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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화예술교육의 재영토화 - 제도화를 넘어 관계성의 회복으로 


동대문 옥상 파라다이스 텐트


박형주  전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 들을 수 있었고요. 몇 가지 쟁점을 가지고 이야기할게요. 들어보면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게 뭐냐. 그러면 우리가 제도로부터 꼭 벗어나야 하냐는 반문도 가능할 거 같고요. 일정 정도 제도의 역할도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제도가 담아내지 못하는 건 있는 건 같다. 그런 고민을 서민정 선생님이 풀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서민정  저는 ‘제도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이 제도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지경까지 온 것에 대해서는 회고를 해야겠죠. 사실 하나의 정책이 만들어질 때, 그 정책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출발을 했던 거 같아요. 왜 그 정책이 존재해야 하는가. 정확히는 왜 거기다 돈을 써야 하는가를 입증하는 과정이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게 어떨 때는 굉장히 필요한데, 어떨 때는 출발점부터 왜곡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거에요. 가장 상징적인 정책이 ‘예술강사 사업’이잖아요. 초창기에 이 사업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했던 것은 정해진 교육 공간, 교과서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근대교육체계 안에서 문화예술이 가지는 힘을 새로이 발견하는 게 어렵죠. 이것 역시 정책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에서부터 제도가 출발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청년허브로 오면서 관계성 안에서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학교 안에서도 역시 문화예술교육이 장르 단위로 이루어지냐, 아니냐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그 안에서 관계라는 것이 생기면서 교육이 이루어지냐, 아니냐 이런 문제에 집중을 해봐야 한다는 거죠. 다시 제도냐, 밖이냐 질문을 하는 건 본질적으로는 제도를 기준으로 다시 얘기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탈제도화의 한 모델로 DRP가 다시 이야기되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교감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단초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박형주   이 말을 조금 바꿔보면 우리는 지금 무연사회, 단절사회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그 안에서 실제 필요한 건 감각의 회복인데, 그것은 사실 관계성의 회복이라는 이야기인 거 같아요. 그래서 반문해보면 제도냐, 밖이냐 질문이라기보다 문화예술교육이 단절사회 속에서 서로 간의 감각을 회복시켜주고 있느냐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로 해석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현장에서 하고 있는 작업들이 그런 감각들을 깨우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떻게 답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찬국   관계의 가장 기초가 되는 지점은 우리가 ‘느낄 수 있냐. 느끼는 걸 공유할 수 있냐’에요. 그런 지점이 안 생긴다면 전부 다 대상화되는 거죠. 사람이 너무 어렵게 살다보면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명확히 하게 되잖아요. 답을 예비한 달까. 어떻게 하면 유리하고, 불리한지 미리 판단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걸 학교가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거예요. 제도는 또 그걸 자기 목적에 맞게 이용하려고 투여를 하고요. 이런 상황에서 느낌 자체는 사라지고, 예비된 느낌만 남는 거죠. 그래서 지금 눈물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오거나, 안 나와야 하는 데 나오는 거죠. 뭘 어떻게 하면, 어떤 효과가 난다는 것을 경쟁사회에서는 굉장히 학습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그러면 그 감각들을 회복하는 방법이 뭐냐. 그랬을 때는 내가 가진 개인적 경험으로서 감각을 회복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것이 공유될 때 어떤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나가 중요하다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지점들이 이야기되지 않아요. 판단의 중립적인 지점이 없이 전부 다 규정해버리죠.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예를 들면 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어떠어떠한 감각을 회복할 거다.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거다, 하는 방식으로 다 재단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 이거는 좋은 거니까 먹어’, 그리고 ‘이거는 이런 효과가 날 거야’. 그런 방식으로 제도는 정당화하려는 거죠. 하지만 이렇게 ‘돈 들어갔는데 왜 안 나오는 거야’ 이거는 심각하잖아요. 제도가 그렇게 위선적으로 표면화하는 것들, 결국 투여된 만큼 드러나는 가시적인 효과성만 확장해 가는 게 아닌가. 그런 의심이 있는 거예요.


