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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없이 권리 없고, 미디어 없이 변화 없다

안산 지구인의 정류장 '이봐요! 우리 지금 한국에 살아요!'

 

 

 

고영직(문학평론가)

 

 

 영화 <방가방가>(2010)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을 적잖이 바꿔놓은 웰메이드(well-made) 작품이다.

 

 '불법 사람신세가 된 아시아 각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외국인 노래자랑대회에 참가해 이날을 고대하며 연습해온 한국 대중가요 <찬찬찬>을 부르는 대신에 방글라데시 노래 <오월의 바람>을 다함께 합창하는 마지막 장면이 퍽 감동적이다. 그런데 영화 속 알 반장을 비롯한 이주 노동자들이 다함께 불렀던 <오월의 바람>은 방글라데시 노래가 아니다. 육상효 감독이 작사하고 신형이 작곡한 노래였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나는 지금 영화 <방가방가>가 이룩한 예술적 성과와 사회적 효과에 대해 몽니를 부리려는 것이 아니다. 이주 노동자에 관한 우리 안의 시선도 그렇고, 다문화주의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지자체에 의해 추진되는 온갖 사업들이 소위 관용 담론의 무의식적 프레임(frame)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만약 영화 속 아시아 각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진짜 방글라데시 노래를 합창하는 것으로 연출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영화에 대한 극적 감동이 반감되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한 시대의 시선은 구매자의 프레임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필요한 상품만 선택적으로 구매하듯이, 우리와 다른 타자들에 대해 그렇게 보려는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는 듯하다. 타자에 대한 이러한 범주화의 분류체계를 내면화하게 될 때, 한 사람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인격과 영혼을 소유한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다. 육체노동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한낱 영혼 없는 유전자(DNA)를 지닌 일종의 노웨어맨’(nowhere man) 취급을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어느 외국 작가가 우리는 인력(人力)을 원했는데, 인간(人間)이 왔다!”고 한 말은 그 적절한 예가 된다. 타자에 대한 우리 안의 왜곡된 시선을 전환할 수 있는 문화예술의 매개과정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안산 원곡동에 소재한 지구인의정류장(대표 김이찬)에서 201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이봐요! 우리 지금 한국에 살아요!] 프로젝트는 우리의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지구인의정류장은 20091월 이주민의 생활과 결합된 자주적 미디어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현재 안산시흥 지역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주민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한 긴급 구호와 상담 지원 활동과 쉼터 기능 또한 수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구인의정류장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활동이 바로 미디어 교육이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네팔,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핸드폰으로 기록하는 이주민 노동인권영상 백서][공동체 라디오로 만나는 이주생활 삶은 안테나를 타고 흐른다’]와 같은 미디어 액티비즘 관련 교육 프로그램들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표현 없이 인권 없다는 슬로건은 지구인의정류장이 표방하는 핵심 모토이다.

 

 미디어 교육에 대한 이주민들의 관심과 호응 또한 높다.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 이주민들이 대한민국에서 살 권리를 찾기 위한 문화적 재현 수단으로 미디어 교육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매주 1회씩 일요일에만 교육에 참여할 수밖에 없지만, 수업에 임하는 이주민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촬영, 제작 스킬 연습, 노동현장 탐방 및 제작 현장 실습을 위해 분주히 발로 뛰어야 하는 강좌 스케줄에도 열성을 낸다. 스스로 기록하고 제작한 영상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권리 혹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는 행위가 주는 표현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한번 배워두면 고향에 가서 생계의 방편으로 써먹을 수 있다는 실용성 또한 은근한 매력이다. 입소문이 난 탓인지 수강생 모집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이주 노동자들은 영상에서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지구촌의정류장을 방문했을 때 감상한 30분짜리 편집용 영상에는 현재 자신이 직면한 일터와 삶터에서의 문제들이 어눌한 한국어로 발화되고 있었다. 이주 노동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달나라에 가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일의 양식(糧食)을 계속 얻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2011년 개정되어 올해 7월부터 시행 중인 개정 고용허가제(), 외국인고용지원센터(제도), 한국인 사장(사람)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이주 노동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주 노동자들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아는 대한민국의 품격(品格)과 사람으로서의 양식(良識)을 보여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었다. 이주 노동자들이 직접 영상에 담은 한국의 법-제도-사람은 모두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한 듯 보였다. 그 주장이 너무나 소박했으므로, 너무나 절박해 보였다. 차라리 그것은 읍소였다고 말해야 할까.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고 말했다. 까뮈의 말은 지금 이곳의 이주민들이 바라는 점에 대해 정곡을 찌른 표현이다. 더 이상의 영혼 없는 노동이 아니라 자존감 있는 노동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영상을 통해 말하려고 한다는 점은 누구나 실감할 수 있으리라.

 

 ‘Shot by Worker himself!’ 이주 노동자의 당사자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지구인의정류장의 미디어 액티비즘은 일종의 권리를 위한 문화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문화적으로 재현하려는 이주 노동자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일은 세상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동안 이주 노동자의 지원 활동은 적응과 동화(同化) 위주의 활동이었다. 매뉴얼북 제작과 외국인 장기자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회성 이벤트의 문제는 너무나 분명하다.

 

 나는 지구인의정류장의 미디어 액티비즘 활동이 한 편의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예술작품으로 제작되고 유통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물론 이주 노동자에 대한 우리 안의 새로운 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사실적이되 곡진하고, 진지하되 유머가 있는 감동적인 예술작품의 수준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항상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던 조지 오웰의 발언은 적절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아마도 유머이야기를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베르그송이 웃음에서 언급한 바 있는 웃음의 힘과 위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 “유연한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생동적인 것에 반대되는 경직된 것, 기성적인 것 그리고 집중에 반대되는 방심, 요약하자면 자유스러운 활동성에 대립되는 자동주의, 이것이 결국 웃음이 강조하고 교정하려고 하는 결점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한 말이 떠오른다. “나라 걱정을 하지 않는 시(예술)는 시가 아니다[不憂國非詩也].” 우리 시대의 시(예술)가 나라[] 걱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정신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이곳의 문제는 너도 나도 나라 걱정을 하는 애국자들이 너무나 많아서 문제가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위 표현 가운데 나라[] 대신에 사람[]을 넣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걱정을 하지 않는 시(예술)는 시가 아니다[不憂非詩也].”

 

 그렇다, 나는 우리 시대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이 사람 걱정을 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주 노동자의 처지와 권리를 생각하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사업(事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누군가를 대변하기 위한 목적이 활동의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지구인들의 정류장을 자처하는 지구인의정류장의 활동이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지금 선행과 상관없는 동행’(심보선)의 정신이야말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타자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야말로 세상의 변화를 추동하는 마음의 연금술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체인지 메이커 같은 존재를 행위예술가라고 말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

지지봄봄