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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넘봄 | 서평
때 묻지 않은 삶의 근원으로, 다시 처음처럼
교육전문 격월간지 『처음처럼』과 『야생의 교육』
김종길 /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2016년 첫 「지지봄봄」을 준비하면서 저는 우리가 알았으나 잊었던 자료 하나를 소개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편집회의 때 교육전문 격월간지 『처음처럼』(내일을 여는 책 펴냄)을 꺼내 들었죠. 그런데 이 책을 아는 이가 생각보다 적더군요. 김보성 성공회대 외래교수님을 편집위원장으로 모시고 다시 17호 좌담회 할 때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 잡지의 상징과 의미를 되짚기 시작했어요. 특히 이병곤 편집위원(경기도교육연구원 전문연구원)께서는 황덕명 선생님(당시 『처음처럼』발행인)께 전화를 걸어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 책의 기증을 요청하시기도 하셨죠. 아주 반가운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제 가슴 어딘가로 어떤 상실감 같은 것이 싸하게 몰려오더군요. 사실 『처음처럼』은 이미 폐간되어 이제 발행되지 않기 때문이었고, 그 뿐만 아니라 과월호조차 구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에요. 다소 역설적일지 모르겠으나 과월호를 구하기 힘들다는 것은 그 책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독자들이 책을 헌책방에 내놓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거예요.

 
 『처음처럼』은 1997년 5월에 창간됐어요. 작은 잡지 하나가 탄생한 것이 정말 큰 대수였을까요? 이 잡지의 의미가 당시에도 매우 컸던 모양인지 경향신문에 단신이 실렸죠. 그 기사 내용이 이래요. 

  “교육전문 출판사 ‘내일을 여는 책’이 격월간지 『처음처럼』을 창간했다. 강선보(고려대), 정유성(서강대) 교수, 이상헌(광주 광산중학교), 이치석(서울 용두초등학교), 조재도(예산 고덕중학교) 교사 등이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처음처럼』은 새로운 삶과 교육을 열어가는 연대와 실천의 장을 표방하고 있다.”
(경향신문, 1997.5.16.)

 창간호를 본 적이 없어서 창간 당시 기획위원들이 어떤 맥락에서 이 잡지를 기획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분들의 선언적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기 어려워요. 1997년이면 나라 경제가 무척 힘들어지기 시작하던 때였고 급기야는 IMF구제금융이 시작됐잖아요. 그런데 창간되자마자 이 책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주 큰 주목을 받게 되었어요.

 그 해 한겨레신문 7월 22일자는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고병헌 성공회대 교수의 인터뷰를 싣고 있어요. 인터뷰어 김창금 기자는 “우리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지난 5월 창간한 격월간 『처음처럼』(내일을 여는 책 펴냄)이 교육계와 학부모들 사이에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참된 교육은 무엇인지, 교사의 참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을 되새겨 보게 하기 때문”이라면서 왜 만들었고 누가 만들고 있는지 묻기 시작하죠. 인터뷰 내용이 많지 않으니 그 전문을 인용할게요.



『처음처럼』을 만든 이유는?

 입시, 경쟁 위주의 우리 교육을 함께 걱정하면서,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잡지를 꾸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현직 대학 교수와 교사들이 기획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삶의 주제들, 예를 들어 대안적인 삶, 환경과 생태, 인권, 생명, 평화, 통일, 문명, 종교, 성평등 같은 주제들에 접근해 ‘삶의 문제’와 ‘교육의 문제’가 풍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최근 10대들이 만든 포르노 비디오 제작은 우리 교육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는데.

 교실은 한 사회의 문제가 집적돼 나타나는 작은 공간이다. 고도 소비사회가 돈을 위한 폭력을 일상화시키고 개인을 고립시켰다. 여기에 학벌과 학력주의, 입시 경재의 교육 풍토는 학생들에게 폭력을 폭력으로, 타락을 타락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중단된 의사 소통구조가 시급히 회복돼야 한다.


대안교육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대안교육의 스펙트럼은 교육혁명부터 부분적 개혁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빠른 시간 안에 지식을 주입시키고, 학생을 선발하고 통제하는 데만 익숙한 기존 교육제도를 철폐하자는 데에는 공통적이다. 대안교육은 이런 차원에서 열린 교육을 바탕으로 학생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는 다원사회에서도 참된 가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교육을 맡게 될 것이다. 


대안학교의 전망은 어떤가?

 거창고등학교나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의 경우 30~4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최근에는 내년 설립목표로 6곳의 대안학교가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확보했다.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 설립이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존 교육제도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교육부가 초등학교의 열린 교육 지원이나 ‘탈규제 학교’를 강조하는 것은 한 사례다.


대안학교가 현실 공교육의 외곽에서 겉돌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대안학교가 현실의 제도교육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 없이 극소수의 학생을 위한 별도의 학교가 된다면 엘리트 교육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대안교육의 이념이 공교육 기관에 녹아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교사, 교육이론가, 학부모 등이 대안 교과서나 새로운 교육방식 모형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


21세기 교육의 형태는?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배운 사람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문자에 대한 지식은 독이 되기 쉽다. 휴머니즘을 강화하는 교육을 통해 ‘사회적 문맹’을 퇴치해야 한다.

*인터뷰이 고병헌 성공회대 교수, 인터뷰어 김창금 한겨레신문 기자, 1997.7.22.





