은 좋지 않다는 과르디니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꽤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답하는 데 종교적 인식, 영원에 대한 인식은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르디니는 삶의 각 시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삶의 윤리적 과제를 완수하는 데 핵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이야기했다.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존재해야 하는 것(당위)을 만들어내기 위한 출발점이다. 완숙한 지혜에 이른 노년기에 이미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서는 과르디니 사상의 근저에 깔려 있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자주 나타난다. 가령 그는 여건이 되는데도 노인을 양로원에 보내는 것은 나치 시대의 우생학자들이 저지른 악행과 같은 짓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출산을 용이하게 해주는 기술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아이에 대한 지나친 인위성의 개입에 반대한다. 그리고 국가가 아이를 맡아 국가적 목적에 동원하고 교육하는 것은 최악이라 말한다. 특히 그는 남녀평등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보인다. 그는 이 시대의 불행한 경향 가운데 하나는 성 차이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잘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남녀의 차이를 없애려는 경향이 실제로는 여성의 고유한 특성을 파괴하여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남녀 간 권리의 균형이라는 목적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유한 특성을 펼쳐 나갈 수 있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한다. 오직 고유함 속에 의미가 있고 오직 고유함 속에서만 진정한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젠더에 대한 그의 이러한 입장은 나중에 이반 일리치에 의해 자세하게 논구되었다(『Gender』). 과르디니의 이러한 경향은 자연에 대해서든 인간에 대해서든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균질화한 후 그 안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근대의 환원주의에 반대하는 맥락에 있다. 이러한 그의 이러한 입장은 기술과 제도에 의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근대의 경향에 대한 근원적 회의에 근거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과르디니는 국가나 제도, 기술의 힘을 가능한 한 배제한 채 하나의 고유한 생명체로서의 탄생과 성장, 죽음의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의 고유한 생명체로 발돋움하는 개체 인간의 삶을 하나의 완성된 삶을 향하여 가는 여정으로 기술하고 있다.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