그런 판단을 넘어 관계 안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지각화되지 않은 감각이 어떻게 발생하는가. 이 지점에 주목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예술양호실’은 내가 너무 힘들어서 가는데 거기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거예요. 그 안에서 수업을 계속 하라든가, 목공을 계속하라든가 그런 게 없는 거예요. 자기가 쓸 수 있는 재료와 세계가 거기 있고, 그것이 들어오는 사람과 느닷없이 만나는 거예요. 작가도 거기에 반응하며 새로운 감각을 만나는 거고, 아이들도 그 곳에서 예비된 답이 아닌 새로운 감각을 여는 거죠. 근대성이라는 표준화 방식 외에 학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른 방식의 설계를 해봤으면 하는 거예요. 공간을 다각화하고 다차원하는 방식의 하나로서 학교 안에 작가들이 있는 예술양호실 같은 공간이 학교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거죠. 우리 어렸을 때는 양호실 가면 꾀병 부린다고 했는데요. 지금은 현실인 거예요. 정말 죽을 거 같은 거예요. 그러면 가야 되는 거죠. 일종의 그늘인 거죠. 여러 가지 그라데이션 안에서 다양한 차원 안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 것들이 사건이 되어야지 예비된 거는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가드닝이라든가 목공이라든가 이런 것을 개념화하지 않아요. 그런 것은 비즈니스에는 좋을 줄 모르나 개념화되는 순간 생활이 아닌 거예요. 


강원재   우리가 가진 생명에 대한 감각은 생에 대한 철학이 가능해야지 교육이라는 관계 안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교실이나 시설이라는 공간, 그것으로 상징되는 제도라는 것 안에서 우리가 그런 생명감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 그 안에서 우리가 하면 할수록 갖는 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법이죠. 교실 안에서 살아가는 법,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법만 익히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그런 공간이 아니라는 거죠. 그럴 때 우리가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어떻게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는가. 


DRP의 홍정현 PM


홍정현  저는 동대문 청년 PM으로 있고, 29살 청년이에요. 여기 DRP도 사적 공간에서 청년들의 활동이 매개가 되어서 공적 공간이 되어간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다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거죠. 누가 누구를 가르치지 않고도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상인들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묻기도 하고. 그래서 같이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거죠. 누군가가 짜서 누군가가 가르치는 게 가능한가 의문이 들어요. 저는 제가 사는 삶 속에서 교육을 받는 거 같아요. 제도 안에 교육이 커리큘럼과 목표가 있다면 심플한 가능성만 있고 다른 것을 열어놓는 것. 이런 것들이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유다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계속 듣기만 하는 거 같아요.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고, 혼자 머릿속에서만 계속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 경계를 계속 나누고, 옳은 답만 찾고 배우도록 하는 방식을 공교육은 계속하고 있잖아요. 그걸 넘어서는 에너지는 예술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예술의 일탈이 가능하고, 본연의 감성이 가능한 예술만이 자유를 만들 수 있어요. 아무리 사회에서 칸막이를 쳐도 자유와 일탈을 만드는 게 예술이잖아요. 그래서 그 예술의 경험을 아이들이 어떻게 경험해보도록 할 거냐. 이것이 문화예술교육에 중요한 지점이겠죠. 제가 가드닝이나 목공 교육을 하는 것도 오롯이 자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인 거예요. 기존의 교육은 너무 사회적인 거예요. 목공이나 가드닝은 나의 손과 몸의 감각에서 조금씩 일깨우면서 결국엔 자아를 찾아가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나무 액자 만들기가 있는데 그냥 액자가 아니고 ‘아름다운 나의 물건점’이라고 하는 거예요. 액자에 내 삶에서 가장 소중했던 물건을 액자에 넣는 거예요. 이렇듯 감수성은 몸에서 회복하게 하고, 그 관계를 회복하는 이야기들을 교사와 아이들이 서로 나누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에서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 다음 이야기 : 3. 문화예술교육의 발신자 - 예술강사의 감각은 깨어있는가?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