 『처음처럼』의 발행인은 황덕명 선생님이었어요. 선생님은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송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에 고려대에 입학해서 교육학과 사학을 공부하셨죠. 1988년에 도서출판 ‘푸른나무’에 들어가 출판일을 배우셨고, 1993년에 도서출판 ‘내일을 여는 책’을 세웠어요. 선생께서는 ‘새로운 삶과 교육을 생각하는’ 잡지를 위해 1997년에『처음처럼』을 창간했고, 1999년부터는 강화도로 삶터를 옮긴 뒤 ‘도장리 생활학교’와 ‘도장리 마을 도서관’을 실험하기도 했어요. 2006년부터는 ‘산마을고등학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사상, 시사토론, 인문학, 생태농업’를 함께 공부한 뒤, 현재는 강원도 홍천의 해밀학교에서 벗들과 함께 ‘야생의 교사’로 살고 계세요.
 
 제 서재에는 딱 한 권의 『처음처럼』이 있어요. 10년 전, 민들레출판사의 김경옥 주간께서 책의 리뷰를 위해 빌려주셨는데 어찌어찌 시간이 지나서 돌려드리지 못하고 그만 제 서재에 꽂혀 때때로 빛을 발하고 있지요. 오래전의 책이지만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헌책방을 통해서라도 구해 읽기를 권해요. 『처음처럼』은 단지 대안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 교육의 철학과 정신은 물론이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론과 사례들에 대해 꼼꼼히 보여주고 있죠. 매 호마다 기획위원들이 어떻게 책을 만들었는지 정말이지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 어떤 사유를 공유했는지를 살필 수 있답니다. 황덕명 선생께서는 이 잡지가 추구하는 철학을 직접 실천하기 위해 강화도로 거처를 옮겨 스스로 농사지으며 살았었죠. 

 단행본의 서평이 아니어서 책의 내용 하나하나를 따져 평하기 어려워 황덕명 선생님의 책 한 권을 따로 소개할까 해요. 지난 해 가을, 선생께서는 그 간의 체험과 교육적의 사유를 『야생의 교육』(삶창)으로 묶어 내셨죠. 오랫동안 직접 벗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스스로 깨닫고 의문한 것들을 쓴 글들이어서 그 진정성의 무게가 작지 않아요. 




 선생께서는 ‘학생’을 그 자체로 완성된 존재로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교사’란 학생들과 그 시기를 사는데 각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일 뿐이라고 말하죠. 교사는 그저 조금 먼저 태어난, 길을 안내하는 존재이지 학생이라는 미완성의 존재를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선생의 말씀을 새겨 볼까요?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스스로 병아리로 변화하려는, 곧 한 차원 다르게 성장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선생이 한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의 사람들에게 선생은 단지 징그러운 존재로 전락할 것이오. 선생은 벗들이 모르는 지식을 가르쳐주는 존재가 아니라 벗들이 가려는 길에 빗자루질을 해 주는 사람이란 말이오. 벗들이 자기 길을 가지 않으면 선생은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란 말이오. 또 황구는 이런 생각도 갖고 있소. 배움은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오. 오히려 학교 밖에서 만나는 다양한 경험과 스스로 자신을 가꾸는 노력 속에 진정한 자기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이오. 그리고 벗들끼리 서로 나누는 속에서 제대로 된 배움이 싹튼다는 것이오. 벗들이 같이, 함께 배운다는 진리를 깨닫지 않으면 산마을에서의 배움은 사상누각이 될 공산이 매우 크다는 걸 명심하오.

-「교사의 삶이 교육의 처음이다」 중에서



 선생께서는 동네 개 이름을 닮은 별명 ‘황구’를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요. 벗들과의 장벽을 없애는 데에는 이만한 방법이 없겠죠. 『야생의 교육』의 부제는 ‘텃밭 수업’이에요. 선생께서는 텃밭을 가꾸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썼고 그 그들은 짧지만 사유가 깊어서 어떤 철학적 삶의 요체를 보게 만들어요.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생각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밭을 경작하는 것이 또한 글쓰기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니까요. 선생의 글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칠게요.


 사람은 소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 가치를 사는 존엄한 존재이다. 그 출발은 자기 삶을 스스로 온전히 사랑하는 일에서 일어난다.

-「교사의 삶이 교육의 처음이다」중에서


 좋은 직장을 구하고, 명예를 얻고, 부를 얻으면 행복한 삶인가? 이렇게 하기 위해 젊음을 다 소진하고, 친구를 잃고, 삶터를 파괴해야 한다면 이게 진정한 삶인가? 삶의 가치를 묻지 않는 지식은 죽은 것이다. 학교든 어디든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곳이라면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또 묻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제 내 아이에게 던지는 “넌 커서 뭐가 될래?”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묻는 격려와 조언이 돼야 할 것이다.

- 「삶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중에서


 책을 읽자고 소리치지 말고 어른들이 독서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벗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겁니다. 어른들이 어떤 책을 보는지를, 독서에 임하는 태도 등을 벗들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어른들의 서재로 벗들을 초대하여 손때 묻은 책의 사연을 나누어 보면 당연 효과가 있을 것이고, 공공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도서목록이나 서점에서 구입한 책 목록을 보여주면서 벗들을 협박(?)해야 합니다.

- 「몸으로 함께 공부하는 곳, 산마을」중에서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