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고영직(문학평론가)

 

 

 1.

 

 시인 W.블레이크가 쓴 아포리즘 가운데 “새의 보금자리 / 거미의 거미줄 / 사람의 우정”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핵심적 작동 원리를 이 말처럼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사람의 우정으로 작동하는 사회는 저마다 환대(歡待)하는 삶의 실천으로 환대하는 마을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하는 사회이다. 그런 마을 공동체에서는 아이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는 ‘서로 손-잡기’의 원리가 제일의 가치라는 점을 암묵적 전제로 하는 사회라고 보아야 옳다. 우리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격려와 기대와 지원 외에는 다른 것은 전혀 불필요하다는 점을 자각한 사회를 품위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아이들은 저마다 생애 최대의 풍경이 되어야 할 유년 시절부터 낙오에 대한 공포와 부자되는 것에 대한 선망의 문화를 먼저 배운다. 아이들은 우정의 가치를 더 이상 믿지 않고, ‘숫자(=돈!)’의 주술을 더 신뢰한다. 어디선가 저 『어린왕자』의 장탄식이 들려오는 듯도 하다. 누구랄 것 없이 아이들은 저마다 대한민국에서 십대로 사는 괴로움을 호소한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쓴 『10대가 아프다』(위즈덤하우스 2012)에는 학교폭력과 왕따에 시달리는가 하면 극단적 자살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핏빛 절규가 쟁쟁하다. 이런 문제의 원인에 대해 저자들은 “십대 아이들과 사회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고 진단한다. 십대 아이들의 ‘죽음’이 일상화된 사회를 정상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십대 아이들이 죽음으로 말하는 메시지에 무심한 우리는 괴물일지 모른다. 


 십대 아이들을 위한 감동적인 예술교육이 필요하다. 예술교육의 강렬한 경험은 아이들의 인생길을 단수(單數)에서 복수(複數)로 변형시키는 강력한 마음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고2 때 셋째형의 자살 이후에 치른 나 혼자만의 고독한 ‘홈스쿨링’이었지만, 나는 그때의 대책 없는 책읽기 과정에서 소유하는 삶보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삶이 더 멋질 수 있다는 점을 자각했다. 그때의 강렬한 마음의 임팩트는 나 자신이 처한 현재의 삶에 대한 태도는 물론이요, 미래의 꿈을 확고히 하는 마음의 힘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2.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푸른꿈지역아동센터(센터장 조무선)에서 만난 아이들 또한 예술교육의 효과를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맨발 벗은 두 발로 대지(大地) 위에서 힘차게 뛰어노는 흙의 아이들이라니! 배움터를 겸한 이곳 아동센터 아이들은 대체로 편부모 슬하 내지는 조손(祖孫) 가정의 아이들이 많다.

 

 오늘날 가난과 소외를 광범위하게 정의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제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곳 아이들이 정서적 반응을 선택하고 통제하는 힘을 뜻하는 정서적 자원을 갖출 수 있는 교육과 인간관계는 응당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지지 않도록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어른’과 자주 만나야 한다. 조무선 지역아동센터장과 예술문화단 놀패(대표 문미정) 소속 연극인들이 3년 전에 만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3년째 진행되는 [자기표현을 위한 열린 연극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얼굴 표정에는 여하한 그늘이 느껴지지 않는다. 놀이와 예술이 어우러진 예술교육에 참여한 아이들은 장차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나 자신의 노래’(W.휘트먼)를 부르며 사는 삶을 당당히 선택할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3. 


 대물림되는 가난과 상황에 따른 가난에 처한 아이들을 위한 예술교육은 일종의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아하!프로세스(aha!Process)는 참조 사례가 된다. 아하!프로세스의 설립자로서 30여년 동안 빈곤층 아이들의 삶과 교육에 헌신해온 미국 교육자 루비 페인은 『계층이동의 사다리』(황금사자 2011)에서 “계층 간에 가장 큰 차이는 ‘세계’를 정의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각자의 계층에 따라 집단 내에 적용되는 암묵적 신호와 관습을 뜻하는 불문율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쉬운 예로 식사 후 가족들이 나누는 핵심 대화 내용을 보면, 각 계층에 따라 “배부르게 먹었니?”(빈곤층), “맛있게 먹었니?”(중산층), “차려진 음식이 보기 좋게 나왔니?”(부유층) 식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계층 간의 불문율을 넘어 빈곤층 아이들이 어른의 목소리를 의미하는 일종의 협상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과 인간관계는 다른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오늘의 예술교육이 교육 자체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내면과 일상은 물론 세상을 바꾸려는 프로젝트로서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소외 지역의 빈곤층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술교육은 아이들 마음의 불문율을 깨고 새로운 정서적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곳 연천의 예술교육 프로젝트는 <미래의 꿈을 위한 ‘괜찮아 프로젝트’>라고 명명할 수도 있다고 본다. 작고한 수필가 장영희는 「괜찮아」(『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샘터, 2009)라는 수필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괜찮아! 괜찮아!”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이러한 예술교육은 결국 사람의 우정을 회복하려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센터(동네)-예술인-아이들이 함께하는 일종의 사회통합 프로그램의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나는 연천 푸른꿈지역아동센터에서 진행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 [자기표현을 위한 열린 연극놀이]가 하나의 고유한 ‘사례’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이런 나의 생각은 생태사상가 E.F.슈마허의 가르침에 빚진 바 크다. 슈마허는 『굿워크』(느린걸음 2011)라는 책에서 “예술가가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특별한 인간입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노동의 형이상학입니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이런 좋은 노동의 형이상학을 보여주는 국내외 사례는 무수히 많다. 엘 시스테마(El Systema, 베네수엘라), 몸의 학교(콜롬비아), 클레멘트 코스(미국), 지혜의 등대 도서관(브라질) 같은 사례들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예술교육 현장의 경우 자족(自足)적 경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전국 어디에서나 비슷비슷한 기능교육과 체험교육 위주로 짜인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십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예술교육에 관한 철학적 고민, 교육의 목표에 대한 철저한 고민이 더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못한 예술교육은 자아도취의 유혹과 매너리즘의 관성 사이에서 길을 잃게 된다. 

 예술강사의 역량강화를 위한 지원과 협력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점 또한 과제이다. 이 문제는 전국 어디랄 것 없이 해당하는 해결과제이다. 수업에서 아이들의 미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을 끄집어내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교사의 역량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내공과 열정과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습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운영하고, 전통연희 교육 모델과 교안 제작 관련 워크숍을 여는 등 자기 진화(進化)를 위한 적극적인 모색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그런 열정을 위한 진정한 여행 속에서 탄생한 예술강사는 우리 시대 ‘아픈 십대’들과 서로 소통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에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선물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예술강사를 말의 바른 의미에서 ‘한 사람의 어른’이라고 부르련다. 그런 어른은 입은 줄이고 귀를 키울 줄 아는 능력을 갖추었다. 십대로 사는 고통을 호소하는 지금 이곳 아이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존재는 바로 그런 능력을 갖춘 한 사람의 어른이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하여!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