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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화예술교육의 발신자 - 예술강사의 감각은 깨어있는가


청년일자리허브 서민정 실장


서민정  저는 계속 이런 생각이 들어요. 자칫 잘못 생각하면 프로그램으로 자꾸 접근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듣다보니 손작업 이런 것은 강력한 매개체가 되잖아요. 손도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낭독은 왜 문화예술교육은 아닌가’라는 고민이 드는 거예요. 체험을 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다, 흥미를 끌고, 집중시키려고 뭘 움직이게 만드는 거예요. 이건 또 다른 제도 밖에 제도라는 거죠. 그럼 왜 낭독은 왜 문화예술교육이 될 수 없는가. 왜 강의는 넣지 않는가. 강연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관계와 존중이 아예 없다는 걸 전제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움직이지 않고도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게 있어요. 제가 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꼭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하고 나왔던 프로젝트가 있어요. 예술강사 사업인데 마지막에 예술 강사들과 뭐 하나는 해야겠다고 해서 ‘예술강사의 발’이라는 걸 했었어요. 예술강사 8명과 ‘왜 문화예술교육을 당신은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거죠. 그런데 이분들이 자신들은 예술가인데, 예술강사를 하고 나서 예술가로서 삶을 생각할 수가 없더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첫 신호를 발신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예술강사의 감각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서부터 새로운 출발점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경옥  저는 첫 질문을 계속 생각을 놓지 않고 있는데.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할 때 그게 만들어지는 매커니즘을 봐야 한다. 예술강사의 자질을 제거하는 매커니즘이 있는 거고, 그래서 개념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왜 그걸 하는지에 대한 원리와 매커니즘이 반영이 되어야 하는데 결과만 반영하니까 껍데기만 남는 거죠. 그 안에서 문화예술교육과 접촉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겠다. 그 옷을 벗자니 독립하기도 힘들고, 그 안에서 있자니 또 힘드니까요. 가장 이상적으로 얘기하면 아래로부터의 제도화가 필요할 텐데요. 사회가 이런 것들을 차근차근 만드는 게 중요할 텐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거 같아요. 예를 들면 프랑스는 150년 걸쳐 고령화 됐는데 우리는 20년 걸렸어요. 인구 비율 변화 하나만 봐도 이렇게 급하게 변화했다는 거죠. 그 변화가 만들어낸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 회의적이긴 해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 제도화에 기대지 않는 우리들의 아지트를 만들 수밖에 없는 거고, 그건 유형일 수도 있고 무형일 수도 있는 거죠. 그런 아지트들이 군데군데 만들어지고 그 아지트들이 연결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거죠. 그래서 이런 식의 실험과 연대가 굉장히 소중한 거죠. 제도화가 아닌 작은 힘들의 연결을 통해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박찬국  저는 조금 더 강력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프다는 건 제도 자체가 이미 효력을 잃어가는 거잖아요. 예술은 우리가 맞닥뜨리는 방식이 중요한 거라고 봐요. 내가 인지했든, 하지 못했든 나에게 어떤 충격으로서 오느냐는 거죠. 그런데 그 조건들을 다 거세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비어있는 곳이 엄청 많은데 거기를 다 못 들어가게 하잖아요. 실제로 맞닥드릴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거세하는 거죠. 내가 직접 경험하고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지는 거죠. 막무가내로 해도 하나의 방법이고요. 아니면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떤 거점을 마련하거나. 그런 거점들이 굉장히 아나키하달까, 그런 공간들이 연결되는 거죠. 여기는 중구, 동대문구 여기 저기 걸쳐있는 공간인데. 우리는 꿀벌 키워볼까 하는 거죠. 꿀벌은 그 안에서 어떻게 구획될 수가 없잖아요. 그런 식으로 어떻게 포착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김경옥  지금의 제도는 사실 얼마나 안 된 거잖아요. 설혹 제도가 붕괴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는 거죠. 최근 블로그에서 본 건데 현재 우리 사회 시스템이 효력을 잃은 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인데,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놓치지 않는 거고, 몇몇 사람들은 이걸 뒤집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거라는 거예요. 이 상황을 전복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빌빌되던 사람들, 이 사회에서 게릴라처럼 살아온 사람들 아닌가. 그 사람이 부여잡고 있어야 하는 건 네 가지 밖에 없다고 얘기하더라고요. 하나는 배우고 성장하는 것. 그 다음에 기도하는 것. 우리를 더불어 잘 살 수 있게 만들도록 기원하는 것. 또 하나는 예술,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우리가 시스템이 붕괴되어도 이것들은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서민정  저는 이런 질문도 들어요. 저는 한국에 정말 제도라는 게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헌법도 취사선택을 하잖아요. 제도는 효용가치가 굉장히 높거나, 굉장히 낮아요. 한국의 모든 제도는 그걸 운용하는 사람들이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거죠. 법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 자는 ‘등’이잖아요. 모두가 취사선택하게 두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무너뜨린다, 아니다’ 하는 데에 힘을 쓸 필요가 없는 거죠. ‘예술강사, 그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이 첫 신호를 발신할 수 있게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거죠.


강원재  문제는 이 제도를 선택하고 평가하는 주체와 현장이 맞닿아 있다는 거죠. 현장은 그 질서 아래서 움직이는 곳인 건데. 현장이 그걸 쟁취하는 방법은 거부밖에 없는 거죠. 그 안에서 재설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거죠. 그게 바로 무력화된다는 거예요.


박찬국  관료들이 해외에서 좋은 현장들이 다 보고 나와서 표면만 습득하고 헛질하고 있는 거잖아요. 상상력이 항상 관리하는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게 선한 마음이든 악한 마음이든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런 관료들은 새로운 실험들에 대해 ‘너 왜 그렇게 무식하냐, 냄새 풍기냐’ 하지만 그걸 통해서 다른 감각을 제도도 습득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지금 노들섬도 철조망을 쳐놓아서, 청년들이 들어가서 캠핑을 하는 거예요. 그것 자체는 그 공간을 왜 사용할 수 있는데 막냐고 보여주는 거 자체가 다른 상상력을 만드는 거죠. 거기가 비어놨는데 뭘 하면 어떠냐는 거죠. 그런 것들을 관료들이 재단하면 안 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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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